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9대책’에도 불구하고 매매가 하락세가 멈추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전세가가 계속 상승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그러자 일부이지만 “전세가 상승세가 매매가를 밀어 올릴 것”이라거나 아예 “이 참에 집 한 번 사볼까’하는 식의 제목을 단 선동보도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 같은 레파토리는 이미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전세가가 상승할 때 속출했고, 이미 이후 지속적인 매매가 하락세로 왜곡된 선동보도로 드러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또 다시 그 같은 무책임한 선동보도에 나서고 있습니다.

 

필자는 2008년 말 경제위기 전 소형이 강세를 나타냈던 것과 달리 중형이 강세를 띠고 있고, 전세가 상승 폭이 큰 지역이 멸실주택이 많이 발생한 지역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들어 큰 틀에서 볼 때 공급 부족으로 전세가 상승세가 나타나는 게 아니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오히려 부동산 버블의 정점이나 버블 붕괴 초기에는 주택 매도 후 전세로 전환하거나 주택 매입을 포기하는 수요가 일시적으로 늘어 전세가 상승세가 일정 기간 지속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실제로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 버블 붕괴 초기에 발생했던 현상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후 주택시장 상황을 보면 매매가가 하락하는 가운데 전세가가 상승하고 있어 이 같은 주장이 설득력이 있음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이런 상황을 빌미로 일반 가계를 현혹하는 선동기사들이 다시 나오고 있어 최근 전세시장 상황에 대해 다시 한 번 점검해 보겠습니다. 참고로, 여기에서 인용하는 자료들은 국민은행의 전세시장 조사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 차례 말씀드렸 듯이 현재 국민은행의 주택가격 지수는 호가 위주의 조사로 상당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공인통계이고, 전세가와 관련한 별다른 통계가 없기에 국민은행 가격자료를 활용하는 것이 불가피함을 전제하고자 합니다.

 

먼저, <도표1>에서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3개 광역시도의 전세가격 추이를 면적형 별로 살펴봅시다. 3개 시도 모두 2008년 말 경제위기 이전에는 소형, 중형, 대형 순으로 올랐습니다. 하지만 2009년부터는 대체로 중형, 소형, 대형 순으로 오르고 있어 중형의 상승세가 상대적으로 가팔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뉴타운, 재개발 지역 등에서 밀려난 세입자들의 이주수요라면 소형 위주로 올라야 하는데, 중형이 먼저 뛰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말씀드린 대로 여전히 집값이 높은 가운데 상대적으로 소득 여력이 있는 가계의 주택 매입 포기 수요 또는 매도 후 전세 전환 수요가 중형으로 몰리고 있는 영향이 큰 것으로 추정됩니다.

 

<도표1> 수도권 3개 광역시도 전세가 추이

 

또한 전세가의 상승 추이를 살펴보면, 지난해의 경우 경제위기 당시의 전세가 급락 등에 대한 기술적 반등 측면에서 급등했으나 최근으로 오면서 상승세가 전반적으로는 완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향후 추이를 더 지켜볼 필요는 있겠으나 지난해와 같은 전세가 급등 현상이 다시 재현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한편 주택 유형별로 전세가 상승 추이를 보면, 뉴타운 재개발 등으로 멸실이 많은 단독이나 연립주택의 전세가 상승세가 상대적으로 약한 반면 아파트의 전세가 상승폭이 크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최근으로 올수록 그 상승세가 약해지고 있는 양상입니다.

 

이어 <도표2>를 통해 3개 광역시도의 전세거래동향을 보면, 현재의 전세거래가 매우 한산한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2006년 말 집값 폭등기 이후로는 전세거래가 한산하다는 중개업소의 비중이 기복이 있지만 증가하는 추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전세시장이 대규모 거래를 동반하면서 급등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전세대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 보입니다.

