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시민단체 지원? 선진국은 다 한다


정부가 지난 한 해 동안 565개 단체에 411억여원을 지원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와 관련, 시민사회단체 안팎에서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과 일부 신문들은 정부의 시민단체 지원으로 정부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할 시민단체의 독립성과 정당성이 훼손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총선연대 활동을 했던 단체에 대한 지원을 근거로 일부 시민단체들이 정부 돈을 받고 '낙선운동'을 벌인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나 관계자들은 정부가 공익적 목적을 위해 비정부단체(NGO) 또는 비영리단체(NPO)를 지원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며, 정부 지원액이 총선연대 활동에 한 푼도 쓰이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이 같은 비판을 '근거 없는 왜곡 보도'라고 반박하고 있다. 양쪽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지만 관련 학계나 전문가들은 한나라당 주장과 일부 언론 보도가 국제적인 추세나 시민사회단체의 현실을 무시한 주장이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유럽연합, 회원국에 예산 1%, NGO에 쓰도록 권고...미국도 재정, 세제 지원 팍팍





'시랑의 집짓기(해비타트)' 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과 미국의 장병들. 미국에서는 해비타트 운동을 펼칠 경우 정부가 토지 등을 지원해 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정부의 NGO 지원은 세계적 추세=

대부분 선진국에서 정부가 NGO에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유럽연합은 회원국들에게 전체 예산의 1% 이상을 NGO 지원에 쓰도록 권고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예산의 0.1%도 쓰지 않고 있다.

특히 독일의 경우 시민단체들이 재정의 대부분을 정부에 의존하고 있을 정도. 심지어 정당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설립한 민간재단에도 지원을 할 정도다. 사회민주당 부설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나 과거 동독 공산당의 후신인 PDS가 만든 로자룩셈부르크 재단 등이 그런 사례다. 또 종교세 등을 정부가 걷어 종교 관련 단체에 배분하는 방식으로 자금 모금 활동을 대행해 줄 정도다. 영국도 정부가 직접 NGO를 지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도 정부 지원이 매우 활성화돼 있다. 예를 들어, 해비타트 운동을 펼칠 경우 미국 정부가 토지를 제공하고 상하수시설이나 도로 등을 지어주기도 한다. 미국은 정부나 정치권보다 시민사회가 매우 활발하고 이에 따라 NGO활동도 매우 활발하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가량이 NGO활동에 의한 것이다. 다만 미국은 백악관 직속기구를 구성해 자금을 지원하거나 민간재단 등을 통해 간접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또 NGO에 대한 세제 감면 혜택을 30(법인세)~50%(소득세) 정도로 폭 넓게 적용하고 있다. 감면 대상에는 정파적 노선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경우가 아니라면 정치개혁 운동을 포함, 거의 모든 NGO가 해당된다. 우리 나라의 경우 재단으로 등록된 NGO가운데 주무 부처 장관 추천과 재경부 장관 승인 등을 거치는 복잡한 방식을 거쳐야 소득세의 10%, 법인세의 5%정도를 감면받을 수 있다.

아름다운재단 박원순 이사장은 "전세계적으로 NGO와 NPO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고 정부가 직접 사업을 수행하기보다는 시민단체가 용역을 받아 수행하는 사업이 훨씬 효과 있는 경우들이 많다"며 "정부로부터 지원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무슨 흑막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이거나 악의적인 왜곡"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국제적 흐름을 보거나 정부와 시민사회간 관계에 대한 식견이 있다면 이런 주장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식의 보도와 주장으로 시민단체가 억울하게 입는 상처는 너무 크다"고 말했다.

