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3.22 부동산 대책’을 보면 국내 부동산 거품을 키워온 주범이 실은 정부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이번 대책 내용은 크게 당초 예정됐던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부활과 주택 취득세 절반 감면, 분양가 상한제 폐지 등으로 압축할 수 있다.

 

우선, DTI 규제 부활은 잘 뜯어보면 규제 부활이라고 보기 어렵다. 고정금리-비거치식 대출자에 대해서는 총부채상환비율을 예전보다 15% 포인트 이상 늘려주기로 했다. 대출 상환 방식만 바꾸면 대출한도를 오히려 총소득 대비 40~60%에서 55~75% 가량 늘려주는 효과가 발생한다. 이를 두고 DTI규제를 부활시킨 것이라고 해야 할지 의문이다.

 

DTI규제는 금융소비자들을 금융기관의 ‘약탈적 대출’로부터 보호하는 기본적인 보호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난해 8.29대책에서 올해 3월까지 DTI규제를 풀어 오히려 가계부채 급증을 유도했다.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유도하고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보다는 가계부채를 동원해 건설업계와 부동산시장을 부양하려 한 것이다. 그렇게 해 가계부채가 다시 급증하자 현 정부는 예정대로 DTI규제를 다시 묶는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고정금리-비거치식 대출자에 대해서는 DTI 한도를 늘려준 것이다. 소득의 40~60%를 빚으로 내는 가계가 정상적 가계생활을 할 것으로 보기도 어려운데, 조건이 붙기는 하지만 그 비율을 55~75%까지 늘려도 된다는 정부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취득세 감면 조치도 어처구니 없다. 이미 87조원 규모의 ‘부자감세’와 4대강사업 등 무리한 토건부양책 때문에 정부와 공공기관의 공적 채무가 2009년 이후 410조원 이상 늘어난 상태다. 더구나 지금도 지자체 재정난이 심각한 상태에서 지방세수의 약 30% 가량을 차지하는 부동산 취득세를 절반으로 줄여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니 수도권 지자체들이 반발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기획재정부 주장대로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거래세에 해당하는 취득세를 낮추는 게 기본원칙이라면 부동산 보유세를 함께 올리는 것이 기본원칙이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종합부동산세는 거의 무용지물이 됐고, 재산세도 미국에 비하면 10분의 1 수준으로 빈약하기 짝이 없다. 집없는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다주택 투기자와 건설업계를 지원해주는 대책일 뿐이다.

 

분양가 상한제도 어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지금도 주택 분양가가 높아 수도권의 경우 미분양이 속출하고 있고, 건설업계를 대변하는 건설산업연구원 조사에서도 지난해 수도권 입주 아파트의 28%가 빈집으로 추산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리를 디밀었다. 지금도 집값이 너무 높은 상태에서 빚을 내서 살 사람도 거의 다 사버려 수요가 고갈돼 있는데 얼마나 분양가를 더 올려받아야 주택 공급이 늘어난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이 같은 대책들로 집값 거품을 떠받치는 것도 어렵다. 왜 그런지 부동산 시장 흐름 측면에서 살펴보자. 먼저, 지난해 8.29대책 이후 약 4개월 가량의 부동산 약반등 랠리는 이미 마무리되고 있다. 필자가 여러 차례 지적했지만, 현재 부동산정보업체들이 발표하는  가격지수는 사실상 매도호가 위주의 조작에 가까워 신뢰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들 주택 가격지수가 하락할 경우 그 방향만은 대체로 맞다고 할 수 있는데 부동산 114 등 모든 부동산정보업체의 서울지역 가격 지수가 이미 하락으로 반전한 상태다.

