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발표된 소위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의 부동산 대책 가운데 강남 재건축 규제 완화가 향후 부동산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맞춰 정리해보겠습니다.

정부 대책 이후 나온 관련 언론 보도를 보면 재건축 단지에서만 호가 위주로 약간의 반등 조짐이 있고, 다른 지역은 여전히 침체 상황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재건축 단지에서는 부동산 중개업소에 나와 있던 급매물이 회수됐고, 호가가 수천만원에서 최고 1억원까지 올라갔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따라붙는 매수세는 현재까지는 크게 없는 것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대책 가운데 주택투기지역 해제나 투기과열지구 해제, 전매제한 완화, 지방 미분양 세제 지원 등은 이미 발표된 사항의 구체적 내용을 확정 발표했거나 이미 예상된 것이어서 현재 국내외 거시경제 상황에서는 부동산시장에 큰 영향을 줄 수 없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고, 이미 시장 반응에서 볼 수 있듯이 ‘평정’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소형평형 의무 비율을 탄력적으로 적용하고, 용적률을 국토계획법상 상한까지 허용하는 재건축 규제 완화책은 좀 다를 수 있다고 봤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기존 조건으로는 사업성이 떨어져 사업 진척이 지지부진했던 재건축 사업 대상지들의 사업성을 높여주는 직접적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부 지역에 제한된 조치로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강남 재건축 단지들이 집값 폭등의 진앙지가 돼왔고, 집값 추세의 바로미터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그 상징적, 심리적 효과는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 효과라고 해봐야 매우 한정적일 것입니다. 우선, 위에서 본 것처럼 재건축 단지의 호가는 올라가지만 매수세가 없어서 거래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국내외 거시경제의 큰 흐름이 단기간에 바뀌기 어렵습니다. 아마 매수세는 앞으로도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거래가 일어나지 않으면 과도한 이자 부담에 급매물을 내놓았던 가계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시 시장에 매물을 내놓게 될 것입니다. 제가 최근 본 기사 가운데는 9억몇천만원에 은마아파트 매물을 내놨다가 정부 발표 이후 호가를 10억원으로 올린 사례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사례의 가계가 진 빚이 8억2000만원이었습니다. 이런 가계의 경우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요?

 

정부 발표에 따른 재건축단지의 수익성 증가가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한국경제신문에서 재건축단지의 사업성을 분석하는 기사들을 내놨습니다. 아래에 링크한 기사 내용을 보면 마치 재건축 단지의 사업성이 매우 크게 올라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은마아파트 `재건축 완화 수익성` 시뮬레이션 해보니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110442481&type=&nid=&sid=0103&page=1

 