단체에 직접 주는 방식 아닌 프로젝트에 지원


"과거 관변단체 동원처럼 봐선 안돼"

▼ 단체 직접 지원 아닌 프로젝트 지원=

'시민 없는 시민운동'으로 비판받는 시민단체들은 재원이 부족하다 보니 정부의 지원에 많이 기대는 것이 사실이다. 각종 복지사업이나 소비자 활동 등 공익사업 등 할 일들은 많지만 열악한 재정 상황 때문에 발만 동동 구르는 시민단체들도 적지 않다. 그런 단체들에게 정부의 지원 사업은 요긴한 경우가 많다.이들 사업의 대부분은 시민단체가 지원을 신청한 '공익성 사업'을 대상으로 외부 위원회가 심사해 지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행자부의 민간단체 지원금은 2000년 제정된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에 근거해 프로젝트를 공개모집하고, 중립적 인사들로 구성된 공익사업선정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집행된다. 집행 뒤에도 사업시행 결과 보고 및 감사를 받는 것은 물론이다.특히 이들 사업은 법에 근거해 시민단체를 지원하도록 돼 있는 경우가 많다. 행정자치부의 민간단체 공모 사업이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지원 사업, 보건복지부의 장애인복지 관련 사업, 외교부의 국제협력단(KOICA) 지원 사업, 여성발전기본법에 근거한 여성부의 여성단체 지원 사업 등 상당수 지원 사업들이 그렇다. 이런 사업들은 이번에 문제를 제기한 한나라당의 동의 없이는 입법화되기 힘들었던 사업이었다. 특히 이들 사업 가운데 소비자 단체나 여성단체 지원 사업의 상당 부분은 한나라당이 여당이던 김영삼 정부 때 법적 근거가 만들어졌다.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이인경 사무국장은 "유엔의 국가인권정책권고안은 인권의 신장과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해 정부가 시민사회단체를 적극 지원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며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관변단체를 만들어 동원 수단으로 사용하던 때의 시각으로 정부와 NGO관계를 보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성공회대 NGO학과 조효제 교수는 "미국의 경우 정부 용역에 기업과 NGO가 함께 경쟁입찰에 참여해 경쟁력을 평가받는 쪽에서 프로젝트를 받는다"며 "NGO가 정부 용역을 땄다고 해서 NGO가 정부에 유착돼 있다고 보는 시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참여연대"심각한 명예훼손...법적 조치 취하겠다"
민간단체 지원, 한나라당 여당일 때 시작...자신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2004년 총선시민연대 회원들이 17대 총선 낙선대상 명단을 발표하는 기자회견 모습. [사진=연합뉴스]

▼ 시민단체 편향성 논란=

한나라당은 총선연대의 낙선운동에 참여한 단체들이 대거 정부의 지원을 받았으므로 편향성이 있는 것 아니냐고 공격하고 있다. 물론 그럴 개연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많다. 왜냐하면 총선연대에 가입한 200여 시민단체는 우리 나라 주요 시민단체를 거의 망라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단체가 정부 지원을 받는 시민단체와 중복이 안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 단체가 그 단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마치 정부의 예산이 총선연대 가입단체에 집중적으로 배정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억지 짜맞추기'에 불과하다는 게 시민단체쪽 주장이다.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총선연대에 소속됐던 시민단체가 지원 받은 돈 가운데 한 푼도 총선연대 사업으로 쓴 돈이 없다"며 "정부가 프로젝트별로 개별 시민단체에 나눠준 돈이 마치 낙선운동에 쓰인 것처럼 보도한 것은 명백한 왜곡보도이자 심각한 명예훼손으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총선연대를 사실상 주도했던 참여연대는 96년 이후 정부 지원을 전혀 받고 있지 않다. 김기식 처장은 "혹시라도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고 싶어서이지 시민단체가 정부 지원을 받는 것 자체가 잘못돼서 그런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뿐만 아니라 정치적 이슈로 자주 맞부딪히는 경실련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등도 정부의 지원은 받고 있지 않다.

아이러니인 것은 정부의 민간단체 지원 사업은 한나라당 원내대표인 김덕룡 의원이 정무장관으로 있던 김영삼 정부 시절 시작됐다. 김 처장은 "자신들이 시작한 일을 마치 새로운 일인 듯 모른 척 얘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자신들이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냐"고 비판했다. 그는 또 "정부 지원을 받으면 편향성을 띤다고 바로 연결하는 식이라면 한국언론재단의 지원을 받는 모든 언론기관은 친정부 매체냐"고 반문했다.

