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는 부동산 버블이 없다’며 일반가계들을 현혹하기 바빴던 부동산 광고에 목을 맨 상당수 신문들이 다급해지자 이제는 부동산 거품 붕괴로 당장이라도 한국경제가 무너질 것처럼 과장하며 DTI규제를 풀어서라도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당초 22일 발표 예정이던 DTI대출 규제 완화 등 추가 부동산 부양책 발표가 일단 연기되긴 했지만, 정부가 계속 과도한 집값 거품을 떠받치고 DTI규제를 풀어서라도 가계에 빚을 권한다면 이것은 정상이라고 할 수가 없다.

 

지금도 가계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 부채 규모가 140%를 상회해 세계 최고 수준인 상태에서 부동산 거품을 유지하기 위해 가계대출을 더 늘리라고 촉구하는 행태는 어처구니가 없다. 당장 전세계적 경제위기가 바로 미국 금융기관들이 소수민족 그룹 위주의 저소득층에게 무리하게 모기지 대출을 해준 ‘서브프라임론 사태’에서 촉발된 마당에도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당장 급한 불을 끄겠다는 부동산 기득권 세력의 근시안적 탐욕의 발로라 볼 수밖에 없다. 개인의 소득 대비 부채 규모를 제한하는 DTI규제는 서브프라임론 사태와 같은 약탈적 대출 관행으로부터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한편 금융시스템 위기를 보호하는 긴요한 장치다.

 

일부에서는 DTI 규제를 도입한 나라들이 많지 않다며 ‘불필요한 규제’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한국 금융권의 대출 실태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선진국 금융기관 대부분에서 개인에 대한 신용평가(credit rating)을 통한 대출이 정착돼 있는 반면 한국의 경우 신용평가보다는 담보대출 위주의 후진적 대출관행이 여전히 일반적이다. 따라서 DTI규제는 금융권이 자율적으로 신용평가를 통한 대출을 실시하지 않고 있는 한국 상황에서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이미 느슨한 금융규제로 부동산 버블 붕괴 과정에서 큰 위기를 맞고 있는 미국과 유럽 등의 선진국가들조차 금융 규제를 재강화하는 가운데 국내 DTI규제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마당이다. 그리고 DTI 비율이 이미 40~50%로 정해져 있는데, 원리금 상환액이 소득액의 40~50%에 이르는 것도 매우 과도한 빚 부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더 늘리라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또한 DTI를 완화한다고 해도 이미 구조적으로 주택 수요가 거의 고갈된 주택시장이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DTI 규제완화나 다른 부양책을 쓴다고 하더라도 ‘집값이 꺼질 수 있다’는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한 가계들이 지난해처럼 무리하게 주택시장에 뛰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2008년 10월 이후 정부가 DTI 규제를 푼 뒤 2009년 초부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 가격이 반등했기 때문에 건설업계나 부동산업계에서는 DTI 규제를 풀면 주택 가격이 금방이라도 반등할 것으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난해 수도권의 주택 가격 반등은 급격한 기준금리 인하로 인한 2%의 사상최저금리 유지, 주택대출 만기 상환 연장, 50조원에 이르는 적자재정 부양책, 각종 부동산 세금 감면책, 미분양 물량 매입 및 재개발 재건축 규제 완화 및 수도권 분양권 전매 제한 완화와 같은 조치 등 전방위적인 부양책에 힘입은 바 크다. 이 같은 ‘부동산 올인’ 정책을 통해 이미 거의 바닥나 버린 주택 수요를 마른 수건 쥐어짜듯 짜내 만들어낸 것이 지난해의 일시적 반등이었다. DTI 규제는 이처럼 전방위적인 부동산 부양책을 통해 집값이 반등하자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은 일반 가계들이 자금을 동원하는 가운데 돈줄 역할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DTI 규제를 제외한 대부분의 부동산 부양 기조가 거의 그대로인 상황에서도 이미 주택시장이 가파르게 무너지고 있다. 이는 주택시장의 전반적인 버블 붕괴 압력 때문이지 DTI규제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착각이다. 이는 <도표1>을 보면 좀더 명확히 드러난다.

