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뉴타운 사업의 정치경제학

기사입력 2008-06-25 10:31
[신동아]

이명박 대통령은 18대 총선 투표일을 불과 나흘 앞두고 서울 은평구 뉴타운 건설현장을 찾았다. 당시 강북 지역의 뉴타운 기대 심리를 자극하기 위한 행보가 아니냐는 공격을 받았다.

“뉴타운 문제는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보다 앞으로 서울시 당정회의를 통해 수시로 보고하고 논의하는 것이 좋겠다.”(한나라당 뉴타운긴급대책소위 위원장 정태근)

“앞으로도 계속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자.”(오세훈 시장)

5월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나라당 서울시당 당정협의가 끝난 뒤 언론에 보도된 발언이다. 이날 당정협의에는 한나라당 서울 지역 국회의원 당선자 및 당협위원장 35명과 오세훈 서울시장 및 서울시 고위 간부들이 참석했다. 이날 보도 내용만 보면 뉴타운 선거공약 논란으로 촉발된 양측의 갈등은 일단 봉합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울 지역 유권자들의 초미의 관심사인 데다 여전히 양측의 의견 차가 커 갈등은 언제든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이날 한 참석자는 “당정협의가 진행되는 동안 한때 분위기가 삭막해졌다”고 전했다. 서울시가 미리 준비한 자료를 바탕으로 서울시의 뉴타운 추진 방향에 대해 설명하자 뉴타운긴급대책소위 위원장인 정태근 18대 국회의원 당선자(성북 갑)가 “뉴타운 사업의 부정적 효과만 너무 강조하는데, 뉴타운 사업에 대한 서울시의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다른 당선자들도 정 당선자의 발언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는 전언이다. “그동안 소외됐던 강북지역 집값이 조금 뛴다고 마치 큰일 나는 것처럼 난리를 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지적도 나왔다는 것.

정치적 계산에서 탄생한 뉴타운

강남북 균형발전과 주거환경개선을 목표로 추진돼온 뉴타운 사업이 왜 이처럼 격한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것일까. 이는 뉴타운 사업이 치밀한 도시계획 및 엄밀한 주거정책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강북 주민의 표심(票心)을 얻기 위한 정치적 계산에서 탄생한 데서 비롯된다. ‘강북뉴타운 건설’은 청계천 복원사업과 더불어 이명박 대통력이 서울시장 취임 초부터 강력한 드라이브를 건 핵심사업이었다. 강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강북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것을 사업 취지로 내세웠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지역 발전에 목마른 강북 주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표 계산이 있었다. 대권 도전을 염두에 두고 ‘보이는 실적’으로 승부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은 서울시장 재임 동안 뉴타운 사업에도 적용됐다. 일부 소외 지역을 번듯한 주택단지로 바꿔놓을 경우 ‘전시효과’를 통해 다른 지역 주민들의 표심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이 때문에 뉴타운 사업은 청계천 복원 사업과 더불어 현대건설 CEO 출신인 이 대통령이 시장 재임 초기부터 강력한 승부수를 던진 사업이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2002년 10월 은평, 길음, 왕십리 3개 지구를 시범 뉴타운 지구로 지정했다. 이 대통령의 시장 취임 불과 4개월 만이었다. 이들 3개 시범지구에 투입한 시 재정만 1500억원가량에 달한다. 특히 이 가운데 은평뉴타운 지역은 이 대통령이 뉴타운 사업의 ‘모델 케이스’로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인 지역이다. 이 지역은 낡은 주거지역을 재정비해야 하는 다른 뉴타운 지역과 달리 그린벨트 해제 지역 등을 개발하는 것이어서 사업 속도를 높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 대통령은, 다른 뉴타운과 달리 은평뉴타운을 서울시 산하 공기업인 SH공사를 통해 공영 개발했다.

은평뉴타운 사업의 임기 내 가시화를 목표로 하다 보니 무리수가 뒤따랐다. 사업을 서두르면서 과다한 토지 보상비를 지급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고, 은평뉴타운의 입찰 방식으로 아파트에는 적용된 사례가 없던 턴키 방식을 택한 것도 문제가 됐다.

턴키 방식은 외국에서 공장 등 유형화한 건축물을 반복 설계 없이 빠른 시일 안에 시공, 납품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주로 기술 및 설계의 창의성을 활용하고 공기를 단축한다는 취지로 시행돼왔다. 문제는 이 방식이 높은 설계비용 때문에 사실상 상위 6대 건설업체들의 전유물로 전락하고, 가격 경쟁입찰 방식에 비해 20~30% 이상 많은 사업비가 든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턴키 방식은 주로 지하철이나 터널공사, 장대(長大) 교량 등의 공사에 적용됐을 뿐 아파트 시공에는 도입된 적이 없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4월28일 서울시청에서 한나라당 ‘뉴타운 긴급대책 소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만나 총선 이후 불거진 뉴타운 추가 지정 논란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이 은평뉴타운에 턴키 방식 적용을 고집한 것은 왜일까. 우선 공기 단축이 이유로 지적된다. 턴키 방식은 기본설계를 확정한 다음 시공업체를 선정하는 다른 입찰 방식과 달리 설계와 시공을 한꺼번에 입찰에 부치기 때문에 공기가 단축된다. 4년 임기 내 사업 가시화를 바란 이 대통령으로서는 눈여겨볼 대목이었다. 또한 주거환경 개선 효과를 ‘전시’할 목적으로 고급 브랜드 아파트 업체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일반 경쟁입찰 방식의 경우 삼성, 현대 등 고급 아파트 브랜드 업체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서울시 관계자는 “당시 이명박 시장이 고가 브랜드 업체를 유치하기 위해 턴키로 가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논리에 떠밀려 35개로 확대

시범 뉴타운이 확정되자마자 뉴타운은 또 한번 정치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각 지역의 민원이 빗발치기 시작한 것. 주민들의 욕구를 대변해 각 구청장과 시의원들을 중심으로 뉴타운 추가 지정 요구가 쏟아졌다. 서울시장실 주변은 뉴타운 사업과 관련한 구청장 등 면담자들과 지역 민원인들로 붐볐다.

이때부터 이 대통령도 자의 반 타의 반 떠밀려 갈 수밖에 없었다. 당초 3~5곳만 지정하려 했던 뉴타운지구가 결국 12곳까지 늘어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우리 지역도 열악한데 왜 어떤 지역은 해주고, 우리는 안 해주느냐”는 목소리를 외면하기 어려웠던 것.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이 대통령은 뉴타운지구와 균형발전촉진지구 지정 기준의 하나로 ‘권역별 형평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모든 지역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으니 권역별로 안배하겠다는 뜻.

하지만 뉴타운 사업 지정만으로 집값이 껑충 뛰는 현실을 목도한 다른 지역 주민들이 잠자코 있을 리 없었다. 대권 도전을 앞두고 표를 염두에 둔 이 대통령으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요구였다. 이렇게 해서 서울시는 2003년 2차 뉴타운 12곳과 시범 균형발전촉진지구(이하 균촉지구) 5곳을 추가로 지정했다. 이후 사업 대상지가 확대되고 추가 지정을 요구하는 민원이 계속됨에 따라 서울시는 2005년 6월 뉴타운 특별법 제정을 건의하게 된다.

뉴타운 사업의 정치적 효과를 알게 된 국회의원들도 ‘뉴타운 특별법’ ‘도시구조개선 특별법’ ‘도시광역개발 특별법’ 등 3개 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했다. 이후 국회는 3개 법안을 통합해 ‘도시재정비촉진을 위한 특별법’을 마련, 그해 12월 법안을 통과시켰다. 서울시는 그 사이 다시 3차 뉴타운 10곳과 2차 균촉지구 3곳을 추가로 지정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한 뒤 지정된 세운균촉지구 등 2곳을 합해 당초 3곳으로 출발한 뉴타운 사업은 모두 35곳으로 대폭 늘어나게 됐다. 총 사업대상지는 27㎢로 약 720만평. 서울시 전체 면적의 약 5%에 이르는 규모다.

