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폴 크루그먼 교수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는 내가 아는 좁은 세계에서 정말 훌륭한 경제학자이자 양심적인 언론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을 계기로 그가 썼던 ‘The Great Unraveling'라는 책을 꺼내보았습니다. 국내에 ‘대폭로’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책인데요. 제가 갑자기 이 책을 다시 꺼내든 이유는 ‘부시 저격수’라고 불리는 그의 부시 행정부 비판이 최근 국내 상황에도 적실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약 8개월이 지났습니다. 저는 지난해 대선 결과를 보며 느낀 소감을 한 카페에 띄운 적이 있는데, 그 글의 일부는 이렇습니다.


        “자산과 소득 양극화에 부동산값 폭등, 비정규직 비율 55%, 청년 실업 200만, 출산율 바닥, 자살율과 근로시간, 산재사고 OECD 최고라는 대한민국의 엽기적인 현실과 이를 나몰라라 하는 정치권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납니다. 하지만 아무리 배가 고프다고 쓰레기통을 뒤져서는 안 되잖아요? 현 집권세력이 이 문제를 해결 못한 데 대한 민심의 분노는 이해하지만, 땅바기가 집권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닌데 말입니다. 그의 철학과 정책을 보면 오히려 현재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이 더욱 악화될 것 같군요. 좀 심한 비유인지 모르겠으나, 독일이 1차대전의 전쟁부채에 시달리다 결국 히틀러를 택한 장면이 왜 자꾸 오버랩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시점에서 그때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면 제가 썼던 글이 그대로 현실이 되고 있느 듯 해 소름이 끼칩니다. 오히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악화된 형태로 말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 정부의 경제 및 교육정책 등 정책 실패와 아마추어적인 정부 운용 등에 대해 비판합니다. 저도 그런 면에서 가장 강력한 비판자 가운데 한 사람일 것입니다. 사실 아마추어도 이만저만한 아마추어가 아니며, 국민들에게 내뱉은 공언을 쉽게 뒤집는다는 점에서 사기꾼 기질도 강한 정부라고 봅니다. 정말 저질 불량정부이지요.


        하지만 저는 어느 순간 이 사람들의 정치 행태 및 국민이나 여론에 대한 대응, 그리고 방송 장악이나 간첩단 조작, 군대의 금서 목록 발표, 건국 60주년 표현, 부유층 위주의 감세정책 등 자신들의 어젠다를 철저히 추구하고 쟁취하는 과정에 더 우려를 느끼게 됐습니다. 많은 이들이 ‘실용정부’라는 현 정부의 구호에 속아 그냥 친기업적이고 경제성장을 우선시하는 중도 우파 정도의 정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 정도에 그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과격한 ‘우파 혁명세력’입니다. 물론 지금같은 경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엉터리 저질 집단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또 하나 분명한 것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자신들과 자신들의 지지세력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관철시키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집단이라는 겁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촛불시위 이후 자신들 세력을 결집하며 전 국민을 대상으로 선전포고하듯 하는 이들의 태도를 보면서 점점 이들은 합리적 판단력을 가진 정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찾아 본 책이 "The Great Unraveling"입니다. 

 

        폴 크루그먼은 대폭로에서 조지 부시 행정부를 ‘혁명 세력(A Revolutionary Power)’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연재하면서 처음에 경제 문제에 대해 글을 쓰다가 점점 정치 문제에 대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했습니다. 바로 ‘급진적인 정치 운동이 부상하고 점증하는 지배력을 갖게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급진 우익이 백악관과 의회를 사실상 지배하고, 사법부와 미디어의 상당 부분을 통제하게 된 현실에 대해 그는 매우 깊은 우려를 나타냅니다.


        그는 이 같은 생각을 바로 이 책의 도입부에서 구체적으로 정리했습니다. 닉슨 행정부 시절 냉혈적인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는 박사학위 논문 ‘되찾은 세계(A World Restored)’에서 1930년대의 전체주의 정권들에 대한 유화적 대응책의 실패를 비판합니다. 이때 그는 프랑스의 로베스피에르와 나폴레옹 치하의 정치 세력들을 ‘혁명 세력’이라고 규정하고, 1930년대의 전체주의 세력에도 같은 규정을 합니다.


        폴 크루그먼은 헨리 키신저의 이 박사학위 논문을 읽다가 부시 행정부 또한 기존 체제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이라는 점에서 ‘혁명 세력’이라고 규정합니다. 이들 혁명 세력들은 오랫동안 확립된 미국의 정치 및 사회적 제도들이 존재해서는 안 되며, 우리들 모두가 당연시하는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정부의 역할과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확충 등을 단순히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기본적인 (시장경제) 원칙에 위배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무력 사용을 전혀 주저하지 않습니다. 미국에 테러를 가한 적이 없는 이라크에 대해 선제공격을 감행한 것이 대표적이며, 시리아, 이란, 북한 등도 ‘악의 축’으로 묶어 같은 방식으로 다루려 했습니다. 미국 헌법의 근본 원칙 가운데 하나였던 정교 분리를 내팽개치고 ‘성경적 세계관’을 확산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습니다. 정통성은 민주적 절차에서 나온다는 사상을 받아들이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 나라를 이끌도록 신의 부름을 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실들을 종합하면, 이들 혁명세력이 원하는 나라는 이렇습니다. ‘기본적인 사회 안전망이 없으며, 국가의 뜻을 해외에 관철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며, 학교에서 진화를 가르치지 말고 종교를 가르쳐야 하고, 선거는 형식적 치장물에 불고한 나라’ 말입니다.

        

        폴 크루그먼은 감세와 이라크 전쟁을 예로 들어, 이들 혁명세력이 어떻게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는지 설명합니다. 우선, 감세는 90년대부터 공화당의 핵심 의제였습니다. 이들 혁명 세력들은 단순히 감세를 원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미국 조세체계의 분쇄를 목표로 했습니다. 이들은 제한된 승리에 절대 만족할 수 없는 세력입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세수 초과 환급을 명목으로 세금을 깎고, 세수 부족으로 전환됐을 때는 경기 부양책으로 세금을 깎고, 경기 부양 효과가 없음이 드러나자 장기적인 경제 성장을 촉진한다는 명목으로 세금을 깎습니다. 이라크 선제 공격론도 90년대초부터 폴 울포위츠, 딕 체니 등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강화돼 왔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9.11테러라는 현 상황에 대한 대응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사담 후세인과 알 카에다의 연계 혐의로 이라크를 침공했다가 그것이 거짓임이 드러나자 이번에는 핵개발 프로그램(대량 살상 무기라는 표현으로 확장합니다만)을 이유로 갖다 붙입니다. 나중에 이것조차도 설득력이 없음이 드러나자 이번에는 ‘민주주의의 확산’을 명분으로 갖다 붙입니다. 감세나 이라크전뿐만 아니라 에너지 정책과 환경 정책, 보건정책, 교육정책 등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모든 경우에 부시 행정부는 그다지 급진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 정책 논리를 제시함으로써 온건주의자들을 안심하게 합니다. 그리고 매번 온건주의자들은 (2차 대전 직전 나치 히틀러에 대해 영국 수상 리처드 챔벌린이 구사했던) 유화주의 전략을 따릅니다. 폴 크루그먼은 헨리 키신저의 통찰이 옳았다며 그의 말을 인용합니다. “안정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혁명세력을 맞닥뜨렸을 때 당시 발생하는 것을 어지간해서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혁명세력을 저지하는데 효과적이지 못했다.”


        이제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한국 상황으로 돌아와 봅시다. 말로는 중저소득층용이라고 떠벌리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부유층을 위한 감세안, 시장친화적인 부유세의 하나인 종부세의 시행 2년만의 유명무실화, 반공 기독교이념에 사로잡힌 철저한 대북 대결 구도 전개(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주인처럼 떠받드는 미국에조차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에서 왕따당하는 얼간이들이죠),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대통령과 소망교회 출신의 종교적 신념에 사로잡힌 ‘강부자/고소용 내각’, 녹색성장을 외치면서 태양광 발전 보조금을 깎고 원전 대규모 건설 계획을 밝히며 대규모 개발사업을 벌이는 반환경정부, 공교육을 사교육화하고, 사교육시장을 극대화해서 어린 학생들을 더욱 치열한 적자생존의 경쟁에 내모는 교육정책, 미분양 물량 매입과 건설 물량 만들기를 통한 ‘건설업자 복지’에는 열을 올리면서도 기존의 복지 예산은 삭감하는 거꾸로 정책, 종부세, 양도세 경감 등 부동산 부자들을 위한 집값 떠받치기로 일관하는 정책,  민주화 이후 진전돼온 천부인권적, 민주적 권리 및 제도 뒤집기 정책-군의문사위 해체, 국가인권위 압박, 집단 소송제 통한 집회결사의 자유 제한 강화, 인터넷 명예훼손죄 도입 시도, 권위주의정권식 방송 통제 시도, ‘건국 60년’ 표현 통한 헌법에 규정된 임시정부 정통성 부인과 뉴라이트 등 친일우파 집단의 등용, 친일우파적 시각에서 역사 교과서 수정 시도 등등 이루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이게 불과 이들이 집권한지 8개월도 안 돼 벌어진 일입니다. 이를 보면 이들이 한심한 저질 아마추어집단인 한편 자신들의 아젠다는 얼마나 노골적으로, 그러면서도 철저히 추구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이런 형편 없는 저질 정치세력을 정치적으로 심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쨌든 이들이 집권하고 있는 ‘암흑기’입니다. 이러한 시대를 어떻게 해석하고, 견디고, 대처해야 할까요? 폴 크루그먼 교수는 친절하게도 이에 대한 대응법까지 책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리스트로서 ‘부업(part-time) 저널리스트’인 자신이 생각하는 다섯 가지 ‘보도 준칙(rules for reporting)’을 책에서 소개합니다. 그는 “이 같은 규칙은 뉴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어떤 진지한 시민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같은 규칙은 현재 한국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다섯 가지를 간략하게 소개해보겠습니다. 각각의 준칙에 해당하는 국내 사례를 제가 몇 가지 정리해봤습니다. 댓글을 통해 다른 분들이 의견을 달아주시는 것도 좋겠군요.

 

준칙 1. (이들이 내세우는) 정책안이 그들이 겉으로 내세운 목표에 부합한다고 가정하지 말라.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으며, 그 목표를 추진하기 위한 어떤 주장도 서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한 기자가 백악관 보좌관이 공개적인 자리와 사적인 자리에서 한 사안에 대해 정반대로 말한 것에 대해 해명하라고 하자, 그 보좌관의 답변은 이랬다. “왜 거짓말하느냐고? 그건 내가 해야 하는 일이야. 언론에 거짓말하는 것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전혀 받지 않아.”


한국 사례: 철저한 부유층을 위한 감세안에 대해 중저소득층의 경제활력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 처음에 영어몰입교육 내세웠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영어몰입교육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했으나, 서울시교육청을 통해 단계적으로 추진중.


준칙 2. 이들의 진정한 목표를 발견하기 위해 공부 좀 하라.

부시행정부는 감세안을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포장했지만, 단기적으로 감세안이 일자리 창출 수단으로 널리 인정하는 어떤 경제학 이론도 없다. 경제 성장은 사실 그들의 목표가 아니다. 급진 보수파들은 자본에 대한 모든 과세를 없애야 한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그것이 이 정부의 감세안이 실제로 이루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정책을 이해하는 방법은 그들이 대중들에게 그들의 계획을 선전하기 전에 이들 정책의 기획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정부에서 전직 목재 산업 로비스트 출신이 산림정책을 총괄할 때, 그 관리가 ‘건강한 산림’이라고 하는 말은 벌목 회사들이 더 많은 나무를 베는 것을 허용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런데 저널리스트들이 이런 문제를 다루는 것은 어렵다. 그들은 (급진 보수파의 진정한 의도를 드러내 강력히 비판함으로써) 편향적인 엉뚱한 음모이론가처럼 비치길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이 충분히 공개돼 있는 상황에서 어떤 음모가 개입돼 있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더 비현실적이다.


한국 사례: 이명박 정부는 여론 조작을 위해 노골적으로 방송장악을 시도하고 있으나, 이를 언론의 편향성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주장. 최근의 역사 교과서 수정 논란이나 임시정부의 법통을 무시한 건국 60주년 표현 사용도 마찬가지. 


준칙 3. 일반적인 정치 규칙이 적용될 것으로 가정하지 마라.

워싱턴정가에서는 스캔들이 일어나면 언론이 떠들어대고 관리들은 사퇴한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 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내무성 차관으로 일했던 석탄산업 로비스트인 스테펀 그릴은 예전 고객을 위해 개입한 사실이 밝혀졌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육군참모총장인 토마스 화이트는 엔론 경영진 시절 가공 이익을 만들어낸 사실이 밝혀졌지만 유임됐고, ‘이해충돌’ 사실이 드러난 국방정책자문위 의장인 리처드 펄도 마찬가지다. 왜 이런 일반적인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가? 기존 시스템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이들 혁명세력들은 규칙에 따라 경기를 펼쳐야 한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사례: 언론장악대책회의를 열었던 최시중이나 이동관 유임, 땅투기와 표절 논란된 청와대 수석들과 장차관 대부분 그 자리에 있음. 자신들이 야당이었던 시절 같은 기준으로 사퇴 총공세를 펼쳤던 기준을 자신들에게는 적용 안 함. 하긴 법을 밥 먹듯이 어긴 범법자 대통령 밑에 있는 충복들이 조그만 스캔들에 움찔이나 하겠습니까?



준칙 4. 혁명세력은 비판에 대해 공격으로 반응한다.

혁명세력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다른 이들이 비판할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의문을 제기하는 누구든 무자비한 역공을 받을 것을 기대해야 한다. 예를 들어, 2003년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선두주자였던 존케리가 “이라크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정권 교체를 해야 한다”고 한 말을 두고 공화당측은 “전시에 군통수권자의 교체를 요구했다”며 그의 애국심을 문제삼았다.


국내 사례: 촛불집회 유모차 부대까지 처벌, 조중동 광고 불매 운동 주도자 처벌, PD수첩 보도 제작자 징계 요구 및 검찰 수사 의뢰. 자신들이 더욱 이념적이면서 최근 경제위기까지 좌파 이념세력의 공세로 치부, 간첩단 사건 조작.


준칙 5. 혁명세력의 목표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마라.

끊임없이 이유를 바꿔가며 철저히 감세정책을 밀고 나갔던 부시 행정부에 대해 생각해보라. 온건주의자들의 유화적 대처가 그들의 목적을 끝까지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라크 전쟁은 ‘부시 독트린’의 출발선일 뿐이었다. 결코 제한된 양보로 그들을 달랠 수 없다.


국내 사례: 방송장악 과정에서 YTN 낙하산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KBS로, 이제 신문방송 겸영 통한 조중동 특혜 주기와 MBC민영화 시도까지 나아가고 있는 행태.


 

물론 미국의 상황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들어맞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니 어찌 보면 미국에 비해 한국의 여건은 훨씬 비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엘리트들은 거의 대다수가 민주당이나 무당파 성향으로 서민 복지 강화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반면, 한국의 엘리트들은 대부분 우익 성향에 한나라당 지지자들입니다. 미국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제대로 된 신문들이고 찌라시 언론들인 폭스뉴스 등은 주류라기 힘든 반면 한국에서는 찌라시 신문들이 가장 영향력 있으며, 이런 찌라시 관점을 방송에까지 도입하려 하고 있습니다. 부시행정부에서 미국에는 민주당이라는 매우 강력한 야당이 있었으나, 지금 한국에는 존재감과 정체성마저 희미한 민주당과 소수 정당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의 상황은 더욱 암울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희망도 있다고 봅니다. 지금의 한국 정부는 훨씬 더 엉터리 정부여서 대중들이 그들의 진정한 목적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 더구나 현재의 경제위기 상황을 제대로 대처할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고요. 또한 조중동 등 주류 신문들의 거짓말이 들통나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한 반면 20, 30대 젊은 세대들을 주축으로 인터넷상의 집단지성을 통해 진실을 깨달아가고 있다는 것일 겁니다.


