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쓴  "또 미분양 대책, 국민이 건설업계 봉인가"라는 글은 정부 정책이 국민경제 전체의 운용이라는 측면에서 왜 부당하고 위험하며 건설업계에 대한 특혜인지를 설명하는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미분양 대책에 대한 효과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글에서는 미분양 대책 효과에 대해 짧게 정리해보겠습니다.

 

-전반적 상황: 주택시장은 이미 되돌리기 힘든 대세하락 흐름에 들어있습니다. 사상 최저금리와 만기대출 상환연장, 4대강사업 등 대규모 토건 부양책, 강남 재건축 규제 완화 및 수도권 전매 제한 완화 등 투기 조장책, 양도세/종부세/상속세 등 부동산 세금 감면 등 대규모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반등은 6개월에 머물렀습니다. 한 분석기사가 설명하듯이 이미 수도권의 주택 가격과 거래량은 2008년 하반기 수준까지 돌아갔습니다. 특히 아래 <도표1>에서 보듯이 지난해 일시적으로 늘어난 거래량조차도 45조원이라는 가계부채를 동원해 마지막 남아있던 수요를 짜낸 것이었지만, 이제 그나마도 고갈돼 현재 집값 수준에서는 더 이상 거래가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정부가 미분양 대책을 내놓은 것 또한 2008년 하반기의 데자뷰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여러 차례 주장했듯이 버블 붕괴를 지연시킬 수는 있지만, 붕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제 정부의 미분양 대책이야말로 정부 스스로 현재 주택시장의 심각성을 공식 인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연구소에 이어 잇따라 각종 경제연구소들이 대세하락 가능성을 제기한 데 대해 전문연구기관도 아닌 국토해양부가 "버블은 없다"고 주장했지만, 이미 속으로는 정부 스스로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도표1>

 

(주) 한국은행 및 국토해양부 자료를 바탕으로 KSERI 추정, 작성

 

-이제, 어제 정부 미분양 대책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코멘트해보겠습니다. 어제 발표 내용 가운데 가장 큰 내용은 미분양 매입과 비강남 거주자의 신규 입주 아파트 갈아타기 수요에 대한 DTI규제 완화입니다.

 

-먼저, 미분양 매입은 대한주택보증(대주보)을 통해 3조원어치를 환매조건부로 매입해주고, LH공사를 통해서 1조원어치 공공임대용으로 매입하는 방식 두 가지입니다. 이 가운데 전자는 일반적인 오해와 달리 이는 쉽게 말해 미분양 아파트를 담보로 자금난에 시달리는 건설업체에 유동성을 지원해주는 효과가 크지 영구적으로 미분양을 매입해주는 것과는 다릅니다. 따라서 이는 건설업체 부도를 지연시키는, 사실상 구조조정 지연책의 측면이 큽니다. 이미 건설업계 구조조정이 크게 지연됐는데 이를 더욱 지연시키고 '좀비기업'들을 양산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중장기적으로 주택시장의 장기 침체를 초래하는 조치이기도 하고요. 다만 3조원어치는 실제 미분양 물량이 현재 20만호 이상이고, 향후 지속되는 공급으로 미분양이 계속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코끼리 비스켓 정도일 뿐입니다. 시장의 흐름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한편 LH공사의 미분양 물량 매입 규모가 1조원에 불과하다는 것은 정부의 부양 여력이 이미 많이 소진돼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냅니다. LH공사는 아래 <도표2>에서 보는 것처럼 이미 각종 신도시개발사업과 보금자리 주택사업 등 정부사업에 동원돼 부채가 100조원에 육박하고 있습니다(2008년 기준 90조원 수준). 자금여력이 바닥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 공공택지 개발 사업도 취소하고 있는 마당에 추가로 미분양 물량 매입을 늘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반면 <도표3>에서 보는 것처럼 대한주택보증은 주택시장 침체기 이전에 부동산 호황기 때 분양사고가 없어 엄청난 순익을 쌓아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주보를 동원한 것입니다. 하지만 대주보에 의한 환매조건부 미분양 매입은 건설업계 지원 효과가 상대적으로 단기적이고 미약합니다. 또한 정부가 대주보에 대해 민영화 일정을 세우고 있습니다. 민영화를 염두에 둔 대주보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설지는 의문입니다. (사실 대주보는 선분양제를 폐지하면 사실상 존재할 필요가 없는 기업입니다.)