“사업지 주변지역까지 합하면 전체 가구의 15% 이상이 영향을 받게 되는 서울시 창건 이래 최대 규모의 역사(役事)”라는 게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장영희 선임연구위원의 말이다. 서울시가 수십년간 추진해온 주택재개발사업 면적보다 더 넓다. 서울시의 한 간부는 “처음부터 이 사업은 한번 시작하면 도중에 발을 빼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았다”며 “당시 이명박 시장도 이 정도까지 사업이 커지리라곤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평뉴타운 전격 방문에 담긴 뜻

이런 과정을 염두에 둔다면 이번 총선을 전후해 불거진 뉴타운 공약(空約) 사태도 결국 터질 게 터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상당수 낙후지역이 뉴타운으로 지정되자마자 집값이 뛰는 것을 지켜본 다른 낙후지역 주민들에게 뉴타운은 지역개발의 상징으로 각인됐다. 주민들의 이러한 개발 기대감을 ‘한 표’가 아쉬운 후보자들이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야 후보 각각 20여 명이 뉴타운 추가 공약을 내걸었다는 점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뉴타운 추가 지정 권한이 있는 오세훈 시장을 활용한 여당 후보자들이 단연 유리했음은 물론이다. 더구나 뉴타운을 시작한 사람이 이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뉴타운 공약은 처음부터 한나라당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선거 막판 이 대통령이 자신이 재임시절 공들여 추진했던 은평뉴타운을 전격 방문한 것도 여당 후보들에 대한 지원사격 성격이 다분했다는 게 중론이다. 뉴타운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정권 차원의 의지를 유권자에게 과시하는 이벤트였다는 것.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 대통령의 은평뉴타운 방문 시점 이후 박빙 지역 유권자 상당수가 여당 후보 쪽으로 움직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뉴타운 지구로 지정된 지역의 원주민 재정착률은 17% 수준에 불과하다. 사진은 2006년 서울 성북구 월곡1동 재보궐선거 유세장. ‘재정착 없는 뉴타운 전면 재검토’ 플래카드가 눈에 띈다.

실제 선거 결과도 이 같은 추정을 뒷받침한다. 민주당의 아성으로 불리던 ‘강북 3구’인 강북, 노원, 도봉구는 이번 총선에서 모두 한나라당으로 넘어갔다. 이들 지역의 야권 후보들은 대부분 선거 막판까지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앞서다가 졌다. 이들 지역은 모두 한나라당 후보들이 뉴타운 공약을 내건 곳이다. 통합민주당이 뉴타운 개발 공약과 관련 있는 서울시내 9개 지역구에 대해 여론조사를 한 결과 응답 유권자의 66%가량이 “뉴타운 공약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다 한다. 통합민주당이 선거 후 뉴타운 공약을 두고 발끈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점은 그냥 묻혀 지나갈 수도 있었을 뉴타운 공약 논란에 불을 댕긴 이가 한나라당 소속 오세훈 시장이라는 점이다. 오 시장은 선거 닷새 후인 4월14일 P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요즘처럼 강북 부동산 값이 들썩이는 시점에서는 절대 뉴타운 추가 지정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오 시장은 민주당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소속 당선자들에게서도 거센 항의와 비난을 들어야 했다. 오 시장 발언이 보도된 뒤 “선거 때는 당장 뉴타운이 될 것처럼 떠들더니 어떻게 된 거냐”는 유권자들의 항의가 한나라당과 각 지역구 당선자 측에 빗발쳤다고 한다. 서울지역의 한 당선자 측은 “그런 전화를 받고 가만 있을 정치인이 있겠느냐”며 “최소한 오 시장을 윽박지르는 모양새라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오세훈 ‘뉴타운 소신’의 배경

그러면 오 시장은 ‘당분간’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왜 그렇게 서둘러 뉴타운 추가 지정 불가를 밝혔을까. 서울시는 “오 시장이 평소 일관되게 밝혀온 원칙을 선거 이후 맨 처음 잡힌 인터뷰에서 재확인했을 뿐인데, 야권이 정치공세를 통해 부각시켰을 뿐”이라고 해명한다. 또한 2년여 동안 서울시를 담당했던 한 기자는 뉴타운과 오 시장의 ‘인연’을 들어 설명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취임 초기, 행정경험이 전무한 오 시장이 서울시 행정 전반을 잘 이끌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시 간부들 사이에 적지 않았다. 전임 이명박 시장 때부터 서울시를 출입한 기자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는 계기가 있었다. 바로 2006년 가을의 ‘은평뉴타운 고분양가 논란’이었다. 사실 은평뉴타운 고분양가는 고급 주거 단지화를 목표로 일을 추진한 이명박 전 시장의 책임이 컸다. 하지만 언론은 ‘서울시가 고분양가를 통해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고 썼고, 여론의 비난은 오 시장을 향했다.

오 시장으로서는 억울했을 법도 한데, 긴박하게 움직여 사태를 반전시켰다. 그 사건을 계기로 80% 공사 뒤 분양하는 후분양제, 분양원가 공개를 시작으로 서울시 주택정책의 물꼬를 확 바꿔놓은 것이다. 이후 뒤따른 장기전세 주택정책 등을 통해 기존 주택정책과는 확연히 다른 해법을 내놓았다. 이때부터 서울시정에 대한 오 시장의 장악력이 커졌다는 게 중론이다. 이를 계기로 구축된 ‘오세훈표 주택정책’에 대한 오 시장의 자부심과 애착이 상당하다. 또 ‘서울시가 손을 대 부동산값이 오르면 큰일 나겠구나’ 하는 교훈도 얻었을 것이다.

총선 직후의 인터뷰 내용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공직자로서 선거기간 중 후보들의 공약을 놓고 의견을 표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자당 후보들이 곤혹스러워할 발언을 하기가 쉬웠겠는가.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총선을 전후로 강북 집값이 급등한 데 대한 위기감이 컸을 것이다. 은평뉴타운 때 호되게 당한 경험 때문에 강북 집값이 더 뛸 경우 덤터기를 쓸 수 있겠다고 봤을 수도 있다. 시간이 더 지나면 강북 집값이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고 보지 않았을까.”

이렇게 점화된 뉴타운 공약 공방으로 오 시장은 통합민주당으로부터는 ‘여당 후보들과 짜고 치는 고스톱판을 벌였다’는 의혹을, 한나라당 일부 당선자들로부터는 ‘자당 후보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는 원성을 사게 됐다. 협공에 시달리던 오 시장은 4월21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치권의 왈가왈부에 좌고우면하지 않겠다”며 여야 정치권의 공격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면서 기존 뉴타운 사업이 상당히 진척되고 집값이 안정돼야 한다는 두 가지 전제조건을 내세우며 당분간 뉴타운 추가 지정을 하지 않겠다고 재확인했다. 이와 함께 집값 폭등, 낮은 원주민 재정착률, 아파트 일변도의 주거 유형 등을 기존 뉴타운 사업의 문제점으로 거론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주거환경개선 정책자문단’을 구성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는 한동안 계속됐다. 민주당은 4월28일 뉴타운 공약과 관련, 정몽준 의원 등 한나라당 당선자 5명과 함께 오세훈 서울시장을 선거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한나라당 당선자들의 오 시장 압박도 계속됐다. 정몽준 의원은 “뉴타운을 안 한다고 하면 직무유기”라고 했고, 홍준표 의원은 “뉴타운 추가 지정을 안 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지정권을 국토해양부로 이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유정현 당선자처럼 “다음 시장선거에서 공천을 안 줄 수도 있다”는 이도 나왔다.

정치권의 뉴타운 추가 지정 요구는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이를 따져보려면 뉴타운 사업의 실태부터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직접 다녀온 은평뉴타운의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원주민들은 떠나고…

5월8일 서울 은평구 수색동 수색뉴타운 6구역. 수색기차역 삼거리에서 은평터널로 이어지는 왕복 2차선 도로 주변에는 수십년 된 낡은 저층 상가들과 단독 및 다세대 빌라 등이 늘어서 있었다. 조그만 식당들과 술집들이 다닥다닥 들어선 모양새는 이 지역의 시계가 1980년대쯤에서 멈춰서 있음을 느끼게 했다. 반면 경의선 기찻길 건너편 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에는 막 지어진 초현대식 고층 건물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 건물들의 뒤로는 몇 년 전 들어선 상암동 아파트들이 병풍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기찻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30년쯤의 시차가 있는 딴 세상에 와 있는 듯했다.

수색-증산 뉴타운지역은 4월22일 서울시로부터 재정비 촉진계획안을 승인받았다. 주민들의 기대는 컸다. 6년 전 이곳으로 이사왔다는 주민 김용준(66·자영업)씨는 “이 지역이 낙후돼 있고 주거여건이 좋지 않아 불편했는데, 뉴타운사업이 본궤도에 오른다니 기대된다”고 했다. 그는 뉴타운 건설이 완료되면 40평형(132.24m2)대의 주택을 분양받아 입주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건너편 상암동 아파트보다는 좀 싸더라도 최소 7억~8억원은 가지 않겠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인근 수색시장에서 만난 양정임(58)씨는 뉴타운이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세로 살고 있는 18평 빌라의 전세가가 불과 4~5년 사이에 4000만원에서 8000만원으로 두 배나 뛰어올랐다는 것. 양씨 내외가 시장 노변에서 분식 장사를 해서 버는 돈으로는 치솟는 전셋값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모든 게 뉴타운 지정 이후 전셋값까지 덩달아 뛰면서 빚어진 현상이라고 했다. 그는 “이제 철거가 진행되면 지금 사는 집을 떠나야 하는데, 지금 가진 돈으로 어디로 갈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했다.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뉴타운에 대한 기대감이 다른 것이다.