저는 소위 친노도 아니고, 지금의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 같은 정치세력들에서 희망을 보지도 않습니다. 지금의 시대착오적 이념에 빠져 있는 엉터리 급진 보수세력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서민들을 착취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분노할 뿐입니다. 그리고 기득권 중심의 불공정한 게임의 룰이 적용되는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나와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폴 크루그먼이 책에서 인용한 구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CBS의 60분 진행자인 앤디 루니의 말인데요. “단 하나의 진정으로 좋은 뉴스는 미국역사에서 이 끔찍한 시간이 끝나는 것”이라고요. 저는 이 말에 조금 살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단 하나 진정으로 좋은 뉴스는 한국 역사에서 이 끔찍한 시간이 끝나는 것, 그리고 정말 제대로 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할 역량이 있는 정치세력이 성장해 집권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 토대를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by 선대인 2008. 10. 14. 07:57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최근 집값 거품 붕괴 현상이 완연해지고 미분양 물량 급증으로 인한 건설업체의 자금난이 심각해지면서 거품 붕괴를 막으려는 정부 대책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부동산 대책인 소위 ‘8·21대책’부터, 9·1 감세안, 9·19 주택 500만 호 주택공급대책, 9·22 종합부동산세제(이하 종부세) 개편안 등이 잇따랐습니다.

 

발표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자면 △분양가 상한제 무력화 및 사실상의 후분양제 폐지 △최저가낙찰제 확대 적용 연기 △지방 미분양 아파트 환매조건부 매입 △ 수도권 전매 완화 △ 정부 예산 120조 원을 동원한 주택 공급 △뉴타운 및 신도시 추가 지정 △재개발 재건축 사업 촉진 △1가구 1주택 양도세 부담 및 상속세 부담 완화 △부유층 중심의 소득세 완화 △종부세의 유명무실화 △분당신도시 16배 크기의 그린벨트 해제 등입니다.


이들 대책의 공통점은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건설업계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고가 주택 보유자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것입니다. ‘건설 및 부동산 경기 부양’과 ‘집값 거품 떠받치기’로 일관한 정책들입니다. 더구나 정부가 이들 대책을 내놓는 속도와 규모가 엄청나다는 점이 주목됩니다. 정부는 ‘한국경제의 펀더멘탈은 괜찮다’고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부리지만, 속으로는 부동산 거품 붕괴에 대해 극심하게 걱정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직접적인 건설 및 부동산 정책이 아니어도 같은 정책 의도를 가진 게 많습니다. 정부가 향후 5년 간 56조 원을 투입하는 ‘광역경제권 선도 프로젝트’ 사업이 대표적입니다. 56조원 사업 가운데 53조원 가량이 이미 포화상태인 항만과 공항, 산업단지, 도로 건설 등에 들어가게 됩니다. 정부가 새만금개발사업 추진에 속도를 붙이고, 제2 롯데월드 건설을 신속히 허가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특히 정부가 군 내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제2롯데월드 건설 허가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재 상암 DMC초고층 빌딩이나 용산국제업무지구 조성 등 서울과 수도권에서 민간이 추진하는 등 대규모 개발프로젝트는 많습니다. 하지만 당장 현금을 동원할 수 있는 사업은 많지 않다는 게 관련 업계의 진단입니다. 하지만 제2롯데월드는 다릅니다. 롯데그룹은 현재 상황에서도 비교적 풍부한 현금 동원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롯데그룹 계열사의 한 부사장은 필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건설경기를 살리려면 당장 돈을 풀 수 있어야 하는데 다른 데서는 지금 같은 신용 경색기에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우리는 수조원의 현금을 바로 동원할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숙원사업인 제2롯데월드 건설을 의욕적으로 추진중인 롯데그룹은 정부에도 같은 논리를 내세웠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국내외 거시경제 구조를 볼 때 현 정부의 이 같은 부동산 부양책도 버블 붕괴를 막기 어렵습니다. 정부가 대출 규제 완화를 제외하고 웬만한 부양책은 다 내놓았지만 부동산시장이 꿈쩍도 않는 게 그 증거입니다. 버블 세븐의 집값은 최근 16개월내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고, 금융기관이 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경매물건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버블 세븐 지역에서 그동안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가격대가 깨지고 있다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아직 남아 있는 대출 규제가 풀린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구조적으로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은행이 과거처럼 선뜻 대출을 해줄 리가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높은 집값, 극심한 거래 부진으로 표현되는 ‘부동산 스태그플레이션’ 기간을 지나 버블 붕괴의 초기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저금리와 달러 유동성 급팽창에 기인했던 전세계적 부동산 버블의 동시 붕괴 현상, 수도권 미분양 물량 급증으로 표현되는 공급 과잉, 투자 수익률의 저하와 투기 심리의 위축,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 시중의 신용 수축과 금리의 지속적 상승, 이미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재개발과 뉴타운 등등 집값 거품 붕괴를 부르는 시장 압력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버블 붕괴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아마 버블 붕괴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입니다.


이런 상황 전개를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착잡한 생각이 듭니다. 우선, ‘삽질경제학’의 대가이자, 건설족의 우두머리 출신 대통령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을 ‘경제대통령’으로 포장했고, 경제를 살리겠다고 약속했는데 경제를 어떻게 살려야 할지 마땅한 방법을 모르겠죠.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려면 부동산 거품을 빼고 국가 정책의 틀을 콘크리트가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경제로 바꿔야 하는데 그게 쉽게 될 리 없죠. 확고한 비전과 철학을 가지고 추진해도 어려운 문제인데, 반칙과 편법, 부정이 판치던 개발경제 시대의 현대건설 사장 출신으로는 개념조차 없을 테니까요.


더구나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등 자산경제가 지나치게 부푼 상태에서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은 계속 급전직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장잠재력을 제대로 확충하려면 시간이 걸리니, 전시행정과 단기 눈속임 성과주의의 귀재인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택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그의 언행이나 정부 정책을 보면 성장잠재력을 어떻게 확충하는지에 대해 전혀 모르는 대통령 같습니다. 결국 자신의 전공 분야이고, 당장 효과가 나타나는 개발 사업으로 승부를 보려 하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하면 각 지역에도 선심을 쓰는 격이니 정치적으로도 득이 되는 일입니다.


한국 경제의 위기는 매우 깊은 속병을 가진 구조적 위기이지, 단기적 위기가 아닙니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 내수 침체, 자산 및 소득 양극화, 성장 잠재력 고갈, 막대한 가계 부채 급증 등이 부동산 버블을 고리로 지난 10년간 확대 재생산돼온 상황입니다. 한국 경제의 핵심 위기는 오히려 이처럼 외환위기 이후 누적돼온 구조적 위기입니다. 그런데 정부도 내심 부동산 버블이 붕괴될 위기감을 느끼고 있고, 그것이 가져올 신용 위축 사태가 우려되겠지요. 그래서 각종 개발사업과 전매제한 완화 조치 등을 통해 시장에 돈이 돌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가 해소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경제의 핵심적 문제들인 소비 위축, 내수 침체, 실업률 증가, 양극화 확대, 고물가 고비용 구조 등의 문제는 상당 부분 부동산 거품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우선, 가계부채의 증대와 이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로 가계의 소비 여력이 급격히 위축됐습니다. 또한 소비재와 달리 가장 값비싼 생활 필수재인 주택 값은 상승하면 그만큼 실질 소득이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또 주거비 부담이 상승하면 이를 부담하기 위한 임금 상승이 합리화돼 기업의 비용 증가로 이어집니다. 자산 양극화가 심해지고 이로 인한 사회적 위화감도 증대됩니다. 토지 비용의 상승으로 경제가 고비용 구조로 흐르게 돼 중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거품은 형성되면서 이미 막대한 경제적 폐해를 낳습니다.


한 나라의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부동산 등 자산 경제의 영역과 생산경제의 영역이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경제 자원이 부동산에 편중되도록 집값 거품을 키우고 유지하면서 7~8년을 지속해왔습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집값 거품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씁니다. 여기에다 지금 대규모 개발 계획을 남발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다 언급할 수 없지만,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각종 중앙 및 지방정부 차원의 개발 사업들이 막대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각종 개발사업들을 또 벌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개발사업들이 모두 필요한 것이라면 말도 안 하겠습니다. 당장 ‘광역경제권 선도프로젝트’ 계획만 봐도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이 수두룩합니다. 예를 들면, 대구, 구미, 포항, 광주·전남, 서천 등 5곳에 새로운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존에 형성된 산업단지와 과학기술테크노파크 등의 사업과 뭐가 다른지 의문입니다. 문제는 산업단지 조성을 통한 부지 제공이 아닙니다. 기존 산업단지에 입주한 기업들에게 기술과 지식, 정보를 공유하고 외국 자본을 유치해 ‘연계 혁신(connected innovation)이 일어나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것이 현재 세계 각국이 추진하는 첨단산업클러스터를 통한 경제성장 방식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것은 결국 개발사업입니다. 산업단지가 제대로 된 의미의 클러스터화하지 않으면 그것은 결국 부동산일 수밖에 없습니다. 일부 입주기업들에게 땅장사를 하게 하기 십상입니다. 더구나 얼마 전 KBS스페셜에도 나왔지만, 지방 및 수도권의 제조기업들은 오히려 한국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산업용 부지에 대한 수요는 줄어드는데 새로 산업단지를 조성하면 거기에 얼마나 들어설까요?


동남권역에 조성하겠다는 ‘동북아 제2허브공항’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강원도 양양과 경북 울진, 전남 무안 등 지방 공항들이 페쇄되거나 이용객들이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더구나 경남 김해공항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다 새로 공항을 짓는다면 충분한 수요가 생길까요? 마산∼거제 연륙교를 지어 해양관광을 활성화한다거나, 대경권에 3대 문화·생태 관광기반 조성을 한다는 사업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입니다. 전 정부에서 앞다투어 나섰던 대규모 관광개발 사업들 중에 지금 성공한 것이 있습니까?


한 마디로 그냥 개발사업을 했을 뿐, 이후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아무런 신경을 안 쓰는 것이 지금의 정부관료들입니다. ‘공급을 하면 수요는 생긴다’는 근거 없는 희망에 따라 개발계획을 내놓는 것입니다. 이는 개발시대 때에나 통하던 방식입니다. 개발시대 때에는 기본적인 사회인프라가 부족하니 짓기만 하면 다 수요가 생겨나고 성장 잠재력 확충에도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웬만한 사회기반시설은 대부분 마련돼 있습니다. 이런 콘크리트 사업에 투자해봤자, 성장 잠재력이 얼마나 확충되겠습니까? 사람들이 이용하지도 않는 공항, 도로, 관광지를 만들어놓는다고 그게 경제를 활성화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당장 주변에 사시는 곳부터 한 번 확인해보세요. 제가 서울시에 재직하면서 느꼈지만, 도서관 짓는데 100억원 이상이 들어가는데 정작 매년 도서 구입비 예산은 1억원 남짓합니다. 그러니 도서관에 가도 제대로 볼 수 있는 책이 없지요. 마찬가지로 문예회관이나 공연장이라며 수백억원을 들이는데 정작 짓고 나면 질 낮은 프로그램밖에 안 돌아갑니다.


제가 사는 일산 킨텍스나 종합운동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확인은 안 해봤지만, 두 곳 모두 짓는데 수백억원에서 1000억원대는 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일산 킨텍스는 일년 중 제대로 행사가 열리는 날이 아마 10일 안쪽일 겁니다. 그렇게 커다란 건물을 지어놓고는 안에서 뭐하는지 아십니까? 겨울에 인공 눈썰매장 한 켠에서 운용하고, 여름에 간이 물놀이장을 만들어 운영합니다.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 기존에 있는 킨텍스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지금 제2킨텍스를 짓는다고 난리입니다. 종합운동장도 마찬가지입니다. 2부 리그팀이 경기하는 게 일년에 10여차례에 불과한데, 그 외에는 그 큰 운동장이 텅 비어있습니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도대체 시민들에게 거의 아무런 혜택도 돌아오지 않고, 경제에 도움도 되지 않는 이런 막대한 개발사업을 누구를 위해 하는 겁니까?


그럼 돈들이 남아돌아서, 다른 데는 쓸 데가 없어서 이런데 쓰고 있을까요? 몇 년 간 아이들을 키우던 제 처가 얼마 전부터 사회복지사 일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저소득층 노인들을 위한 복지 프로그램을 맡았는데, 한국의 열악한 복지 현실에 마음이 찢어질 정도랍니다. 장애 때문에 생활도우미가 절실히 필요하지만, 도움을 받지 못해 변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노인, 가만 있던 집값이 재개발 붐에 4000만원에서 8000만원으로 올라 자활대상자 지원에서 제외된 노인, 한 달 생활비 10만원 정도로 버티며 매일 끼니를 라면으로 떼우는 사람 등등. 아내가 담당하는 케이스만 220가구. 그런데 아내와 동료 사회복지사 한 명의 급료를 포함해 배정된 1년 예산은 겨우 1억5000만원이랍니다. 아내는 예산이 1,2억만 더 있어도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겠다며 안타까워합니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거의 아무런 효과도 없는 일들에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전체로 매년 수십조원씩 쓰면서 당장 기초적인 사회복지 체계도 제대로 구축을 못하고 있다니요. 그런데 아직도 정부 관료와 정치권은 이런 개발사업 만드는 데 혈안이 돼 있습니다. 왜냐? 나중에야 어떻게 되더라도 뭘 만들고 짓는다 하면 사람들이 혹하니까요. 정치권은 표 얻을 수 있고, 뒷돈 받을 수 있으니 좋고, 관료들은 눈에 안 보이는 복지 프로그램 돌리느니 생색나는 실적 만들어서 좋고, 건설업체들은 사업으로 돈 벌어서 좋습니다. 관변 학자나 연구소들은 용역 프로젝트 많아져서 좋고, 언론들은 건설업체들 광고 물량 많아져서 좋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개발 옹호세력들을 저는 ‘개발 5적’이라고 부릅니다. 일본의 토건족, 건설족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일본도 버블이 붕괴할 때 토건족의 압력으로 중앙 및 지방 정부가 경기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대규모 개발 사업을 벌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필요도 없는 댐이 지어지고 노루와 토끼만 다니는 도로도 숱하게 생겼습니다. 많은 리조트와 골프장은 버려지고 도산했고요. 이런 개발사업에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 재정 고갈을 부추겼습니다. 이미 한국에서도 그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아직도 ‘개발만이 살길’인 것처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이런 판에 부유층을 위해 막대한 감세안까지 동시에 진행하고 있으니 재정건전성에 대해 한국 정부는 최소한의 고민은 하고 있을까요?


이제 개발경제 시대 때의 경제 운용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가계 자산의 80% 이상이 부동산에 몰려 있는 경제는 지속할 수 없습니다. 비용 대비 효과나 수요를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저지르는 개발사업으로는 선진경제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많은 이들이 첨단기술경제 시대이고, 지식정보화 시대, 창조경제 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면 국가 전체의 자원 배분이 이런 영역으로 배분되도록 해야 합니다. 첨단 기술을 고안하고 지식과 정보를 창출하며 창조성을 발휘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사람에게 투자해야 합니다. 한 국가경제의 자원은 유한하기에 제한된 자원 안에서 최적의 생산성을 낼 수 있는 자원 배분을 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사람에게 투자해 고부가가치 서비스를 창출하고, 첨단기술을 육성합니다. 한국 같은 주입식 교육이 아닌, 창조적 교육 프로그램으로 지식과 정보를 생산 가공하고,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인재를 키워냅니다.