 

따라서 길게 보면, 수도권 아파트 실거래가 기준으로 2008년 중반 (버블세븐은 2006년말) 고점을 찍고 대세하락중이라고 할 수 있다. 실거래가 기준으로 서울의 경우 2008년말 20% 가량 1차 하락후 1차 반등기 (2009.1~9월)에 15% 반등한 뒤 2차하락기(2009.10~2010.8)에 11% 가량 하락했다. 이어 지난해 8.29대책 이후 1개월 후인 2010년 10월부터 이어진 2차 반등 폭은 올해 2월까지 2.5% 정도에 불과해 반등폭이 매우 미미했다. 이미 정부의 온갖 부동산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주택시장의 반등 에너지가 고갈돼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DTI규제 부활 시점이 다가오기 전부터 이미 DTI규제 해제 효과가 거의 소진되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수도권 아파트 거래량도 지난해 12월 이미 단기 고점을 찍고 다시 재하락중이다.

 

결국 정부가 DTI규제를 해제해 막대한 가계부채를 기반으로 한 투기를 유도했으나 그 상승세가 4개월 가량 지속됐고 반등폭도 2.5% 정도로 미미한 상태에서 일단락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8.29대책 이후 가계부채만 폭증시키고 금리 인상으로 버블을 더욱 키운 셈이 됐다. 그런데 또 다시 현 정부는 이미 가계부채 폭증으로 더 이상 빚을 더 늘리기 힘든 상황에 이르고서도 꺼져가는 부동산 투기 심리를 불러일으키겠다며 취득세 감면과 분양가 상한제 폐지라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이 같은 현 정부의 부동산 투기 부양책은 긴 역사에서 뚜렷한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처럼 대책이라고 할 수 없는 대책이 버젓이 나오는 것은 한마디로 정부가 제 정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말로는 서민을 들먹이지만 실제로는 늘 건설업계나 부동산업계, 다주택 투기자 등 기득권 업계와 계층을 위한 부동산 정책을 내놓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부동산 거품을 빼야 할 시기에 오히려 부동산 거품을 더욱 키우는 위험한 일을 저지르고 있다. 이런 정부에게 서민을 위한 주거정책을 내놓기를 바라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국내 부동산 시장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상태에서 질주하는 버스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안타깝지만 이런 상태에서는 정부에 기대기보다 가계들은 자구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 자구책이란 정부와 언론이 부채를 늘리라고 권하더라도 그 권유에 응하지 말아야 하며 과도한 부채를 진 가구는 금리가 더 오르기 전에 열심히 가계부채 다이어트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때가 오면 난폭 운전을 한 버스 운전사에게는 반드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한 이미 가뜩이나 위험 수위에 이른 가계부채를 더 늘리라고 부추기고 정부와 정치권을 압박해온 건설업계와 이른바 ‘부동산 찌라시’들도 반드시 대중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제가 조세재정구조개혁을 추진하는 시민들의 모임인 가칭 '세금혁명당'을 추진하려 합니다. 이에 대해 관심 있는 분들은 http://on.fb.me/eou2PZ 에서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트위터에서 #세금혁명_ 주제어로 검색하셔도 좋습니다.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by 선대인 2011. 3. 30. 08:56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로 논란이 많습니다만, 애초부터 경제성 없는 것을 토건족 탐욕과 정치적 욕심 때문에 추진한 게 문제였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대선 공약으로 실컷 재미봤다가 정작 실행 단계에서 영남표 갈라질까봐 포기하는 실태를 보면 현 정부가 얼마나 사기꾼 기질이 다분한 정부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 같은 사기에 휘둘려야 하는 영남권 주민들을 포함한 이 나라 국민들 처지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동남권 신공항은 지금이라도 백지화된 게 다행입니다. 토건개발사업을 벌이는데 적극적인 국토해양부 산하 국토연구원이 추정한 동남권 신공항 두 곳의 비용편익비율은 0.73(밀양), 가덕도(0.70) 입니다. 쉽게 말해 투입한 비용에 비해 본전도 못 뽑는 장사라는 얘기입니다. 그 공항을 유치한 지역들에는 대규모 세금이 투입돼 당장은 좋아지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국민경제 전체로는 하지 말아야 할 투자라는 겁니다. 그런데 두 지역의 토호세력들은 동남권 신공항이 ‘지역경제발전의 견인차’라고 아귀다툼했고, 지역언론들은 마치 동남권 신공항만이 살 길인 것처럼 지역민들을 선동했죠. 하지만 그런 사업들로 건설업계와 지역 정치인들이 생색내고, 지역 언론사들의 광고 수입이 느는 동안 국민의 세금은 낭비되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동남권 신공항, 추진 과정과 백지화 과정이 씁쓸하지만 결국 지금이라도 포기해야 하는 사업이 맞습니다.

