시중은행, 대출금리 안 내리고 '제 배 불리기'에만 골몰


예금 금리는 0.2~0.25% 즉각 인하...대출금리는 0.05~0.1% 미적미적 인하
박승 한은 총재,"대출금리도 좀 내려달라"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20일 시중 은행장들을 만나 대출금리 인하를 당부했다.[사진=연합뉴스]

한국은행의 콜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시중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낮추는 데는 인색한 채 예대 마진을 늘이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예대마진은 예금금리(수신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로 다른 조건이 같다면 예대마진이 커질수록 시중 은행들의 수익성은 좋아지기 마련. 이처럼 시중 은행들이 예대마진을 키워 '제 배 불리기'에만 치중하는 행태 때문에 통화당국이 의도했던 경기 진작 효과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12일 경기 진작을 위해 콜금리를 연 3.50%로 0.25% 인하했다. 한국은행은 콜금리 인하를 통해 기업과 가계 부문을 합쳐 연간 약 1조2000억원의 이자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다. 이자부담이 줄어든 만큼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가 늘어나 경기 활성화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은의 이러한 계산은 시중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콜금리 인하폭인 0.25%포인트만큼 내리고 예금금리는 0.25%포인트의 절반 정도만 낮출 것을 전제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시중 은행들은 통화당국이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시중 은행들은 콜금리가 인하되자 마자 며칠 내로 콜금리 인하 수준인 0.2~0.25%만큼 예금 금리를 내렸다. 국민은행은 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를 연 3.8%에서 3.6%로 0.2%포인트 낮췄다. 하나은행은 17일 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를 연 3.7%에서 3.45%로 0.25%포인트 인하하고 1년 미만의 정기예금 금리도 0.2%포인트 내렸다. 우리은행도 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를 연 3.9%에서 3.7%로 0.2%포인트 낮췄다. 외국계 은행인 씨티은행HSBC는 0.1%포인트 인하하는데 그쳤다.

반면 시중은행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콜금리가 인하된 뒤에도 한 동안 대출금리를 내리지 않거나 내린다고 해도 0.05~0.15% 내리는데 그쳤다. 대출금리 인하폭이 예금금리의 절반에도 못 미쳐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는 셈이다.

선도 은행인 국민은행은 지난 16일부터 6개월 주기로 변동되는 개인 신용대출 기준금리를 연 7.75%에서 7.70%로, 12개월 단위로 변동되는 신용대출 기준금리는 7.95%에서 7.90%로 인하했다. 기준금리를 고작 0.05% 인하한 셈이다. 고정금리가 적용되는 기업의 일반자금 대출에 대해서도 회사별 신용도에 따라 대출금리를 0.05~0.10%포인트 내렸다. 그나마 자금 사정이 좋은 편인 신한은행이 9월1일부터 대출 기준금리를 0.15%포인트 인하하기로 했다.

하나와 외환, 조흥은행 등도 각각 당좌대출금리와 가계대출금리를 인하할 계획이지만 인하 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 밖의 다른 은행들은 금리를 인하할 구체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다. 이처럼 시중 은행들이 대출금리 인하에 인색하자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0일 "콜금리 인하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예금금리뿐만 아니라 대출금리도 콜금리 인하 폭만큼 내려달라"고 시중 은행장들에게 당부할 정도였다. "은행 잘못으로 생긴 손실 고객에 전가 안돼"





12일 금융통화위원회는 경기 진작을 위해 콜금리 인하 조치를 단행했다.[사진=연합뉴스]
시중 은행들의 이 같은 행태는 콜금리 인하를 예대마진을 확대해 은행 수익을 늘리는 기회로 삼기 때문. 시중 은행들은 그 동안 카드채와 내수침체 등으로 생겨난 부실채권을 떨어내기 위해 지난 해 하반기부터 지속적으로 예대마진을 확대해왔다. 실제로 지난 해 6월부터 1년간 대출금리는 연 6.24%에서 6.06%로 0.18%포인트 떨어졌으나 예금금리는 연 4.15%에서 3.83%로 0.32%포인트나 빠졌다. 예대마진이 지난 6월 기준으로 2.23%포인트로 31개월만에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그런데 최근 상황은 이 같은 예대마진의 폭을 더욱 넓히는 효과만 낳은 것이다.

이처럼 은행들이 예대마진 확대에만 치중하는 것은 카드 채 등 은행권의 막대한 손실 부담을 예금자의 돈으로 막겠다는 계산 때문이다. 시중은행은 카드 채 사태로 생겨난 22조원 가량의 부실채권과 외환위기 이후 은행권 구조조정 여파로 떠안게 된 예금보험채권 120조원의 상환 부담에 직면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무분별한 신용카드 남발 등 은행권 스스로의 잘못으로 생긴 손실을 고객들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광수 경제연구소의 김광수 소장은 "은행권이 자신들의 잘못으로 생긴 손실을 예금자에게 떠넘기는 것은 분명히 문제"라고 말했다.

물론 은행들도 할 말은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인하된 예금금리는 신규고객에게만 적용되지만 대출금리는 기존 대출에도 모두 적용되기 때문에 예금금리와 대출금리를 같은 수준으로 내릴 경우 은행 수지가 악화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출금리의 70% 정도는 시장금리와 연동돼 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금리가 내려간다"고 덧붙였다.

한국은행 금융시장국 관계자는 "가계대출의 약 50%, 기업대출의 약 35%가 시장금리 연동형이기 때문에 콜금리 인하 효과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며 부분적으로는 시중 은행측의 주장을 수긍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국민은행이 대출금리를 0.05% 내린 것은 기대했던 것보다 소폭"이라며 "국민은행의 수지 상태가 썩 안 좋아 예대마진을 크게 해 수지 상태를 개선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광수 소장은 "최근 경기 침체는 부동산에 중산층의 돈이 묶이는 바람에 생긴 내수 침체"라며 "부동산 거품을 더 뺀 뒤 경제 체력을 보강하기 위해 콜금리를 인하하는 게 바람직한 수순이지만 이왕 이렇게 됐다면 경기 진작 효과가 생기도록 시중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인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콜금리 인하 조치가 물가만 올리고 경기 진작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향후 쓸 수 있는 정책수단만 고갈시키는 셈이 된다"고 지적했다.

by 선대인 2008. 9. 4. 1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