필자가 유학생활을 했던 미국 보스턴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보스턴에 대규모 공장이 있는 것도, 고층 아파트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100년 이상 된 주택에서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웬만한 도로는 누더기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보스턴이 못 사는 동네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보스턴의 평균 가구 소득은 미국 평균의 약 2배 정도입니다. 소득 수준으로는 미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부자 도시입니다. 싱가폴이 2000년대 초반 일시적인 불경기로 휘청거릴 때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았던 도시도 바로 보스턴입니다. 보스턴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은 싱가폴 경제는 이후 생명공학기술과 의료산업 등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해서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고도성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보스턴에 뭐가 있길래 행정구역상으로 60여만명, 광역 보스턴(Greater Boston)으로 따져도 340만 정도에 불과한 도시가 그렇게 두각을 나타낼까요?


보스턴에는 인재가 있습니다. 하버드대학과 MIT, 보스턴대학(BU), 보스턴칼리지(BC),터프츠 대학 등을 필두로 100여개의 각종 대학들에서 매년 엄청난 인재가 쏟아져 나옵니다. 많은 인재들이 뉴욕이나 워싱턴으로 진출하기도 하지만, 보스턴에 남아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합니다. 하버드 의대 협력병원인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을 중심으로 의료산업이 발달해 있고, 관련 분야에 쏟아져 나오는 인재들을 중심으로 생명공학과 제약 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합니다. MIT를 중심으로 한 각종 IT산업과 로봇공학도 예외가 아닙니다. 인재들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기업들이 미국 전역에서 이전해옵니다. 또한 인재들은 자신들의 벤처기업을 만들어 미래의 빌게이츠를 꿈꿉니다. 베인 앤 컴퍼니나 보스턴 컨설팅그룹 등 세계 유수의 컨설팅펌들도 보스턴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역시 보스턴에서 배출된 우수한 인재들이 이들 회사의 토대가 됐습니다.


보스턴 필하모닉과 보스턴 발레단처럼 젊은 예술혼과 창조성이 살아 숨쉬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인구 60만의 도시에 공립도서관만 36개나 됩니다. 인구 1000만의 도시 서울에 ‘독서실 같은 도서관’이 아닌, 진짜 공립도서관이 30개도 채 안 되는 것과 너무나 비교됩니다. 이런 보스턴 경제의 활력이 모두 사람과 교육, 문화에서 나왔습니다. 제대로 된 선진경제가 가는 길이 바로 이런 방향입니다. 한국 경제가 미래를 기약하고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도 가야 하는 방향입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가야 하는 길입니다.


결국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자식 세대가 살 수 있는, 한국 경제가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새로운 게임 규칙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첫 걸음은 무턱대고 내지르는 토건국가적 개발사업 남발을 자제하는 것입니다. 충분히 타당성이 검증되지 않은 각종 건설토목사업에 돈을 쏟아 붓는 과거 일본과 같은 토건국가적 행태를 멈춰야 합니다.


대신 모두가 저렴한 비용으로 누릴 수 있는 질 좋은 교육을 만들어야 합니다. 초중고 과정에서는 살인적인 입시경쟁에서 벗어나 창의성을 강화하는 교육을 만들고, 오히려 ‘경쟁의 무풍지대’인 대학이 경쟁하도록 해야 합니다. 재벌 기업들의 독과점적 이익을 보장해주는 구조 대신 국내시장에서도 국제무대에서와 마찬가지로 치열한 경쟁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대신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몸과 마음을 키울 수 있는 더 많은 도서관을, 더 많은 문화공연장을, 더 많은 체육시설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소득층과 노후세대를 위한 더 많은 복지 혜택을 체계적으로 마련해가야 합니다. 제대로 된 공공건설사업 발주 시스템을 만들면 이를 위한 예산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이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주택 및 부동산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선진국 대비 5%도 안 되는 공공주택 재고를 20~30% 수준까지 높여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까지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동산 보유세 강화 등 자산 거품을 만들지 않는 부동산 세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후분양제 확대와 공공부문의 주택 원가 공개 등 소비자 중심의 주택 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콘크리트가 아닌 사람에게 투자하는 경제에 희망이 있습니다. 땅과 집이 아닌,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을 제대로 키우는 경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자식세대 홀로, 또는 부모세대 홀로 만들 수 없습니다.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가 합심해서 힘과 지혜를 모아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최근 제가 출간한 책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이 글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에도 띄웠습니다. 좀더 깊이 있는 정보와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포럼을 방문해주세요. 이 글은 연구소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10. 12. 08:36


일반인들은 잘 못 느끼지만 주의 깊게 관찰해보면 경제 현상도 일정한 자연 법칙을 따른다. 달도 차면 기울 듯이 거품도 너무 부풀면 꺼지기 마련이다. 과거 일본이 그랬고, 지금의 미국도 그렇다. 시장에서 투기적 요소로 버블이 극한에 이르면 그 버블이 붕괴할 수밖에 없는 시장압력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런 시장압력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금리 급등과 부동산 시장의 투자수익률 저하를 예로 들어보겠다.

 

우선 금리부터 보자. 한국의 집값 상승에는 은행과 제2금융권의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 펌프질도 한 몫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가계의 신용 관리는 등한시하면서 주택을 담보로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대출 장사를 한 셈이다. 부동산 투기를 부추겨 은행들은 매년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고,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각 가정이 부동산 거품에 취해 빚더미에 올라서는데도 은행들은 희희낙락했다.

 

이렇게 은행의 무분별한 대출 남발로 가계 빚은 천문학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가계 부채 총액은 2001년말 342조원에서 2008년 6월말에는 660조원으로 거의 320조원 늘었다. 매년 40조~50조원 가까이 불어난 셈인데 증가율(1999~2005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스페인, 호주에 이어 3번째로 높다. 부동산 담보대출만 해도 307조원에 이른다. 중소기업의 위장 대출까지 포함하면 400조원을 훌쩍 넘을 것이다.

 

그런데 은행권의 펌프질이 한계에 이르고 있다. 부동산 담보 대출이 급증한 2001년부터 은행은 계속 자금 부족을 겪고 있다. 특히 2003년부터는 은행권의 총대출이 총예금을 지속적으로 초과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2007년 한국 예금은행의 총대출액은 777조원이었고, 총 예금액은 580조원에 그치고 있다. 197조원의 과잉 대출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과다 대출로 자금 부족난을 겪었던 1980년대말의 일본과 너무나 닮은꼴이다. 일본의 과다대출은 부동산 버블 붕괴를 통해 해소됐다.

 

이 같은 상황은 주택 대출 금리 상승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출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은행채와 CD 발행, 단기외화차입 등을 통한 자금 조달 비용이 계속 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신용공황이 나타날 정도로 극심한 경제위기가 발생하면서 국내은행의 외화차입은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내 은행들도 신규 대출은 고사하고 기존 대출마저 회수할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설사 신규 대출을 한다고 해도 금융기관의 자금 조달 비용은 한층 더 높아지게 돼 금리는 계속 더 오를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8월에 0.25%밖에 올리지 않았는데도, 시중 금리가 최고 1%까지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9일 기준금리를 0.25% 인하했지만 시중은행들이 금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런 사정 때문이다. 은행의 자금 사정 때문에 이미 정책금리와 시중금리가 따로 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린다고 해서 시중금리가 향후 내려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물론 기준금리 인하는 시중금리가 떨어질 수 있는 여력을 주지만, 시중금리 상승 압력을 압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또 일부에서는 대출 규제를 풀면 바로 부동산 거래가 활성화된다고 주장하는데 어불성설이다.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는 금융기관들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과거처럼 부동산 대출을 할 것 같은가? 이게 바로 금리 측면에서 버블이 붕괴할 수밖에 없는 시장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부동산 시장의 투자 수익률 관점에서 접근해보자. 집값은 수급상황에도 영향을 받지만 수급상황에 따라서만 결정되지는 않는다. 특히 2002년 이후 투기적인 상황에서 집값은 오히려 투자 또는 투기적 요소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투자(투기)시 판단의 근거가 되는 기대 수익률을 따져 봐도 앞으로 집값 상승은 어렵다. 부동산 버블의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부동산 값은 초기에 가파르게 오르다가 갈수록 상승률이 둔화된다. 물론 주가와 마찬가지로 중간에 일시적으로는 집값이 주춤하거나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 가파르게 오르던 부동산 값이 꼭지점에 가까워지면 오름세가 둔화된다. 단순화해 고교 수학에 나오는 2차함수의 포물선을 상상하면 쉽겠다.

 

왜 그럴까? 가상의 예를 들어보자. 시세 1억원인 집이 1년 만에 2억원이 됐다면 연간 투자수익률은 100%다. 그런데 시세 10억인 집을 사 마찬가지로 1년에 1억원이 올랐다고 해보자. 이 경우 투자수익률은 10%에 불과하다. 두 경우 모두 1년 만에 1억원을 벌었지만, 투자수익률에서는 10배의 차이가 생긴다. 주택 거품이 생기는 초기 단계에서 집값이 급상승할 때는 웬만하면 세금과 은행 대출 이자를 제하고도 충분히 남는 장사다. 하지만 주택 거품이 정점에 이르러 투자수익률이 떨어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위에서 후자의 경우 투자수익률이 10%라고 할 때 실질 투자수익률은 그보다 훨씬 낮다. 물가 상승분에다 각종 세금 등을 생각하면 실질 투자 수익륙은 제로에 가까워진다. 집을 새로 사는 경우라면 여기에 취등록세와 중개 수수료까지 최소 수백~수천만원 정도는 더 보태야 한다. 여기에다 빚을 지고 있다면 사실상 마이너스 투자수익률을 기록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명목상 10% 투자수익률을 기록한다 해도 실제로는 돈을 까먹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집값이 오르기는커녕 계속 횡보하거나 조금씩이라도 하락한다면 사정은 또 달라진다. 소위 ‘버블 세븐’을 비롯, 수도권 대부분 지역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주택 소유자들에게는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투자 목적으로 빚을 잔뜩 내 집을 산 사람들에게는 거의 재앙에 가까운 수준이다. 물가는 오르는데 집값은 내리고 매년 수천만원의 세금과 은행 이자까지 물어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이런 상황이 1~2년 이상 지속된다면 웬만한 현금 부자가 아닌 한 버티기 어렵다. 이런 식으로 투자 수익률 관점에서도 버블이 정점을 지나면 붕괴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많은 이들의 착각과는 달리 2000년대 집값 폭등은 국내에만 나타난 게 아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 및 브릭스(BRICS)국가 등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동시에 발생했다. 이렇게 세계 각국에 주택 투기 버블이 공통적으로 형성된 이유는 몇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라는 쌍둥이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달러 유동성의 과잉공급, 실물경제 자산을 담보로 유동화하는 금융경제화 현상, 9.11테러 이후 경기 침체 극복을 위한 전세계적 저금리 기조, 엔캐리 트레이드로 불리는 일본발 저금리 자금의 공급 등이 공통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을 시발로 해서 거의 대부분 국가의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있다. 글로벌 경제에 편입돼 있는 한국이라고 예외일까?

 

실질 주택가격의 곡선 그래프로 보더라도 이미 집값은 80년대 후반~90년대초의 상승기/91~98년의 하강기/99~2007년의 상승기를 거쳐 다시 올해부터 대세하락기로 접어들었다. 외환위기 직후의 V자형 반등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이 같은 주택 가격의 장기 파동을 모르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국내 집값이 상승 국면에 접어들 시기였는데, 예상치 못했던 변수로 단기간 급락했다. 따라서 이후의 빠른 집값 회복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집값 하락은 그때처럼 일시에 끝나지 않는다. 모든 국내외 거시경제환경과 각종 지표들이 상당 기간 동안의 거품 붕괴를 예고하고 있다. 이미 집값은 변곡점을 지나 대세하락기에 접어들었다. 실제로 최근 들어 집값 거품의 붕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집값의 기준인 서울 강남 등 소위 ‘버블 세븐’ 지역의 중대형 아파트 가격이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거래는 회복될 줄 모르고 하락의 가속도만 높이고 있다. 전국적으로 엄청난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다. 그동안 부동산 거품기의 ‘치어 리더’ 역할을 했던 소위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들은 숲을 보는 사람들이 아니다. 경제 변동성이 커진 시대에 과거처럼 그들의 말을 믿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이다.

 

제가 최근 출간한 책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이 글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에도 띄웠습니다. 좀더 깊이 있는 정보와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포럼을 방문해주세요. 이 글은 연구소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10. 10. 15:19



제가 출간한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의 책 표지사진입니다



고심 끝에 제가 쓴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의 머리말을 공개합니다. 이 머리말에는 많은 분들이 알아야 할 여러가지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정은 필요하다면 나중에 말씀드리겠지만, 이 머리말이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 독자 여러분께 전달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읽고 제 책을 성원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머리말-거품 붕괴의 시대가 온다

  

잔치는 끝났다. 거품의 시대는 가고 붕괴의 시대가 온다. 나라 전체가 아파트 거품에 취해 살던 시대는 저물어간다. 이제 빚잔치를 해야 한다. 가뜩이나 힘겨운 한국 경제에 엄동설한이 다가온다.

탈고를 앞두고 책의 머리말을 쓰는 이 순간 매우 착잡하다. 나라 장래가 걱정돼서다. 앞으로 다가올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암담하기까지 하다. 필자는 3년 전 공저한 ‘대한민국은 부동산공화국이다?’라는 책에서 이미 경고했다. 집값 거품에 취해 사는 나라는 장래가 없으며, 집값 거품을 빼고 정상적인 경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비슷한 취지로 상당수 전문가들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별 변화가 없었다. 거품은 그때로부터 다시 30~40%이상 부풀어 올랐다.

외환위기 이후 10여년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한국경제와 세계경제는 상전벽해(桑田碧海)처럼 바뀌었다. 한국경제는 자본집약적 산업구조에서 첨단기술 위주의 산업구조로 탈바꿈했다. 전세계는 지식정보화의 시대, 창조경제의 시대로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급변한 국내외 경제 패러다임에 걸맞은 경기 규칙은 마련되지 않았다. 모두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공정한 경기 규칙을 마련하기보다는 승자만이 더욱 많은 것을 가져가는 ‘승자 독식 사회’를 만들었다. 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건전한 시장경제가 아니라, 재벌 그룹만이 대접받는 ‘엽기 자본주의’를 만들었다. 재벌에게 온갖 R&D 자금을 몰아주고, 시장 경쟁을 헤치는 독과점 상황을 방조하고, 불법과 비리를 저질러도 묵인하고 사면했다. 공공에서는 매년 50~60조원 이상의 돈을 풀어 개발사업을 벌이고, 민간에서는 집값 거품을 띄워 재벌 건설사들을 배 불렸다. 이렇게 외환위기 10년은 가진자들만이 더욱 많은 것을 향유하는 10년이었다.