 

사실 지금도 전국 각지에 각종 지역 개발 명목으로 유치한 지방공항들이 ‘유령공항’으로 전락해 있는 상태입니다. 물론 동남권 신공항이 개항할 때 이 정도는 아닐지 몰라도 대규모 신공항을 지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계기로 지방공항의 경영실태를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아래 내용은 저의 책 <프리라이더> 1권에 수록한 내용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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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표1>

(주) 한국공항공사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대구 -19.8억원, 울산 -56.2억원, 청주 -58.8억원, 양양 -72.1억원, 무안 -68.2억원, 광주 -14.2억원, 여수 -73.0억원, 사천 -28.5억원, 포항 -55.4억원, 군산 -20.2억원, 원주 -13.9억원.

 

2009년 11개 지방공항의 적자 현황이다. 이들 공항의 적자 총액은 480억원. 이 가운데 겨우 800만원의 항공수익을 올린 양양공항을 포함해 6개 공항은 2009년 연간 10억원에도 못 미치는 항공수익을 올렸다. 반면 <도표1>에서 보는 것처럼 국내 공항 14개 가운데 흑자를 남기고 있는 공항은 김포, 김해, 제주공항 단 세 곳뿐이다. 이외에도 386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2002년말 완공됐던 경북 예천공항은 문을 연지 1년 반 만인 2004년 폐쇄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에 앞서 신규 공항이 개항됐다는 이유로 속초, 강릉, 목포공항도 폐쇄돼 군용으로 쓰이고 있다. 총사업비 1317억원이 투입된 울진공항은 다 짓고 나서도 항공수요가 없어 비행훈련원과 영화 촬영의 무대로 쓰이고 있다. 영화 세트장 치고는 너무 비싼 세트장인 셈이다.

 

이런 상태에서도 또 다른 지방공항들이 아직도 추진되고 있다. 총사업비 1450억원이 들어가는 김제공항의 경우 476억원을 들여 건설부지를 이미 매입한 상태지만 수요 부족 문제로 공사 진척이 어렵다. 공항을 짓는데만 돈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이미 지어진 공항을 놀릴 수 없으니 공항을 활성화한다는 이유로 또 이런 저런 거액의 혈세를 투입한다. 예를 들어, 양양공항의 경우 시설이 미비해 이용 승객이 적다는 핑계로 비행장시설 및 터미널시설 확장공사를 통해 최초 사업비 1800억원보다 1767억원을 더 투입해 모두 3567억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항공수요는 해가 갈수록 더 떨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2002년 4월 개항이후 2010년까지 양양공항의 누적 적자액은 7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식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 추진된 각 공항별 건설 및 증설 사업비만 모두 3조원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짓는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지방공항을 운영하면 할수록 적자가 늘어나는 게 문제다. 만약 2009년 수준의 11개 지방공항 적자가 계속된다고 본다면 10년마다 약 5000억원 가량의 적자가 늘어나게 된다. 물론 지방공항 적자는 한국공항공사가 다른 세 개 흑자 노선의 수입으로 메우게 될 게 뻔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매우 낙관적으로 봐준 것이다. 경부고속철도 2단계 구간 개통으로 지방공항들의 항공수요는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2014년 계획대로 호남고속철도 오송~광주 송정간 182.2㎞ 구간이 개통되면 항공수요 감소는 더욱 극심해질 것이 뻔하다. <도표2>에서 보는 것처럼 국내선 항공수요는 2004년 4월 KTX 1단계 개통을 전후해 연간 2100만명 수준에서 1700만명 수준으로 급감했음을 알 수 있다. 경부선 및 호남선 KTX 2단계 개통이 완료되면 국내선 항공수요는 한 계단 더 떨어질 것이다. 좁은 국토에서 대체제 관계에 있는 국내공항과 KTX의 이동시간 및 운임을 고려할 때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이다.

