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근 수도권 주택시장의 침체가 가속화되면서 수도권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빠른 속도로 하락하기 시작하자 이른바 '부동산 버블 논란'을 제기하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사들을 보면 저 말고 또 다른 '선대인'이란 사람이 있나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물론 제가 분신술을 발휘하는 것도 아니고, 저의 복제인간이 있을 리도 없으니 그럴 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이런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 있는 의문을 가지느냐 하면 저는 전혀 기자들의 코멘트 요청에 응한 적이 없는데 여러 기사에서 제 이름이 버젓이 인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기사가 지난주 '위클리 경향'에서 작성해 한 동안 다음의 뉴스 탑 화면에 노출됐던 아래 기사들입니다.
[특집]아파트, 더 이상 신화는 없다?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4&artid=201003242117321&pt=nv
[특집]부동산 폭락, 서민이 더 괴로워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4&artid=201003242116261&pt=nv
이 두 기사에는 제 의견이 상당히 길게 인용돼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기사가 나가기 전 이 기사를 쓴 담당 기자와 인터뷰는커녕 전화 통화 한 차례 한 적이 없습니다. 다음탑에 이 기사가 노출된 뒤 제가 경위를 물어보기 위해 '위클리 경향' 측에 전화해 메모를 남겼으나 연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제 다시 전화번호를 수소문해서 직접 전화해 경위를 물어봤습니다. 담당 기자는 제가 얼마 전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을 인용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담당 기자는 제게 "죄송하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해 더 이상 길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참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제가 방송 인터뷰를 하거나 우리 연구소포럼이나 제 블로그, 다음 아고라 등에 글을 쓰거나 여력이 될 때 일간지나 잡지 등에 기고한 것은 공중(公衆)을 향해 제가 공개 발언을 한 것이기 때문에 기자들이 얼마든지 인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발언들을 인용할 때는 출처를 명확히 밝혀야 합니다. 그렇게 인용하는 경우에도 가급적 취재원과 직접 통화해 그 발언을 인용해도 되는지 양해를 구하고, 그 발언의 진의와 맥락을 물어본 뒤 인용해야 좀더 정확하게 발언을 인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 글이나 발언이라고 하더라도 출처를 밝히지 않고 마치 직접 통화하거나 인터뷰한 것처럼 기자들이 기사를 쓰는 것은 독자들을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저는 해당 매체에 인터뷰나 코멘트를 하지 않았는데, 마치 직접 제가 그 매체를 통해 제 의견을 밝힌 것처럼 독자들이 오인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각 기사마다 기사의 전개 방향이나 맥락에 따라 같은 코멘트도 달리 전달될 수 있는데, 제 진의와 상관 없이 제 발언이 독자들에게 잘못 전달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저에게도 피해를 입힌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위클리 경향’의 담당 기자가 쓴 '부동산 폭락, 서민이 더 괴로워'라는 기사도 제가 평소 주장하는 내용과는 정반대의 제목으로 보도된 것입니다. 부동산 부자들을 위해 컨설팅을 해주고, 부동산 투기 선동을 업으로 삼던 사람들이 언제부터 서민들을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들이 얼마 전부터 ‘부동산이 폭락하면 서민들이 더 어렵다’는 식으로 협박성 주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의 의도는 서민들을 핑계로 삼아 정부로 하여금 부동산 부양책, 건설 부양책을 내놓으라고 떼쓰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2000년대 내내 부동산 투기로 부동산에 돈이 묶이면서 생산경제에 돈이 돌지 않아 만성적인 내수 침체와 일자리 감소로 소득이 늘지 않고 한국 경제의 건전한 구조가 훼손돼왔습니다. 또한 주택 가격의 폭등으로 서민들의 경제적 위치는 더욱 약화했고, 자산 양극화는 극대화돼 사회적 위화감과 박탈감이 커졌습니다. 그 여파로 우리 젊은이들은 변변한 일자리가 없는 반면 집값은 너무 높아 시집장가를 못 가고,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부동산 버블의 폐해로 국민경제 전체적으로 막대한 기회비용이 누적되고 있기에 부동산 거품은 어떤 식으로든 해소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마치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 부동산 부자가 아니라 서민들이 가장 큰 피해자라는 식으로 서민들을 세뇌시키는 한편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데 자산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피해를 안 보고 무주택 서민들이 가장 피해를 본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서민은 어떻게 부동산 가격이 올라도 피해를 보고 내려도 피해를 본다는 것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부동산 거품 때문이 아니라 국민경제의 틀이 서민들에게 굉장히 잘못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항상 서민을 희생양으로 삼는 경제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올바른 행태입니다.