지난 10년은 정부와 가계의 빚으로 거품을 만들어 성장한 시대였다. 외환위기 직후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투입해 상위 재벌 기업들을 살리고, 방만한 공공기관들을 먹여 살렸다. 필요한 작업이었지만, 약삭빠른 이들이 권력자들과 결탁해 ‘공돈’을 노략질하는, 엄청난 도덕적 해이가 판을 친 시기이기도 했다. 이후 미국의 인터넷 붐과 신경제 구호에 편승해 IT버블을 띄웠다. 대부분이 사기였다. 99년 온갖 그럴싸한 명목으로 포장하며 신화를 만들어냈던 그 많던 벤처기업들 가운데 남아 있는 기업이 얼마나 되는가? 수많은 개미 투자자들이 ‘내일은 나도 부자’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객장으로 달려갔지만, 많은 수가 깡통을 찼다. 당시 ‘바이 코리아(Buy Korea)'를 외치며 주식투자 붐을 주도했던 현대증권 이익치 전 사장은 이후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IT주가 버블로 99년 9%대의 성장률을 기록하자 ‘외환위기를 1년만에 극복했다’며 샴페인을 터뜨렸다. 하지만 거품이 꺼지면서 2000년 성장률은 다시 곤두박질쳤다. ‘IT버블’은 그나마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인터넷 기업들도 배출했고, 하드웨어측면에서나마 한국을 ‘IT강국’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이후의 이야기는 더욱 우울하다.

IT버블이 싸늘하게 식자, 정부는 다른 두 개의 거품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하나는 카드채 거품이요, 다른 하나는 집값 거품이었다. 먼저 카드채 거품부터 이야기해보자. 2001~2002년 마구잡이 신용카드 남발로 만들어낸 반짝 소비 거품으로 한국 경제는 2002년 다시 7%대의 고성장을 달성했다. 신용카드로 몇 천만원씩 빌려 쓸 때는 좋았다. 하지만 카드채를 다른 카드채로 돌려막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그 한계가 다하자 2003년부터 카드채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다. 한국 경제는 다시 침체에 빠졌다. 많은 가계가 빚 청산에 시달렸다. 빚 청산 여력이 없는 가계와 개인들은 신용불량자가 됐다. 주로 저소득계층의 빚으로 만들어진 카드채 버블은 수백만의 신용불량자를 양산했다. 숱한 자살자도 생겨났다. 카드채 버블이 생기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금융당국은 단기적 성과에 목맨 정부의 압력 때문인지 제때 제동을 걸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금융당국자들 가운데 처벌받은 사람은 전무했다. 부실 카드채로 부도 위기에 처한 재벌 카드사들도 모두 나랏돈을 들여 살려냈다. 자신들의 경영 부실로 파산 위기에 처한 기업을 국민의 돈으로 살려내 엄청난 도덕적 해이를 초래했다. 하지만 정부는 신용불량자들은 못 본 체 했다. 자신들의 정책 실패는 감추고 ‘재무 관리를 제대로 못한 탓’이라며 뻔뻔스럽게 신용불량자들을 나무라기까지 했다. 정부 관료들과 정치권, 재벌 카드사들은 모두 살아남았고, 저소득층 가계만 나락으로 떨어졌다. 어찌됐든 카드채 사태는 2~3년 만에 한국경제에 큰 상처를 남긴 채 아물어들기 시작했다. 수많은 신용불량자들을 양산한 채.

하지만 카드채 거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거품이 자랐다. 부동산 거품이다. 외환위기 이후 집값은 99년부터 급반등했다. 소위 V자 반등이었다. 2000년까지 집값은 원래 외환위기가 없었다면 자연스럽게 이르렀을 정상적인 수준이었다. 하지만 2001년부터 폭등하기 시작한 집값은 투기 광풍을 불러일으켰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강력한 주택경기 부양책과 저금리 기조에 더해 수급 불균형도 초기 집값을 뛰게 하는 요인이었다. 하지만 한 번 뛰기 시작한 집값은 멈추지 않았다. 처음에는 돈 있는 사람들이 자기 소득으로 집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집 사서 돈 벌었다’는 이야기가 돌자, 사람들은 있는 빚, 없는 빚 다 끌어와서 집을 사기 시작했다. ‘설마 더 안 오르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텼던 사람들도 하나 둘 씩 투자(또는 투기) 행렬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집값 거품은 계속 커져갔다. 은행 등 금융기관들은 ‘이제는 소매금융이다’라는 구호아래 펌프질을 해댔다. 가계의 신용 평가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손쉬운 주택 담보 대출로 ‘땅 짚고 헤엄치기’식 장사를 했다. 계속 펌프질을 해대다 대출 자금이 부족해지자 은행채와 CD를 남발하고, 엔 캐리 자금 등 단기 외화까지 끌어와 펌프질을 해댔다.

하지만 많은 부분 집값을 키운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빠진 중앙과 지방의 정치권과 단기 경제 성적표에 치중한 정부 관료들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단기적인 경기 부양에 집착해 부동산 투기를 용이하게 만들었다. 외환위기 이후 개발주의 시대 때 형성된 공급자 위주의 주택시장을 소비자 위주로 전환하는 과제를 방기했다. 오히려 공급자인 건설업체들만 배불리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분양가만 자율화하고 함께 패키지로 추진키로 했던 후분양제 약속은 이행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건설업체들이 공급자 위주의 선분양제 아래 분양가를 마음대로 올려 막대한 폭리를 취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들어 주었다.

집값 안정과 서민 경제 활성화라는 염원을 안고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무능하고 위선적인 정부였다. 말로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외치면서도 건설과 개발 마인드로 무장한 관료들에게 놀아났다. 인수위 때 채택해놓고도, 결국 후분양제를 제대로 시행도 못했고, 조작된 통계에 속아 불과 2,3년 전까지 ‘집값 거품이 없다’고 떠들어댔다. 집값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지속적으로 신도시 개발을 발표하며 투기세력에게 먹잇감을 제공했다. 판교를 중산층까지 살 수 있는, 쾌적하고 질 높은 장기 임대 주택 단지로 만들라는 혜안 있는 전문가의 제안도 걷어찼다. 오히려 판교를 거대한 로또판으로 만들어 서울 강남과 경기 남부의 집값을 치솟게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행정복합도시다, 기업도시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다, 골프장 건설이다, 경제특구다 하며 온갖 개발 사업을 만들어냈다. S프로젝트, J프로젝트 같은 국적불명의 거대한 개발 사업 구상도 쏟아졌다.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은 있었지만 그 명분을 채울 정책 구상과 공간 기획, 소프트웨어는 없었다. 한 마디로 개혁정부가 아닌 개발정부였다. 전국이 투기장으로 변했고, 엄청나게 풀린 보상금 중 일부가 역류해 다시 서울의 집값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마치 일본의 부동산 버블을 만들어낸 ‘일본 열도개조론’의 한국판을 연상케 하는 조치였다. 한 쪽에서는 집값을 잡겠다며 세금을 올리면서도, 다른 한 쪽에서는 신도시와 각종 개발사업으로 투기판을 확대하고 부동산 시장에 돈을 몰리게 했으니 엇박자도 이런 엇박자가 없다. ‘10.29’대책을 발표해 부동산 투기를 한 풀 꺾어놓고도 대책이 제대로 정착되기도 전에 스스로 무력화시켰다. ‘이러다 경착륙한다’는 관료들과 일부 언론의 엄포에 속기도 했겠지만, 자신의 임기 내에 거품이 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탓이다. 결국 2005년 이후 2차 집값 폭등기를 불러오고 말았다. ‘집값만은 잡겠다’고 임기 내내 되풀이하면서도 집값 잡는 방법도 모르고, 집값 거품을 깨트릴 용기도 없었으니 얼마나 무능하고, 얼마나 위선적인가? 오죽하면 맹목적으로 ‘좌파 노무현’을 싫어하는 강남 아줌마들조차 “노무현이 집값 올려준 것 하나는 정말 고맙다”고 비아냥거렸겠는가? 자신을 뽑아준 서민들의 기대를 깡그리 저버린 정부가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의 심판을 안 받을 줄 알았는가?

그런데 현재의 이명박 정부는 더욱 가관이다. 노무현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는 최소한의 의지라도 있었지만, 현 정부는 그런 의지 자체를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아파트를 지어대고,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여 부동산 거품을 더욱 키우는 것이 경제 발전의 시작이자 끝인 줄 아는 정부다.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의 산실인 건설산업의 대표격인 현대건설 사장 출신이니 오죽하겠는가? 한국판 건설족의 우두머리라 할 만하다. 허구한 날 어디다 삽질할 것인지 ‘삽질 경제학’에만 심취해 있는 분이니, 한국 경제의 앞날이 암담하게 느껴질 뿐이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서울시장 시절부터 서울 집값 올리기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다. 필자는 지난 1년 동안 서울시에 있는 동안 그가 집값 상승을 얼마나 부추겼는지 여실히 확인했다. 그는 서울시장 선거 시절부터 물밑에서 당시 이슈가 됐던 강남 5개 재건축 단지의 사업 승인을 약속했다. 물론 겉으로 내세우기는 찜찜했는지 정식 공약으로는 내세우지 않았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시장 취임 불과 몇 달 후부터 ‘강남북 균형발전’을 내세우며 뉴타운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말이 좋아 ‘강남북 균형발전’이지 실제로는 ‘강북 집값도 올려주겠다’는 것이었다. 한 번 정치바람을 타기 시작한 뉴타운 열풍은 거세게 불었다. 그는 은평뉴타운을 시작으로 임기 내 세 차례에 걸쳐 33개의 뉴타운을 지정했다. 말이 33개이지, 서울시 시가지 면적의 약 7.5%로 30여년 서울시 전체 재개발 면적보다 더 넓다. 뉴타운을 계기로 사업대상지와 인근 지역들뿐만 아니라 향후 사업 가능성이 있는 지역들까지 집값이 폭등을 거듭했다. 오죽하면 전직 서울시 간부조차 “지방 땅값은 노무현이 올리고, 서울 땅값은 이명박이 다 올렸다”고 하겠는가?

이명박의 뉴타운 사업은 앞으로도 큰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뉴타운 사업지에 있던 중소형 주택은 모두 헐렸다. 그 자리에는 대부분 중대형의 새 아파트들이 들어선다. 대부분 뉴타운 사업지에는 가난한 세입자들이 70~80%를 차지한다. 중소형 주택이나 연립주택 등에 세 들어 있던 세입자들은 모두 쫓겨난다. 뉴타운 사업으로 인한 철거가 본격화된 지난해부터 서울 동북부와 인접한 경기 북부지역까지 극심한 전월세난이 벌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투기세력이 끼어든 탓도 있지만, 노원, 도봉, 강북 3구의 집값이 2008년 상반기 거세게 상승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뉴타운 사업 대상지역의 대학가 하숙비가 폭등하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쫓겨나는 세입자들조차 “뉴타운하면 우리도 좋아지는 것 아닌가?” 착각하고, 많은 대학생들은 자신들의 하숙비 상승을 초래한 장본인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지난 대선에서 이대통령을 찍었다. 하긴 이런 사실을 언론이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니 어찌 알겠는가 싶기도 하다.

이 대통령의 삽질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대통령 취임 이후 시대착오적인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로 물줄기를 따라 땅값이 폭등하게 만들더니 요즘도 하는 행태가 가관이다. 더 이상 거품을 키워서는 안 된다는 경고는 아랑곳 않고, 거품을 키우는 부양책 일색이다. 우선, 정부가 8월 21일 내놓은 ‘주택공급 기반강화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이하 8.21대책)’은 한 마디로 ‘건설업체 종합 부양책’이었다. 이에 더해 후분양제 무력화, 분양가 상한제 무력화, 미분양 물량 해소대책, 재건축 규제 완화, 전매제한 기간 단축, 추경 편성을 통한 유동성 공급 등 부양책은 모두 열거하기도 힘들다. 더구나 종부세 완화, 양도세 완화, 재산세 경감 등 부동산 부자들을 위한 세금 선물도 패키지로 준비하고 있다. 집 없는 서민이야 어찌 되든 부동산 부자들의 집값 거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물불을 안 가리는 식이니 얼마나 뻔뻔하고 파렴치한 정부인가? 하긴 ‘강부자 내각’으로 이뤄진 정부에 뭘 기대한단 말인가?

현 정부는 지금의 부동산 경기 침체가 전적으로 노무현 정부 때 도입한 각종 규제책 때문이라고 보는 것 같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때 정책을 모두 뒤집기만 하면 부동산 시장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보는 착각에 사로잡힌 듯하다. 이들은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기 전 집값은 높은 상태에서 유지되지만 거래량은 확 주는 ‘부동산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선행하는 것도 모르는 것 같다. 이 정부는 거품을 계속 지탱하거나 키울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모든 버블은 어떤 식으로든 붕괴한다. 그것은 필연에 가깝다. 버블을 더 큰 버블로 막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미 카드채 사태 때 이를 여실히 경험했다. 하지만 역사의 실패에서 배울 만큼 능력 있는 정부가 아니니 어쩌겠는가?

정부만 거품을 키운 것도 아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상당수 정치권 인사들이 집값 거품 키우기에 뛰어들었다. 예를 들어,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뉴타운 사업을 추진할 때 소위 ‘뉴타운법’을 여야가 경쟁적으로 입법화하는데 열을 올렸다. 서민입법과 구조적 개혁에는 도통 무관심한 여야 의원들이 그렇게 초당적으로 합심해 만든 법은 입법사상 유례가 드물 것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원들이다. 한나라당이야 못 사는 지역을 중산층 위주의 아파트촌으로 바꾸면 자신들 선거에 유리하니 ‘뉴타운 맨더링’(선거구를 기존 정치인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획정하는 ‘게리맨더링’에 대비해 선거구는 그대로 둔 채 뉴타운을 통해 선거구민의 구성을 바꾸는 것을 일컫기 위해 필자가 만든 조어다)이 자신에게 유리하다. 하지만 뉴타운이 뜨니 자신들도 우르르 몰려가 뉴타운 입법에 다리를 걸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제 발등 자기가 찍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니 지난 총선에서 뉴타운 공약을 내세워 당선된 한나라당 ‘뉴타운돌이’들을 비난하는 통합민주당의 모습은 애처롭다기보다 코미디에 가까웠다.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위해 집값을 올린 정치인들에게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과 부동산 기득권 세력을 위해 경제를 파탄내고, 서민들의 주름살을 늘렸다. 사람 귀한 줄은 모르고 전 국민의 반을 비정규직으로 내몰며 내부 식민지처럼 착취한 이들이 집값 거품을 부풀리고 유지하는 데는 앞 다퉈 나섰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마치 아파트 값이 오르면 세계 초일류 국가가 될 것처럼 환상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 그런 환상이 모두 망상이었음을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80년대 말 미국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사며 기세등등했던 일본이 이후 10여년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때가 되면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집값 거품에 취해 온 국민을 투기장으로 몰아넣었던 정치인과 그 세력들을. 그 때가 오면 그들을 정치적으로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

모든 경제 현상도 일정한 자연 법칙을 따른다. 달도 차면 기울 듯이 거품도 너무 부풀면 꺼지기 마련이다. 과거 일본이 그랬고, 지금의 미국도 그렇다. 몇 년 전 카드채 거품도 마찬가지다. 빚으로 쌓아올린 집값 거품이라는 모래성이 얼마나 견고하겠는가? 지금 5억, 10억 가는 집들이 50억, 100억까지 가도록 쌓아올릴 수 있을 것 같은가? 바벨탑도 하늘에 닿지 못했다. 집값 거품을 키우는 데도 한계가 있다. 포커판의 판돈도 참여자의 밑천이 바닥나면 더 키울 수 없듯이 말이다. 2008년 상반기 이후 집값 거품의 붕괴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집값의 기준인 서울 강남의 중대형 아파트 가격이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거래는 회복될 줄 모르고 하락의 가속도만 높이고 있다. 전국적으로 엄청난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다. 전세계적인 동조화 현상을 보였던 세계 각국의 집값도 미국을 필두로, 영국, 스페인, 아일랜드, 중국 등 곳곳에서 빠른 속도로 꺼지고 있다. 하지만 집값 하락의 압력은 점증하고 있다. 금리는 뛰고, 물가는 오르는 가운데 경기 하강세로 실질소득은 줄어들고 있다. 은행의 대출여력은 고갈됐고, 거액 가계 대출자들의 만기는 속속 돌아오고 있다. 게다가 몇 년 전 추진됐던 수도권 공급 물량들의 입주 시점이 가까워오면서 ‘물량 쇼크’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외에도 집값 하락을 초래할 요인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집값 올리기’의 사명을 띠고 탄생한 ‘강부자 정권’이라고 해도 버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집값 버블 붕괴는 단시일 안에 끝나지 않는다. 많은 엉터리 전문가들이 ‘외환위기 학습효과’ 운운하며 집값이 떨어져도 단시일 안에 반등할 것처럼 떠들어댄다. 과연 그럴까? 투기 부추기기 전문가인 이들이 부동산 시장 상황을 둘러싼 국내외 거시 경제의 구조와 흐름을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턱도 없는 소리다. 집값 거품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지금 한국의 경제 상황은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취약하다. 카드채 사태로 저소득층 수백만명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했고, 이후 2~3년 동안 한국경제가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2003년 경제성장률이 3%까지 떨어진 것도 카드채 버블 붕괴 충격 때문이었다. 부동산 버블 붕괴의 충격은 카드채 버블보다 몇 배나 더 큰 충격을 한국 경제에 가할 공산이 크다. 카드채 버블은 주로 저소득층의 문제였지만, 부동산 버블에는 중상류층까지 대거 가담했다. 버블이 꺼질 때 과다한 빚을 졌던 상당수 중산층이 몰락할 것이다. 각 가계가 빚을 청산하고 정상적인 경제 여력을 회복하기까지 족히 4~5년간은 걸릴 가능성이 높다. 이런 가운데, 막대한 물량의 주택 공급이 2010년대 이후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에서 쏟아질 것이다. 2013년이면 주택 수요층의 중핵을 이루는 35~55세 연령대가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이 시작된다. 더구나 이후 주택 수요층에 진입할 ‘88만원세대’는 은퇴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주택 매물을 받아줄 경제력이 없다. 저출산 고령화의 충격이 2015년 무렵부터 현실화되기 시작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집값 거품 붕괴는 집값 급락 이후 장기간에 걸쳐 침체를 면치 못하는 L자형 장기 대폭락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경우에 따라서는 장기간 일본형 침체 현상을 보일지도 모른다.