수색6구역의 집값 변화 추이를 보면 양씨의 사정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사업 초기인 2003년 이 지역 내 Y빌라 한 가구(대지 지분 8평)의 집값은 4500만원. 하지만 현재 시세는 약 6배인 2억4000만원에 이른다. 대지 3.3m2당 3000만원꼴이다. 하지만 이런 집들에 사는 원주민들은 본격적인 사업 시행 전에 대부분 집을 팔고 떠난다. 30평형(99.18m2)대 조합 아파트를 분양받을 경우 분양가가 5억원이 넘어 3억원가량이 더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이를 마련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입주 이전까지 손바꿈이 일어나 대부분 외지인들 차지가 되는 것이다. 외지인들은 시세차익을 노리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원주민들이 오른 집값에 집을 팔고 간다고 해도 실제로는 크게 득볼 게 없다. 서울시내 웬만한 지역의 집값이 다 올랐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집을 사도 남는 게 거의 없다. 오히려 집값을 맞추기 위해 더 외곽으로 밀려가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수색 토박이인 박모(53)씨도 “결국 뉴타운으로 집값이 올라도 정작 득 보는 사람은 주로 돈 많은 외지인들뿐”이라고 푸념했다.

강북 집값 불안의 원인

수색뉴타운 사례에서 보듯 뉴타운 사업은 지정된다는 소문만 돌아도 대상 지역 집값이 껑충 뛴다. 지정 단계뿐만 아니라 뉴타운 사업의 행정 및 사업 절차가 하나씩 진척될 때마다 계단식으로 집값이 뛴다. 집값이 뛰면 사업추진조합의 사업비 부담이 늘고, 사업분담금을 감당할 수 없는 원주민들은 일정한 시점에 집을 내놓고 외곽으로 밀려가게 마련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길음뉴타운 사업의 경우 원주민의 재정착률이 17%선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열악한 주거지역의 주거환경 개선을 사업 목표로 내세웠지만, 정작 원주민은 그 혜택을 거의 못 본다는 얘기. ‘외지인과 투기꾼들을 위한 뉴타운’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재개발 재건축과 뉴타운 사업이 중대형 평수 위주로 이뤄지다 보니 소형 주택이 크게 줄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시정연)이 2007년말 펴낸 ‘저소득층 주거안정을 위한 저가 소형주택 확보방안’에 따르면 중대형 평수 위주의 아파트 비중이 몇 년 새 크게 늘었다. 2002년의 경우 연립 및 다세대 주택이 전체 서울지역 주택 비중의 64.6%를 차지했으나, 2006년에는 21.3%로 대폭 줄었다. 반면 아파트는 2002년 32.4%를 차지했으나, 2006년에는 76.5%나 됐다.

이런 추이는 서울시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강북에서만 5만호가량의 소형 주택이 철거된 반면 신축된 소형 주택은 1만4000여 호에 불과하다. 최근 노원구와 도봉구, 강북구 등의 집값 상승 배경에는 이와 같은 소형 주택의 수급 불균형이 자리 잡고 있다. 강북 소형 주택의 품귀현상이 소형 평형 위주의 집값 상승을 유발했고, 투기세력이 가세하면서 집값 상승이 확대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형 주택 철거로 인한 집값 상승효과가 인근 지역까지 파급된다는 점이다. 은평구의 경우 은평뉴타운, 수색뉴타운, 증산뉴타운, 가재울뉴타운 등의 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면서 이들 사업지역의 이주 수요로 인근 지역 집값까지 크게 오르고 있다. 은평구 구산동, 신사동이나 응암동 등 뉴타운 대상지가 아닌 인근 지역도 2~3년 사이 집값이 두 배가량 뛰었다. 응암동 S공인중개사 정모씨는 “인근 뉴타운 대상지역에서 밀려나오는 사람들이 응암동 주변으로 옮겨오면서 이곳의 집값과 전세 시세도 크게 올랐다”며 “뉴타운 사업이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집값이 오르고 서민들이 갈 곳이 없어 부작용이 크다”고 말했다. ‘강북 3구’의 집값 상승에만 그치지 않고, 의정부 동두천 양주 등 인접 경기도 지역까지 번져간 것도 이 같은 연쇄 파급효과 때문이다.

서민주택 대란 우려

이런 상황은 향후 몇 년 동안 강북 집값을 끊임없이 불안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뉴타운 지구 내에서 철거된 주택이 2003년엔 296가구였으나 지난해에는 7040가구로 늘었다. 2007년말부터 시범 및 2차 뉴타운 사업이 가시화하면서 대규모로 이뤄지고 있는 탓이다. 올해에는 미아, 왕십리, 은평, 가재울, 아현뉴타운 등이 철거에 들어가 이주 가구 수는 더 큰 폭으로 늘어날 전망. 또 3차 뉴타운 지역의 철거가 본격화할 2010년경에는 전세난이 한층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서울시 주택국이 작성한 ‘주택 유형별 변화전망’ 자료에 따르면 뉴타운과 재개발 재건축 등으로 2012년까지 서민들의 보금자리인 단독 다가구 주택의 40%가량이 사라질 것으로 추정된다.

뉴타운 사업의 동시다발적 진행으로 인한 주거 불안은 뉴타운 사업 추진 초기부터 예견됐다. 대단위 개발사업인 뉴타운을 한꺼번에 무더기로 지정했기에 동시다발적 주택 철거 및 이주 수요 발생은 불 보듯했다. 서울시는 그 대책으로 이명박 시장 시절부터 뉴타운 지역 내 사업지구별 단계적 철거를 추진했다. 하지만 ‘우리부터 먼저 해달라’는 민원 때문에 결국 큰 시차 없이 진행됐다. 뉴타운 지역을 동시에 지정한 이상 지구별로,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시정연의 장영희 선임연구원이나 세종대 변창흠 교수 등 관련 전문가들과 경실련 등 시민단체, 심지어 서울시 일부 간부들이 여러 차례 이 문제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다. 하지만 이명박 시장 시절 이 같은 우려는 사실상 묵살됐다. 이 대통령은 뉴타운 사업의 잠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서울시 간부들을 관련 회의에서 배제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시장 재임 시절 뒷일은 생각지 않고 무리하게 뉴타운 사업을 밀어붙였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이유다.

뉴타운은 주거유형 다양화 측면에서도 큰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앞서 언급한 서울시 주택국 자료에 따르면 단독 및 다가구 주택이 서울 전체 주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5%(2005)에서 22% (2012)로 급감한다. 반대로 아파트 비중은 2012년까지 전체 주거형태의 78%로 올라가게 된다. 뉴타운과 재개발·재건축 지역을 중심으로 사업성 및 투자 수익 확보에 유리한 아파트 일변도의 주택 공급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지금도 북한산에 올라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면 곳곳이 아파트 숲으로 뒤덮여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2020년경 서울의 풍경은 어떻게 변할까. 아마 서울시내에서 아파트 외에 다른 주거 형태는 찾아보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나마 서울시가 일부 뉴타운 등에서 타운하우스와 테라스형 주택 등을 시범적으로 도입, 주택 유형 다양화에 시동을 걸고 있는 것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무리한 추가 지정 요구

이 같은 뉴타운 사업의 현실을 이해한 상태에서 다시 최근 불거진 뉴타운 사업 논란을 되짚어보자. 우선 한나라당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4차 뉴타운 추가 지정 요구는 현재로서는 매우 부적절한 요구다. 치밀한 도시계획적 판단보다는 정치적 논리에 따라 기존 1~3차 뉴타운이 무더기로 지정된 탓에 동시다발적 이주 수요가 집값 불안을 키우고 있다. 더구나 서민들의 주거난은 매우 심각한 상태다. 기존 뉴타운 사업지역의 철거 및 이주 수요만으로도 이런 상황이 5~6년 이상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런 상태에서 추가로 뉴타운을 지정할 경우 당장 투기심리를 더 키울 뿐만 아니라 소형주택의 수급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켜 주거안정을 해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무더기 지정에 따라 뉴타운 사업도 충분한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2005년 지정된 3차 뉴타운 11곳 중 6곳에서 아직 사업계획조차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2차 뉴타운 사업 대상지 가운데 관리처분계획인가(뉴타운 사업시행 과정에서 사업구역의 이주 및 철거를 서울시가 승인하는 단계)를 받은 비율이 10%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뉴타운 추가 지정을 요구하는 의원들도 나름대로 논리를 펴고 있다.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서라도 공급을 늘리기 위한 뉴타운은 해야 한다”(정몽준 의원)거나 “뉴타운은 원래 주거환경 개선을 통해 집값을 올리기 위한 사업”이라는 주장(홍준표 의원) 등 다양한 논리가 나온다.