 

<도표3> 대한주택보증의 수익/비용 추이

 

-이어 신규 입주 아파트 갈아타기 수요자에 대한 DTI규제 완화에 대해 살펴봅시다. 일부 언론이 '사실상 비강남지역 DTI규제 완화'라고 표현한 것은 과도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주택 잠재수요자에 대해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갈아타기 수요에 대해서만 완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또한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증하고 있는 미분양/미입주 물량을 줄여 건설사들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입니다. 철저히 건설업계 위주의 사고방식인 것이지요. 어쨌거나 상당 부분 DTI규제를 완화하는 효과는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정부가 DTI규제를 확 풀고 싶겠지만, 전세계적으로 시기와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출구전략이 조금씩 가동되는 상황에서, 그리고 IMF마저 버블을 경고하며 기준금리 인상을 권고하는 상황에서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 할 경우 기준금리 인상시기를 앞당겨야 하는 부담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주택 대세하락세가 뚜렷해진 상황이고, 이미 마지막 남은 투기적 가수요까지 지난해 소진해버린 상황에서 이 정도 DTI규제 완화로는 큰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설사 이번 조치가 일정한 효과를 발휘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만큼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앞당기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밖에 미분양 매입 펀드 등은 미미한 조치들입니다. 큰 효과도 없습니다. 오죽 시장 메리트가 없다고 생각하면 캠코에 의해 보증을 서도록 하겠습니까. 최근 제가 만난 한 글로벌 투자은행의 국내 대표도 "최근 주택시장 분위기를 생각하면 미분양 매입 펀드에 메리트를 느낄 자본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오히려 이번 조치의 가장 큰 효과는 시장에 주는 '심리적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현 정부 입장에서는 지금과 같은 부동산 거품 붕괴가 지속되면 언제든 다시 부양책을 쓰겠다는 시그널을 주고 싶었겠지요. 하지만 이번 조치는 양날의 시그널입니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정부 스스로 지금 주택시장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공인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시장 악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그동안 "부동산 버블 없다"는 식으로 심리전을 펼쳐오다가 불과 몇 주만에 이런 대책을 내놓을 정도니 "정말 시장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면..."이라는 생각을 국민들에게 심어줄 수 있는 것이지요. 어느 쪽의 효과가 클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적어도 단기적으로도 전자의 효과가 후자의 효과를 압도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리고 이미 지난해 정부의 대대적 부양책을 쓴 뒤로도 대세하락 흐름을 막지 못한 것을 이미 확인한 이상 전자의 심리적 효과가 얼마나 먹힐지 의문입니다. 더구나 위에서 설명했지만, 정부가  이미 미분양 물량 매입과 DTI규제 완화와 관련해서도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2008년보다 훨씬 더 제약돼 있다는 사실만 드러났습니다. 오히려 어제 대책 내용을 시장에서 잘 뜯어본다면 오히려 투기심리 위축 효과가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첫머리에 말씀드렸지만, 이미 현재 집값과 가계소득 수준에서 대부분의 주택 수요는 이미 고갈돼 버렸습니다. 마지막 남아 있던 수요마저 지난해에 거의 다 소진해버렸습니다. 정부가 아무리 부동산 부양책을 쓴다 한들 버블 붕괴가 본격화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정부가 막으면 막으려 할수록 지난해 가계부채 45조원을 늘린 것처럼 거품 붕괴의 에너지만 키우고 한국경제가 '삽질경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서 선진경제로 나아가는 활로를 찾는 시간만 낭비할 뿐입니다. 또한 그런 활로를 개척하는데 소중하게 쓸 수 있는 정부의 자원만 자꾸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소진하게 될 뿐입니다.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보지만, 지금이라도 부동산 거품이라는 종양을 떼내고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경제를 건설하는 길로 나서길 바랍니다.

 

 

 

*우리 연구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일반인을 대상으로 무료 공개세미나를 개최합니다. 주제는 최근 10년간 한국경제 및 부동산시장 진단과 전망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거나 우리 연구소포럼을 방문하셔서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948532&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sortKey=depth&limitDate=0&agree=F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10. 4. 26. 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