이 기사는 한 재개발 재건축 컨설팅 업체에 맡겨 은마아파트의 사업성을 계산하게 한 결과 단지 전체로 약 2조2000억원, 조합원 가구당 5억원의 이익이 생긴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의 뒷부분을 잘 보면 실제 개발이익은 여기에 턱도 없이 모자랄 가능성이 높음을 ‘자백’하고 있습니다. 이 시뮬레이션에서는 2013년까지 연간 6%의 시세 상승을 전제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집값은 상당기간 빠질 가능성이 더 높은데, 6% 지속적으로 상승한다고 가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매년 6%가 상승한다고 가정한 것은 이율로 따지면 복리 개념입니다. 즉, 2009년부터 5년동안 33.8%의 가격이 상승한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같은 집값 상승이 가능할까요? 국내외 경제 환경은 고사하고 당장 국지적으로 보더라도 잠실, 서초구, 강동구 재건축, 송파 위례신도시 등에서 중대형 물량이 계속 쏟아지게 됩니다. 이들 지역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약세를 보이고 있는 주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들 인근 지역은 강남구 대치동 재건축 단지들과 시장 영역이 대체로 겹치는 부동산 시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치동 재건축단지들도 이들 주변 지역의 가격 약세에 매우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재건축 사업성을 따지는 기준점은 바로 인근 지역 시세이기 때문에 인근 시세가 내려가면 사업성이 떨어져 경우에 따라서는 사업이 아예 진척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기사에서는 ‘은마아파트는 아직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않아 실제로 사업기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고 쓰고 있지만, 아예 사업이 진척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더 중요한 것은 서울시의 태도입니다. 어찌보면 좀 정치적인 관점의 분석일 수 있는데요. 오세훈 서울시장은 용적률 280%까지 적용받아 빽빽하게 들어선 강남의 기존 재건축 아파트들이 한강변 도시 스카이라인이나 도시 주거 환경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강남 재건축 단지들의 용적률을 다시 그 수준까지 올리는 것을 좋아할 리 없습니다. 이 때문에 서울시의 용적률 적용 권한을 무시한 정부의 이번 발표에 대해 매우 불쾌해하고 있습니다. 같은 당 출신 대통령이 상왕처럼 버티고 있어 겉으로 큰 소리는 못내고 있지만, 결코 국토부 발표 내용대로 순순히 따라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이번 대책 발표 전에도 국토부는 서울시의 강력한 항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토부도 실무선에서는 서울시의 입장을 이해하는 편이지만, 청와대의 강력한 주문 때문에 마지못해 거의 일방적으로 발표한 모양새가 됐습니다. 그렇기에 재건축 규제 완화에 관한 국토부 발표 내용도 두 문장으로 큰 틀만 언급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올 연말과 내년 초 도정법 개정을 앞두고 국토부와 서울시의 실무자들간에 벌이는 구체적인 조율 과정에서는 용적률이나 임대주택 의무 건설 비율 등의 측면에서 서울시 의견이 상당 수준 반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재건축 단지의 수익성이 지금 시중에서 기대하는만큼 높아지기는 어렵다고 판단됩니다.

 

현재 서울시의 상황을 비교적 잘 정리한 기사가 있어서 링크를 걸어드립니다.

 

‘3대 딜레마’에 빠진 서울시 재건축

http://www.fnnews.com/view?ra=Sent0501m_View&corp=fnnews&arcid=0921473301&cDateYear=2008&cDateMonth=11&cDateDay=04

   

이대통령과 오시장의 정치적 관계 때문에 밖으로 큰 소리를 낼 수 없어서 그렇지 서울시의 실제 입장은 기사에 드러난 것보다 훨씬 완강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쓰고 보니 재건축 단지의 사업성 분석에 관한 글처럼 돼버렸군요. 사실 이번 정부 대책에 대해서는 정책적인 측면에서 비판할 내용이 너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재건축단지의 임대주택 의무 건축 비율 사실상 축소는 서울시장 시절 뉴타운의 대규모 지정, 개발에 따른 동시다발적 중소형 주택 철거로 서민 주거난을 불러온 이명박 대통령이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추진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또한 2003년 이후 중대형 투기 붐 때문에 중대형 물량만 공급되는 과정에서 지금 중대형 아파트들 가격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중대형 공급물량을 더 늘리겠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나중에 동상에 걸리든 말든 당장 언발에 오줌을 눠 잠시 따스한 온기를 느끼면 된다는 식인 것 같습니다. 자신들이 그렇게 떠받치고 싶은 ‘강부자’들의 집값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부메랑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알면서도 일단 강부자들이 거품 폭탄을 선량한 시민들에게 떠넘기고 탈출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인 것 같기도 하고요. 더 나아가서는 경제 위기를 막는다는 명목에서 나온 이 같은 무분별한 부동산 부양책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 경제 전체에 돌아오는 피해의 총량을 더 키우게 된다는 지적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하지만 이제 정부가 좌충우돌식으로, 주먹구구식으로 내놓는 정책들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비판하는 것도 신물이 날 정도입니다. 엉터리로 내지르는 정책들에 대해 합리적으로 이런 저런 근거를 들어가며 비판한다는 것도 솔직히 피곤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필요한 비판을 멈출 수는 없는 일이겠요.


by 선대인 2008. 11. 7. 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