홍준표 의원 주장의 요지는 이렇다. ‘개발을 하면 부동산 값이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강남은 규제하더라도 강북 부동산 값은 좀 더 올려 키를 맞춰야 한다.’ 오랜 집값 상승기 동안 소외돼온 일부 강북 주민들 처지에서 들으면 반가운 얘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전반적인 경제·사회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지역 주민의 ‘재산증식 욕구’만 지나치게 의식한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뉴타운 사업은 시민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이지 집값을 올려주기 위한 사업이 아니다. 집값을 올려 시민들의 불로소득을 늘리는 것이 공공정책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그동안 개발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온 강북지역을 집중적으로 개발한 결과 이 지역의 집값이 오를 수는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특정 지역의 집값을 올리기 위해 뉴타운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서울시와 같은 행정기관이 할 수 없는 일이다. 홍 의원의 논리대로라면 여전히 절반에 가까운 집 없는 서민의 박탈감은 어떻게 보상할 수 있겠는가.

시장경제 뒤흔드는 발상

강북 집값이 강남 집값에 비해 떨어져 있으니 이를 끌어올리겠다는 것은 시장 기능을 깡그리 무시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홍 의원은 ‘강남 집값은 충분히 올랐으니 이제 그만 오르도록 꽁꽁 묶자’는 요지의 말도 했다. 이 주장도 마찬가지다. 어제는 강북 주민이 소외됐으니 오늘은 강남 주민들이 차별을 받으라고 할 수 있을까. 시민의 재산 가치를 정책사업을 통해 인위적으로 재조정하겠다는 것은 시장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발상이다.

빈곤층에 대한 소득 재분배는 공동체적 연대감과 사회복지 증진 측면에서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제도화해 있다. 하지만 특정 계층이 아닌, 특정 지역에 따라 부의 편재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특정 지역에 대한 특혜 또는 차별이라는 비판을 피해갈 길이 없다. 더구나 원주민 재정착률이 20%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 뉴타운 사업을 통한 개발이익은 대부분 돈 많은 외지인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홍 의원은 서울시가 뉴타운 사업을 확대하지 않는다면 뉴타운 지정권을 국토해양부 장관에게 넘기는 입법안을 마련하겠다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유정현 당선자도 거들고 나섰다. 이는 중앙의 업무를 지방으로 이양하려는 시대적 추세에 역행하는 주장이다. 뉴타운 사업 추진 과정에 거쳐야 하는 조합설립추진위원회 구성과 조합설립인가 등은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주민 간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한 사업이다. 중앙으로 권한을 넘길 경우 지역의 현장 사정을 잘 모르는 중앙정부가 지자체보다 더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오히려 관련 절차가 복잡해지는 데 따른 사업 지연 등으로 주민들의 민원만 극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정몽준 의원은 “집값이든, 물건값이든 오르면 해결 방법은 공급을 늘리는 것이다. 뉴타운을 안 한다면 직무유기”라고 했다.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려면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얘기는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장기적이고 총량적인 측면에서 볼 때 수급 구조가 가격을 결정한다는 것은 중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상식이다.

그러나 투기 심리가 한껏 부풀어 오른 지금의 부동산시장 문제를 중학교 수준의 경제학만으로 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택은 공장에서 버튼만 누르면 바로바로 찍어낼 수 있는 통조림이 아니다. 주택이라는 재화는 공간적, 환경적으로 공급이 극도로 제약된다. 서울 강남에 집이 부족하다고 해서 도시 기반시설의 부하를 넘어 강남 아파트를 50, 60층씩 마구잡이로 빽빽이 지어댈 순 없다. 또 지방에 미분양 물량이 넘친다고 해서 강남으로 갖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 아파트의 경우 시공기간만 2~3년씩 걸린다. 지방에 넘쳐나는 미분양 물량도 대부분 최근 2~3년 안에 분양이 공고된 물건들이다. 반면 몇 년 전까지 청약대란이 일었던 수도권의 몇몇 신도시 아파트들에는 지금 불 꺼진 집이 수두룩하다.

반면 수요는 어떤가. 투기 심리가 팽배할 때는 전국에서 몰려드는 게 수요다. 최근 집값이 들썩이는 강북의 경우에도 강남 등 타 지역 주민들이 거래한 물건이 태반이라는 언론 보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전국에서 몰려드는 투기 수요를 막지 않고 국지적으로 물량공급 계획을 세운다고 당장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신도시를 건설해 주택공급물량을 늘리겠다고 발표할 때마다 왜 집값이 더 뛰었는지를 생각해보라.

수요의 함정

서울시의 주택보급률은 2006년 현재 93% 정도다. 계속 증가하고 있으나 아직 100%를 넘지 않았다. 따라서 꾸준히 질서정연하게 공급을 계속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주택정책을 심도 있게 연구해온 김광수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재개발, 재건축 수요 등을 감안할 때 미국, 일본 등 선진국도 주택 보급률이 110~120%에 이를 때까지는 꾸준히 주택공급을 늘렸다고 한다. 하지만 공급한 주택이 실수요자가 아닌 투자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나 기획부동산과 같은 투기세력에게 돌아가 집값 거품을 키운다면 서민들의 주거 상황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 것이다. 지금 뉴타운 지역에 몰려드는 수요는 실수요보다는 투자수요 또는 투기수요가 대부분이라는 게 현지 부동산중개업소들의 얘기다.

더구나 뉴타운 사업은 주택 공급이 아닌 주거 공급 확대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효과가 부정적인 사업이다. 뉴타운 사업은 신도시 개발과 같이 새로 주택을 공급하는 사업이 아니라 기반시설이 부족하거나 노후 주택이 밀집한 지역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따라서 소유권을 기준으로 한 주택공급 호수는 상당히 늘어나지만 실제 수용할 수 있는 가구수는 종전에 비해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뉴타운 사업 과정에서 서민들이 주로 사는 다가구 주택과 소형 주택이 줄고 중대형 평수 위주의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신길뉴타운과 휘경-이문 뉴타운 지역의 경우 주택 호수는 4만5803호에서 7만5428호로 늘어난다. 하지만 실제로 그 지역에 거주하게 될 가구수는 8만5765가구에서 7만5428가구로 12%가량 줄어든다. 이는 뉴타운 지역에서 줄어든 가구수를 다른 지역에 채워넣어야 한다는 의미다. 뉴타운 두 곳만 해도 이런데, 이를 전체 35개 뉴타운 지역으로 확대해보면 이 같은 주택 수요 창출 효과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짐작할 만하다. 뉴타운 사업은 공급을 늘리기보다는 오히려 주택 및 전세 수요만 계속 늘리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정몽준 의원의 수급논리에 따른다면 뉴타운은 추가 지정을 할 게 아니라 기존 사업도 취소해야 할 판이다.

이처럼 뉴타운 추가 지정을 요구하는 정치인들의 주장에는 허점이 많다. 많은 정치인이 뉴타운 사업을 단순히 주택공급 확대나 지역개발 촉진사업 정도로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주택이 사라지고, 어떤 사람들이 쫓겨나며,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피해를 보는지엔 관심이 없는 듯하다. 혹은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일 수도 있다.

‘뉴타운맨더링’은 계속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쉽게 굽힐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들은 이미 헛공약 논란에 휘말리면서 네티즌들에게 ‘타운돌이’(탄핵 정국에서 국회에 손쉽게 입성한 17대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탄돌이’라고 부른 것에 빗대 18대 총선에서 뉴타운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한나라당 당선자들을 지칭)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까지 얻었다. 뉴타운 공약을 관철시키지 못할 경우 지역 민심의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더구나 한나라당 의원들은 뉴타운 공약을 관철시켜야 자신들의 정치생명 연장에 유리하다. 이번 총선에서 드러났듯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모한 곳의 유권자들은 상대적으로 보수적, 친한나라당 성향을 띤다. 그러니 서민층 주거지인 지역구를 아파트 단지 위주의 중산층 주거지로 바꿀 경우 한나라당 의원들이 득을 볼 가능성이 높다. 특정 후보나 정당에 우호적인 성향의 유권자들이 집중되도록 선거구를 획정하는 것을 ‘게리맨더링’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에서는 지역감정 때문에 같은 행정구역 내 계층별 지지성향 분화가 심하지 않아 게리맨더링의 유혹은 비교적 작았다. 하지만 지역구는 그대로 둔 채 대규모 뉴타운 사업 등으로 지역구민들을 ‘물갈이’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이를 ‘아파트맨더링’이나 ‘뉴타운맨더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의 지난 총선 결과는 이런 경향이 앞으로 더욱 공고해질 것임을 보여줬다. 따라서 ‘뉴타운맨더링’을 염두에 둔 한나라당 당선자들의 뉴타운 추가 지정 공세는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추세로 뉴타운 사업이 진행돼 10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이 정권의 부침에 따라 진폭의 차이는 있겠지만, 서울 대부분의 지역구는 한나라당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지역구로 변모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뉴타운 사업을 처음 시작한 이 대통령이 이런 것까지 염두에 뒀을지는 모르지만, 만약 그랬다면 그는 한나라당을 위해 정말 ‘지속가능한 기여’를 한 셈이다.

