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YTN 정문 앞에 전경버스 4대를 배치하는 가운데 YTN노조가 파업 찬반 투표 결과를 오늘(9월 10일) 오후 발표하기로 함에 따라 YTN사태가 더욱 긴박해지고 있다.

경찰은 또 YTN 사측이 노종면 노조위원장 등 노조원 6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함에 따라 김기용 남대문서장이 직접 나와 현장 조사를 벌였으나, 노조의 강력한 항의로 돌아갔다.

YTN노조는 “현직 경찰서장이 단순 고소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바로 다음날 기다렸다는 듯이 현장에 나타나 위력 시위를 하는 것은 노조에 대한 정권 차원의 협박 시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YTN 내부에서는 사태의 해법에 관한 선후배 기자간 논쟁이 벌어져 눈길을 모으고 있다. 노조에 의해 ‘불량간부’로 찍혔다는 한 국장급 간부가 ‘조건 없이 제자리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데 대해 통일외교전문기자인 왕선택기자가 이를 조목조목 비판한 것. 아래에 두 사람의 글을 순서대로 게재했다. 왕기자의 글은 분량 관계상 내용을 줄여 옮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YTN 정문 앞에 걸려 있는 YTN 노조 지지 플래카드

<<이제 조건 없이 제자리로 돌아갈 때입니다>>

노조로부터 불량간부로 지목된 ...국의 김0입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후배들인 노조원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이제 구본홍사장 퇴진운동을 조건없이 접고 온전히 제자리로 돌아갑시다. 노사모두가 패자가 되는 파국의 검은 그림자가 점차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길만이 파국을 막는 방안이라고 믿습니다. 노조가 사측이 들어 줄 수 없는 조건을 내걸고 한 치의 양보도 없다면 그 결과는 무엇이겠습니까? 아무도 원치 않는 공권력의 개입을 부를 것이 뻔합니다. 이에 대해 노조는 파업으로 맞설 수 있겠지요. 그 순간 한국의 CNN을 꿈꾸며 우리모두의 피와 땀이 배인 YTN의 경쟁력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매출 감소는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아무도 원치 않는 결과가 올 것이며 그 후유증을 치유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저는 다음 네 가지 이유로 노조가 구사장 퇴진 운동을 조건 없이 접고 제자리로 돌아가자고 호소합니다.

첫째, 노조의 구사장 퇴진운동이 80년대 독재정권에 항거하던 저항권의 발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노조는 인사철회와 구사장의 퇴진만을 요구하며 파업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는 노조의 주장이 상당한 명분과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코스닥상장업체에서 정식 절차를 거쳐 선임된 사장의 퇴진을 도를 넘어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현행 법률과 사규에 비추어 불법입니다. 설사 사장 선임절차를 규정한 법률과 규정이 불비하고 소속원의 의지를 정확히 담아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악법도 법이기 때문에 지켜야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노조는 구사장 퇴진 요구가 절대선인 양 주장하며 공공연하게 공권력투입과 사법처리를 감수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일부 노조원에게서는 투사가 된 듯한 광기를 느낍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의 주장이 설득력과 정당성을 담보하려면 공정방송을 기치로 내건 구본홍사장 퇴진운동이 저항권 행사 차원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노조의 주장과 행동은 과거 군부독재시대때 저항권 차원에서 일어났던 민주화 투쟁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공정방송을 얘기하면서 정치권의 힘을 빌리고 있습니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격려방문이 있었습니다. 이미 상당수 후배노조원들의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노조의 구본홍사장 퇴진운동은 공정방송을 볼모로 한 정치투쟁으로 변모됐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설령 노조의 힘이 강해 이번 싸움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관행을 정당화함으로써 두고두고 YTN의 역사에 오욕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노조원들이 훗날 데스크도 되고 그중에서 경영진도 나올 것입니다. 그때 지금과 똑같이 후배들이 정치적 이슈를 내세워 몰아 부친다면 여러분들은 어떤 명분으로 막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여러분 후배에게 당하는 치욕의 역사가 되풀이 될 것입니다.