 

<도표2> 

(주) 국토해양부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by 선대인 2011. 3. 29. 09:24

제가 ‘나무를 심은 사람’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시절이었습니다. 군복무를 마치고 갓 대학에 복학한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사회 개혁에 대한 열망은 강했으나 여느 대학생들처럼 요지부동처럼 보이는 현실에서 무기력감을 많이 느끼고 있던 때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나는 왜 살아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속으로 되뇌어보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지금의 젊은 후배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취직 걱정 등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상당히 증폭돼 있던 시기였습니다. 학교 기숙사 뒤에 있던 무악산에 올라 남몰래 눈물을 훔친 적도 있었습니다.

 

그 무렵 우연히 애니메이션 ‘나무를 심은 사람’을 접했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프랑스 문호 장 지오노의 동명 소설을 아름다운 파스텔 톤으로 그려낸 애니메이션입니다. 처음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난 뒤 느꼈던 감동을 잊지 못합니다. ‘나무를 심은 사람’ 엘지아르 부피에의 삶이 당시의 제 가슴을 뒤흔들었기 때문입니다.

 

엘지아르 부피에는 프랑스의 프로방스 산촌 여행길에서 소설 속 화자가 만난 노인입니다. 그는 날선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황무지에서 매일 도토리를 파종하고 있습니다. 당시 55세였던 엘지아르 부피에는 아내와 아들을 여의고 황무지에 들어와 양을 치면서 도토리를 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황무지의 계곡에 사는 주민들은 환경의 영향 때문에 심성이 사나웠으며 서로 으르렁댔습니다. 부피에는 아무 희망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황무지에서 아무도 알아주지도, 시키지도 않는 일을 묵묵히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가 하는 일이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마치 구도자같은 그의 성실한 노동은 계속됐습니다. 1, 2차 세계대전조차도 그의 수고로운 노력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10년, 20년이 지나면서 그의 노력은 조금씩 기적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뿌린 씨앗들은 울창한 숲을 이루었습니다. 메말랐던 계곡에 다시 물이 흘렀고 새들이 깃들었습니다. 모진 칼바람이 멈추고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불었습니다. 사람들이 떠나던 마을이 사람들이 찾아오는 마을로 변했습니다. 아귀다툼 소리가 그치지 않던 곳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황무지였던 그 곳이 울창한 숲으로 변하는 과정이 사람들에게는 저절로 그렇게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변화가 보잘것없는 한 촌로의 한없이 조용하면서도 부지런한 손길에서 비롯됐음은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을 삭막한 황무지처럼 느낄지도 모릅니다. 소리쳐도 메아리 없는 황무지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무력감을 느낍니다. ‘세상은 바뀌지 않아. 나서 봐야 나만 손해야’라는 생각으로 세상을 향해 난 마음의 문을 꼭꼭 걸어 잠급니다. 가끔은 용기를 내보지만, 변화를 낙관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분명 지금 대한민국은 여러 가지 모순과 질곡에도 불구하고 부피에가 마주한 황무지보다는 훨씬 더 좋은 여건을 갖고 있습니다. 당장은 상식 이하의 불량정부 때문에 고통받고 있지만, 그 같은 현실 때문에 다른 세상을 꿈꾸는 기운과 에너지 또한 커지고 있습니다.