사람과 공동체 중심의 뉴타운을

뉴타운 사업은 이 같은 정치논리에만 맡겨두기에는 그 사회, 경제적 파급효과가 너무나 큰 사업이다. 이제 기존 뉴타운 사업의 실태와 문제점을 면밀히 살피고 문제점을 보완하는 작업을 펼쳐야 할 시점이 됐다.

향후 뉴타운 사업은 ‘강북을 강남만큼 끌어올린다’는 균형발전 논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원주민이나 투자자들의 집값 상승 욕망에 기댄 아파트 중심의 획일적인 주택 공급, 기존 도시의 흔적을 송두리째 없애는 도시 설계, 개별 조합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세입자 주거 대책, 주민 사이 반목과 갈등을 조장하는 사업 방식, 상당수 원주민을 쫓아내는 비인간적인 뉴타운 개발은 지양해야 한다.

그보다는 주민들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고, 서민 주거 안정을 확보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단기적으로는 뉴타운 추가 지정을 보류하고, 이미 뉴타운으로 지정돼 개발이 추진 중인 곳도 단계적, 순차적 개발로 사업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또 뉴타운 지역에 공급되는 주택 가운데 소형 및 임대 주택 공급 비율을 높이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와는 별도로 다가구 매입 임대주택 사업을 확대하고, 공공 임대주택 및 장기전세 공급 확대 등을 통해 뉴타운 개발로 쫓겨난 서민들이 안정적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뉴타운 사업은 향후 10여 년 동안 서울의 모습을 확 바꿀 대역사다. 지금처럼 개발욕망과 정치논리에 물들어 집값 폭등과 낮은 재정착률로 대변되는 ‘뉴타운의 비극’을 되풀이한다면 서울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사람과 공동체가 중심이 된 뉴타운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by 선대인 2008. 9. 4. 17:55

부동산 대폭락 가능성

기사입력 2008-08-25 13:35
[신동아]

《지난해 말부터 필자는 주위 사람들에게 집값의 대세하락을 설파해왔다. “지금이라도 집을 사야 하느냐?”고 묻는 지인들에게 “지금 집을 사면 상투를 잡을 가능성이 높다. 가능하면 사지 마라. 특히 부채를 지고는 절대 사지 마라”고 답하곤 했다. 길게 잡아도 2년 안에 본격적으로 집값이 떨어질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최근 부동산시장의 흐름과 이를 둘러싼 국내외 거시경제 상황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이 같은 판단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됐다.》

1990년대 말 이후 집값 폭등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2000년대 이후 주택 투기 버블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 및 브릭스(BRICs) 국가 등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동시에 발생했다.

세계 경제 동조화 현상

세계 각국에 주택 투기 버블이 공통적으로 형성된 이유를 몇 가지로 꼽을 수 있다. 먼저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라는 쌍둥이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이 세계적으로 달러 유동성을 과잉공급해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또한 실물경제 자산을 유동화하는 금융경제화 현상도 주택 버블 형성에 기여했다. 미국과 유럽 등의 금융권에서는 주택모기지 대출을 유동화하는 금융상품을 통해 부동산 투기 레버리지(leverage)를 극대화했다.

9·11테러 이후 경기침체 극복을 위해 미국 등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유지한 저금리 기조도 주택 버블 형성을 초래한 주요 원인이 됐다. 여기에 1999년 유로화 국가들의 시장통합에 따라 역내 금융기관들의 저금리 여유자금 유입과 역내 직접투자가 확대된 것도 유럽 지역의 부동산 경기가 달아오른 원인이 됐다.

이 같은 경제적 동인들을 배경으로 2000년 이후 세계 각국의 집값은 급격히 상승했다. 예를 들어 쉴러-케이스(Shiller-Case) 주택가격지수 추이에 따르면 미국 10대 주요 도시의 주택가격은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약 2.25배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론(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를 계기로 세계 각국의 주택 버블도 약간의 시차를 두고 붕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올해 6월 현재 미국 10대 도시의 경우 정점 대비 주택 가격이 17.8%가량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더구나 물가가 하락한 대공황 때와는 달리 현재 물가가 상승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집값 하락폭은 대공황 때보다 더 크다.

미국보다 조금 늦게 거품이 걷히고 있는 영국의 경우도 집값 하락세가 완연하다. ‘이코노미스트’ 7월5일자에 따르면, 영국의 집값도 6월 현재 지난해 동기 대비 6.3% 하락했다. 이뿐만 아니라 스페인, 프랑스, 아일랜드 등 상당수 국가의 집값이 빠른 속도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처럼 함께 오르던 전세계 집값이 이제는 함께 떨어지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 집값이 떨어지고 있는 것도 전 지구적 동조화 현상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전세계 주식시장의 주가 등락 그래프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시점에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세계 증시와 마찬가지로 부동산시장도 1990년대 말 이후 동조현상이 뚜렷하다. 다른 나라와 함께 오른 국내 집값이 다른 나라가 내릴 때에도 홀로 독야청청(獨也靑靑)할 수 있을까? 전세계적인 동조현상에서 한국만 벗어날 수 있을까?

많은 이가 국토가 좁고, 수도권에 인구가 밀집해 있다, 한국인은 주택 소유욕이 강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한국은 다르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1980년대 말 부동산 버블의 절정기에 있던 일본에서도 거의 똑같은 이유를 들먹이며 ‘부동산 불패론’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주택수급 불균형에 대한 오해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주택수급 상황이다. 이 같은 오해를 바탕으로 한 언론 보도나 ‘부동산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엉터리 주장도 많다. ‘아직 주택보급률이 100%에 이르지 않았으니 집이 모자란다’거나 좀 더 국지적으로는 ‘강남 같은 여건을 갖춘 아파트는 모자란다’는 식의 주장이 그렇다. 이런 주장들은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이는 주택보급률이 지금보다 훨씬 더 낮았던 1990년대 초·중반 집값이 하락했던 상황이나, 주택 보급률이 110~120%에 이르는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집값 거품이 발생하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집에 대한 수요는 집을 사고 싶다는 욕구(want)만 있다고 수요라고 할 수 없다. 집을 사고 싶다는 욕구와 더불어 살 수 있는 구매력이 있어야 유효수요가 된다. 많은 이가 강남에서 살고 싶다고 해서 그들 모두가 강남에서 살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한 주택보급률이 100%를 웃도는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35% 전후의 주택 미소유자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의 집값은 정점 대비 17.8%가 빠졌다. 그런데도 아직 절반밖에 안 왔다는 얘기가 나온다. 사진은 미국 버지니아 주 알렉산드리아 지역의 한 주택 앞에 내걸린 주택 매매 광고판. ‘꼭 들어와서 구경하세요’라는 문구가 씌어 있다.

각 개인의 구매력은 자신의 가처분 소득과 은행 등에서 부채를 얻을 수 있는 신용의 정도, 소비하고자 하는 상품(이 경우 주택) 가격 등에 따라 결정된다. 최근 몇 년간 국내 가계의 가처분소득 규모는 크게 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주택 가격은 지난 몇 년 동안 가파르게 상승했다. 갈수록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외환위기 이후 몇 년 동안의 집값 상승은 수급 불균형 측면에서도 합리화될 수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몇 년 동안 건설경기 침체로 주택 잠재수요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난 데 반해 실제 공급량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1년 이후 부동산 투기 붐이 일면서 아파트 신규 공급이 급증해 공급 부족이 빠르게 해소됐다. 김광수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00년 약 41만호에 이르렀던 수도권의 아파트 잠재적 공급량 부족은 2006년에는 7만3000호까지 빠르게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이 연구소는 다주택 보유 가구 및 수도권 비거주자의 투기적 가수요를 빼면 수도권의 아파트 잠재적 공급 부족은 거의 해소됐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미분양 물량 급증과 잇따르는 분양 미달, 입주율 저조 등을 통해 현실에서 확인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4월 미분양 주택 수는 전국적으로 12만9859호에 달했다. 하지만 실제 미분양 물량은 두 배가량인 25만가구에 이른다는 것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특히 올 들어 수도권에서 분양한 5만352가구 중 미분양 물량은 19.5%인 9819가구나 됐다. 최근 서울 마포구 합정동 균형촉진지구의 주상복합 ‘서교자이’가 1순위 분양에서 대규모 미달 사태를 빚은 것이나 은평뉴타운의 입주율이 25%에 불과한 것도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낮은 투자수익률

집값은 수급상황에 따라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의 상황이 보여주듯, 투자 또는 투기적 요소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투자 또는 투기를 한다고 할 때 판단의 근거가 되는 기대수익률을 따져봐도 앞으로 집값이 상승하기는 어렵다.