정부, 시민단체 통제 욕심 버려야


우익 성향 단체 거액 지원받는 사실 눈 감는 행태도 이상

▼ 정부와 정치권, 시민단체 통제 의도 버려야"=

하지만 일부 단체 지원예산은 정치적 논란이 없지 않다. 특히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과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두 단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이들 단체의 진정한 의도를 떠난 논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이들 단체의 주장이 큰 틀에서 정부여당의 언론정책과 궤를 같이하는 부분이 적지 않아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두 단체의 경우에도 자신들의 주장이 현 정권의 주장방향과 큰 틀에서 맞아떨어진 것이지 현 정권을 의도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그러나 문제는 시민단체보다는 시민단체를 통제하거나 동원하려는 정부나 정치권의 의도다. 정부나 정치권이 시민단체를 끊임없이 '자신들 편'으로 편입하려는 시도를 하는 게 더 문제라는 것. 특히 정부는 정치적 형평성 시비나 논란을 부를 수 있는 사업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좀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반면 한나라당이 정부로부터 가장 많은 지원을 받는 우익 성향의 자유총연맹이나 새마을운동본부 등에 더 많은 예산이 지원된 사실에 눈 감는 것 또한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태도다.시민단체 경영컨설팅사인 '도움과 나눔'의 최영우 대표는 "정부와 정치권이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데서 그쳐야지 통제하려 해서는 안 된다"며 "특히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정부와 정치권에 많이 가 있는 상황에서 이들간에 적당한 선의 타협이 생기지 않도록 서로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때마다 되풀이되는 단골 보도 메뉴...'의도' 의심
정부-시민단체 오해 소지 줄이는 노력해야


▼ 오해 없도록 개선 필요=

이번 보도와 관련, 일부 시민단체 관계자는 "또냐. 정말 지겹다"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 당시부터 한나라당이 거의 비슷한 내용의 자료를 내놓고 일부 언론이 이를 되풀이 보도하는 행태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 이 같은 일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계속돼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의 '의도'를 의심하게 하는 상황이 초래됐다.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도 이 같은 오해를 불식하는 한편 시민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공익재단이나 기금이 간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꾸자는 제안을 이미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정부가 이 같은 요청에 오히려 미지근한 태도를 보였다는 게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한 관계자는 "정부가 어떤 특정한 정치적 의도가 있어서 라기보다는 공무원들이 '밥그릇'을 놓기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하지만 계속 되풀이되는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서는 시민단체 스스로도 노력할 부분이 있다. 좀더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시민운동을 펼쳐 회비만으로도 건전한 재정 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시민단체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더욱 충실히 견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움과 나눔' 최영우 대표는 "미국과 같은 기부문화가 확산돼 있지 않은데다 시민단체의 모금능력이 취약하다 보니 국내 단체들이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이런 이유로 정부 의도에 순응하는 단체는 드물겠지만 그럴 개연성이 없지는 않은 만큼 자체적인 모금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by 선대인 2008. 9. 4. 16:54

“아랍 외교전문가 없어 화 키운다”


김선일씨 피랍 및 사망 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정을 보면 곳곳이 문제점 투성이다. 여당의 핵심 인사인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원이 "대한민국의 국가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심각하게 우려된다"고 말할 정도다. 지금까지 드러난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살해된 김씨는 정부가 당초 발표한 17일이 아니라 그 이전에 납치된 것이 유력시 되고 있다. 외교부도 김씨 피랍 시점이 '지난달 31일'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히고 있다. 이게 맞다면 우리 정부는 김씨 피랍 시점에서 20여일이나 지난 뒤인 21일 새벽에야 납치 사실을 파악했다. 불과 100명도 안 되는 바그다드 시내 교민들의 행방을 3주가량이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현지 대사관이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할 경우 대사관측에 즉각 알려주도록 충분히 주지시키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이는 이라크 파병을 앞둔 우리 정부의 느슨한 현지 대응 태세와 정보 수집 능력 부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김씨의 납치 사실이 알려진 뒤 정부는 "모든 채널을 가동해 구명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뒤늦게 호들갑을 떨었지만 실제 효과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 같은 잇따른 실수를 대(對) 아랍 전문인력 및 협상력 부재에서 꼽고있다.





