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홍익대 학생들이 '청소 용역비가 오르면 등록금이 오른다'는 논리로 청소용역 아주머니들의 파업을 반대했다고 한다. 그 소식을 접하면서 서글픈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졸업해도 변변한 일자리조차 구하기 힘든 상황에 치인 대학생들이 배려와 여유를 잃어버린 세태도 서글프지만 현재의 사학 재정구조 실태를 제대로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일 사립대의 재정구조를 한 번 비교해보자.
<도표1>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 하버드대의 경우 등록금 수입이 전체 수입의 20%에 불과한 반면 하버드대재단의 기금운용수입금이 34%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정부 지원(15%)과 기부금(7%) 수입 등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 게이오대학의 경우도 총수입 가운데 학생 납부금(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18.2%에 불과한 반면 의료수입(17.0%)와 자산매각 수입(15.9%), 자산운용수입(9.5%), 기부금 수입(6.9%), 보조금 수입(7.2%) 등 다양한 수입원을 갖추고 있다.
<도표1> 하버드대와 게이오대의 총수입 내역
(주) 하버드대 및 게이오대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반면 한국의 경우는 이와 정반대 양상을 보이고 있다. <도표2>에서 보는 것처럼 사립대 전체 교비회계의 총수입 가운데 약 68% 가량을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으며, 전입금 수입이 6%, 기부금 수입이 3% 정도에 불과한 매우 기형적인 구조를 보이고 있다. 대학 재정의 2/3 가량을 등록금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추세를 보더라도 총수입에서 등록금 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이 매년 높아지고 있는 반면 재단전입금 수입 비중은 갈수록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사립대학들은 2004년 이후 매년 전체 운영지출 예산의 10%가 넘는 기금을 적립하고 있다. 사립대들은 교육부령에 따라 예산 혹은 추경 예산에 없는 적립금은 쌓을 수 없도록 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 언론의 추적조사에 따르면 사립대 적립금의 거의 대부분이 교육부령을 무시하고 적립금을 쌓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등록금을 마구잡이로 걷어들인 뒤 남는 돈을 학생들의 학비 감면 혜택 등으로 돌리지는 않고 각종 명목으로 적립금으로 쌓아온 것이다. 그러면서도 매년 물가 상승이나 재정 부족 등을 호소하며 등록금을 가파르게 인상해온 것이다.
사립대학들의 적립금 비율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04년 운영지출대비10.0%에서 2008년 13.4%까지 늘었다. 금액으로는 8,216억원에서 1조7,458억원으로 급증했다. 이 같은 액수는 전체 사립대의 장학금 및 학비감면을 위한 지출의 약 75~88%에 이르는 수준이었다. 사립대들이 적립금을 학생 지원에 사용했다면 장학금 및 학비감면에 모두 썼다면 학생들에게 혜택을 두 배 가까이 늘릴 수 있었다는 얘기다. 물론 사립대학들도 조금씩이나마 운영지출에서 장학금 및 학비감면 비중을 높여오고는 있으나 이들 대학이 등록금을 인상하는 비율과 비교하면 그 상승폭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난다.
<도표11> 국내 사립대학 수입 및 지출 현황
(주) 사립대학 회계정보시스템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거꾸로 사립대들이 이들 여윳돈을 적립하지 않고 등록금을 인하하는데 썼다면 2004년 이후 매년 6~7% 이상 올려온 대학 등록금을 전혀 인상할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이런 식으로 이들 사립대들이 필요한 예산을 훨씬 넘어서 과도하게 등록금을 걷어 각종 명목으로 적립하고 있으니 ‘등록금 장사’라는 비판이 전혀 무리가 아닌 셈이다.
더구나 이들 대학들이 적립한 내역을 살펴보면 건축기금 적립액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성격이 불분명한 기타기금 적립액이 두 번째로 많은 가운데 연구기금이나 장학기금, 퇴직기금 적립액은 거의 미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건축기금 적립은 수도권의 대부분 사립대들이 교내 건물을 신축하거나 부동산개발 붐에 편승해 중앙정부와 각 지자체들로부터 각종 세금감면 혜택 등을 끌어내 제2, 제3캠퍼스 등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건축물 건립 자금 등을 명목으로 쌓아놓고 있다. 등록금 수입으로 마련한 적립금으로 학생 지원이나 연구기금으로 쓰기는커녕 직간접적으로 부동산 투기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사립대들이 이처럼 막대한 적립금을 쌓아놓고 무분별하게 쓰고 있는데도 이를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사립대들이 무분별하게 적립금을 쌓는 관행부터 없애도록 해야 하며 현재 쌓아놓은 적립금을 등록금 인상률 억제와 연동하거나 학생 지원 등에 최우선적으로 사용토록 강제할 필요가 있다.
한편 사립대들은 재단 전입금 수입을 늘리고 다른 선진국들처럼 사학 재단을 적극적으로 사회에 개방해 외부 기부금 비중을 높이는 등의 노력을 기할 필요가 있다. 일부 사립대들은 사립대를 ‘사유재산’이라는 식으로 강변하고 있고, 실제로 상당수 사립대의 재단이 일부 가문 중심의 족벌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족벌식으로 재단을 운영하고 이들 재단을 사유물이라고 주장하면서 정부의 지원 확대나 기업과 지역사회, 또는 뜻 있는 유지들의 기부를 호소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행태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연구소가 이미 몇 년 전부터 지적한 바 있듯이 미국의 하버드대나 일본의 게이오대 등도 실제로는 학생/학부모 및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인사들을 재단이사로 올려 단순히 한 집안의 사유물이 아닌 국가와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공적 기관으로 자임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국의 사립대들이 ‘사유재산’ 운운하면서 학벌 서열구조에 안주하면서 등록금장사에 매달리는 현실을 고치지 않고서는 이미 세계 최고인 한국의 등록금 수준을 낮출 길은 요원하다.
정부와 정치권, 사학재단들은 잘못된 고등교육 구조를 통해 일반 가계에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등록금 부담을 지게 하면서도 근본적인 개혁방안을 내놓기는커녕 생색내기용으로 내놓은 취업후 상환제조차 학생들을 상대로 한 돈놀이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대학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고등교육 시스템 또는 교육 시스템 전반의 근본적 개혁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이런 부조리한 현실을 개혁할 의사와 역량을 갖춘 근본적 개혁세력이 부상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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