 셋째, 형식적인 명분을 내세운 노조의 극한투쟁이 우리 모두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 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노조원들의 최근 행동을 보면서 과거 경인방송 iTV 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몇 년전 iTV 노조는 당시 사주가 증자 등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이유를 내세워 허가당국인 당시 방송위원회에 방송국 재허가를 내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방송위원들은 보란듯이 재허가를 거부함으로써 회사가 문을 닫고야 말았습니다. 종사원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 실업자 신세가 되고 말았지요. 이후 당시 노조집행부가 노조원들의 생계를 어떻게 책임졌겠습니까? YTN도 지금 내년 3월 재허가를 받아야 하고 이달 중으로 관련서류를 제출해야합니다. 또한 소유구조를 공적구조에서 사적구조로 바꾸는 민영화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막을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노사가 분열해서 딴 소리를 낸다면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넷째, ‘코드인사는 괜찮고 캠프인사는 안 된다.’는 노조의 주장은 YTN구성원들을 스스로 모독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기업소유구조로 돼 있는 YTN은 과거에 정권과 가까운 인사가 사장이 안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임 표완수 사장이 노무현 정권과 전혀 무관한 인사였습니까? 아니면 백인호 사장이 김대중 정권과 전혀 무관한 인사였습니까? 이들이 당시 정권과는 전혀 무관한 어디서 독립운동이나 시민운동을 하다 온 분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표완수사장 시절과 그 이전 사장시절에 우리가 정권의 앞잡이 노력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보도국 기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공정방송에 대한 의지와 공정방송위원회라는 제도를 통해 우리는 공정방송의 관행을 정립해 왔습니다. 저는 구본홍사장이 현 대통령의 캠프에 참여한 캠프인사이긴 하지만 과거의 코드인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YTN구성원들의 불같은 의지와 공정방송제도의 정비로 우리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공정보도를 할 수 있습니다.

후배 노조원 여러분! 다시 한 번 호소합니다!!!!! 조건없이 구본홍사장 퇴진운동을 접고 온전히 제자리로 돌아갑시다. 얼마 전까지 선후배가 이마를 맞대고 기사 한줄 한줄을 가지고 씨름하며, 특종을 챙기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치열하지만 온기가 느껴지던 선후배의 위치로 돌아갑시다. 결코 노조가 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후퇴는 대기업 노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퇴로없는 노사간 협상을 하다 난파 직전에 통 큰 양보를 함으로써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사례는 노동운동사에서 얼마든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벌여온 투쟁의 참의미는 조금도 가감없이 YTN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3년 전 보도국장추천제를 개선하자며 공개적인 글을 올린 이후 다시는 논란에 휩싸이지 않아야겠다는 결심을 했기 때문에 이런 글을 올리는 것을 매우 망설였습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의 주장도 경청하는 아량을 가져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김 선배께>>

 김 선배께서 고심 끝에 올리신 글 읽으면서 참담한 마음 가눌 길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역지사지라는 말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절실하게 깨닫게 됐습니다. (중간 생략) 게시글에서 김 선배께서는 노조가 사장 퇴진 운동을 접어야 한다고 하시고 그 이유로 네 가지를 드셨습니다.

첫째 이유는 이번 투쟁의 성격에 대한 말씀이셨습니다. 노조의 투쟁이 80년대 독재 정권에 저항하던 민주화 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투쟁을 중단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저도 동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 노조는 현재 공정방송 사수를 위해 구본홍 사장 선임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데 이 같은 우리 노조의 투쟁은 생존권 차원에서 이해되는 것이 오히려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공정성은 YTN이 창립 15년만에 대한민국 주요 언론으로 급성장하는 기적적 발전의 기반이 됐고 따라서 다른 언론사와 비교할 때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우리만의 장점이 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현 대통령의 특보를 지냈던 분이 YTN의 사장으로 들어온다고 하는데 이것은 대한민국 언론시장에서 우리 회사의 최대 강점인 공정성을 심대하게 훼손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언론의 중요한 책무 가운데 하나가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고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 기관이 정책이나 정치를 잘못한다고 판단되면 불가피하게 비판할 수밖에 없는데 대통령 특보 출신 사장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보도를 보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것은 산을 산이라 하고 물을 물이라 하는 것처럼 너무나도 명백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정성으로 성공한 회사가 공정성 이미지를 훼손당한다면 회사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회사 발전의 근간인 공정성을 잃는다면 한국 사회에서 YTN의 위상이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언론사로서 자긍심은 뿌리째 뽑힐 것이고 회사의 수입도 줄어들게 될 것이며 결국 1,2년 안에 다른 조그만 케이블 TV채널과 다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언론사의 상품은 보도입니다. 보도가 형편없으면 그 상품은 팔릴 수 없습니다. 야구를 못하는 프로야구팀은 관중의 외면을 받습니다. 공정하지 못한 언론은 야구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들로 구성된 프로야구팀과 다를 바 없습니다. 따라서 이번 노조 투쟁의 성격은 언론 기업으로서 생존하고 발전하기 위한 불가피한 대응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불법성에 대해서도 일부 말씀이 있으셨지만 언론사로서 공정방송에 위해가 되는 상황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불의에 해당하는 일입니다. 불의에 저항하지 않으면 언론인의 자격을 잃는 것이며 자격이 없는 언론인이 다니는 언론사를 우리는 사이비 언론사라고 부릅니다. 우리 사회의 공적인 사이비 언론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법성 논란과 불의에 대한 저항이 충돌할 때 언론인이라면 불가피하게 약간의 불법적 요소를 감수해야 한다고 할지라도 불의에 대한 저항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봅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노조 집회에 참석한 사실을 두고 정치 투쟁의 성격이 있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민주당 의원들이 집회에 참석하겠다는 것을 노조 지도부가 거부했고 행사가 끝난 뒤 집행부와 면담하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들었습니다.