 

<도표1> 전국 및 수도권 광역시도 주택대출 추이

 

지난해 DTI 규제를 도입한 이후 몇 달 간은 잠시 주택대출 증가액이 감소하거나 주춤해졌으나 이후 올해 3월부터 최근으로 올수록 다시 주택대출은 상당한 폭으로 늘고 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주택 거래량은 급감하고 주택가격 하락세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히려 이는 주택 가격이 여전히 높은 가운데 남은 잠재 수요자들의 소득 여력이 취약해 주택 거래가 일어나려면 상대적으로 가구당 부채를 더 많이 일으켜야 하는 상황임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이해하기 쉽게 도표화하면 아래 <도표2>와 같다.

 

<도표2>

 

필자가 아파트 거래량과 가계 부채 증감액과의 상관관계 함수를 이용해 추정해본 결과 아파트 거래량이 거래 활성화 시기인 2000년대 초반이나 2006년 말 수준으로 늘어나려면 분기별로 32.4조원(도표에서 가상의 경우)이나 늘어나야 한다. 그런데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의 올해 3~5월 가계 부채 증가량은 2.5조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지금 DTI규제를 푼다고 해서 얼마나 가계대출이 더 늘어나 이미 주택수요가 고갈된 시장을 떠받쳐 줄 수 있겠는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즉, 이는 DTI 규제 완화 정도로 지금의 집값 거품을 떠받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방증한다. 따라서 정부는 재정력과 행정력을 비축해뒀다가 진짜 다급할 때 써야 한다.

 

그런데도 부동산 광고에 목 맨 대다수 언론들은 정부더러 부동산 부양을 위해서라면 이미 누적된 물가 상승 압력이 상당한데도 기준금리를 올리지 말고, 가계부채를 늘려서라도 투기적 거래라도 일어나게 하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그런 한편으로는 “집값 떨어진 지금이 집을 살 타이밍”이라며 물귀신처럼 멀쩡한 가계들을 집 가진 빈자인 하우스푸어(house poor)의 행렬로 끌어들이는 선동보도에 여념이 없다. 이들의 정말 ‘물귀신 작전’ 같은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접하면 마음 한 켠으로는 정말 DTI규제를 확 풀어 안 그래도 죽어가는 주택시장을 ‘확인사살’이라도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 DTI 규제를 풀면 약발을 지켜보기 위해 몇 달간 매도를 지연시키는 효과만 있을 뿐이다. 이미 부동산이 매우 위태롭다는 사실을 대다수 국민이 확인한 마당에 과거처럼 빚내 얼마나 덥석 집을 살지 의문이다.

 

이미 다이어트 중인 은행 또한 얼마나 과감히(?) 빌려줄지도 의문이다. 얼마 전 만났던 금융기관 관계자들도 “DTI규제가 풀린다 해도 과거처럼 적극적인 대출을 할 은행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DTI규제를 완화했을 때 생각했던 약발이 통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심리적 마지노선까지 무너뜨려 버블 붕괴를 가속화할 수도 있다.

 

현재 부동산시장 상황에서 DTI규제 완화 효과가 별무소용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제가 DTI규제 완화를 반대하는 것은 이 조치가 결국 가계들을 제물로 삼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국민경제 전체적으로 막대한 기회비용을 소진하게 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거품기에 세 배 이상 늘어난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은 진척되지 않았는데, 이들을 모두 먹여 살리기 위해 가계 빚을 더 많이 내도록 부추긴다면 그것이 정말 국민을 위한 정부인가?

 

정부는 부동산 거래 활성화라는 명목 아래 거품 잔뜩 묻은 아파트 폭탄을 받아줄 ‘잠재적 하우스푸어’들을 계속 양산하려 하기보다는 이제라도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통해 하우스푸어가 더 이상 양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부동산 투기 선동세력들의 마지막 선동에 넘어가지 말기를 바란다. 이들의 선동에 넘어가는 순간 ‘잠재적 하우스푸어’가 될 초청장을 받아든 셈이 되기 때문이다. 

 

 

 

트위터를 하시는 분들은 http://twitter.com/kennedian3로 저를 팔로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아고라와 제 블로그(다음뷰), 오마이뉴스, 네이버 부동산, 한겨레신문, 미디어오늘 등에 연재하는 글뿐만 아니라 각종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합해서 매일 소개할 생각입니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10. 7. 30. 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