부동산 버블의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부동산 값은 초기에 가파르게 오르다가 부동산 거품이 꼭짓점에 가까워질수록 상승률이 둔화된다. 물론 주가와 마찬가지로 중간에 일시적으로 집값이 주춤하거나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는 가파르게 오르던 부동산 값이 꼭짓점에 가까워지면 오름세가 둔화된다. 단순화하자면 고교 수학에 나오는 2차함수의 포물선과 같다.

왜 부동산 거품이 꼭짓점에 가까워지면 추가 상승 여력이 떨어질까? 가상의 예를 들어보자. 시세 1억원인 집이 1년 만에 2억원이 됐다면 연간 투자수익률은 100%다. 그런데 시세 10억원인 집을 사 마찬가지로 1년에 1억원이 올랐다고 해보자. 이 경우 투자수익률은 10%에 불과하다. 두 경우 모두 1년 만에 1억원을 벌었지만, 투자수익률에서는 10배의 차이가 생긴다.

주택 거품이 생기는 초기 단계에서 집값이 급상승할 때는 웬만하면 세금과 은행 대출 이자를 제하고도 충분히 수지가 맞는다. 하지만 주택 거품이 정점에 이르러 투자수익률이 떨어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위에서 후자의 경우 투자수익률이 10%라고 할 때 실질 투자수익률은 그보다 훨씬 낮다. 우선 물가상승분을 빼야 한다. 올해의 경우 물가상승률은 낮게 잡아 4% 정도다. 여기에다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로 수천만원을 내고 나면 실질 투자수익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워질 것이다. 더욱이 은행 대출 등의 부채를 지고 있다면 사실상 마이너스 투자수익률을 기록하게 된다. 실제 고가 아파트를 살 때 대부분의 경우 집값의 20~30%는 금융기관의 주택 담보대출로 메운다. 은행과 제2금융권의 대출 금리가 계속 오르는 추세이므로 부채 차입 비용도 갈수록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명목상 10% 투자수익률을 기록한다 해도 실제로는 돈을 까먹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매년 투자수익률이 최소 10% 이상은 돼야 투자처로서 매력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를 만큼 올라버린 아파트가 매년 10% 이상 추가 상승한다는 게 가능할까.

한 걸음 더 나아가 집값이 오르기는커녕 계속 횡보하거나 조금씩이라도 하락한다면 어떻게 될까. 소위 ‘버블 세븐’에서 최근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들 주택 소유주에게는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주거 목적이 아닌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산 사람들에게는 거의 재앙에 가깝다. 물가는 오르는데 집값은 내리고 매년 수천만원의 세금을 내는 데 더해 수천만 원의 은행 이자까지 물어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이런 상황이 1~2년 이상 지속된다면 더 이상 버티기는 쉽지 않다.

투기 심리의 위축

최근 경매에 나온 강남의 고가 아파트수가 크게 늘거나 고가 아파트 시세가 수억원씩 떨어지는 것도 모두 이런 상황의 전조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일부 부동산 전문가들은 “전체 아파트 재고에 비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의미를 축소하려 한다. 하지만 이는 집값 거품 붕괴라는 폭우의 첫 빗방울이라고 보는 게 더 현명하다.

투자수익률의 하락은 투기 심리의 위축을 부른다. 최근 ‘경부 라인’ 축의 집값 하락세를 지켜본 많은 이가 집값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투기 심리가 위축됐음을 뜻한다. 지난 몇 년간 집값의 대부분은 투기 심리로 올랐다. 물론 초기에는 실제로 주택 공급도 부족했고, 주거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 수준도 높아졌고, 소위 (사)교육여건의 지역 편차가 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투기 버블이 발생해 그 거품이 계속 지속되고 커진 것은 많은 부분 투기심리 때문이다. 이런 투기심리를 키운 데는 정치권과 정부의 도덕적 해이와 정책 실패의 책임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투기심리로 잔뜩 부풀어 오른 집값 거품은 투기심리가 사라지는 순간 꺼지게 마련이다. 최근 강남과 수도권 전역에서 집값이 절정기에 비해 상당히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매수세가 없는 것은 투기심리가 얼마나 위축돼 있는지를 보여준다.

최근 정부나 서울시의 각종 정책이나 정책 시그널에 부동산시장이 반응하는 양상을 봐도 투기심리가 상당히 위축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상당수 언론에서는 정부가 대출 규제 및 재개발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지 않아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제가 마련되고 집행됐던 지난 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집값은 줄기차게 올랐다. 그 규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해서 집값이 떨어질 이유는 없다. 더구나 실제로는 중앙정부가 규제를 조금씩 완화하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등은 집값을 자극할 만한 발언이나 지시를 여러 차례 했다.

전국적으로 미분양 한파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 강남권 고가 아파트에서도 분양 뒤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나왔다. 사진은 GS건설이 서초구 반포동의 주공3단지를 재건축한 총 3410채의 반포자이 아파트.

이 대통령은 올초 국토부 업무 보고 때 규제 완화책을 강하게 주문했다. 또 기획재정부는 1가구 1주택 장기보유자에 대한 양도세 경감조치를 시행한 데 이어 강 장관은 최근 종부세 완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발언 때문에 집값이 상승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불과 3,4년 전 비슷한 발언을 대통령과 재경부 장관이 했다고 상상해보라. 부동산시장이 지금과 같은 반응을 보였겠는가. 그만큼 부동산시장을 둘러싼 전체적인 경제 요인들이 강력한 하락 신호를 보내고 있고, 이에 반응해 투기심리 또한 상당히 위축돼 있는 것이다.

국방부가 5월 말 112층 ‘제2롯데월드’ 건립 허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 나타났다. ‘제2롯데월드’ 사업 부지와 가장 근접해 있는 잠실 5단지에서는 과거 긍정적인 보도가 나올 때마다 집값이 껑충 뛰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형 호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집값은 수천만원이나 떨어졌다. 당시 종부세 납부일을 앞둔 일시적 현상으로 해석하는 보도가 있었지만, 이후에도 잠실 5단지 집값은 여전히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대세 상승기에는 조그만 호재에도 집값이 크게 뛰는 반면, 대세 하락기에는 웬만한 호재에도 하락세가 꺾이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케 하는 사례다.

집값은 전체 경제 상황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원유가 등 수입 물가 상승으로 촉발된 물가 상승과 동시에 경기가 급격히 가라앉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태에서는 집값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가가 오르는 상태에서 경기 침체에 따라 소득이 감소하면 개별 가계의 가처분 소득은 양쪽으로 줄어들게 된다. 이럴 경우 소비는 위축되고, 부동산처럼 덩치가 큰 실물자산에 대한 선호는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기 침체와 시중 금리 상승

이런 가운데 지속적인 시중 금리 상승은 집값 하락을 부채질한다. 한국의 집값 상승에는 시중 은행과 제2금융권의 주택을 담보로 한 무분별한 대출도 한몫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기관들이 기업 대출보다는 주택을 담보로 한 가계 대출에 집중해 시중 유동성을 과잉 공급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 가계 부채 총액은 2001년 말 342조원에서 올해 3월 말에는 640조원으로 거의 300조원가량 늘어났다. 물론 늘어난 가계 부채 대부분은 부동산 대출이다. 이 같은 가계부채 급증과 부동산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을 막기 위해 노무현 정부 때 도입한 제도가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같은 대출 규제다.

하지만 이제 은행권의 펌프질도 한계에 이르고 있다. 최근 은행 대출금리는 고정금리형과 변동금리형이 모두 상승하고 있다. 먼저 5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오르면서 고정금리형 대출상품의 기준이 되는 은행채 금리도 최근 6.70%까지 상승했다. 3개월 전인 4월 말(연 5.74%)에 비해 1.23%포인트나 오른 것이다. 이에 따라 은행채 금리에 연동되는 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최고 9%대를 넘어섰다. 또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는 양도성 예금증서(CD) 금리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문제는 주택대출 금리가 인플레이션 압력에 따른 시중금리 상승 등으로 오름세를 지속할 것이라는 점이다. 은행권이 낮은 저축률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은행채와 CD 발행을 계속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2007년 8월 이후 11개월째 5.0%에서 유지돼온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도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기준 금리 인상은 경기를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한국은행으로서는 가파르게 상승하는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이 본연의 임무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7월10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도 ‘제2차 물가 충격’을 언급해 8월에는 기준 금리를 인상할 것임을 강하게 시사했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시중금리는 더 한층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금리가 오르면 대출부담 때문에 추가적인 주택 구매가 줄어들고, 기존 주택 담보 대출자의 원리금 상환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가령 주택을 담보로 은행에서 1억원을 빌렸다면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를 때마다 연간 이자 부담은 100만원씩 늘어나게 된다. 이 같은 고금리가 지속되면 당연히 원리금 상환부담을 이기지 못하는 주택 소유자들의 매물이 증가하게 된다.