이 같은 전망이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부동산 불패 신화’가 붕괴한다는 것이다. 이제 부동산을 떠나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떠나야 한다. 부동산에 대한 시각을 교정해야 한다. 부동산은 ‘대박’이 아니라 ‘쪽박’이며, 돈덩이가 아니라 빚덩이로 바뀐다. 버블 붕괴가 아닌 ‘조정기’라는 사기꾼들에게 속는 사람은 ‘피박’을 쓰게 될 것이다. 일본에서도 늦게까지 부동산을 붙들고 있었던 사람들의 피해가 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 한동안은 일반인들이 부동산으로 돈 번다는 생각은 가능하면 잊어야 한다. 부동산을 단기 투자상품이 아닌 삶을 영위하는 공간으로 보는 시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른바 ‘사는 것’에서 ‘사는 곳’으로 바꿔야 한다. 젊은 사람들일수록 더욱 그렇다. 이제 부동산에 투자할 돈이 있으면 자신에게 투자해야 한다. 굳이 둘 가운데 선택해야 한다면, 매월 빚에 쪼들려 사는 ‘집 가진 빈민’으로 살기보다 자기 계발에 투자하며 삶의 여유를 즐기는 ‘집 없는 부자’로 사는 게 차라리 낫다.

그런데도 이 같은 변화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부동산 버블 붕괴의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는데도 눈을 질끈 감고 ‘이명박 천하장사’의 괴력을 믿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이 대통령을 찍은 사람들의 신뢰는 대단하다. 현 정부가 자신들의 집값을 반드시 다시 올려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가히 종교적 신념에 가깝다. 하지만 꿈 깨시라. 꿈 안 깨시면 당신의 삶이 위험해진다.

그런데 이런 미몽 상태에 빠져 계시는 분들에게 수면제를 더 먹이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라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상당수는 사기꾼에 가깝다. 만나서 이야기해면 경제적 지식과 이해 수준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숲 속에서 땅바닥만 보고 다니는 사람들이 숲을 알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들은 집값 대세 상승기에 편승해 투기 심리를 부추기며 고수인 양 행세했다. 굳이 그들이 고수라고 불린다면 ‘투기 고수’일 뿐이다. 하지만 경제 흐름은 바뀌었고, 집값은 거대한 변곡점에 이르렀다. 그들이 변곡점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마라. 그리고 그런 사기꾼들에게 속지 마라. 사석에서는 버젓이 “우리가 집값 떨어진다는 얘기를 어떻게 합니까?”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다. 투자자에게는 “지금은 조정기다. 지금 사놓으면 오른다”라고 얘기하면서 자신의 강남 집은 팔지 못해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이다. 언론에는 자신만만하게 “버블 붕괴는 없다. 있다고 해도 조금 긴 조정기만 있다”고 떠들면서, 필자에게는 “버블이 붕괴할 수도 있을까요?”라고 묻는 엉터리들이다. 그런데 이런 엉터리중의 한 명을 전문가랍시고 청와대 인수위에까지 끌어들였으니 현 정부의 수준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언론도 너무 믿지 마라. 특히 사주가 부동산을 많이 가진 신문들일수록 믿지 마라. 한국의 신문들이 객관적이고 공정하지 않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문제는 특히 더 심하다. 일부 신문은 부동산 재벌들인 사주의 이해관계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광고 매출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부동산 광고를 매개로 건설업체들의 영향도 받는다. 신문사들이 직접 주택 사업에 참여한 경우도 적지 않다. 부동산 문제에 관한 한 신문들은 매우 강력한 이해관계자들이다. 오죽하면 필자가 서울시에 있는 동안 상업용지 분양을 위해 필자에까지 관계자가 로비를 하겠는가? 어째서 기자들로 하여금 기사는 안 쓰고 상업용지 분양을 따내는데 필요한 정보를 ‘취재’하게 하는가? 도대체 이들이 제대로 된 언론이라고 할 수 있는가? 기자들의 전문성도 한심한 수준이다. 부동산을 몇 년 동안 담당해도 주택산업의 구조도 모르고, 부동산시장을 둘러싼 거시경제 흐름을 모르는 기자들도 부지기수다. 그들은 가격이 오르고 내리는 것을 전하는 ‘업 앤 다운(up and down) 기사'밖에 쓸 줄 모른다. 그들이 접하는 취재원이 건설업체 관계자와 그들을 옹호하는 업계 연구원, 위에 언급한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들 정도이니 그 시각이나 수준이 빤하지 않겠는가? 일부 신문의 몇몇 기자들을 빼고는 신뢰할만한 수준의 기사를 쓰는 사람들이 드물다.

이 책이 이런 엉터리 정보들을 걸러내는 면역주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솔직히 그런 마음으로 썼다. 필자가 재테크 전문가가 아닌데도, 집을 살지 말지를 물어오는 사람들이 지난해 말부터 부쩍 늘었다. 아마 집값이 불안하게 느껴져서 그랬을 것이다. 필자 나름대로 분석한 내용을 전해줬는데, 지금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하지만 집값 거품에 편승해 막판 투자를 감행하는 사람들도 소수지만 있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상투를 잡는 것으로 보였다. 대체로 끝까지 버티다 마지막에 결심한 사람들인데 아마도 거품이 꺼지면 가장 큰 피해를 볼 사람들일 것이다. 거품이 꺼질 때 그들이 볼 피해를 생각하니 아찔했다. 지난해 연말 점심식사 도중 대학 동기인 웰시안닷컴 심영철 대표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책을 써보자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심 대표는 베스트셀러 ‘은행을 떠나라’의 저자로 신뢰받는 재무컨설턴트이기도 하다. 우리는 의기투합했다. 구체적인 분석과 전망을 토대로 현재 부동산 시장 상황을 더 많은 독자들에게 알리고 올바른 대비를 하게 하자는 뜻이었다. 필자가 집값 버블 붕괴에 대한 분석과 전망 등을 쓰고 심대표가 변화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재무 관리를 할 것인지를 쓰기로 했다. 그러한 구상이 고스란히 이 책의 구성으로 이어졌다. 이 책의 1부에서는 현재의 집값 버블이 왜 붕괴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고 2부에서는 이 같은 집값 버블이 언제, 얼마나, 어떤 형태로 무너질지 버블 붕괴 메커니즘에 대해 전망했다. 3부에서는 이러한 버블 붕괴 시대에 어떻게 피해를 최소화하며 부동산 시장에서 탈출할지에 대해 조언했다. 4부에서는 부동산을 탈출한 사람들이 향후 자신의 가계경제를 효과적으로 꾸릴 수 있는 여러 방안들을 소개했다. 이 책의 1부에서 3부까지는 필자가, 4부는 심대표가 집필했다. 넉넉한 마음의 소유자인 심대표와 이 책을 함께 구상하고 집필하는 과정은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 책이 나올 때까지 수고해준 한경BP 사장님과 직원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늘 이 못난 아들과 사위의 든든한 배경이 돼주시는 양가 부모님께도 고마움과 죄송한 마음을 동시에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 어린 아이들을 돌보느라 고생해준 아내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재능이 참 많지만, 남편 뒷바라지에 많은 것을 희생했던 아내다. 몇 년간의 주부 생활을 끝내고, 다시 사회복지사의 길을 걸어가는 아내에게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2008년 9월  저자 선대인
by 선대인 2008. 10. 6. 13:22

“건설업체들이 벌벌 떨고 있다. 미분양 물량이 쌓이면서 건설업체들은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상위 대형 건설업체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니 건설업체 출신 대통령이 저렇게 돈다발을 갖다 안기려 하는 것 아닌가?”

 

건설업계 사정을 잘 아는 한 서울시 고위관계자가 최근 사석에서 한 말이다. 중견 건설업체인 H건설의 임원 권모씨도 “건설업체들이 자금난으로 난리를 치고 있다”며 “그래서 건설업계가 현 정부에 유동성을 공급해달라고 아우성이고, 정부도 최근 내놓는 정책들을 보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집값 거품 붕괴 현상이 완연해지고 미분양 물량 급증으로 인한 건설업체의 자금난이 심각해지면서 거품 붕괴를 막으려는 정부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부동산 대책인 소위 ‘8·21대책’부터, 9·1 감세안, 9·19 주택 500만 호 주택공급대책, 9·22 종합부동산세제(이하 종부세) 개편안 등이 잇따랐다.

 

발표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자면 △분양가 상한제 무력화 및 사실상의 후분양제 폐지 △최저가낙찰제 확대 적용 연기 △지방 미분양 아파트 환매조건부 매입 △ 수도권 전매 완화 △ 정부 예산 120조 원을 동원한 주택 공급 △뉴타운 및 신도시 추가 지정 △재개발 재건축 사업 촉진 △1가구 1주택 양도세 부담 및 상속세 부담 완화 △부유층 중심의 소득세 완화 △종부세의 유명무실화 △분당신도시 16배 크기의 그린벨트 해제 등이다.

 

이들 대책의 공통점은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건설업계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고가 주택 보유자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건설 및 부동산 경기 부양’과 ‘집값 거품 떠받치기’로 일관한 정책들이다. 더구나 정부가 이들 대책을 내놓는 속도와 규모가 엄청나다는 점이 주목된다. 정부는 ‘한국경제의 펀더멘탈은 괜찮다’고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부리지만, 속으로는 부동산 거품 붕괴에 대해 극심하게 걱정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직접적인 건설 및 부동산 정책이 아니어도 같은 정책 의도를 가진 게 많다. 정부가 향후 5년 간 56조 원을 투입하는 ‘광역경제권 선도 프로젝트’ 사업이 대표적이다. 56조원 사업 가운데 53조원 가량이 이미 포화상태인 항만과 공항, 산업단지, 도로 건설 등에 들어가게 된다. 정부가 새만금개발사업 추진에 속도를 붙이고, 제2 롯데월드 건설을 신속히 허가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정부가 군 내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제2롯데월드 건설 허가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재 상암 DMC초고층 빌딩이나 용산국제업무지구 조성 등 서울과 수도권에서 민간이 추진하는 등 대규모 개발프로젝트는 많다. 하지만 당장 현금을 동원할 수 있는 사업은 많지 않다는 게 관련 업계의 진단이다. 하지만 제2롯데월드는 다르다. 롯데그룹은 현재 상황에서도 비교적 풍부한 현금 동원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 롯데그룹 계열사의 한 부사장은 필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건설경기를 살리려면 당장 돈을 풀 수 있어야 하는데 다른 데서는 지금 같은 신용 경색기에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우리는 수조원의 현금을 바로 동원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숙원사업인 제2롯데월드 건설을 의욕적으로 추진중인 롯데그룹은 정부에도 같은 논리를 내세웠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국내외 거시경제 구조를 볼 때 현 정부의 이 같은 부동산 부양책도 버블 붕괴를 막기 어렵다. 정부가 대출 규제 완화를 제외하고 웬만한 부양책은 다 내놓았지만 부동산시장이 꿈쩍도 않는 게 그 증거다. 정부의 종부세 개편 방침에도 불구하고 버블 세븐의 집값은 올 들어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고, 금융기관이 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경매물건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버블 세븐 지역에서 그동안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가격대가 깨지고 있다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아직 남아 있는 대출 규제가 풀린다 해도 마찬가지다. 이미 구조적으로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은행이 과거처럼 선뜻 대출을 해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높은 집값, 극심한 거래 부진으로 표현되는 ‘부동산 스태그플레이션’ 기간을 지나 버블 붕괴의 초기 단계에 진입했다. 저금리와 달러 유동성 급팽창에 기인했던 전세계적 부동산 버블의 동시 붕괴 현상, 수도권 미분양 물량 급증으로 표현되는 공급 과잉, 투자 수익률의 저하와 투기 심리의 위축,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 시중의 신용 수축과 금리의 지속적 상승, 이미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재개발과 뉴타운 등등 집값 거품 붕괴를 부르는 시장 압력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버블 붕괴를 피하기 어렵다.

 

문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한 정부의 중구난방식 대책이 장기적으로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점이다. 특히 각종 주택 공급 확대책은 2010년대 이후 이미 꺼져 있는 주택시장을 ‘확인사살’할 가능성이 높다. 왜 그런지를 주택 수급 구조 분석과 전망을 통해 살펴보자.

이미 시장에는 공급 과잉임을 나타내는 징후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2008년 9월말 현재 미분양 주택 수는 전국적으로 16만호를 넘었고, 수도권에만 2만3000가구에 이르렀다. 하지만 실제 미분양 물량은 25만여 가구를 훌쩍 넘는다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악성(惡性)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도 4만가구를 넘는다. 더구나 올해 들어 수도권에서 분양한 물량의 25%가량이 모두 미분양되고 있다. 넘쳐나는 중대형 위주의 공급 물량으로 버블 세븐과 수도권 남부축 등에서는 심각한 집이 남아돌고 있다.

문제는 2008년 이후에도 수도권에서 지속적으로 막대한 물량 공급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정부가 2006년 하반기 투기가 다시 극성을 부리자 2기 신도시 개발 계획을 내놓은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2009년 판교신도시 2만7000세대를 필두로, 2010년 위례(송파)신도시(4만6000세대), 광교신도시(3만1000세대), 동탄2신도시(11만 3천세대) 등에서 입주물량이 쏟아진다. 그 외에 검단신도시 6만6000가구, 파주신도시 3만4000가구, 김포신도시 5만9000가구, 양주신도시 5만6000가구 등 모두 10개의 2기 신도시에서 모두 52만 5023가구가 공급된다. 2010년까지 예정된 물량만 해도 30만 가구에 육박한다. 여기에다 ‘8.21’대책으로 인천 검단과 오산 세교에서 4만9000가구가 추가로 공급된다.

