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3일 내놓은 종합 물가관리 대책에 대해 '시대착오적인 관치 물가관리 대책'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런데 같은 날 이명박 대통령이 “기름값이 적정 수준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한 발언이 정유업체 주가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상당한 파장을 낳고 있다. 그의 발언 가운데 “주유소 행태가 묘하다”고 말한 것은 소수 정유업체들의 담합 행위를 도외시하는 발언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지만, 어쨌든 기름값에 대한 발언은 일반 생활인들이 느끼는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대통령은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적절한 정책과 제도를 통해 생활인들의 고통을 선제적으로 해소했어야 할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반성부터 했어야 한다.

 

사실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아니더라도 그 동안 한국의 정유사들이 원유 가격이 오를 때는 민첩하게 많이 올리고, 원유 가격이 하락할 때는 찔끔 반영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들이 꽤 있었다. 정말 그런지 우리 연구소 박명훈 일본경제센터장이 조사한 국내 각 정유사의 가격 자료를 종합해 확인해 보았다.

 

본론에 앞서 한국의 석유산업 구조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한국의 석유산업은 당초 정유 5개사였으나 한화에너지가 현대정유를 거쳐 SK에 인수됨에 따라 현재는 4사 체제로 되어 있다. 내수시장 점유율을 보면 SK인천정유와 합병한 SK에너지가 33% 이상을 유지하고 있고 GS칼텍스가 30% 그리고 S-Oil과 현대오일뱅크가 10%대 전반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즉, 한국 내수시장은 SK에너지, GS칼텍스, S-Oil, 현대오일뱅크가 약 90%를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업체별 제품별 판매 동향을 보면 일부 제품을 제외하면 대체로 수출과 내수 판매량 모두가 감소하고 있다. SK에너지는 2008년에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는 SK인천정유(구 현대정유)가 합병되어 늘어난 것이다. 이처럼 한국 정유회사 역시 일본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내수 및 수출 판매량 감소에 직면하고 있으며, 판매량 감소 내지는 정체를 가격인상과 원화 환율 상승 효과를 통해 매출과 이익을 늘려오고 있다. 특히 판매량이 많은 경유와 나프타 가격은 원유가격이 오르면 그보다 큰 폭으로 가격을 올리지만 반대로 원유가격이 하락하면 그 보다 소폭으로 가격을 내려 이익을 늘리고 있다.

 

구체적으로 한국 석유업계가 판매량은 크게 변화가 없는 가운데 유가 변동을 이용한 가격인상 및 인하 폭 조절을 통해 매출과 이익을 확대하고 있는 사실을 살펴보자. 아래 <도표>는 국제유가가 급등락을 한 2007년-2009년의 국제유가와 한국 석유제품 내수 및 수출 판매가격 변동률을 나타낸 것이다. 이 도표에서 2008년에 유가는 전년대비 34.6%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한국 석유업체들은 내수 판매가격을 경유는 전년대비 53.1%나 인상해 유가 상승률보다 18.5%나 더 높였다. 벙커유 가격도 2008년 51.1% 인상해 유가 상승률보다 16.5% 더 높였다.

 

  
▲ <도표> 원유가격 및 한국 주요 석유제품 가격변동 (주) 각사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업체별 가격 변동률의 평균치임.

한편 경유의 수출판매 가격은 2008년에 52.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내수 판매가격 증가와 거의 비슷한 증가율을 보였다. 그러나 2008년에 원/달러 환율이 전년대비 18.9%나 상승한 점을 차감하면 실제로는 33.9%로 사실상 유가상승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반대로 2009년에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유가가 전년대비 -36.7%나 급락했다. 이에 비해 경유 내수 판매가격은 전년대비 -25.4% 인하에 그쳤다. 즉 11.3%나 덜 인하한 것이다. 반면 경유 수출가격은 전년대비 -33.5% 하락해 유가 하락과 거의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2009년 원/달러 환율이 전년대비 15.8% 상승한 점을 감안하면 실제 경유 수출가격은 전년대비 -49.3%나 하락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즉 원/달러 환율 상승이 없었더라면 석유제품 수출은 대폭적인 적자를 면치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일반 소비자들이 국제 유가가 상승한 것 이상으로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이 상승하고 반대로 국제 유가가 하락한 것만큼 석유제품 가격이 하락하지 않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이런 행위는 업계 전체의 불공정 담합 행위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유업계는 기름값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이상으로 매우 큰데, 2008년 1%였던 관세는 2009년 3%로 올라 L당 11원 정도의 가격인상 효과를 냈고, 2008년에는 정부의 유류세 인하 효과 등이 작용했던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전혀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세금 요인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2008년과 최근 상황을 고려해보면 납득하기 어렵다. 2008년 금융위기 직전 유가는 배럴당 140달러를 넘었으며 환율도 당시 강만수경제팀의 인위적인 고환율 유도와 금융위기로 달러당 1300원대 이상으로 치솟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대에 환율도 11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 유가는 2008년 당시보다 더 오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대기업 정유업체들의 독과점 담합 때문이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물론 정부가 조세저항 없이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기름값에 단위당 부동산 자산에 부과하는 과세액의 수십 배 과중한 세금을 매기는 과세 현실은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세금을 핑계로 담합을 통한 높은 기름값으로 생활인들을 울리는 행태 또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역할은 '기름값 적정성' 여부를 따질 게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가 제대로 작동돼 이들 업체간 담합을 철저히 분쇄하도록 해야 한다. '기름값이 이상하다'는 불만은 대통령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리라이더: 대한민국 세금의 비밀편> 출간 기념으로 이름 별난 두 남자 조국과 선대인이, 대한민국 청춘들을 부릅니다. 21일(금) 저녁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에서. 신청은 여기에서 http://thebf.tistory.com/301

 

 


by 선대인 2011. 1. 15. 0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