김선일씨 피랍과 관련, 21일 오후 외교통상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앞서 회의 참가자들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왼쪽). 22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사진=연합]

▼전문가 부족=이번 사태로 국내 아랍 관련 인력, 특히 이라크 전문가가 크게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 이라크 대사관 및 외교부에 아랍어 전공 인력이 몇 명 있지만 아랍 전문가라고 할만한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대외 정보를 수집하는 국가정보원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국외국어대 터키어김대성 교수는 "외교부나 국정원 직원들 대다수는 선진국 근무를 선호하고 아랍 등 오지 근무를 기피하고 있다"며 "중동 지역은 잠시 쉬어가는 곳 정도로 생각해 제대로 현지 인맥을 장기간에 걸쳐 구축한 전문가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동 관련 일이 터지면 국내의 몇몇 학자들에게 들은 이야기로 정책을 수립하는 수준으로는 현지 실정에 맞는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기 힘들다"고 말했다.

정부내 실무형 전문가뿐만 아니라 중동 지역 학자도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국내 중동학회 회원은 200명 가량이지만 이 가운데 제대로 학회 활동을 하는 사람은 40~50명 안팎.그나마 이집트 터키 등에서 유학한 사람이 많고 이라크에서 유학한 사람은 전무하다. 중동 특수 이후 관계가 멀어진 데다 이라크 내 정정이 불안해지면서 유학 수요가 없었던 것. 이런 경우 정부가 중장기적 관점에서 국비를 지원해서라도 최소한의 전문 인력을 양성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반대로 일본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중동 유학생을 육성하고 외교부 내에서도 수십년간 한 지역에서만 근무하는 지역 전문 인력을 키웠다. 얼마 전 일본인 인질들의 석방 과정에서도 이들 전문 인력들이 구축한 현지 인맥들의 도움이 컸음은 물론이다.

협상 전문가가 부족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김선일씨 피랍 사건은 일반적인 협상과 달리 '인질 협상(Hostage Negotiation)'이기 때문에 여기에 맞는 협상전문가가 협상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영화 '니고시에이터(Negotiator)'에서 보는 것처럼 인질을 잡고 있는 과격 분자나 과격 단체와 협상할 경우 관련 전문가들이 협상 상대의 반응을 점검하며 고도의 지능적인 협상을 벌여야 한다는 것. 하지만 국내에는 인질협상은 고사하고 일반적인 국제협상을 담당할 전문가도 매우 드문 실정이다.

미국에서는 협상프로그램(Program On Negotiation)으로 유명한 하버드대를 비롯, 상당수 대학이 박사급 협상전문가들을 분야별로 체계적으로 키워내고 있다. 또 변호사와 수사인력 및 외교 인력의 상당수가 협상 실무에 대한 체계적 훈련을 받고 있다.

이렇다 보니 김씨 피랍사건과 관련해 현지에 급파된 협상단에는 사실상 아랍전문가도, 협상전문가도 없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셈이다.▼협상과정의 문제점=정부가 이번 김씨 사건 같은 경우가 발생할 것에 대비해 사전에 인맥을 구축하는 등의 노력이 미비했기에 이번 사건에서 정부의 역할은 처음부터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같은 제한적 상황에 더해 우리 정부는 협상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문제를 범했다.

