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10여년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한국경제와 세계경제는 상전벽해(桑田碧海)처럼 바뀌었다. 한국경제는 자본집약적 산업구조에서 첨단기술 위주의 산업구조로 탈바꿈했다. 전세계는 지식정보화의 시대, 창조경제의 시대로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급변한 국내외 경제 패러다임에 걸맞은 경기 규칙은 마련되지 않았다. 모두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공정한 경기 규칙을 마련하기보다는 승자만이 더욱 많은 것을 가져가는 ‘승자 독식 사회’를 만들었다. 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건전한 시장경제가 아니라, 재벌 그룹만이 대접받는 ‘엽기 자본주의’를 만들었다. 재벌에게 온갖 R&D 자금을 몰아주고, 시장 경쟁을 헤치는 독과점 상황을 방조하고, 불법과 비리를 저질러도 묵인하고 사면했다. 공공사업에서는 매년 60~70조 이상의 돈을 풀어 개발사업을 벌이고, 민간에서는 집값 거품을 띄워 재벌 건설사들을 배 불렸다. 이렇게 외환위기 10년은 가진자들만이 더욱 많은 것을 향유하는 10년이었다.


        지난 10년은 정부와 가계의 빚으로 거품을 만들어 성장한 시대였다. 처음에는 IT버블을 만들어 거품 성장을 했고, 카드채 거품을 통해 수백만의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며 반짝 성장을 했다. 하지만 그 사이 카드채 거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거품이 자랐다. 부동산 거품이다. 외환위기 이후 집값은 99년부터 급반등했다. 소위 V자 반등이었다. 2000년까지 집값은 원래 외환위기가 없었다면 자연스럽게 이르렀을 정상적인 수준이었다. 하지만 2001년부터 폭등하기 시작한 집값은 투기 광풍을 불러일으켰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강력한 주택경기 부양책과 저금리 기조에 더해 수급 불균형도 초기 집값을 뛰게 하는 요인이었다. 하지만 한 번 뛰기 시작한 집값은 멈추지 않았다. 처음에는 돈 있는 사람들이 자기 소득으로 집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집 사서 돈 벌었다’는 이야기가 돌자, 사람들은 있는 빚, 없는 빚 다 끌어와서 집을 사기 시작했다. ‘설마 더 안 오르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텼던 사람들도 하나 둘 씩 투자(또는 투기) 행렬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집값 거품은 계속 커져갔다. 은행 등 금융기관들은 ‘이제는 소매금융이다’라는 구호아래 펌프질을 해댔다. 가계의 신용 평가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손쉬운 주택 담보 대출로 ‘땅 짚고 헤엄치기’식 장사를 했다. 계속 펌프질을 해대다 대출 자금이 부족해지자 은행채와 CD를 남발하고, 엔 캐리 자금 등 단기 외화까지 끌어와 펌프질을 해댔다.


        하지만 많은 부분 집값을 키운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빠진 중앙과 지방의 정치권과 단기 경제 성적표에 치중한 정부 관료들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단기적인 경기 부양에 집착해 부동산 투기를 용이하게 만들었다. 외환위기 이후 개발주의 시대 때 형성된 공급자 위주의 주택시장을 소비자 위주로 전환하는 과제를 방기했다. 오히려 공급자인 건설업체들만 배불리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분양가만 자율화하고 함께 패키지로 추진키로 했던 후분양제 약속은 이행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건설업체들이 공급자 위주의 선분양제 아래 분양가를 마음대로 올려 엄청난 폭리를 취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들어 주었다.