둘째, 노조가 승리한다고 해도 오욕의 역사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셨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역시 심각한 인식의 차이가 있음을 느낍니다. 노조가 원하는 승리에 대해 오해하시고 있다는 점을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노조의 승리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공정방송 수호입니다. 공정방송의 틀을 유지하거나 발전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노조의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공정방송을 지켜내고 발전시키는 것이 역사적으로 오욕이 될 것으로 여길 수는 없는 일입니다. 노조의 승리는 공정 방송을 지지하는 모든 사람의 승리가 됩니다. YTN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 우리가 공정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노조의 투쟁 목표는 바로 대통령 특보 출신 사장이 들어오는 것을 부당하다고 판단하고 그에 대해 강력하게 저항함으로써 우리가 공정방송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대내외적으로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YTN 노조는 공정방송을 지지하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이미 승리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는 노조의 주장에 상당한 명분이 있다고 김 선배도 인정하셨습니다. 명분이 명확하게 드러났으면 그에 따라 처신하면 될 일입니다. 명분은 인정할 수 있지만 현실이 다르게 전개되니 현실을 따르자는 말씀은 언론인으로서 하실 말씀이 아닌 듯합니다. 훗날 노조원들 가운데 선배들이 후배들로부터 같은 방식으로 당할 것이라는 걱정을 하셨지만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 상황은 선배들이 후배들로부터 당하는 것이 아니라 후배들이 선배들로부터 배신당하는 상황으로 여기고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누가 봐도 명명백백하게 YTN의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가운데 언론인의 책무를 교육하셨던 선배들이 오히려 진실을 외면하고 불의에 저항하는 후배들을 막기 위해 용역깡패를 동원하는 상상 밖의 조치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선배가 정당하지 못한 일을 하고 후배들이 그에 대해 비난한다면 그것은 후배들을 탓할 일이 아니라 선배가 먼저 반성해야 마땅한 상황이 됩니다. 15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하면서 여러가지 일을 겪었고 판단하기 어려운 많은 일을 겪었지만 이번 일은 대단히 명백합니다. 대통령 특보 출신의 사장이 들어오면 우리의 공정방송틀은 심각하게 훼손되며 이는 반드시 저항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셋째, 경인 방송의 사례와 비교를 하셨는데 이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경인 방송 노조는 명분과 실리 면에서 매우 어리석은 전략을 택했고 투쟁 초기 단계에서부터 논란이 됐었습니다. 공정방송 수호를 위해 투쟁중인 YTN 노조를 예전의 경인방송 노조와 비교하시는 것은 정말로 지나치시다는 말씀 이외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넷째, 과거 노무현 행정부나 김대중 행정부에도 코드 인사가 있었는데 이명박 대통령의 캠프 인사와 다를 바 없다면서 노조가 과잉반응을 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일견 일리가 있고 이 부분에 대해 노조 집행부가 유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코드 인사와 캠프 인사는 내용적으로 볼 때 정도의 차이는 있습니다. 일반 시청자 대중이 참고 넘어갈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 특보 출신 인사는 너무나도 명백한 편향성의 근거가 되며 그런 분이 언론사 사장으로 들어오면 누구라도 그 언론사의 보도 공정성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코드 인사나 캠프 인사가 다를 게 없다고 하시는 것은 마치 누런색 사자나 누런색 노루나 색깔이 같으니 서로 다를 게 없다고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순백색의 아름다운 색깔을 원하지만 우리가 처한 조건으로 보면 누런색 정도의 흠결은 우리가 용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색깔이 같다고 노루나 사자가 같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노루를 울타리 안에 들여놓으면 배추밭을 망치는 정도로 그치지만 사자를 울타리 안에 들여놓으면 집식구들을 모두 잡아먹게 됩니다. 공정방송 제도화로 공정방송을 이룰 수 있다고 하셨는데 이 부분은 저의 소신과 일치하는 부분이므로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공정방송은 말로만 하자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엄격한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부분을 거듭 강조드리고자 합니다. 더구나 사장으로 들어오시는 분이 아직 사나운 맹수인 사자인지 아니면 평화적인 노루인지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우리는 본능적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사자인지 노루인지 증명을 하시는 것은 사장으로 오실 분이 하셔야 합니다.