미국에서는 인질 협상의 경우 정부나 수사 당국은 공식적으로는 상대의 요구 조건에 전혀 응하지 않는 것이 기본 원칙처럼 돼 있다. 만일 협상을 하더라도 은밀한 물밑 채널을 통해 '비밀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일관된 원칙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대응했다. 이라크 파병 강행 방침을 거듭 재확인해 테러단체의 요구에는 응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드러내놓고 온갖 협상을 시도하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연출한 것. 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은 협상 시간마저 단축시키고 향후 이들 단체의 협상력만 키워놓는 우를 범한 셈이 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협상문제 전문가는 "테러범이나 인질범들과 협상해 타협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제2, 제3의 인질범들을 키우게 하는 행위"라며 "공개적으로 호들갑스럽게 협상하는 것이 국민 정서와 정치적 이익에는 부합할지 모르나 인질이나 국익에는 모두 도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납치 단체와 인질의 성격 달랐다=많은 이들이 일본의 피랍자들은 풀려났는데 김선일씨는 풀려나지 못하고 비극을 맞은데 대해 정부에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물론 위에서 본 것처럼 정부의 '과오'는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납치 단체와 인질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일본의 경우와 평면적으로만 비교할 일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우선 김씨를 납치한 '알 타우히드지하드(유일신과 성전)'는 알 카에다 산하 정치테러단체로 일본인들을 납치했던 '사라야 알 무자헤딘(전사여단)이라는 무장단체와는 성격이 다르다. 또 일본인들은 평화운동을 벌이는 시민운동가들과 그들의 활동을 취재한 기자였다는 점에서 가나무역 직원인 김씨와는 다르다. 특히 군납업체인 가나무역이 BBC 등 외신에서 미군 지원(supporting U.S. military) 업체 등으로 묘사됐고 실제로 김씨가 미군에 물건을 배달하다 납치됐다는 점에서 이라크인들에게 다르게 비쳐졌을 가능성이 높다.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인남식 연구원은 "김씨가 소속된 가나무역이 미군 지원 업체로 소개돼 이라크 과격 분자들 눈에는 가나무역 직원이나 미군이 똑 같은 존재로 비쳐져 이라크인들의 분노를 샀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인교수는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파병방침을 재강조한 것은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테러조직이 단순히 몸값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한국의 파병 철회라는 확고한 정치적 목표를 내세운 만큼 정부가 이라크 파병 방침을 거듭 확인한 것은 그들의 '결단'을 더욱 촉구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by 선대인 2008. 9. 4. 16:52

서민들은 허리띠 졸라매는데 지자체는 호화 연수?


경기 고양시 5억 들여 직원 일주일씩 관광성 연수
"서민들은 씀씀이 줄이는 데 공무원들은 일주일씩 연수라니..."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수억원의 예산을 써가며 연수 또는 직원 단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런 연수프로그램은 시군구청 공무원들의 사기를 진작한다는 명목 아래 민선 자치단체장들의 선심성 정책으로 추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경기 고양시는 지난 달 10일부터 이 달까지 5개조로 나눠 전 직원 1850여명중 절반 가량인 840여명에 대한 연수프로그램을 강원도 설악한화콘도에서 실시하고 있다. 여기에 들어가는 예산만 5억원이다. 참가 직원 1인당 59만원가량의 비용이 드는 셈.연수라고는 하지만 '자아 찾기' '타인의 이해' '스포츠와 건강 관리' '변화관리와 혁신' '웰빙과 공직생활' '공직자 재테크'라는 연수프로그램의 제목에서 보듯 대민 서비스와 관련한 내용은 드물다. 이밖에 설악산 등반과 극기 훈련 프로그램, 도자기 제작 실습 등 사실상 관광에 가까운 프로그램도 적지 않게 끼여 있다.고양시는 지난 해부터 올해까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이 같은 연수를 실시한다는 계획 아래 지난해 이미 4억원의 예산으로 직원 800여명의 연수를 실시한 바 있다.이 같은 연수프로그램은 2002년 강현석 시장이 취임하면서 직원들의 사기 진작 방안으로 마련한 것. 고양시청 관계자는 "민간 기업체는 다 하는 건데 금액이 크다고 해서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공무원의 경직된 틀을 벗어나 새로운 시대 흐름에 맞는 마인드를 갖추는 계기로 삼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고양시가 인구 대비 직원 수가 적어 업무량이 다른 자치단체에 비해 매우 많다"며 "뻑 하면 시민들이 수백명씩 쳐들어오는 민원이 많아 직원들이 고생하는 것을 시장이 안타깝게 생각해 추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하지만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주민 김모씨(32)는 "경기가 안 좋아 서민들은 모두 씀씀이를 줄이는 판에 공무원들은 주민들 돈으로 일주일씩 값비싼 연수를 다녀왔다는 소식에 화가 치밀었다"며 "그 돈으로 공무원이 아니라 서민들 사기 진작 방안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시장이 앞장 서서 이런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하는데 시장은 공무원만의 시장인 모양"이라고 꼬집었다.직장교육, 토론 문화 증진의 명목으로 직원연수를 실행중인 중앙부처의 경우 고양시의 교육 프로그램과는 사뭇 다르다. 각 부처별 사정에 따라 "행정, 어떻게 바뀔 것인가" "왜 혁신해야 하는가" 등의 구체적인 교육목표가 제시돼 있다.연간 1-2회 대민 행정에 불편이 없도록 1박2일 또는 2박 3일 일정으로 잡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육내용도 행정서비스 제고를 위해 전문기관을 초청해 컨설팅을 받거나, 시민단체나 행정 전문가들도 함께 참여해 행정 효율성 제고를 위한 분임토의를 벌인 뒤 의견을 청취하는 프로그램 위주로 구성된다.최근 6월 4일부터 5일까지 1박2일 일정으로 "문화재청 어떻게 바뀔 것인가"란 주제로 진행된 문화재청의 직원교육도 '왜 혁신해야 하는가' '민원 만족도' '조직문화 쇄신' 등의 분임토론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소속 공무원 650여명중 200여명이 참가한 이번 연수의 전체 경비는 2000만원 정도.이번 교육 과정에는 한국능률협회의 전문강사들이 참여했다. 특히 문화재 행정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문화연대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참가해 평소 행정에 대해 아쉬웠던 점을 조언해 주는 자리가 마련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연수에 참가한 직원들이 문화재 행정의 효율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 특히 변화하고 혁신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공감하는 뜻 깊은 기회가 됐다"고 밝혔다.