 

서울은 어떤가? 우선 뉴타운을 보자. 뉴타운은 사업지 수로는 35개지만 한 사업지역 당 개발면적은 재개발사업지 평균 면적의 약 40~80배에 이른다. 서울시가 73~2007년 사이 추진한 주택재개발 사업 전체 면적의 1.5배에 이른다. 여기에서 공급될 예정인 물량은 모두 32만호. 여기에 더해 준공업지역 내 아파트 공급도 시작된다. 서울시 전체 준공업지역 면적은 27.7㎢로 뉴타운 사업지 전체 면적과 맞먹는다. 이들 준공업지역에서도 2010년대 이후로 상당한 물량이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판에 정부는 9.19대책을 통해 수도권에서 뉴타운 25개를 추가 지정하고 도심에서 180만호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이들 물량이 향후 주택시장에 어떤 여파를 미칠까?

 

주택 공급 물량이 늘더라도 충분한 수요가 있다면 괜찮다. 하지만 향후 이들 주택에 대한 충분한 수요층이 있을까?

 

보통 주택 구입이 왕성한 시기는 35~54세 정도로 잡는다. 그런데 지금까지 부동산 시장을 뒤흔들었던 베이비 붐 세대가 주택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면서 주택수요를 크게 위축시키게 된다. 자녀들을 출가시키고 직장에서 은퇴한 사람들은 더 이상 집을 사지 않거나 기존보다 작은 주택으로 옮겨가는 패턴을 밟는다. 노후 불안이 갈수록 심해지는 추세에서는 은퇴 세대의 주택 수요는 더욱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베이비 붐 세대의 선두 주자인 58년 개띠들이 2013년을 전후해 정년을 맞아 직장에서 은퇴하기 시작한다.

 

반면 베이비 붐 세대의 끝자락에 위치한 74년생이 35세가 되는 2009년 이후로는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다. 출생자 수가 101만(71년)--->87만(80년)--->66만(90년)--->64만(2000년)--->44만(2005년)으로 급격히 줄기 때문이다. 결국 2013년 이후부터는 주택 구입 세대가 양쪽에서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셈이다. 하지만 이는 상당히 보수적인 관점에서 본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정년 시기는 52세 전후로 당겨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실제 베이비붐 세대 인구 감소 여파가 주택시장에 나타나는 것은 2010년경부터라고 볼 수도 있다.

 

더구나 78년 이후 출생한 지금의 20대들은 절대 숫자에서뿐만 아니라 주택 구매력 측면에서도 앞선 베이비 붐 세대들의 빈자리를 결코 채우지 못한다. 이들은 외환위기 이후 ‘고용 없는 성장’시대에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세대다. 동시에 2000년 이후 발생한 부동산 거품에서 철저히 불이익을 받게 된 세대다. 이들의 대부분은 베이비 붐 세대에 비해 경제력이 취약하다. 이들이 기성세대가 빠져나간 주택 시장을 채워주는 것은 어렵다고 봐야 한다.

 

이처럼 정부가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질러대기식 주택 공급 확대책은 한 마디로 향후 주택시장의 수급 구조를 완전히 오판한 데서 나온 것이다. 오히려 2010년대 이후 이미 꺼져 있는 주택시장에 계속 찬물을 끼얹어 주택시장을 장기 침체로 몰고 갈 가능성이 높다.




최근 제가 출간한 책입니다. 자세한 사정은 나중에 필요하다면 말씀드리겠지만 제가 이 책의 머리말에서 쓴 내용이 여러분들에게 계속 전달되기 위해서는 많은 분들의 성원이 필요합니다. 제가 고심끝에 이 책의 머리말 부분을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제 블로그의 '임박한 부동산 파국'란에 들어가서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의 프롤로그를 읽어주십시오. 제가 많은 분들께 꼭 전달하고 싶은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이 글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에도 띄웠습니다. 좀더 깊이 있는 정보와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포럼을 방문해주세요. 이 글은 연구소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10. 6. 11:18
 
 YTN 보도국 뉴스2팀에서 현직 기자로 일하는 김수진기자가 저희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의 '언론개혁'란에 최근 YTN사태에 대한 생생한 소식을보내왔습니다. 최근 YTN 사태를 잘 보여주고 있어서 좀더 폭넓은 독자들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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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달님' 김수진입니다.
 
  저희 'YTN 젊은 사원 모임' 56명이 단식투쟁에 돌입한 지 사흘, YTN 노조가 구본홍 출근 저지에 나선 지는 76일째가 됐습니다.

 저도 어제 아침 9시부터 오늘 아침 9시까지 24시간 단식 농성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첫 날 제 동기와 후배 여기자 두 명이 탈진해서 병원에 갔는데,
저는 단식해도 넘 멀쩡해서 좀 민망합니다 ^^;

 

  (사진 경향신문 펌)

 
  '젊은 사원 모임'이 극단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행동에 나선 것은
그동안 사장 출근 저지에 나선 사원 60여명이 징계와 사법 처리를 당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또 , 행동에 나서주기를 기대했던 몇몇 '중간 지대'의 간부급 선배들에게 실망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말하고 행동했다는 이유로 후배들은 징계와 사법 처리의 칼날 앞에
서 있는데 구씨가 임명한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으면서 '노사 모두 잘못했으니
즉각 대화에 나서라' 라고 말하는 선배들은 비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젊은 사원 모임'이 단식 투쟁에 돌입한 지 24시간 후, 이번에는 95년 이후 입사한 3기 이하 선배 50여명이 저희의 뜻에 함께 해 주셨습니다. 단식 투쟁 사흘째, 오늘은 2기와 2.5기 선배들 80명이 투쟁에 참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조금 전에는 후유증을 우려해 단식을 중단할 것을 조언하던 노조 집행부도
지지를 선언하고 24시간 단식에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단식 투쟁에 참가하는 사람만 2백여 명에 이릅니다.
    
  YTN 정문 앞에 마련한 농성장 앞에서, 선배들이 모이고, 또 모여서 저희들과 함께 해준다는 성명서를 읽어줄 때, 저는 자꾸 눈물이 나는 걸 애써 참았습니다. 비록 뜻은 다른 사람들도 있겠지만,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YTN은 규모는 작지만 그만큼 가족적인 분위기도 강한 회사입니다. 비록 저희 기수들은 경험하지 못했지만 선배들이 외환위기 당시 6개월동안 월급을 받지 못하면서도 회사를 살려냈었기 때문에 동료 의식도 강합니다. 그동안 출근 저지 등 물리적 실력 행사에 대해서는 노조와 생각을 달리 하던 사람들마저도 동료들이 피를 보는 상황만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기에 행동에 나선 것입니다.

 2기부터 10기까지, 기자, 촬영기자, 그래픽, 기술, 앵커까지 기수와 직종을 막론하고 단식하는 사람이 넘치는 정문 앞 농성장은 이제 비좁아 터질 지경입니다. 결의를 보여주려면 무기한 단식을 해야지 24시간 릴레이 단식이 뭐냐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24시간 뉴스는 시청자와의 약속이기에, 최후의 수단인 파업에 들어가기 전에는 그 약속을 지켜야 하겠기에 저희는 단식도 하고 일도 동시에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비록 24시간씩 조를 짜서 돌아가며 하는 단식이기는 하지만 경험이 없는 저에게는 쉽지많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바닥에 앉아 있는 것도 힘들고, 남대문로에서 날리는 매연은 엄청 독하고, 차 소리에 귀는 먹먹하고, 근무시간이 되면 고픈 배를 움켜쥐고 일도 해야 하고... (저희 회사 옆에 하필 통닭집이 두 군데나 있는데 거기서 날아오는 닭튀김 냄새에 너무 괴롭더군요 ^^; )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단식 농성하느라 하룻밤 고아 신세가 됐던 12개월난 제 딸이 저를 반겨줍니다. 한참 밥먹는 연습을 하는 딸이 제게 '엄마 아' 하며 숟가락을 입에 넣어주는데 또 눈물이 났습니다. 구본홍씨는 자기의 개인적 권력욕이 숱한 YTN사원들을 저처럼 나쁜 엄마, 아빠로 만들고 있다는 걸 알까요? 제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라도, 여기서 굴복할 수는 없습니다.

사원 2백 명이 밥을 끊었습니다. 단식으로 보여주는 저희의 외침이 간부 선배들의 양심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죽비소리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사족 : 어제 단식농성하면서 저녁이면 YTN 앞에 모이는 시민 여러분을 처음
봤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대단한 분들이십니다. 저희야 회사 일이니까 이런다지만 아무런 이해관계나 상관도 없는 일에 생업도 바쁘고 힘드실텐데 나와 주시는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



by 선대인 2008. 10. 1. 18:40


일주일간의 소동 끝에 정부의 종부세 완화안에 대해 여당인 한나라당이 원안을 수용하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일부 의원들이 청와대안에 반기를 드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다가, 결국 ‘당론에 따르겠다’고 정리한 것이다. 처음부터 이럴 줄 알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속이 너무 빤히 보인다. 한 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생쑈’를 벌였다고밖에 볼 수 없다.

 

환율 급등과 경상수지적자, 금융권의 신용 경색, 내수 침체로 온 나라가 난리판인데 이게 무슨 엉뚱한 짓인가? 자신들과 자신들의 정치적 지지층들 민원 들어주는 것이 그리 급했나? 국정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만 있어도 이런 추악한 행태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경제 곳곳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있기에 비교적 시급한 현안이라 할  수 없는 종부세 문제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했다는 발언을 듣는 순간 가만있을 수 없었다. 박대표가 "종부세는 좌파 정권의 대표적 악법이고 일반 세제와도 전혀 맞지 않는 법률이기 때문에 고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는 게 없으니 무조건 좌파, 빨갱이 등 이념공세뿐이다. 여당 대표의 인식이 이 정도 수준이니 국가 경제가 불안하지 않을 수 있나?

 

종부세는 보유 자산에 대해 매기는 세금으로 보유세의 일종이다. 이러한 종부세는 시장의 실패를 초래하는 투기를 막는 제동장치 역할을 한다. 주택가격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 단기간에 급등할 때 보유세를 시장가격에 연동하도록 해놓으면 부동산 가격이 뛸수록 세금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시세차익만 갖고 좋아할 수 없게 되니 부동산을 내놓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공급이 늘어나 부동산 가격 안정에 도움이 된다. 또 같은 동네에서 누군가 투기를 통해 집값을 과다하게 올리려 하면 다른 주민들은 보유세 부담이 늘어나게 되므로 투기적 집값 상승에 반대하게 된다. 따라서 종부세는 잘 디자인되면 부동산 투기에 대해 강한 내성을 가지게 된다. 시장 주체들이 스스로 투기를 방지하고 가격을 안정화하게 하는 가격 안정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박 대표의 주장처럼 좌파 정권이 사회주의 평등사상에 젖어 자산가들을 골탕먹이기 위해 만들어낸 악법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부동산 가격이 오를 때 보유 부담을 늘려 가격을 안정시키고, 부동산을 가장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소유케 하는 매우 시장 친화적인 세금이다.

미국의 보유세율도 주별로 큰 편차가 있지만 평균 1.15%가 넘는다. 보유세율이 이보다 더 높은 선진국도 많다. 그런데 우리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필자가 직접 계산해본 바로는 아직 0.3%도 안 된다. 정말 갑작스러운 종부세 시행으로 문제점이 있다면, 앞으로 ‘미세 조정’을 해나가면 된다. 그런데 선진적인 세제 구조를 만들어가지는 못할망정 갓 시행된 법률을 무력화시킨단 말인가? 그것도 시대착오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이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의 종부세 관련 발언도 자신들의 수준을 밑바닥까지 드러내고 있다. 이 대통령은 며칠 전 정세균 통합민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종부세 완화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잘못된 세금체제를 바로 잡자는 취지"라고 했다고 한다. 도대체 이 대통령이 생각하는 잘못된 세금체제는 부동산 부자들에게 과세하면 안 된다는 뜻이란 말인가?

 

진정한 의미에서 잘못된 세금체제를 바로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한국의 재정상태는 결코 건전한 상태라고 할 수 없다. 외환위기 전 50조원이던 국가채무는 2007년 기준으로 300조 원에 육박했다. 또 국가채무 증가 속도도 해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더구나 한국의 경우 연기금 등으로부터 차입한 사회보장기여금 비중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반면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와는 달리 연금 지급을 위한 재정지출 시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지금 정부는 2013~2015년경부터 베이비붐 세대들이 본격적으로 은퇴하는 시기에 대비해 매우 신중한 재정 운용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재정구조의 건전성을 미리 확보하지 못한다면 재정은 급속도로 악화될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실질 생산인구 감소 등에 따른 향후 세입세출 구조 변화에 대한 치밀한 준비 없이 마련한 막무가내식의 감세안을 내놓았다. 이번 종부세 완화안은 그러한 감세안의 최종 마무리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향후 부족해질 수 있는 세수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방침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세원 투명화 및 세원 기반 확대 등에 따른 일시적인 세수 초과 등에 기대 ‘문제 없다’고 하지만, 이는 언제까지나 지속될 효과가 아니다. 일정한 단계에 접어들면 세원 투명화 및 세원 기반 확대는 한계에 이르게 된다. 또한 감세에 따른 경기 활성화로 세수 감소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다양한 실증 연구에 비춰볼 때 정부의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반면 감세에 따른 세수 감소 효과는 향후 세율 조정이 없다면 계속 지속되게 된다. 한 번 내린 세율을 도로 올린다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다. 더구나 한국 경제는 부동산 버블 붕괴 등 향후 수년 내에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지출 수요가 크게 늘게 될 것이다. 감세안 추진에 따라 세수는 줄고, 재정지출 수요는 크게 는다면 국가 재정의 건전성이 심각하게 위협받게 된다. 여기에다 은퇴 세대 증가로 인한 사회보장기여금 지출 수요 및 실질 생산인구 감소로 인한 경기 위축 효과까지 감안할 때 빠른 속도로 재정이 악화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하지만 이번 정부의 감세안에는 불과 몇 년 안에 벌어질 상황에 대한 대비책조차 전혀 없다.

 

또한 급격히 변화한 한국 경제의 구조에 걸맞은 세입세출 구조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도 전혀 없다. 한국은 1970년대 기본 조세체계를 구축한 뒤 근본적인 변화가 없이 땜질식 세목 변경으로 일관해왔다. 이 때문에 새로운 경제구조에 걸맞은 조세체계의 정비는 시급히 추진해야 할 필수 과제다. 재정부도 겉으로는 ‘선진조세체계’를 구축한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겉으로 내세운 정책 목표에 전혀 부합하는 것 같지 않다. 현재 조세체계는 개발경제 시절 노동 및 자본집약적 성장 시대에 구축된 것으로 2000년대 이후 자산 경제 비중이 급격히 커진 상황에 맞는 조세체계라고 할 수 없다. 과거 생산경제 활동의 비중이 클 때에는 법인세나 소득세 등 가계나 기업의 생산 활동에 대한 세금 비중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생산경제 비중이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언제까지 그 같은 체계를 그대로 가져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법인세나 소득세를 깎을 수도 없다. 앞서 말한대로 지속적인 세원을 추가적으로 확보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재정 위기에 노출될 수 있고, 이는 극단적으로는 경제 전반의 침체와 사회보장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경제상황에 걸맞은 새로운 세원을 확보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부동산 등 자산에 대한 과세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특히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등의 보유세는 선진국 수준으로 계속 높여갈 수밖에 없다. 또한 양도세의 경우에도 보유세제가 정착되기 전까지는 집값 상승으로 인한 우발이익을 환수한다는 측면에서 큰 틀은 좀 더 유지할 수밖에 없다. 또한 앞으로 자산임대소득이 크게 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에 따른 과세를 강화해 생산경제의 세수 감소를 보완해야 한다. 현실적으로도, 근로소득에 대해 수백만, 수천만원의 세금을 부과하면서 불로소득이라고 할 수 있는 부동산 가격 상승이나 임대 소득에 대해 훨씬 적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런 세제로는 근로자들의 근로의욕을 꺾어 현 정부가 말하는 경기 활성화도 어렵게 된다. 따라서 정말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선진조세체계를 구축하려 한다면, 이 같은 세원 구조에 대한 조정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정부는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 방향과는 정반대로 치닫고 있다. 오히려 종부세를 사실상 무력화시키고 감세안을 통해 양도세와 상속세 부담을 급격히 완화함으로써 투자자 또는 투기자들의 불로소득을 용인해주고 있다. 이는 결국 사회 전체적으로 근로의욕을 더욱 감퇴시킬 뿐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종부세 등 보유세 강화도 이 같은 전체적인 조세체계의 개혁을 전제로 해서 추진했어야 한다. 물론 일부 기득권 언론의 왜곡과 선동도 있었지만, 부동산 투기 대책의 성격만 부각되다보니 정책 추진 초기부터 논란을 부르고 불필요한 반발을 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정부의 조세정책도 단편적이고 근시안적으로 추진됐다고 할 수 있겠다.