오히려 지난 몇 주 동안 벌어진 일을 돌이켜 보면 회사 젊은 직원들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선량한 보통 직원들을 투사로 변모시키고 사태를 악화시키는 잘못된 정책을 잇따라 감행함으로써 노조의 투쟁을 가열시키는 상황을 보면서 노루가 아니라 사자일 것이라는 심증에 무게가 쏠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투쟁하는 것이고 그것도 생존권 차원의 투쟁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10년전 노조 창립을 위해 밤을 새워 일했던 성실한 노조원이었고 YTN 공채 1기 사원이라는 명예와 책임감을 자랑스러워하는 젊은이였지만 이제는 45세를 바라보는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고 있고 언론인 경력도 벌써 15년을 채워가는 기자가 됐습니다. 저도 세상 일이 복잡하다는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후배 기자들이 원하는 순결한 세상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부분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일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자명합니다. 매우 부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고 이에 저항하지 않으면 언론인으로서 자격이 없어지게 되고 우리가 저항하지 않으면 YTN은 그저 그렇고 그런 또 하나의 사이비 언론사가 됩니다. 그런 상황을 방치할 수 없어서 투쟁을 하는 것입니다. (하략)

 

by 선대인 2008. 9. 10. 15:13
 
9월 1일 일본의 유력지인 아사히신문의 서울특파원인 이나다 키요히데 기자가 최근 경제 현안에 대한 저희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해 소장님을 대신하여 부소장인 제가 인터뷰에 응하였습니다. 주제는 한국 부동산 버블의 붕괴 가능성과 이와 관련된 한국 경제 위기론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나다 기자는 이번 인터뷰는 자신들이 준비중인 기획기사의 큰 방향에 대해 저희 연구소의 자문을 듣는 한편 관련 코멘트를 인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나다 기자의 한국어 실력은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말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데는 큰 불편이 없는 듯 했습니다. 약 한 시간 반동안 진행된 이 인터뷰에서 이나다 기자는 크게 네 가지 질문을 했는데, 우선 이에 대한 저의 답변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제 답변은 연구소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음을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질문 1. 최근 수도권의 미분양 물량이 급증하고, 서울 강남과 수도권의 집값이 떨어지는 이유가 뭐냐?


답변 1: 집값이 너무 높은 상태에서 공급이 초과상태다. 이미 2006년 말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모두 66만호가 초과 공급된 상태였다. 2007년부터는 수도권에서도 공급 과잉 상태로 돌아섰다. 현재의 집값 수준에서는 자기 돈이든, 은행 돈을 빌려서든 집을 살 사람은 이미 다 샀다. 그런데도 이미 발표한 광교, 판교, 화성 동탄 등 수도권 신도시에서 대규모 물량 공급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 급등, 경기 위축, 금리 상승 등 국내외 거시경제 환경이 악화되면서 부동산 버블 붕괴 조짐이 가시화되고 있다. 수도권 미분양 물량 증가와 집값 하락 현상도 바로 이 때문이다.


2. 한국의 부동산 버블이 붕괴할 가능성이 있느냐? 버블이 붕괴한다면 가계 부채로 인한 경제 충격이 어느 정도라고 보느냐?