        집값 안정과 서민 경제 활성화라는 염원을 안고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무능하고 위선적인 정부였다. 말로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외치면서도 건설과 개발 마인드로 무장한 관료들에게 놀아났다. 인수위 때 채택해놓고도, 결국 후분양제를 제대로 시행도 못했고, 조작된 통계에 속아 불과 2,3년 전까지 ‘집값 거품이 없다’고 떠들어댔다. 집값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지속적으로 신도시 개발을 발표하며 투기세력에게 먹잇감을 제공했다. 판교를 중산층까지 살 수 있는, 쾌적하고 질 높은 장기 임대 주택 단지로 만들라는 혜안 있는 전문가의 제안도 걷어찼다. 오히려 판교를 거대한 로또판으로 만들어 서울 강남과 경기 남부의 집값을 덜썩이게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행정복합도시다, 기업도시다, 균형발전이다, 경제특구다 하며 온갖 개발사업을 만들어냈다. 전국을 투기장으로 만들었고, 엄청나게 풀린 보상금으로 다시 서울의 집값을 끌어올리는 거품을 만들어냈다. 마치 일본의 부동산 버블을 만들어낸 ‘일본 열도개조론’의 한국판을 연상케 하는 조치였다. 한 쪽에서는 집값을 잡겠다며 세금을 올리면서도, 다른 한 쪽에서는 개발사업으로 투기판을 확대하고 부동산 시장에 돈을 몰리게 했으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10.29’대책을 발표해 부동산 투기를 다 잡아놓고도 대책을 제대로 시행도 못해보고 스스로 무력화시켰다. ‘이러다 경착륙한다’는 관료들과 일부 언론의 엄포에 속기도 했겠지만, 자신의 임기 내에 거품이 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탓이다. 결국 2005년 이후 2차 집값 폭등기를 불러오고 말았다. ‘집값만은 잡겠다’고 임기 내내 되풀이하면서도 집값 잡는 방법도 모르고, 집값 거품을 깨트릴 용기도 없었으니 얼마나 무능하고, 얼마나 위선적인가? 오죽하면 맹목적으로 ‘좌파 노무현’을 싫어하는 강남 아줌마들조차 “노무현이 집값 올려준 것 하나는 정말 고맙다”고 비아냥거렸겠는가? 자신을 뽑아준 서민들의 기대를 깡그리 저버린 정부가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의 심판을 안 받을 줄 알았는가?


        그런데 현재의 이명박 정부는 더욱 가관이다. 노무현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는 최소한의 의지라도 있었지만, 현 정부는 그런 의지 자체를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아파트를 지어대고,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여 부동산 거품을 더욱 키우는 것이 경제 발전의 시작이자 끝인 줄 아는 정부다.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의 산실인 건설산업의 대표격인 현대건설 사장 출신이니 오죽하겠는가? 한 마디로 한국판 건설족의 우두머리라 할 만하다. 허구한 날 어디다 삽질할 것인지 ‘삽질 경제학’에만 심취해 있는 분이니, 한국 경제의 앞날이 암담하게 느껴질 뿐이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서울시장 시절부터 서울 집값 올리기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다. 그는 서울시장 선거 시절부터 물밑에서 당시 이슈가 됐던 강남 5개 재건축 단지의 사업 승인을 약속했다. 물론 겉으로 내세우기는 찜찜했는지 정식 공약으로는 내세우지 않았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시장 취임 불과 몇 달 후부터 ‘강남북 균형발전’을 내세우며 뉴타운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말이 좋아 ‘균형발전’이지 실제로는 ‘강북 집값도 올려주겠다’는 것이었다. 한 번 정치바람을 타기 시작한 뉴타운 열풍는 거세게 불었다. 그는 은평뉴타운을 시작으로 임기 내 세 차례에 걸쳐 33개의 뉴타운을 지정했다. 말이 33개이지, 서울시 시가지 면적의 약 7.5%로 30여년 서울시 전체 재개발 면적보다 더 넓다. 뉴타운을 계기로 사업대상지와 인근 지역들뿐만 아니라 향후 사업 가능성이 있는 지역들까지 집값이 폭등을 거듭했다. 오죽하면 전직 서울시 간부조차 “지방 땅값은 노무현이 올리고, 서울 땅값은 이명박이 다 올렸다”고 하겠는가?


        이명박의 뉴타운 사업은 앞으로도 큰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뉴타운 사업지에 있던 중소형 주택은 모두 헐렸다. 그 자리에는 모두 중대형의 새 아파트들이 들어선다. 대부분 뉴타운 사업지에는 가난한 세입자들이 70~80%를 차지한다. 중소형 주택이나 연립주택 등에 세 들어 있던 세입자들은 모두 쫓겨난다. 뉴타운 사업으로 인한 철거가 본격화된 지난해부터 서울 동북부와 인접한 경기 북부지역까지 극심한 전월세난이 벌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투기세력이 끼어든 탓도 있지만, 노원, 도봉, 강북 3구의 집값이 2008년 상반기 거세게 상승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뉴타운 사업 대상지역의 인근 대학가의 하숙비가 폭등하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쫓겨나는 세입자들조차 “뉴타운하면 우리도 좋아지는 것 아닌가?” 착각하고, 많은 대학생들은 자신들의 하숙비 상승을 초래한 장본인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지난 대선에서 이대통령을 찍었다. 하긴 이런 사실을 언론이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니 어찌 알겠는가 싶기도 하다.