 

또 한국의 경우 국세에서 차지하는 간접세 비중이 높아 직접세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국세청이 발간하는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한국의 직접세 대 간접세 비율은 46.8 대 53.2로 간접세 비중이 더 높다. 그나마도 2000년 40%선이던 직접세 비율을 많이 끌어올린 것이다. 그런데 일본(62.4 대 37.6), 미국 (92.7대 7.3. *미국의 경우 판매세 등이 모두 주세로 잡히므로 연방정부의 국세 비율로만 보는 데는 한계가 있으나, 감세정책의 효과를 보는 측면에서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영국(59.1 대 48.9) 등 상당수 선진국들은 직접세 비중이 더 높다.

 

조세체계에서 간접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으면 그만큼 세금의 역진성이 강화된다. 이건희 회장이든 노숙자든 같은 액수의 세금을 내는 비율이 그만큼 높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휘발유에 붙는 세금은 소비자들이 기름을 넣을 때마다 소득에 상관없이 똑같이 간접세 형태로 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가 지금까지 추진한 종부세, 양도소득세, 종부세, 상속세, 소득세 등이 모두 직접세다. 간접세를 그대로 둔 채 직접세만 집중적으로 깎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직접세 비중이 주는 만큼 간접세의 세수 비중이 더 높아질 것이다.

 

실제로 기획재정부가 25일 발표한 '2009년 국세 세입예산 및 중기 국세 수입전망'에 따르면 대표적인 간접세인 부가가치세의 내년 세입은 48조5000억원이다. 올해 전망치(44조3000억원)보다 4조2000억원, 9.5% 늘어난 수치다. 또 다른 간접세인 증권거래세는 27.6% 증가했다. 간접세 성격의 교육세와 관세의 증가율은 각각 8.5%, 8.1%로 총 국세 증가율 7.6%보다 높다.

 

반면 직접세는 근로소득세와 종합소득세, 양도소득세 등을 합한 소득세가 16.1%로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이는 것 외에 다른 세목들은 소폭 증가에 그치고 있다. 특히 직접세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법인세는 1.5% 늘어나는데 그친다. 내년 국세 증가율 7.6%와 비교하면 법인세는 사실상 줄어드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보유세인 종합부동산세는 31.4%나 감소한다.

이렇게 되면 세금의 역진성이 갈수록 높아져 빈부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그렇지 않아도 세금을 통한 분배개선 효과가 5% 정도에 불과해 OECD국가 평균인 40%에 비해 현저히 낮다. 그런데 이를 개선하지는 못할망정 간접세 비중을 더 높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자신들의 후안무치한 행태가 드러날까봐 “지방세수를 추정하기 어려워 간접세와 직접세 비중을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신들도 내놓고 말하기가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이렇듯 이번 종부세 완화안과 이미 9월 1일 발표된 감세안은 큰 틀에서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세금체계와 반대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 대통령의 발언은 착각이어도 심각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종부세 완화안에 대해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잘못된 징벌적 과세로 1명의 피해자라도 있다면 다소 인기가 없더라도 원칙에 따라 바로잡는 것이 정부 여당의 역할”이라고 했다고 한다. 언뜻 들으면 좋은 말인 것 같다. 하지만 ‘강부자’ 1명의 피해자를 구제하는 데는 그렇게 열심인 서민들 피해를 구제하는 데는 그토록 관심이 없을까? 오히려 현 정부의 종부세 개편안은 수많은 근로소득자들의 사기를 꺾고, 분배의 역진성을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대다수 국민을 괴롭히는 징벌적 과세다. 이 나라에서는 강부자만 국민이고, 서민은 국민도 아니란 말인가?

 

이 글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의 '부동산문제'란에도 띄웠습니다. 좀더 깊이 있는 정보와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방문해주세요. 이 글은 연구소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9. 29. 17:18
 


이명박 정부가 각종 건설경기 부양책과 부동산 세제 개편안을 무더기로 발표하고 있다. 출범 이후 첫 번째 부동산 대책인 소위 ‘8·21대책’부터, 9·1 감세안, 9·19 500만 호 주택공급안, 9·22 종합부동산세제(이하 종부세) 개편안 등이 잇따랐다.


발표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자면 △분양가 상한제 무력화 및 사실상의 후분양제 폐지 △최저가낙찰제 확대 적용 연기 △지방 미분양 아파트 환매조건부 매입 △ 수도권 전매 완화 △ 정부 예산 120조 원을 동원한 주택 공급 △뉴타운 및 신도시 추가 지정 △재건축 사업 촉진 △1가구 1주택 양도세 부담 및 상속세 부담 완화 △부유층 중심의 소득세 완화 △종부세의 유명무실화 등이다.


이들 대책의 공통점은 미분양 물량 증가로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건설업체들에게 유동성을 공급하고, 고가 주택 보유자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건설 및 부동산 경기 부양’과 ‘집값 거품 떠받치기’로 일관한 정책들이다. 이밖에 정부가 향후 5년 간 56조 원을 투입하는 ‘광역경제권 선도 프로젝트’ 사업 또한 도로, 항만, 공항 건설 및 산업단지 조성 등 각종 개발사업이다. 정부가 새만금개발사업 추진에 속도를 붙이고, 제2 롯데월드 건설을 신속히 허가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모든 정책은 건설업계와 부동산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이들 대책을 내놓는 속도와 규모가 엄청나다는 점이 주목된다. 정부는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은 괜찮다’고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부리지만, 속으로는 부동산 거품 붕괴에 대해 극심하게 걱정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대책들을 쓴다고 해서 부동산 거품 붕괴를 막을 수는 없다. 최근의 국내외 거시경제 구조를 보면 부동산 거품 붕괴는 어떤 형태로든 피할 수 없다. 실제로 정부의 각종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은 거의 반응하지 않고 있다. 물론 이들 대책은 부동산 거품이 좀더 지속되도록 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렇다고 이미 커질 대로 커져버린 거품을 없앨 수는 없다.


또 당장 발등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국가의 미래에 필요한 사회적 기반을 근본에서 허물고 있어 염려스럽다. 감세안이 그 대표적 사례다. 외환위기 전 50조원 수준이던 국가채무는 지난해 300조 원에 육박했다. 그런 가운데 2013년경부터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는 등 ‘저출산 고령화’ 충격이 본격화될 것이다. 복지재정 충당금 등 재정 수요는 급증하는데 반해 경제 활력 저하로 세수(稅收) 기반은 줄어든다. 더구나 과거 일본이나 현재 미국에서 보는 것처럼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면 막대한 재정이 들어간다. 그런데도 지금 정부는 세원 투명화로 일시적으로 늘어난 세수를 돌려준다는 명목으로 철저히 부유층을 위한 감세안을 단행했다. 나중에는 어떻게 되든 ‘지지층을 위한 복지’를 실현하는데 골몰하는 형국이다.


근시안적인 건설 부양책은 오히려 향후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당장 500만 호 주택 공급 계획안은 2010년대 이후 주택 공급 과잉으로 부동산시장을 장기 침체로 몰아갈 수 있다. 이미 미분량 물량이 공식적으로만 15만 호 이상이고, 뉴타운과 2기 신도시 등 수도권에서 이미 계획된 물량만으로도 2010년 이후 막대한 공급이 이뤄진다. 반면 저출산, 고령화 추세에 따라 주택수요인구는 2010년대 이후 급감하고 수도권 인구 유입도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추가 공급 대책을 내놓은 정부를 보자니 정말 어이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의 상황을 바람이 잔뜩 든 풍선에 비유하자면 최대한 서서히 바람을 빼가야 한다. 물론 현재 부동산 거품 크기나 가계 부채로 잔뜩 쌓아 올린 거품 구조로 볼 때 상당한 충격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하듯 풍선에 바람을 더 집어넣어 거품을 키워서는 안 된다. 풍선이 지금보다 더 부푼 상태에서 터진다면 그 충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부동산 거품은 한국경제라는 신체에 자라는 악성종양과 같은 것이다. 악성종양은 더 커지기 전에 수술을 통해 도려내야 한다. 계속 안고 가다가는 한국경제가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일반 국민들은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한국경제는 부동산 거품이라는 악성종양이 자라면서 이미 엄청난 중증을 잃고 있다. 한국경제의 핵심적 문제들인 소비 위축, 내수 침체, 실업률 증가, 양극화 확대, 고물가 고비용 구조 등의 문제는 상당 부분 부동산 거품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우선 가계부채의 증대와 이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로 가계의 소비 여력이 급격히 위축됐다. 또한 소비재와 달리 가장 값비싼 생활 필수재인 주택가격은 상승하면 그만큼 무주택 서민들의 실질소득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발생한다. 또 주거비 부담이 상승하면 이를 충당하기 위한 임금 상승이 합리화돼 기업의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자산 양극화가 심해지고 이로 인한 사회적 위화감도 증대된다. 토지 비용의 상승으로 경제가 고비용 구조로 흐르게 돼, 중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정말 한국경제를 살리고 싶다면 이제라도 부동산 거품을 서서히 빼가야 한다. 한동안은 버블 붕괴의 고통으로 많은 경제 주체들이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부동산에 몰린 돈을 생산경제로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것만이 미래를 기약하는 방법이다. 만약 2000년 이후 자산경제에 몰렸던 수백 조원의 돈 가운데 절반만이라도 생산경제에 몰렸다면, 지금 이 나라는 일자리가 넘쳐나 주체를 못했을 지도 모른다. 당장 정부가 재정을 더 풀고 민간의 투기 심리를 자극해 부동산에 돈을 더 집어넣어봐야 ‘언 발에 오줌 누기’에 그칠 공산이 크다.


첨단 기술경제 시대이고, 지식정보화 시대, 창조경제 시대라고 한다. 그러면 국가 전체의 자원이 이런 영역에 더 배분되도록 해야 한다. 첨단기술을 고안하고 지식과 정보를 창출하며 창의성을 발휘하는 주인공은 사람이다. 부동산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 한 나라의 자원은 유한하기에, 제한된 자원 안에서 최적의 생산성을 낼 수 있는 자원배분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비정규직 양산과 저임금으로 사람은 천대하면서 부동산만 신주단지 모시듯 하면 경제가 사는가? 서울 집값이 미국 뉴욕보다 비싸진다고 한국이 일류국가가 되는가? 전국 곳곳에 아파트를 즐비하게 짓는다고 성장 잠재력이 높아지는가? 현 정부의 부동산 경기 부양책은 경제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길게 보면 경제를 죽이는 길이다. 사람에 투자하지 않고 콘크리트에 투자하는 경제는 희망이 없다.


이 글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의 '부동산문제'란에도 띄웠습니다. 좀더 깊이 있는 정보와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방문해주세요. 이 글은 김광수소장님께서 쓰신 글이 아니며 연구소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9. 25. 11:26

9월 19일 국토해양부는 저렴한 주택 공급을 위해 그린벨트를 대규모로 해제하는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이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꼭 필요하다면 다소간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한이 있더라도 땅값과 건축비를 내려 분양하면 훨씬 싼 가격으로 집을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모양새가 됐습니다.

그린벨트를 해제해 싼 가격으로 서민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말은 참으로 후안무치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시장 재임 시절 33개 뉴타운을 무더기로 지정한 탓에 대규모 동시 철거가 이뤄져 서민들이 원래 살던 곳에서 쫓겨나게 한 장본인이 아닙니까? 서민 주거에는 관심 없이 정치적 욕심 때문에 강북 집값 올리기에 여념 없었던 사람이 바로 이 대통령 자신입니다. 그런 사람이 이제 와서는 그린벨트를 풀어 서민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한다면 뻔뻔스럽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내놓은 대부분의 주택 및 부동산 정책은 계속 높은 집값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정책들입니다. 국내외 거시경제 환경이 부동산 버블 붕괴 압력을 높이고 있어서 집값이 떨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정작 이대통령 본인은 전혀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나 심리적 갈등도 못 느끼는 것 같습니다. 뉴타운 지역의 극심한 전세난을 보면서도 한 번 사과나 반성을 한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더해 새로 뉴타운 지정권을 가진 서울시와 협의도 없이 뉴타운을 추가 지정한다니요? 한 마디로 말이야 서민 주거 안정을 내세우지만, 건설업계에 사업물량 퍼주기에 여념이 없는 꼴입니다.

사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의 실제 효과나 정책 조합(Policy mix)의 정합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개념도 없는 사람입니다. 다만 자신이 느끼기에 점수 딸 수 있다고 느끼면 정반대의 정책 효과를 가져와도 내지르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아무 정책이나 듣기에 솔깃하다면 막 질러대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 쪽에서는 뉴타운을 통해 서민들을 쫓아내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린벨트를 해제해 서민주택을 만든다는 얘기를 아무렇지나 않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독교 신자라서 ‘한 손이 한 것을 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을 엉뚱하게 실천하는 것입니까?

하지만 이 글에서는 이 대통령의 스타일에 대해서는 길게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린벨트 해제를 통해 저렴한 주택을 공급한다는 이대통령 발언과 국토부 발표의 허구성을 짚고자 합니다.

시계 태엽을 되돌려 2004년 7월로 가봅시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국민임대주택건설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통해 대규모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국민임대 주택 공급을 추진합니다. 당시 이슈가 됐던 판교신도시의 경우 공영개발을 통해 100% 장기임대주택을 공급해야 한다고 김광수경제연구소는 주장했습니다. 김광수 소장님은 이 같은 방식의 주택사업이 재무적으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며 이론적 모델까지 만들어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고, 판교를 로또 투기판으로 만들어 투기세력에게 먹잇감만 제공했습니다.