따라서 ‘부동산 폭락, 서민이 더 괴롭다’는 주장은 서민을 위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가장 기만적으로 서민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주장입니다. 부동산 거품이 꺼진다 해도 부동산 부자들과 건설업계를 위해 현 정부가 쏟아 부은 부양 예산의 3분의 1만 제대로 서민들을 위해 써도 서민들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일반 가계들이 빚을 내서 계속 거품 잔뜩 묻은 고분양가 아파트를 사게 만들고, 무주택 서민의 세금까지 들어간 돈으로 미분양 물량을 매입하고 토건사업을 벌이니 서민들이 힘든 것입니다. 현재 한국경제의 위기는 기본적으로 가계 부채의 위기이지 건설업계의 위기가 아닙니다. 어떻게 도덕적 해이와 탐욕에 빠져 무리한 사업을 펼치다 위기에 빠진 건설업계를 구해주기 위해 국민들이 언제까지나 빚을 내서 집을 사줘야 한다는 것입니까.
그런데도 이른바 '진보언론'을 자처하는 경향신문사의 계열 주간지가 사실은 가장 반서민적인 결론의 기사를 쓴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기사에 제 주장이 양념처럼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류의 기사를 가장 경계합니다. 그런데 제 의사에 명백히 반하는 이런 기사가 제가 전혀 모르는 채 제 발언을 마음대로 인용해 보도된 것입니다.
저희 연구소는 단독 인터뷰나 기고 등으로 저희 의견을 왜곡 없이 피력할 수 있거나, 심층 기획프로그램처럼 제작 과정에서 저희 연구소와 충분히 상의한 후 진행한 경우가 아니면 코멘트를 잘 하지 않습니다. 물론 몇 차례 보도나 의견 교환을 통해 개인적인 신뢰관계가 형성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이를 허락하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만, 예외일 뿐입니다.
위의 '위클리 경향' 기사 말고도 3월 26일자로 보도된 머니투데이의 '부동산 시장 진짜 대세하락인가' 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0032518553628765&outlink=1
이 기사를 작성한 세 명의 기자 가운데 단 한 명과도 저는 통화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직접 말한 것처럼 인용돼 있습니다. 이 기사를 쓴 기자 가운데 한 사람과 연초에 인터뷰 한 적이 있고, 비교적 인터뷰 기사를 잘 정리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이 기사를 위해 따로 통화 한 적은 전혀 없습니다.
‘스포츠 칸’이라는 매체가 보도한 '부동산 폭락, 예견된 재앙인가 섣부른 기우인가'라는 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아고라와 우리 포럼, 그리고 오마이뉴스에 쓴 글의 일부를 인용한 듯 한데, <위험한 경제학> 저자의 글이라고는 돼 있지만 출처는 전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1003241839383&sec_id=560101&pt=nv
이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매경이코노미, 서울경제 등 저와 인터뷰도 한 번 하지 않고 제가 직접 해당 매체를 상대로 발언한 것처럼 쓴 기사가 한둘이 아닙니다. 특히 매경이코노미의 경우 필자가 응하지 않겠다고 거절했는데도 마치 직접 인터뷰한 것처럼 인용했습니다. 그런 경우 대부분 제 주장을 자기들 입맛대로 바꾸어 버립니다. 어떤 경우에는 책의 서로 다른 부분에 쓰여진 두 문장을 이어서 제 코멘트를 만든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한 이런 기사들은 대부분 제가 정말 보도되기를 원하지 않는 맥락이나 포맷으로 기사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대부분 이른바 '폭등론자'와 맞세우는 식인데, 저를 '폭락론자' '비관론자'로 낙인 찍어버리는 것입니다.