 

부피에가 마주했을 황무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더구나 부피에는 아내와 아들을 저세상으로 먼저 떠나보낸 사람입니다. 황무지에도, 그의 마음 속에서도 늘 스산한 바람이 멈추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도 그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부피에가 다른 모든 이들처럼 황무지의 현실을 주어진 것으로 생각했다면 수십 년 후 울창한 숲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복한 삶은 가능했을까요. 지금 대한민국에서 특권층 프리라이더들이 활개치며 국가의 자원을 농단하는 현실은 많은 이들에게 암담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암담한 현실을 주어진 것으로만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삶도, 후대의 삶도 달라질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지금 이 나라가 우리 아이들을 마음껏 키우고 싶은 나라가 돼가고 있습니까? 저는 그렇게 느끼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피땀 흘려 일군 이 나라가 점점 우리 아이들을 키우고 싶지 않은 나라가 돼갈 때 우리는 한없는 서글픔과 무기력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나라를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자신의 재능을 키우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고 싶다는 열망은 여느 부모처럼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심는 한 그루의 나무가 당장은 우리가 바라는 수준의 결실을 안겨주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보지만 우리 당대에는 결실을 아예 맛볼 수 없다고 합시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우리가 심은 나무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풍성한 결실을 안겨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습니까. 그런 미래를 볼 수 있다면 부피에가 눈을 감을 때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호소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조세정의를 바로세우고 재정구조개혁을 위한 한 그루 나무를 각자의 생활영역 속에서 심어가자고. 저는 지금 우리의 결의와 행동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나무를 심은 사람’이 제게 주는 교훈입니다.

 

장 지오노의 소설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캐나다의 애니메이션 작가 프레데릭 백은 또 한 사람의 부피에입니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표현을 패러디하자면, 그는 5년 반에 걸쳐 ‘이태리 장인처럼 직접 한 장 한 장’ 그림을 그려 이 아름다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작업 과정에서 그는 한 쪽 눈을 실명했을 정도로 이 작품에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의 제작과 상영 이후 캐나다에서는 대대적인 나무 심기 운동이 벌어져 2억50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프레데릭 백은 애니메이션을 완성한 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나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이 큰 격려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뜻대로 ‘나무를 심은 사람’은 대학시절의 저에게 큰 위안과 격려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세금혁명’을 출간하면서 저도 다른 분들께, 특히 이 땅의 젊은 후배님들께 손을 내밀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은 상황이 암울해 보이지만 함께 묵묵히 노력하면 얼마든지 세상은 바꿀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고, 잘못된 현실을 바꾸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그 같은 노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저는 진정한 세금 혁명이라고 믿습니다. 이 나라 납세자들의 공동자금인 세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세금을 반칙의 제왕들인 특권층 프리라이더들의 배를 불리는데 지금처럼 쓰이도록 놔둘 것이냐, 아니면 우리와 우리 아이들을 위한 희망찬 미래를 만드는데 쓸 것이냐 결정할 기로에 서있습니다. 저는 물론 세금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최선의 돈’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 책이 진정한 세금 혁명으로 가는 조그만 주춧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합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제 대학시절 ‘사상의 은사’로 여겼던 리영희 선생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분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대기를 감싼 잿빛 황사가 많이 옅어졌다고 믿습니다. 평생을 참 언론인, 참 지식인으로 사셨던 리영희 선생님은 한국 현대사에 진실의 나무를 심은 사람입니다. 새벽까지 원고와 씨름하는 날들이 거듭될 때도 그 분이 남기신 말씀이 큰 힘이 됐습니다. 이 책을 삼가 리영희 선생님 영전에 바칩니다.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우리에게는 현실의 가려진 허위를 벗기는 이성의 빛과 공기가 필요하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가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괴로움 없이는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출처: <우상과 이성>

 

 

 

프리라이더 1권에 이어 프리라이더 2권 <세금혁명: 세상을 바꾸는 최선의 돈>이 출간됐습니다. 또한 제가 조세재정구조개혁을 추진하는 시민들의 모임인 가칭 '세금혁명당'을 추진하려 합니다. 이에 대해 관심 잇는 분들은 트위터에서 저(@kennedian3)를 팔로우하시거나 #세금혁명_ 주제어로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by 선대인 2011. 3. 28. 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