정부 스스로 벌린 로또 투기판 때문에 판교발 집값 광풍이 일자, 정부는 전량 국민임대주택을 짓겠다며 해제한 고양 삼송과 남양주 별내 지역의 절반을 분양 물량으로 채우겠다고 했습니다. 이때 당시 건교부가 내세운 명분은 ‘판교급 신도시’를 만들어 주택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집값은 어땠습니까? 집값이 잡히기는커녕 해당 지역까지 투기가 극성을 부려 오히려 집값을 치솟게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직접 추진했던 은평뉴타운 지역을 예로 들어봅시다. 은평뉴타운 사업지구는 대부분 그린벨트 풀어서 조성했습니다. 그런데 평당 토지 보상비가 판교신도시의 평균 3.5배가량 됐습니다. 지금 거론되는 서울과 수도권 경계 지역의 그린벨트라고 보상비가 크게 더 적게 들어갈까요? 더구나 황당하게도 아파트 짓는데, 턴키방식(여기에서 길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상위 재벌건설업체들에게 엄청난 폭리를 취하게 해주는 발주방식입니다)으로 발주를 해서 엄청난 고분양가 만들었습니다. 후임 오세훈 시장이 똥바가지 뒤집어썼지만, 2006년 은평뉴타운 고분양가 사태로 주변 집값 들썩이게 만들었죠. 은평뉴타운 인접 서대문구나 은평구의 아파트 가격이 평당 700만~800만원이던 시세가 1200만~1300만원으로 수직상승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전 치밀한 도시계획 없이 그린벨트 풀어서 급하게 만들었더니 어떻게 됐습니까? 도로나 학교가 제대로 확보 안 돼 언론에서 욕 엄청 먹었죠? 오세훈 시장이 분양가심의위원회 가동해 분양가를 평균 12%정도 낮춘 덕에 분양은 다 됐는데, 지금 입주율 여전히 낮은 수준입니다. 생활 인프라가 없어서 주민들 불만 대단하고요. 물론, 뉴타운 사업으로 추진됐다는 특수성을 어느 정도 감안은 해야겠지만, 그린벨트 풀어서 집값을 낮췄습니까? 그렇다고 도시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주택단지가 들어섰나요? 사람은 그 사람이 해온 과거 행적을 통해 판단하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사기꾼이 어느날 갑자기 ‘난 사람 안 속여’ 하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시겠습니까


by 선대인 2008. 9. 23. 09:34

9.19일 국토해양부는 저렴한 주택 공급을 위해 그린벨트를 대규모로 해제하는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이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꼭 필요하다면 다소간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한이 있더라도 땅값과 건축비를 내려 분양하면 훨씬 싼 가격으로 집을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모양새가 됐습니다.

그린벨트를 해제해 싼 가격으로 서민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말은 참으로 후안무치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시장 재임 시절 33개 뉴타운을 무더기로 지정한 탓에 대규모 동시 철거가 이뤄져 서민들이 원래 살던 곳에서 쫓겨나게 한 장본인이 아닙니까? 서민 주거에는 관심 없이 정치적 욕심 때문에 강북 집값 올리기에 여념 없었던 사람이 바로 이 대통령 자신입니다. 그런 사람이 이제 와서는 그린벨트를 풀어 서민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한다면 뻔뻔스럽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내놓은 대부분의 주택 및 부동산 정책은 계속 높은 집값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정책들입니다. 국내외 거시경제 환경이 부동산 버블 붕괴 압력을 높이고 있어서 집값이 떨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정작 이대통령 본인은 전혀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나 심리적 갈등도 못 느끼는 것 같습니다. 뉴타운 지역의 극심한 전세난을 보면서도 한 번 사과나 반성을 한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더해 새로 뉴타운 지정권을 가진 서울시와 협의도 없이 뉴타운을 추가 지정한다니요? 한 마디로 말이야 서민 주거 안정을 내세우지만, 건설업계에 사업물량 퍼주기에 여념이 없는 꼴입니다.

사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의 실제 효과나 정책 조합(Policy mix)의 정합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개념도 없는 사람입니다. 다만 자신이 느끼기에 점수 딸 수 있다고 느끼면 정반대의 정책 효과를 가져와도 내지르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아무 정책이나 듣기에 솔깃하다면 막 질러대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 쪽에서는 뉴타운을 통해 서민들을 쫓아내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린벨트를 해제해 서민주택을 만든다는 얘기를 아무렇지나 않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독교 신자라서 ‘한 손이 한 것을 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을 엉뚱하게 실천하는 것입니까?

하지만 이 글에서는 이 대통령의 스타일에 대해서는 길게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린벨트 해제를 통해 저렴한 주택을 공급한다는 이대통령 발언과 국토부 발표의 허구성을 짚고자 합니다.

시계 태엽을 되돌려 2004년 7월로 가봅시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국민임대주택건설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통해 대규모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국민임대 주택 공급을 추진합니다. 당시 이슈가 됐던 판교신도시의 경우 공영개발을 통해 100% 장기임대주택을 공급해야 한다고 김광수경제연구소는 주장했습니다. 김광수 소장님은 이 같은 방식의 주택사업이 재무적으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며 이론적 모델까지 만들어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고, 판교를 로또 투기판으로 만들어 투기세력에게 먹잇감만 제공했습니다.

정부 스스로 벌린 로또 투기판 때문에 판교발 집값 광풍이 일자, 정부는 전량 국민임대주택을 짓겠다며 해제한 고양 삼송과 남양주 별내 지역의 절반을 분양 물량으로 채우겠다고 했습니다. 이때 당시 건교부가 내세운 명분은 ‘판교급 신도시’를 만들어 주택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집값은 어땠습니까? 집값이 잡히기는커녕 해당 지역까지 투기가 극성을 부려 오히려 집값을 치솟게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직접 추진했던 은평뉴타운 지역을 예로 들어봅시다. 은평뉴타운 사업지구는 대부분 그린벨트 풀어서 조성했습니다. 그런데 평당 토지 보상비가 판교신도시의 평균 3.5배가량 됐습니다. 지금 거론되는 서울과 수도권 경계 지역의 그린벨트라고 보상비가 크게 더 적게 들어갈까요? 더구나 황당하게도 아파트 짓는데, 턴키방식(이미 시사경제 회원들에게는 설명드린 바 있지만, 상위 재벌건설업체들에게 엄청난 폭리를 취하게 해주는 발주방식입니다)으로 발주를 해서 엄청난 고분양가 만들었습니다. 후임 오세훈 시장이 똥바가지 뒤집어썼지만, 2006년 은평뉴타운 고분양가 사태로 주변 집값 들썩이게 만들었죠. 은평뉴타운 인접 서대문구나 은평구의 아파트 가격이 평당 700만~800만원이던 시세가 1200만~1300만원으로 수식상승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전 치밀한 도시계획 없이 그린벨트 풀어서 급하게 만들었더니 어떻게 됐습니까? 도로나 학교가 제대로 확보 안 돼 언론에서 욕 엄청 먹었죠? 지금 입주 초기여서 그렇지 뉴타운 전체 세대가 다 입주하면 교통대란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오세훈 시장이 분양가심의위원회 가동해 분양가를 평균 12%정도 낮춘 덕에 분양은 다 됐는데, 지금 입주율 30% 정도밖에 안 됩니다. 생활 인프라가 없어서 주민들 불만 대단하고요. 물론, 뉴타운 사업으로 추진됐다는 특수성을 어느 정도 감안은 해야겠지만, 그린벨트 풀어서 집값을 낮췄습니까? 그렇다고 도시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주택단지가 들어섰나요? 사람은 그 사람이 해온 과거 행적을 통해 판단하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사기꾼이 어느날 갑자기 ‘난 사람 안 속여’ 하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시겠습니까?

지금 한국 주택 문제의 핵심은 국토부 표현대로 ‘괜찮으면서도 저렴한 주택(decent and affordable housing-미국에서 공공 주택 문제와 관련해 관용구처럼 나오는 표현입니다)’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형성된 집값이 너무 높아서 웬만한 고소득자도 빚을 내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상태입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큰 틀에서는 공급자인 건설업체의 사기적 폭리 분양가와 수요자의 투기 행태가 빚어낸 거품 집값입니다. 정부는 이를 막기는커녕 허황된 ‘시장원리’ 운운하며 실제 건축비보다 약 2배나 높은 표준건축비를 승인해주는 등 거품 집값을 사실상 용인했습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로서는 결국 일반 국민들이 큰 부담 없이 집을 살 수 있도록 집값을 낮춰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게 가능하냐고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서울시가 진행하고 있는 ‘장기전세’를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장기전세는 주변 전세 시세의 60~80%선에서 공급합니다. 최장 20년까지 거주할 수 있습니다. 재산세와 취등록세 등 세금 부담도 없고 주거 안정성까지 갖추고 있는 매우 좋은 주거상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올 들어 미분양이 속출하는 데도 장기전세는 최고 80대 1의 경쟁률을 보이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매매할 수 있는 분양주택도 아니니 판교분양 때와 같은 투기도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주택을 전체 수도권 주택 재고의 20%까지 채운다고 해보십시오. 기존 매매 수요의 상당수가 장기전세로 이동할 것입니다. 그러면 집값이 얼마나 안정되겠습니까? 이렇게 이미 여러 가지 장점이 입증되고 사람들에게도 매우 인기 있는 장기전세가 이번 500만호 공급계획 중에 겨우 얼마를 차지하는지 아십니까? 전국에 걸쳐 겨우 10만호입니다. 대신 주택정책 목표에 오히려 역행하는 지분형 아파트니 정책 효과가 의심스러운 신혼부부용 아파트니, 노후용 아파트니, 보금자리 아파트니 이름만 사람들이 혹하게 지은 주택 유형들이 많습니다. 나중에 이명박 대통령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우고 싶어서죠.

공공 분양아파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연구소(김광수경제연구소) 김광수소장님께서 ‘현실과 이론의 한국경제’ 3권에서 이미 저렴한 장기임대주택에 대한 이론적 토대는 제공하셨습니다. 사실 소장님 이론을 빌어 제가 쓴 책에서 주장한 내용이 서울시의 ‘장기전세’ 제도로 현실화됐으니, 현실로도 일정하게 입증된 셈입니다. 사실, 관련 제도만 갖춰지면 현재 장기전세보다 훨씬 더 저렴하게 공급할 수도 있습니다. 공공 분양도 똑같이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습니다. 공공이 저렴하게 주택을 짓는 과정은 똑같고 지은 주택을 장기 임대(전세)로 주느냐, 분양하느냐 하는 공급방식만 다를 뿐이니까요.

그래도 의심하는 분들을 위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큰 틀에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주택 공급 과정에서는 엄청난 개발이익이 생겨나는데, 이 개발이익은 땅주인, 거주자, 개발 대행기관(토공, 주공, 각 지방도시개발공사 등), 시행사, 설계사, 시공사, 투기세력 등에 의해 배분되고 있습니다. 주택 공급 과정에서 생겨나는 막대한 개발이익이라는 갈비를 여러 세력들이 돌아가며 뜯어먹어, 결국 수혜자가 돼야 할 서민들은 앙상한 뼈다귀만 핥게 되는 꼴입니다. 그러면 이런 개발이익을 공공이 최대한 흡수해 그것을 저렴한 장기임대나 공공분양 아파트로 공급하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흡수하느냐고요? 현재 분양가 가운데 택지비가 보통 30~50% 가량 차지하고, 직간접공사비가 40~50%정도로 두 가지가 거의 90%를 차지합니다. 우선, 택지비를 봅시다. 지금은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투기세력이 뛰어들어 땅값을 띄워 놓은 다음 감정평가를 통해 토지 보상을 하므로 개발이익이 땅주인과 거주자, 투기꾼들에게 돌아갑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정부가 개발 계획을 사전에 세워두고 사전 매입 후 개발에 들어가는 식으로 하면 보상비를 얼마든지 아낄 수 있습니다. 물론 도심 지역에서는 쉽지 않겠지만, 판교나 용인, 동탄 정도쯤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부지 확보까지만 정부가 하고 이후 주택 공급과정은 이를 통합해서 관리할 CM(Construction Management)회사나 컨소시엄을 경쟁입찰을 통해 선정해 사업을 맡깁니다. 따라서 택지 조성도 토공이나 주공이 하지 않고 CM회사가 가격 경쟁을 통해 선정한 민간 토목업체가 합니다. CM이 경쟁입찰을 붙여 시공사를 선정하면 실제 건축비도 절반 이하로 낮아질 것입니다. 공기도 현재 26~30개월 정도인데 20개월 정도로 단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지금의 분양가보다 절반 아래로 훨씬 빨리 공급할 수 있습니다. 부실시공에 대해서는 정부가 책임을 묻고 통제하면 방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공공주택을 비롯한 공공건설사업은 이른 전문 CM이나 PM(Project Manager)들을 통해 얼마든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홍준표의 토지임대부 주택 같은 사기적인 ‘반값아파트’가 아니라 진짜 ‘반값 아파트’ 얼마든지 실현하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현재 상태에서는 안 됩니다. 지금 국내에서 책임감리와 비슷한 역할 정도만 하게 하는 CM제도를 CM이 건설공사 전반을 관리하되 공사 전반에 대해 책임지게 하는 ‘CM at full risk 제도’를 도입해야 하고요. 또 토지보상, 감정평가, 감리제도, 금융기관 공사보증 제도, 하도급 구조, 건설업역 제도 등 건설산업 제도 전반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집권세력의 강력한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모든 권력기관과 관련 정부부처를 동원해 ‘방송장악’에 기울이는 정도의 노력만 기울인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이런 사기적 분양가의 거품을 뺄 의지도 없지만,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조차 없는 것 같습니다. 대신 자신들 멋대로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도시 기반시설 과부하에 대한 고려는 아랑곳없이 용적률을 올려 겨우 집값의 15% 정도를 낮추겠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이는 사실상 거품 분양가는 그대로 용인하면서 이번 정책을 서민용으로 포장하기 위한 포장술에 불과합니다.

덧붙이자면 제가 제시하는 방법대로라면 지금 같은 방대한 구조의 토공, 주공 필요 없습니다. 토공, 주공은 정부의 기획에 따라 토지 매입하고 CM사 선정해서 정부 계약을 대행하고 계약 이행을 점검하면 됩니다. 또 향후 장기 임대주택이 늘어나면 임대주택 관리 업무 부문을 키우면 됩니다. 이처럼 공기업 개혁이라고 하면 변화하는 환경에 걸맞은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업 주체로서 공기업의 역할과 기능을 점검해 재조정하는 게 우선입니다. 거기에 맞게 조직을 Redesign하고 Restructuring, Reengineering해야 합니다. 그런데 토공과 주공 통폐합 논의에서 보듯 그런 것은 전혀 없고, 그저 무식하게 Downsizing 개념밖에 모르는 게 이 정부입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벌이는 공공사업 물량을 봤을 때 토공, 주공의 반발이 심해지면 통폐합도 나중에 없던 일로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설사 통폐합된다 한들 정부의 엉터리 정책 사업들을 계속 받쳐주는 도구일뿐이라면 그게 어떤 큰 의미가 있을까요?

위에서 봤듯이 공공정책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그 목표를 달성할 최적의 방법을 찾는다면 사실상 방대한 공기업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공공의 목표를 훨씬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부가 공기업 개혁과 관련해 외치는 구호는 온통 통폐합 아니면 민영화밖에 없으니 정말 한심할 따름입니다. 선진국의 정부 개혁이 궁극적으로 경쟁 체제 도입을 통해 국민 전체의 후생 수준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현 정부는 공기업의 영역을 줄이거나, 공공독과점 구조를 민영 독과점 구조로 바꿔 민간재벌기업의 사업 기회를 키워주는 것을 공기업 개혁으로 여기고 있으니 한숨밖에 안 나옵니다. 공공과 민간의 역할에 대한 개념부터가 엉망인데 무슨 일을 제대로 하겠습니까?

제가 지금까지 설명한 것처럼 정말 서민의 주거안정을 걱정하는 도덕적이고 역량 있는 정부라면 그린벨트 해제 안하고도 얼마든지 집값 안정시키고, 서민 주거안정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고, 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되고 개발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든 자기 임기중 생색낼 수 있는 거창한 계획 발표만 하면 된다는 게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그는 서울시장 때부터 그런 스타일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실제로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 고위 간부는 “이 대통령은 정책 방향의 큰 틀은 없이 자기가 생색낼 수 있는 사업을 찾아내 추진하고 포장하는 데는 선수”라고 말하겠습니까?


by 선대인 2008. 9. 22.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