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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위(이하 특위)의 권고안을 바탕으로 종합부동산세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번 종부세 개편의 방향은 대체로 옳지만 개편안에 나타난 정책 강도와 개혁 의지는 기대에 비해 상당히 약한 느낌이다. 시가 20억원 주택 소유자의 종부세가 1년에 20만원 정도 오르는 것에 그친다면 큰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특위 권고안에 비해 3주택 이상 다주택자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늘린 것은 다행이지만, 그 대상자가 매우 제한적이라고 봐야 한다.
이번 대책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쉽게 가늠할 수 있는 방법은 세수 규모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종부세 세수는 2조7671억원이었다. 그런데 이번 개편안에 따라 걷힐 종부세 세수 총액은 개편에 따라 추가로 늘어날 7000억원가량을 포함해 2조2천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그런데 그사이 전국의 부동산 가격은 70%가량 뛰었다. 상승한 부동산 가격에 대비한 세수 규모는 2007년의 47%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 고가 부동산이나 다주택이 많을수록 세금 부담은 점증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2007년에 비해 4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세금을 깎기는 쉬워도 도로 올리기는 어렵다. 더구나 노무현 정부 때 종부세 문제로 기득권 세력의 거센 공격을 받았던 터라 문재인 정부로서는 조심스러울 것이다. 그런 점을 고려해도 이번 개편안이 오히려 부동산시장에 ‘버티면 된다’는 식의 잘못된 시그널을 줄까 걱정된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가 70%를 넘고,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한 상태이니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좋겠다. 다주택자와 보수 언론 등의 저항과 공격을 걱정할 수 있겠지만, 과감한 개혁을 기대했던 지지층의 실망감도 살펴야 한다.
노무현 정부 당시의 트라우마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워낙 정권 초기부터 지지율이 낮아서 무슨 말을 해도 씨알이 먹히지 않았다. 하지만 촛불혁명과 대선, 지방선거 등을 거치며 현 정부에 대한 견고한 지지층이 형성됐다. 문재인 정부가 큰 틀의 비전과 전략을 바탕으로 한 로드맵을 보여주고 국민들을 설득한다면 많은 국민들이 수긍할 것이다. 오히려 그런 과정을 소홀히 한 채 특위와 기획재정부의 입장이 달라 혼선을 빚는 듯한 모습이 정권에 더 악재가 될 수 있다. 대북정책에서처럼 조세재정 개혁 문제에서도 좀 더 과감해지길 바란다.
향후 종부세를 포함해 보유세 체계를 추가로 개편할 때 몇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우선 공시가격을 좀 더 시세에 근접하게 현실화하는 작업이 우선이다. 일반 중산층 서민들이 주로 사는 공동주택의 시세 반영률이 70% 수준인데 부동산 부자들과 대기업 등이 소유한 고급 단독주택과 빌딩, 토지 등이 시가의 30~40% 수준인 현실을 그대로 두는 건 조세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이런 현실을 인식하고 개편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하니 잘 준비해주기 바란다.
이명박 정부 때 감세정책의 방편으로 도입한 공정가액비율은 특위의 권고안대로 점진적으로 올려 없앴으면 한다. 이미 공시가격이 시세보다 낮게 설정돼 있는데, 공시가격을 다시 할인해주는 장치인 공정가액비율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
이런 작업들을 병행하면서 종부세뿐만 아니라 재산세 세율도 점진적으로 상향 조정해 나갈 필요가 있다. 한국의 재산세 실효세율은 0.15%인데, 0.5~1% 수준인 미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하면 상당히 낮다. 국내총생산 대비 부동산자산의 가격이 가장 부풀어 있는 편에 속하는 나라에서 보유세 세수 비중이 너무 낮은 것은 기형적이다. 자산격차 완화와 복지지출 등의 재원 마련, 재정의 지방분권 강화 등 측면에서 보유세 강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