위에서 본 것처럼 전반적인 국내외 상황을 고려할 때 집값의 대세하락 압력은 매우 빠른 속도로 점증하고 있다. 더구나 이들 하락 요인은 일시적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이고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요인들이다. 따라서 최근의 집값 하락 현상이 과거 대세 상승기에 흔히 일어났던 일시 조정기라는 생각은 ‘기대 섞인 희망’에 불과하다.

비근한 예로, 올초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미국 연방 정부와 FRB의 긴급 구제 조치로 일단락됐다는 전망이 적지 않았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제 국내외 많은 전문가가 미국의 집값 하락은 기껏해야 ‘절반을 지났다(halfway through)’고 할 정도다. 주택가격 하락으로 인해 최종적으로 발생할 손실규모는 1조30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만약 이 같은 주장이 맞다면 올 6월 말까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발생한 전세계 투자손실 3970억달러의 4배가 넘는 규모다. 이처럼 지금 국내 부동산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엄혹한 경제 상황은 단기간에 쉽게 마무리될 성격이 아니다.

하지만 집값 상승 요인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필자는 국지적인 개발 호재를 논외로 할 경우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집값 거품을 떠받치는 요인들

우선 현 정권이 경기 침체를 빌미로 강력한 건설경기 부양책 및 집값 부양책을 쓸 경우다. 소위 정치적, 정책적 요인이다. 국내 부동산시장에 미친 정치적, 정책적 요인의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더구나 많은 사람이 기대하듯 이명박 대통령은 소위 ‘부동산 대통령’이 아닌가. 최근 정부는 투기과열지구의 조합원 지위 양도금지 조항 폐지, 소형 아파트 및 임대주택 의무비율 완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집값의 추가적인 상승을 우려하는 국민 정서가 상당히 폭넓게 자리 잡고 있어 세칭 ‘강부자 정권’도 집값을 폭등시킬 정도의 규제 완화책을 내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재개발 재건축 규제 완화 방침이 시장에 미칠 파장을 좀 더 살펴봐야 하겠으나, 집값 거품 붕괴 속도를 늦출 뿐 집값을 과거 정점 위로 끌어올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현재 경제 상황 때문에 정부가 원해도 취할 수 없는 정책수단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1990년대 후반 이후 집값 상승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금리 인하. 지금과 같은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꿈도 못 꿀 조치다. 설사 정부가 집값을 자극하는 규제 및 세금 완화책을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앞서 언급한 집값 하락 요인들을 상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예를 들어, 대출 규제를 완화한다고 해도 집값 하락과 대출 금리 상승이 현실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에서 무리하게 돈을 빌려 집을 살 투자자가 얼마나 있을까. 이처럼 거대한 시장의 하락 압력을 정치적, 정책적 요소로 떠받친다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두 번째 집값 불안 요인은 강북의 뉴타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소형 평형의 수급 불균형이다. 최근 몇 년간 진행된 재개발 재건축과 뉴타운 사업이 중대형 평수 위주로 이뤄지다 보니 소형주택이 크게 줄었다. 올해 총선을 전후해 노원구와 도봉구, 강북구의 집값이 상승한 배경에는 기본적으로 이 같은 소형주택의 수급 불균형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강북 소형주택의 품귀현상이 소형평형 위주의 집값 상승을 유발했고, 투기세력이 가세하면서 집값 상승폭이 확대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향후 몇 년 동안 강북 및 인접 경기도 지역의 집값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더욱이 올해부터 뉴타운 지구 내 주택 철거가 본격화돼 2010년까지 약 8만5000가구가 줄어든다.

하지만 이 같은 소형주택 위주의 수급 불균형은 국지적 현상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주 가구 대부분이 인접지역에 재정착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뉴타운 지역 주민의 70~80%가 세입자여서 이 같은 수급 불균형에도 매매 수요의 급증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강북의 중소형 아파트는 주식으로 치면 오랫동안 소외돼온 비우량주여서 부동산시장 전체를 뒤흔들 힘은 없다고 봐야 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강북의 집값 상승이 강남 집값의 추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누가 뭐래도 수도권 집값의 기준은 강남 집값이다. 올초 강북 집값의 가파른 상승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부동산시장에서 저평가됐던 소외 지역이 ‘키 맞추기’를 한 것으로 봐야 한다. 오히려 최근 강북 집값 상승은 부동산 투자 관점에서 마지막까지 오르지 않았던 부동산 상품이 오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옳다. 더구나 강북도 앞으로 추가적인 대규모 개발 호재가 나오지 않는 한 올초와 같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기는 어렵다. 실제로 최근 집값 동향을 보면 강북 집값의 상승세도 크게 꺾였음을 알 수 있다.

생활인의 관점을 회복하라

주변에는 ‘지금이라도 집을 사야 하는지’ 또는 ‘더 늦기 전에 집을 팔아야 하는지’ 묻는 사람이 더러 있다. 모두 집값이 불안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 100% 확신을 갖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사기꾼이거나 자신의 장삿속 또는 이해관계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소위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가능하면 그들의 말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집값이 오르는 방향으로, 집을 사게 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가능성이 많다.

그들은 이해관계라는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전문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다. 많은 경우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들은 부동산시장의 국지적 개발 정보와 개발 절차에 따른 집값 상승 패턴을 이용해 주택 투자 또는 투기를 부추기는 사람들이다. 집값 상승이 지속될 땐 그들의 조언을 듣는 것이 크게 위험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집값 버블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시기에 그들의 말을 듣는 것은 모험에 가깝다.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터지기 직전 미국 내 한인 부동산 브로커의 말을 듣고 대규모 부동산 투자를 감행한 경우가 그렇다. 2006년 말에서 2007년 상반기에 미국 부동산에 투자해 상투를 잡은 사람들의 피해는 매우 크다. 필자가 아는 사람의 경우 30만달러를 선금(downpayment)으로 넣고 모기지 대출을 받아 80만달러에 집을 샀다가 나중에 집값 폭락으로 모기지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결국 집을 은행에 처분하고 빚 청산을 하기도 했다. 그 사람은 모두 35만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이처럼 버블의 정점에서 잘못 투자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따라서 버블 붕괴의 언저리에 있는 현 국면에서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되도록 새로운 부동산 투자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언젠가는 부동산이 다시 오를 것이라는 환상을 여전히 갖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그 환상에서 깨어나라고 주문하고 싶다. 10여 년 전 일본의 사례와 지금의 미국 사례가 보여주듯이 부동산 거품은 언젠가는 깨지며, 한국도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있는 중임을 명심하라는 것이다.

이제는 집에 대해 투기자가 아닌 생활인의 시각을 회복해야 한다. 2000년대 들어 집값이 급등하고 이 과정에서 돈을 번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많은 이에게 집은 삶의 보금자리라기보다는 투자 대상이 돼버렸다. 많은 이가 증시에서 주식을 사고팔듯이 집을 거래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주택에 대해 주거공간이라는 본연의 가치로 바라볼 시점이 됐다.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주거공간으로서의 주택을 생각한다면, 지금 거품이 잔뜩 낀 집을 사는 것은 금물이다.

대세 하락기엔 호재가 있어도 좀처럼 하락세가 꺾이지 않는다. 제2롯데월드 착공 소식에도 인근 아파트값은 오히려 떨어졌다. 사진은 제2롯데월드 신축계획안(조감도)

더구나 무주택자가 은행 부채 등을 잔뜩 지고 집을 사려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단기적 투자 개념이 아니라 10년 단위의 중장기적 재무설계 관점에서 판단해보라. 예를 들어, 당신이 30대 중후반의 무주택자라고 해보자. 무리하게 주택 투자를 통해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이 사람들이 안정된 노후기반으로 집이 필요한 시기는 10여 년 후인 50세 무렵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집값 거품 붕괴가 과거 1990년대 초의 패턴을 따른다면 7~8년간의 집값 하락 시기를 예상할 수 있다. 집값은 1990년 초의 정점 대비 실질적으로 약 절반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 향후 10여 년 사이에도 집값이 사실상 반토막 나는 시점이 올 가능성이 높다. 지금 차곡차곡 돈을 모았다가 집값 거품이 충분히 걷힌 시기에 자신의 경제력에 맞는 집을 사도 된다.