기업은 워크숍 줄이고 지자체는 늘려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도입, 확대


고양시는 두드러진 경우지만 다른 일선 지자체도 직원 연수 또는 단합대회라는 명목으로 이 같은 프로그램을 속속 도입하거나 기존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호화연수는 아니지만 행정서비스 제고와는 크게 관련성 없는 교육내용들이 대부분이다.마포구는 지난 달말부터 직원 1200여명을 6차로 나눠 1박2일 일정으로 강원도 홍천에 있는 대명 비발디파크에서 '직원단합MT'를 진행해오고 있다. 여기에 들어가는 예산은 1억 5000만원. 프로그램은 하루 두 시간씩의 강연 외에는 모두 래프팅, 서바이벌게임, 레크리에이션, 산악 등반 등으로 채워져 있다. 마포구는 2년전까지는 신입 직원들을 중심으로 이 같은 프로그램을 일부 운영했으나 지난 해부터 전 직원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관련 예산도 대폭 늘어났음은 물론이다.경기도 남양주시청은 8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지난 달 14일부터 스트레스해소법, 극기 훈련, 캠프 파이어, 게임 등으로 이뤄진 연수프로그램을 실시했다. 경기 여주군청도 올해 처음으로 4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전체 직원 600여명중 300여명을 대상으로 비슷한 내용의 직원 워크숍을 다녀왔다. 이달 초 6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절반 가량의 직원에 대한 워크숍을 진행한 서울 강북구청은 하반기에 추가경정예산에 계상해 나머지 직원들에 대한 워크숍도 계획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청도 이달 중 충남 태안반도 '블루오션리조트'에서 직원 400여명을 대상으로 '한마음 수련회'를 진행할 계획.여주군청 관계자는 "기초 자치단체들이 직원들에게 메리트를 준다는 차원에서 이 같은 행사를 속속 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른 시군구가 하는데 우리도 한 번 해보자는 의견이 나와서 올해부터 하게 됐다"고 말했다.서울 일선 자치구의 한 관계자는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행사를 안 하거나 하더라도 부분적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제는 서울 25개 자치구중 안 하는 데는 거의 없다"며 "일부 구청은 이런 행사에 2억원을 넘게 쓰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상당 수 구청의 워크숍이나 연수 프로그램이 교육이나 토론보다는 유흥으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이 같은 흐름은 대형 콘도나 리조트 업체에서도 포착된다. 강원도 홍천에 위치한 대명 비발디파크 단체예약부의 한 관계자는 "경기 불황 때문인지 기업들의 워크숍은 줄었는데 지자체의 워크숍이나 단합대회는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은 워크숍을 하더라도 야외 프로그램 없이 강의장에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많아졌고 부페 대신 간단한 식사로 끝내는 경우가 많은데 지자체들은 오히려 거꾸로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by 선대인 2008. 9. 4. 1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