        이 대통령의 삽질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대통령 취임 이후 시대착오적인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로 물줄기를 따라 땅값이 폭등하게 만들더니 요즘도 하는 행태가 가관이다. 더 이상 거품을 키워서는 안 된다는 경고는 아랑곳 않고, 거품을 키우는 부양책 일색이다. 후분양제 백지화, 분양가 상한제 무력화, 미분양 물량 해소대책, 재건축 규제 완화, 전매제한 기간 단축, 추경 편성을 통한 유동성 공급 등 모두 열거하기도 힘들다. 종부세 완화, 양도세 완화, 재산세 경감 등 부동산 부자들을 위한 세금 선물도 패키지로 공급하고 있다. 심지어 이 정부는 재건축 시 임대주택과 소형주택 의무 공급비율을 축소하겠다고 했다. 자신이 벌여놓은 뉴타운 사업 때문에 전월세난이 향후 몇 년간 심각해질 것이 너무나 빤한데 공급을 늘이기는커녕 줄이겠다는 것이다. 재건축 사업 투기자들의 사업성을 맞춰주기 위해 저소득층의 주거난은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다. 얼마나 뻔뻔하고 파렴치한 정부인가? 하긴 ‘강부자 내각’으로 이뤄진 정부에 뭘 기대한단 말인가?


        현 정부는 지금의 부동산 경기 침체가 전적으로 노무현 정부 때 도입한 각종 규제책 때문이라고 보는 것 같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때 정책을 모두 뒤집기만 하면 부동산 시장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보는 착각에 사로잡힌 듯하다. 이들은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기 전 집값은 높은 상태에서 유지되지만 거래량은 확 주는 ‘부동산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선행하는 것도 모르는 것 같다. 이 정부는 거품을 계속 지탱하거나 키울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모든 버블은 어떤 식으로든 붕괴하는 것은 필연에 가깝다. 버블을 더 큰 버블로 막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미 카드채 사태 때 이를 여실히 경험했다. 하지만 역사의 실패에서 배울 만큼 능력 있는 정부가 아니니 어쩌겠는가?


        정부만 거품을 키운 것도 아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상당수 정치권 인사들이 집값 거품 키우기에 뛰어들었다. 예를 들어,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뉴타운 사업을 추진할 때 소위 ‘뉴타운법’을 여야가 경쟁적으로 입법화하는데 열을 올렸다. 아마 서민입법과 구조적 개혁에 관한 입법은 도통 관심 없는 여야 의원들이 그렇게 초당적으로 합심해 만든 법은 입법사상 유례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더욱 한심한 것은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원들이다. 한나라당이야 못 사는 지역을 중산층 위주의 아파트촌으로 바꾸면 자신들 선거에 유리하니 ‘뉴타운 맨더링’(선거구를 기존 정치인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획정하는 ‘게리맨더링’에 대비해 선거구는 그대로 둔 채 뉴타운을 통해 선거구민의 구성을 바꾸는 것을 일컫기 위해 필자가 만든 조어다)을 하는 게 자신에게 유리하다. 하지만 뉴타운이 뜨니 자신들도 우르르 몰려가 뉴타운 입법에 한 다리 걸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제 발등 자기가 찍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니 지난 총선에서 뉴타운 공약을 내세워 당선된 한나라당 ‘뉴타운돌이’들을 비난하는 통합민주당의 모습은 애처롭다기보다 코미디에 가까웠다.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위해 집값을 올린 정치인들에게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과 부동산 기득권 세력을 위해 한국 경제를 파탄내고, 서민들의 주름살을 늘렸다. 사람 귀한 줄은 모르고 전 국민의 반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어 식민지 원주민처럼 착취한 이들이 집값 거품을 부풀리고 유지하는 데는 앞 다퉈 나섰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마치 아파트 값이 오르면 세계 초일류 국가가 될 것처럼 환상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 그런 환상이 모두 망상이었음을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80년대말 미국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사며 기세등등했던 일본이 이후 10여년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때가 되면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집값 거품에 취해 온 국민을 투기장으로 몰아넣었던 정치인과 그 세력들을. 그 때가 오면 그들을 정치적으로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

by 선대인 2008. 9. 3. 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