반면 집값이 금방이라도 다시 오를 것 같은 환상을 갖고 무리하게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똑같은 집값 거품 붕괴 현상이 발생한다고 해보자. 이런 경우 당신은 거품이 잔뜩 낀 집을 사서 매년 세금을 내고 은행 이자를 내느라 쪼들리게 될 것이다. 더구나 당신 집의 자산 가치는 그 사이에도 계속 하락한다. 또한 당신이 집에다 투자한 최소 수억원의 기회비용 손실을 생각해보라. 그렇지 않았다면 당신은 꼬박꼬박 은행에서 이자를 받거나, 다른 금융상품에 투자해 수익을 올릴 수도 있었다. 비단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금융 부담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자산 가치 하락으로 인한 상실감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10년 정도의 긴 호흡으로 재무설계를 해보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더구나 서울시에서 도입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장기 전세가 중앙정부에 의해 법제화되면서 빠른 속도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최장 20년까지 평형별로 주변 전세 시세의 60~80% 가격에 살 수 있는 장기 전세는 저렴한 비용으로 안정된 주거를 누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장기 전세는 임대주택과 달리 향후 40평형대까지 공급되고 청약자격 조건도 완화돼 일반인에게도 입주 기회가 크게 늘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 주장대로 집을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으로 본다면 장기 전세는 매우 매력적인 주거 대안이 될 수 있다.

거품붕괴 공포증은 거품

마지막으로 집값 거품 붕괴가 불러올 경제적 충격을 과장하면서 집값 부양을 요구하는 논리에 대해 한마디하고자 한다. 일부에서는 집값 거품이 붕괴되지 않도록 정부가 적극적인 부양책을 써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주로 건설업체들과 이들을 대변하는 학계 인맥, 상당수 부동산 정보업체가 그렇다. 예를 들어 미분양이 증가하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매입하거나 분양을 촉진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집값이 폭등할 때는 시장 원리에 따른 것이니 정부가 억제책을 쓰지 말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정작 집값이 떨어지고 미분양 물량이 쌓이면 시장 원리를 부르짖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정반대로 입장을 바꿔 정부의 적극 개입을 주장하니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언필칭 주장하던 시장 원리에 따르면, 미분양 물량 증가는 공급 과잉과 높은 분양가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미분양 물량이 증가하면 충분한 수요가 생길 때까지 가격을 낮추는 것이 순리다. 하지만 이들은 무이자 할부 등 온갖 분양 촉진책은 써도 분양가는 낮추지 않는다. 실제로 닥터아파트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분양 적체가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상반기 아파트 신규 분양가는 급등세를 보였다. 지난해 하반기에 비해 수도권 분양가는 평균 9.1%, 지방 아파트는 60.1%나 올랐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들은 미분양 물량 적체를 국민 세금으로 해결하라고 온갖 떼를 쓴다.

문제는 이해 당사자인 건설업체들이야 그럴 수 있다손 치더라도 상당수 정책결정자가 오히려 이 같은 상황을 조장한다는 점이다. 정부 예산을 들여 미분양 주택을 정부의 비축임대주택 물량으로 매입하겠다는 조치가 그런 예다. 이처럼 기획재정부(과거 재경부)와 국토해양부(과거 건설교통부)의 관료들은 경기 부양 등의 명목으로 오히려 집값 거품을 떠받쳐온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들은 “집값 거품이 붕괴하면 서민 피해가 더 커진다”는 식의 ‘대국민 협박’을 하기도 했다. 이들의 목소리는 부동산 광고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당수 언론을 통해 증폭되기도 했다.

하지만 거품은 형성될 때부터 그 자체로 엄청난 사회적, 경제적 피해를 끼친다. 자산 양극화가 심해지고 이로 인한 사회적 위화감도 증대된다. 토지 비용의 증대로 경제가 고비용 구조로 흐르게 돼 중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한국의 경우에는 가계부채의 증대와 이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로 소비 여력이 급격히 위축됐다.

소비재와 달리 가장 값비싼 생활 필수재인 주택의 값은 상승하면 그만큼 실질소득이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한다. 일반 소비재와 달리 노숙자가 아닌 이상 어떤 식으로든 주택이라는 재화를 이용하지 않을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또 주거비용이 상승하면 이를 부담하기 위한 임금 상승이 합리화돼 기업의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이처럼 거품은 형성되면서 이미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가져오고 있다. 따라서 거품은 최대한 커지지 않도록 해야 하며, 거품이 더 커지기 전에 급격한 파열이 생기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와 건설업체와의 유착 때문에 정치권과 정부는 거품을 계속 키우는 우를 범했다. 지금이라도 거품은 터뜨려야 한다. 거품은 무한정 커질 수 없고, 언젠가는 터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정부처럼 부동산 경기를 억지로 부양하면 할수록 이후 집값 거품 붕괴의 고통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상당수 사람이 일본의 거품붕괴 현상을 거론하면서 정부의 집값 부양을 옹호하고 있는데 이는 착각이나 의도적인 왜곡이다. 일본의 진행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거품 붕괴 자체보다 붕괴 후 일본 정부의 부실한 수습과 지연된 구조개혁이 장기 침체를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집값 거품을 떠받쳤던 은행족과 토건족 등 기득권세력에 가로막혀 구조개혁을 질서정연하게 추진하지 못하고 막대한 재정을 들여 건설경기 부양책을 남발함으로써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 것이다. 현 정부가 집값 거품을 계속 키우다 결국 거품이 터진 뒤 허둥지둥한 일본 정부의 전철을 밟을까 우려된다.

by 선대인 2008. 9. 4. 17:54
"전시회에서 세계 여행을"
세계 곳곳의 풍광을 담은 사진전 소개
휴가철이다. 많은 이들이 풍진의 번뇌를 벗어나 드넓은 세계를 숨쉬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그건 꿈일뿐 현실이 되기는 싶지 않다. ‘올해는 꼭…”하던 다짐도 헛되이 늘 가던 리조트나 해수욕장, 가까운 계곡으로 이어지는 긴 피서행렬의 한 자락을 차지하기 일쑤다. 하지만 국내에서 세계일주를 하는 방법도 있다. 세계적인 사진작가들이 세상의 진경(珍景)들을 담은 사진을 관람하는 게 한 방법이다. 마침 그런 전시회 두 개가 한꺼번에 열리고 있다. ‘하늘에서 본 지구’ 사진전과 ‘위대한 사진이 들려주는 116년의 지구 여행기(지구 여행기)’ 사진전이다.

우선 유네스코(UNESCO)의 후원 아래 열리고 있는 '하늘에서 본 지구’전. 전시장에 발을 딛는 순간 푸르고 파란 사진들이 가슴을 들뜨게 한다. 항공사진 전문가로 사진 에세이집‘발견 하늘에서 본 지구 366'(새물결)을 펴낸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이 찍은 초대형 사진들을 선보인다. 전 세계 150개 나라의 자연과 사람을 찍은 120점과 서울 상공에서 찍은 ‘서울의 초상’ 8점이 함께 전시된다. 9월 27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 동문 앞 광장에서 열린다. 야외 전시라 24시간 볼 수 있다. 무료. 02-3141-8696.

‘지구 여행기’전은 1888년 창간된 다큐멘터리 사진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린 사진가운데 83점을 소개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소장하고 있는 사진 1060만장 가운데 조디 코브, 데이비드 앨런 하비, 조지 스타인메츠, 제임스 스탠필드 등 작가 59명의 작품을 엄선한 전시회다. 9월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림미술관에서 열린다. 관람시간은 오전 11시~오후 7시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관람료는 성인 4000원, 초중고생은 2000원.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는 무료다. 02-720-0667
도서출판 '새물결'과 대림미술관의 도움을 받아 전시회에서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 가운데 일부를 소개한다. 이 가운데 옐로스톤 국립공원 내 그랜드 프리즈마틱 스프링을 각각 찍은 베르트랑과 조지 스타인메츠의 작품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하늘에서 본 지구>전 가운데 8개 작품
그랜드 프리즈마틱 스프링, 옐로스톤 국립공원, 와이오밍 주,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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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 곤포 위에서 휴식 중인 노동자, 토나카하, 코로고 주, 코트디부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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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나무'. 차보 국립공원, 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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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핑턴의 흰 말, 옥스퍼드셔 군,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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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토모레노 빙하, 산타크루스 주, 아르헨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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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의 하트 무늬, 누벨칼레도니,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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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디브의 눈' , 말리 북부의 환상 산호섬, 몰디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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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한가운데의 모래언덕, 프레이저 섬, 퀸즐랜드 주, 오스트레일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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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진이 들려주는 116년의 지구 여행기>가운데 두 작품
우주에서 유영중인 우주비행사 마크 리, NASA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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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프리즈마틱 스프링, 조지 스타인 메츠 촬영.
by 선대인 2008. 9. 4. 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