답변 2: 모든 버블은 어떤 식으로든 붕괴하기 마련이다. 십수년간 부동산 버블을 경험했던 일본의 버블도 붕괴하지 않았느냐? 이미 한국의 부동산 버블도 붕괴되는 상황에 진입했다. 그 증거로 미국과 일본에서도 집값 거품이 꺼지기 전에 집값은 높이 유지되는 가운데, 거래량은 확 주는 ‘부동산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1년반에서 2년가량 선행했다. 한국에서도 그런 현상이 2007년 상반기부터 나타나고 있다. 또 지금 한국의 은행들은 대출 자금이 부족해 CD와 은행채 발행, 단기 외화 차입 등을 통해 예수금 대비 140%의 초과 대출을 하고 있다. 이렇게 자금 조달 비용이 높아지니 시중금리도 뛰고, 환율이 오르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과거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 직전에도 똑같이 나타났던 현상이다. 이런 현상들을 보더라도 부동산 버블 붕괴는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권이 버블 붕괴를 막는데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한국의 부동산 버블은 가계 빚으로 쌓아올린 모래성이다. 2001년 340조원이던 가계 부채가 올해 2분기 현재 660조원으로 늘어났다. 증가한 320조원의 60% 정도가 부동산 담보대출이다. 과거 일본의 부동산 버블 때는 상업용 건물을 중심으로 한 기업이 많이 가담했지만, 한국의 부동산 버블에는 가계가 대부분 가담한 것이 차이다. 일본에서는 부동산 버블 붕괴에도 불구하고 가계가 비교적 거뜬하게 버텼지만, 이번에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면 한국 가계 경제는 심각한 충격을 겪게 될 것이다. 또 가계 부채로 시작된 경제 충격이 매우 깊고 큰 파장을 장기간에 걸쳐 일으킬 것이다. 적어도 2003년에 있었던 카드채 버블 붕괴보다 몇 배나 더 큰 경제적 충격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3. 한국 정부가 최근 내놓은 '8.21대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 특히 미분양 물량이 늘어나는데 한국 정부가 또 다시 추가 신도시 개발 계획을 발표한 이유가 뭐냐?


답변 3: 한 마디로 건설업체들에 대한 종합 선물세트다. 환매조건부 미분양물량 매입은 자금난을 겪고 있는 건설회사들에게 거액의 금융보조금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추가 신도시 개발 계획은 한국 정부가 얼마나 상황을 오판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지금 미분양 물량이 생기는 것은 공급 과잉의 명백한 징표인데, 현 정부는 노무현 정권의 지나친 규제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 스태그플레이션 등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것이다. 만약 이를 알고서도 추가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다면, 이는 한국의 국토해양부 관료들의 자기 밥그릇 챙기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은 OECD국가 가운데 건설산업의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들인데, 일본의 토건족과 마찬가지로 건설업체와 건설관료들 사이의 강한 기득권 구조가 형성돼 있다. 특히 국토부 관료들은 자신들의 미래 직장이기도 한 토공과 주공의 통폐합을 원하지 않는다. 국토부가 산하 토공과 주공의 통폐합을 막기 위해 ‘몇 년 후 주택 공급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황당한 논리를 동원해 일거리를 만든 것일 수도 있다. 


4. '9월 위기설'이 도는데 어느 정도 실체가 있는 것이냐?


