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전에 먼저 용산 참화에서 운명을 달리한 고인들에게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또 부상당한 분들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어제부터 용산 참화 소식을 들으면서 울적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과연 제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지, 한국 사회가 어떤 길로 치닫고 있는 것인지 우려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민주화 이전 시대부터 익숙하게 보아오던 장면들이 조금의 개선도 없이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는 이 기막힌 현실말입니다. 한국 대도시의 폭력적인 재개발 재건축 과정은 제대로 된 민주주의 시장경제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과정이 소위 민주화 이후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면 집값이 폭등하고, 이 같은 집값을 감당할 수 없는 원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갈 돈이 없습니다. 재개발, 재건축과 관련해 재개발 재건축 조합과 시공사, 공무원, 철거업체 등이 연계된 비리는 끝도 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각종 이권을 통해 비리가 양산되고 시공사와 철거업체는 폭리를 취하고, 투기꾼들은 투기차익을 얻습니다. 뒤에 남은 것은 터전을 잃고 갈 곳을 잃은 ‘악에 받친 원주민들’입니다.

 

지금까지 도심의 재개발 재건축 사업은 원주민들의 주거 안정을 도모하고 주거의 질을 높이며, 공동체의 자족적 기능을 향상시킨다는 주택정책이 지향해야 하는 방향과 정반대로 치달았습니다. 오히려 조합을 돈으로 구워삶아 온갖 명목으로 건축비를 부풀려 폭리를 취하는 건설사와 투기 차익을 노린 투기꾼들의 잔치였습니다. 건설사가 재개발사업지 한 곳에서만 수천억원의 폭리를 취하고, 투기꾼들이 개인당 수억원의 투기차익을 챙기는 동안 세입자들은 자신들 소유의 점포 시세의 4분의 1밖에 보상받지 못하는 부조리가 곳곳에서 지속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재개발 재건축 지구로 지정만 되면 땅값과 집값이 폭등해 가난한 세입자들은 변두리로, 변두리로 쫓겨나야 했습니다.

 

이 같은 문제점을 뻔히 보면서도 정부와 정치권은 건설업체들과 투기꾼들이 최대한 빨리 사업을 추진해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등 법제를 마련했습니다. 심지어 도정법 등이 규정한 법절차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주민 동의를 조작하는 등 탈법과 불법이 횡행해도 행정기관은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사실상 폭력배나 다름없는 용역철거업체들의 폭력과 온갖 행패에도 눈 감았습니다.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는커녕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노후도 요건 등을 완화해 재개발사업을 쉽고, 광역화할 수 있는 뉴타운사업을 대규모로 벌였습니다. ‘강남북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속내는 ‘강북 집값도 올려주겠다’며 강북 주민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명박은 뉴타운의 동시 재지정으로 가옥 철거 시기가 집중될 경우 서민 주거난이 심화할 것으로 뻔히 예상되는데도 자신의 임기 동안 무려 33개의 뉴타운을 지정했습니다. 서울시 시가지 전체 면적의 약 15%에 이르는 광대한 면적입니다. 뉴타운이 그동안 강남 집값 상승에 주눅들어있던 강북 주민들의 투기 심리에 불을 지르자, 정치권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나서서 소위 ‘뉴타운법’까지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서민들은 어떻게 되든 정부와 정치권이 자신들의 권력욕을 채우고, 가진자에게 유리한 법제를 줄기차게 만들어 밀어붙여온 것이 재개발 재건축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이 같은 현실을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5공식 강압통치로 신음하는 서민들의 아우성을 틀어막고 있습니다. 자신이 멀쩡하게 장사하던 점포에서 턱없이 부족한 보상비를 받고 쫓겨나야 하는데 대해 항의하는 세입자는 ‘떼법’을 쓴다고 무지막지하게 두들겨팼습니다. 재개발 재건축 과정에서 일어나는 조합과 건설사간, 공무원간의 뇌물 수수 등 온갖 부정부패와 용역철거 과정의 폭력에는 눈감은 채 말입니다. 도대체 이런 것들은 법질서에 위배되지 않고, 구조적으로 잘못된 게임의 룰에 의해 일방적으로 당하는 세입자들이 항의하는 과정에서 쓴 폭력만 위법이란 말입니까? 기득권 구조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현 정부의 법 집행이야말로 실질적 민주주의에 대한 침해요,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규정한 헌법에 대한 모욕입니다. 그리고 21세기 글로벌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국민 모두에 대한 모욕입니다.