한편 동아일보의 경우에는 제가 비보도를 전제로 사안을 설명한 뒤 ‘익명처리를 해서라도 보도하지 말라’고 두 차례나 요청했는데도, 보도를 했습니다. 더구나 필자가 ‘함구했다’는 표현을 써서 마치 필자가 뭔가 켕기는 게 있어서 입을 다문 것처럼 포장하기도 했습니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조선일보의 경우도 필자의 주장을 왜곡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필자의 책 <위험한 경제학> 1,2권이 나온 뒤 조선일보는 ‘폭락설에서 폭등설까지…널뛰는 한국 부동산 시장 전망’이라는 기사에서 제 주장을 마음대로 왜곡해서 소개하면서 ‘사이비 종말론’이라는 딱지를 붙이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의 왜곡 내용 두 가지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이미 국내 집값은 국토부 실거래가 기준으로 수도권 핵심 지역의 경우 이미 20% 이상 하락해 있고, 경우에 따라 5년 이내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 주택 가격 기준으로는 반토막날 수도 있다'="조만간 반토막"(조선일보의 보도)
'지금의 집값 반등세는 정부의 막대한 부양책에 힘입어 장기 대세 하락기에서 나타나는 마지막 반등일 가능성이 높으니 언론의 선동 보도에 휘둘려 무주택 가계들이 빚을 내 무리하게 집을 사는 것은 위험하다"="집을 팔 마지막 기회"(조선일보의 보도)
다른 한 건설산업 전문가의 증언도 이 같은 행태가 저만의 경우가 아닐 것임을 짐작케 합니다. 그 전문가의 경우 한 메이저 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부동산 버블 붕괴가 3년 후쯤 시작될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정작 해당 기자는 "3년간은 집값이 오를 테니 집을 사도 좋다"는 식으로 그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했다고 합니다. 그 전문가는 “해당 기자와 전화 인터뷰는 했지만 그런 말은 한 적이 없었다”며 “화가 났지만, 약자이다 보니 참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한국 언론은 각종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 등을 매개로 이미 심각하게 타락해 있지만, 그 구성원인 기자들도 최소한의 기자윤리와 기사 작성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면서도 마치 기사에 인용해 주는 것을 마치 취재원을 '띄워준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습니다. 저처럼 이렇게 제가 원하지 않는 맥락 속에서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제 발언이 소개되면 오히려 저나 저희 연구소에 피해가 오는데도 말입니다. 물론 이른바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라는 이들 가운데는 어떤 식으로든 언론에 자주 노출되기 위해 기를 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와 저희 연구소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한국의 정보 환경이 정보의 생산, 유통, 수용 전 과정에서 심각하게 왜곡돼 있다 보니 왜곡된 정보가 미칠 악영향을 생각해 일반인들에게 꾸준히 저희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연구소의 주장을 가급적 왜곡 없이 전할 수 있을 때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왜곡 없이 저희 연구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면 오히려 그런 기회는 진보, 보수 매체를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편입니다. 그렇지 않고 위에 거론한 방식대로 우리 연구소가 인용되는 것은 우리 연구소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기사를 쓰는 기자와 해당 언론사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저희 연구소가 이용당하는 것일 뿐입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저와 우리 연구소의 이름을 마구잡이로 이용하는 언론에 대해서는 앞으로 엄중히 대응하겠습니다. 많은 취재원들이 언론으로부터 부당한 피해를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을 다물고 있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저라도 이런 잘못된 행태는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무단으로 저나 저희 연구소의 코멘트를 인용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실명으로 해당 기자를 밝혀 회원이 이미 7만5000명이 넘는 저희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과 아고라. 제 블로그 등을 통해 공개하겠습니다. 최대한 많은 분들이 볼 수 있도록 되풀이 게재하는 한이 있더라도 기자들의 이런 무책임하고 잘못된 행태는 지적하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하기 전에 기자들은 자신들의 기사 작성 과정상의 문제점을 자각해 환골탈태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지금까지 거론한 것처럼 한국 언론의 문제가 아파트 분양 광고 등 이해관계를 매개로 한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기자로서 기본 자질과 윤리를 갖추지 못한 기자들의 행태 문제에서 비롯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같은 언론의 엉터리 왜곡보도와 기자들의 무례한 취재원 응대는 결국 부메랑이 돼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한국 신문업계 전체가 지난 10여년 동안 급격한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한국 언론 스스로 독자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한국 언론에 대해 강한 비판의식만큼이나 강한 애착을 느끼는 전직 신문기자로서 드리는 충고이자 경고로 받아들여 주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