 

<도표2> 수도권 3개 광역시도 전세거래동향 추이

 

이어 <도표3>에서 임대차 계약시 서울과 수도권의 전세/보증부월세 비중 추이를 보면, 일시적 기복은 있지만 전세 비중이 60% 전후를 유지하고 있고 보증부월세 비중도 큰 변화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부에서 주택 매매가가 하락해도 집주인들이 월세 비중을 늘려 집을 안 팔고 버틴다는 주장은 현재까지는 설득력 없는 주장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국지적으로 일부에서 그런 주장이 나타난다고 해도 국내 주택시장에서 오랜 전세 선호를 뒤흔들만한 움직임은 아직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굳이 월세 비중이 늘어난다면, 집주인들이 주도해서라기보다는 전세보증금 확보에 불안을 느끼는 세입자의 주도에 의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이 통계가 2001년 8월 이후 작성돼 외환위기 직후 상황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지만, 2001년 8월부터 2003년 초까지 월세 비중이 줄고 전세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것에서 추론할 수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매매가가 급락하면서 보증금 확보에 불안을 느낀 세입자들이 월세로 전환했다가 매매가 상승세가 지속되자 기회비용 측면에서 유리한 전세로 전환한 것입니다. 이는 경제적으로 매우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 비해 미약하지만 2008년 말 일시적으로 전세 거래 비중이 줄어든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도표3> 서울 및 수도권 전월세 계약 비중


따라서 현재 전세 제도가 단기간에 사라질 가능성도 없지만, 설사 전세 비중이 줄고 월세가 는다고 해서 그것이 주택 가격을 떠받쳐줄 것이라는 믿음은 오산입니다. 오히려 만약 그런 현상이 생겨난다면, 그것은 세입자들이 전세금 확보도 불안할 정도로 주택 가격이 계속 떨어지고 있음을 나타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실 최근의 전세가 상승세는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소유하고 있는 ‘하우스푸어’ 들이 금융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세가를 올리는 측면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집주인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데는 상당수 언론들의 선동보도도 한몫하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하지만 더욱 근본적으로는 적어도 과거처럼 집값이 오르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주택 매수를 포기하고 전세로 눌러앉거나 주택을 매도한 뒤 전세를 넓혀가는 현상 때문으로 판단됩니다. 이들 매수포기 수요 또는 매도 후 전세전환 수요는 상대적으로 자금 여력이 있는 사람들로 중대형 아파트 위주의 전세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최근의 전세가 상승이 과거와 달리 중대형 아파트 위주로 뛰고 있다는 점을 설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최근 서울의 전세가 상승세가 집값을 밀어 올릴 가능성은 극히 낮으며 오히려 과거와 같은 집값 상승을 전망하는 가계가 급감하고 있는 징표라는 점에서 오히려 집값 하락이 지속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인천 영종, 송도신도시와 김포, 파주, 고양, 용인, 화성, 남양주 등 경기도뿐만 아니라 심지어 서울시내 한복판에서도 미분양과 미입주 물량 등이 잔뜩 쌓여 있는 판에 전세가가 계속 오른다는 것은 넌센스에 가깝습니다. ‘8.29대책’ 등 정부의 억지 부양책 등에 기대 억지로 버텨왔던 다주택 투기자들이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시점에 이르러 매물이 쏟아지면 전세가도 자연스럽게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현 국면에서 전세가가 올라서 매매가를 밀어 올릴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필자가 누누이 설명했듯이 현재 주택 가격 수준에서 집을 사줄 수 있는 수요는 사실상 거의 바닥나 주택 가격이 상승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소득 기반이 부족하고 집을 사기 위해 빚을 많이 내야 하는 가계 입장에서 누가 무리해서 집을 사겠습니까.

 

전세 보증금을 더 올려주고 전세를 연장할지, 또는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살지를 선택해야 하는 가계의 입장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전세 보증금 인상분이 3000만원이고, 이를 조달하는 금리가 계산의 편의상 평균 5%라고 가정하면 이 가계는 2년간 300만원의 이자를 부담해야 합니다. 반면, 이 가계가 집을 사기 위해 2억 원의 부채를 내야 한다고 가정하면 2년간 이자만 2000만원을 내야 합니다.

 

더구나 전세금은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금을 보장받습니다. 하지만 주택 가격은 향후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하면 가계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손실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구나 2000만원의 이자부담까지 지면서 집값이 떨어지는 것을 평온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는 가계는 많지 않스니다. 2006년 이후 부동산 정보업체나 부동산 선동 언론에 휘둘려 오판한 결과 ‘하우스푸어’로 전락해 고통받고 있는 분들이 이미 너무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지역에서 전세가가 오른다고 섣불리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살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부동산 거품이 가라앉고 있는 부동산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선량한 가계를 제물로 삼아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려는 일부 언론만이 그렇게 희망할 뿐입니다. 일반 가계들은 부동산 광고에 목을 맨 일부 언론들의 억지 선동보도에 휘둘리지 않도록 신중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10. 9. 14. 08: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