 

하지만 이번 용산 참화는 한국 사회가 처한 현실의 한 단면일뿐입니다. 한국 사회는 겉으로 많이 변한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민주주의 시장경제의 공고화와 공정한 게임 규칙의 확립이라는 측면에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현 정부에서는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습니다. 재개발 재건축 과정만 하더라도 제가 시골에서 상경해 대학에 입학하던 20년 전과 거의 변함이 없습니다. 당시에도 주택 매매가와 전세가가 폭등해 집 없는 서민들이 서러움에 자살했습니다. 또 많은 이들이 무리한 재개발 재건축 과정에서 용역 깡패의 폭력에 희생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반발하며 철거에 저항하는 원주민들에게는 공권력이 거침없는 ‘진압’에 나섰습니다.

 

80년대 민주화 투쟁 이후 많은 국민들은 한국의 장래에 대해 기대감을 가졌습니다. 느리지만 정치적 민주화도 진전됐고, 97년에는 소위 정권 교체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민주화만 되면 우리 사회를 더럽혀온 부패와 부조리가 일소되고 서민들이 고통받지 않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어떤가요? 한편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극심해지고 있고, 공동체의 유대는 깨지고 있으며 각 개개인의 삶은 점점 더 불안해지고 있습니다. 불공정한 게임의 룰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만성 불안과 불공정은 외환위기 이후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급기야 현 정권 들어서는 기득권의, 기득권에 의한, 기득권을 위한 ‘상위 1% 국가’를 만들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조금만 살펴봐도 양적인 경제 성장과는 동떨어지는 온갖 악성 지표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비정규직 비율 55%, 자살율 급증, 저출산율 및 고령화 속도 세계 1위, 10만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 세계 최상위권, 세계 최고의 산업재해율과 세계 최장 노동시간, 소득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주택가격, 경제력 대비 지나치게 높은 생활물가 수준,공공도서관 수 OECD 선진국의 10분의 1 수준, 사회복지 등 사회지출 비용 OECD국가 3분의 1수준, GDP 대비 교육재정 투자 세계경제포럼 조사 대상국 127개국 가운데 71위 등등 조금만 훑어봐도 정말 서민들이 제대로 살기 어려운 경제 및 사회 구조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전방위적인 불량국가이자, 엽기적인 나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12위 경제대국임을 내세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국민들 삶의 질은 이렇게 형편 없이 저질인데 말입니다. 이같은 문제들을 개선할 생각은 없이 현 정부는 국민들을 호구로 아는지 주식 투자를 권하고, 무너져가는 집값 거품과 건설업체 부양에만 올인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부입니까? 당장 도탄에 빠져 있는 국민들은 외면하면서, 온갖 핑계를 대며 건설업체들 배불리는 건설토목사업 만들어내기에 바쁜 이명박은 ‘건설족의 수괴’일뿐이고 ‘삽질경제학’의 태두일 뿐이란 말입니까?

 

한국 사회는 지금같은 방식으로는 절대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아들딸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마음껏 키우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불과 수십평짜리 아파트를 10억, 20억씩 불러가며 돈 지랄을 하면 할수록 건강한 민주주의 시장경제는 멀어집니다. 국제사회에서 품위 있고 수준높은 문화선진국으로 대접받을 수 없습니다.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 경제와 사회가 당면한 과제를 이해하고, 모두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공정한 게임의 룰을 확립해야 합니다. 급격하게 변화한 국내외 경제환경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 경제, 사회 패러다임을 확립해야 합니다.

 

고개를 돌려 미국을 보면 어떤 위기 속에 있더라도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회라는 점에서 부러움이 생깁니다. 한국 시간으로 오늘 새벽 취임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연설의 일부를 한 번 봅시다. (제가 시간이 없어 한 신문사가 옮긴 번역요약본을 사용합니다.)

 

“우리가 위기의 중간에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는 폭력과 증오의 네트워크와 전쟁 중입니다. 우리 경제는 아주 약해졌습니다. 이는 부분적으로 탐욕과 무책임 때문입니다. 또한 힘든 선택을 하는 데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집들은 없어졌고 일자리는 사라졌으며 기업들은 문을 닫았습니다. 우리 의료시스템은 너무나 비쌉니다. 우리 학교는 너무나 많은 이들을 좌절시킵니다. 날이 갈수록 우리가 에너지를 쓰는 방식은 우리의 적들을 강하게 하고 우리 행성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데이터와 통계에 속하는 위기의 징후들입니다. 좀 더 계량화되기 어렵지만 심오한 것은 우리 땅을 지배하는 신뢰의 상실입니다. 미국의 하강이 불가피하다는 것, 다음 세대는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는 사라지지 않는 공포 말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께 우리가 직면한 도전은 실제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것들은 심각하고 다양합니다. 쉽게 대처하거나 단시간 안에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미국은 늘 문제를 해결해왔다는 것을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공포를 누르고 희망을 선택하고자, 갈등과 불화를 이기고 화합을 이루고자 모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위대함을 재확인하기 위해서는 위대함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해합니다.

 

오늘을 시점으로 우리는 주저앉았던 우리 자신을 일으켜 세워, 먼지를 털고 미국을 재건(remaking)하는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현재 미국 사회가 당면한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역량 결집을 호소하는 새 미국 대통령의 비전과 리더십에 부러움을 느낄 뿐입니다. 그런데 지극히 안타까운 것은 지금 한국의 집권 세력은 그럴만한 비전을 갖추기는커녕 시대착오적인 세력이라는 점입니다. 정치적으로는 5공식 공안통치와 권위주의적 일방 강압정치, 경제적으로는 건설토목사업 위주의 개발연대식 성장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현 집권세력을 중심으로 기득권 언론과 재벌 및 건설업체들이 똘똘 뭉쳐 그렇지 않아도 힘든 서민들의 희생을 더욱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사회의 당면 과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해결할 전문적 역량과 도덕성을 겸비한 정치세력은 없습니다. 서민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지식정보화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준비할 세력이 없습니다. 그저 존재감과 정체성마저 희미한 민주당과 소수 정당밖에 없습니다. 

 

희망이 없다면 우리 스스로가 희망을 만들어야 합니다. 기득권 중심의 불공정한 게임의 룰이 적용되는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새로운 세력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연구소가 그 같은 건전한 세력이 자라나는데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정책과 정보 발신력을 갖고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연구소는 각계에서 많은 분들로부터 그 실력을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연구소는 관료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정부 산하 연구소나 재벌들 눈치보는 재벌계 연구소와 다릅니다. 일반 서민과 국민 경제 전체의 관점에서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연구를 통해 제대로 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일구는데 기여하고 사회의 정책 품질을 높이려 하는 민간 싱크탱크입니다. 또한 기회가 된다면 저희 연구소의 컨텐츠를 중심으로 치우침이 없으면서도 많은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수준높은 미디어를 구현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연구소는 금력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맞서 제 권리와 목소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서민들을 위해 정보를 생산, 발신하고 목소리를 높이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런 작업은 저희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한 사람이 꾸는 꿈은 몽상이지만, 만인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많은 이들이 저희와 함께 꿈을 꾸며 건강한 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더 많은 토론과 정보 공유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 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1. 21. 15: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