답변 4: ‘9월 위기설’은 외국인 만기 채권의 대량 환매가 몰린 것 때문에 불거졌다. 물론 기획재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시중에 떠도는 ‘9월 위기설’이 당장 외환위기의 형태로 현실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추후 외환위기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현재 국내의 외환 보유고가 2400억달러가 넘는다고 해도 수백억달러가 미국 연방주택금융공사인 페니메이와 프래디맥에 묶여 있다. 또 한국투자공사(KIC)가 얼마나 손실을 보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외환보유고가 빠르게 줄어 2000억 달러 밑으로 내려간다면 패닉이 발생해 외환 유동성 위기가 생길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지만 말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위기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 부동산 버블 붕괴 조짐과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층의 붕괴, 실업률 증가 및 비정규직의 확대, 자산 및 소득 양극화 등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 누적돼온 구조적 문제들이 모두 폭발 직전에 있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들이 최근 급격히 악화된 국내외 거시경제 지표들과 맞물려 한꺼번에 극적으로 분출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9월에 당장 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서, 한국 경제에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한국 경제는 모든 문제들이 곪을 대로 곪아 ‘계속되는 위기’에 시달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 정부의 정책 능력이 시대착오적일 정도로 떨어져 경제 주체의 불신을 부르고, 위기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이나다 기자의 질문이 끝나자 동행했던 아사히 지국의 한국인 기자가 한 가지 질문을 곁들이더군요. “많은 이들이 한국의 부동산 버블은 꺼지지 않을 거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더군요. 저는 즉답을 하는 대신 이나다 기자에게 물어봤습니다. “소위 ‘부동산 불패 신화’는 일본의 버블기에도 만연하지 않았느냐?”고요. 그랬더니 이나다 기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본에서도 일본의 부동산 버블은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만연했지만 결국 버블이 붕괴되고 나니 환상이었음이 드러났다”고 답하더군요. 제가 말을 받아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면 한국의 ‘부동산 불패신화’도 함께 붕괴할 것”이라고 했더니, 이나다 기자가 표현이 재미있다는 듯 메모를 하더군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나다 기자는 “일본에서는 과거 부동산 버블을 경험했기 때문에 현재 한국의 상황에 대해 관심이 많다”며 “이번 기획기사도 그런 점에서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며칠 안으로 부동산 침체와 미분양 사태가 가장 심각한 대구 지역을 찾아 현장 르뽀를 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도움이 더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말한 뒤 헤어졌습니다.



이나다 기자와의 인터뷰 소감


일본이 과거 부동산 버블을 겪었던 나라인지라 상대적으로 부동산 버블 붕괴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은 것 같습니다. 이처럼 외신들이 한국의 부동산 버블 붕괴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그만큼 외국인의 시각으로 보기에도 부동산 시장 등 한국 경제 전반의 상황이 위태로워 보인다는 뜻일 것입니다. 현 정부는 ‘경제 위기설’과 관련된 영국 더 타임스의 최근 보도나 일본 니케이 신문의 보도를 과장보도라고 일축합니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이를 외국인들의 음모론적 시각으로 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정부로서는 실제로 위기가 있다고 해서 이를 공개적으로 시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무작정 외국 언론의 보도를 과장보도나 음모론적 시각으로 치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본의 아사히신문도 그렇지만, 영국 더 타임스나 일본 니케이신문 등은 각기 그 나라를 대표하는 언론들입니다. 한국의 언론들보다 훨씬 수준이 높은 언론들입니다. 그런 외국 언론들이 왜 한국 경제의 위기 상황에 대해 잇따라 보도하는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반성이 필요할 때입니다. 물론 외신들은 한국의 전반적인 상황을 구체적으로 몰라 때로 엉뚱한 보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우리는 너무 익숙해 보지 못하거나 또는 정관언 유착 등을 통해 보도할 수 없는 것을 정직하게 보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외환위기 때 한국 언론은 마지막까지 정부당국의 말만 믿고 외환위기 가능성을 조기 경고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최근 한국 언론의 보도도 그때에 비해 크게 나아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소위 메이저 신문들은 너무 친정부 성향이 강해 더욱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외신 보도를 통해 한국 경제가 외부에서는 어떻게 비치는지를 살펴보는 기회로 삼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 글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의 '부동산문제'란에도 띄웠습니다. 좀더 깊이 있는 정보와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방문해주세요. 이 글은 김광수소장님이 쓰신 글이 아니며 연구소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으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9. 7. 08:35


어제(9월 4일) 열렸던 MBC 100분토론을 오늘 오전에 인터넷으로 보고 정부 여당의 한심한 인식에 어이가 없어 한 마디 한다. 최근의 경제위기설 등에 대해서는 김태동 교수나 홍종학 교수 등의 반박이 어느 정도 있었고, 쓰자면 길어지니 다음 기회로 미루겠다. 9월이 끝난다고 경제 위기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쓸 기회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세 정책에 대한 정부 여당 쪽 인사들의 터무니없는 거짓말에 대해서는 지금 말을 안 할 수 없다. 아래에서 딱 두 가지만 짚겠다.

 

1. 중저소득층에 20%의 감세 혜택이 돌아간다는 거짓말에 대하여

 

먼저, 감세의 혜택이 중산서민층에 상당 부분 돌아온다는 주장에 대해 알아보자. 100분 토론에서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기획재정부 자료를 인용해 감세의 혜택이 중산서민층에 20%, 중소기업에 66%, 대기업에 24% 간다고 했다. 어떻게 숫자를 짜맞췄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다.

소득세율 인하에 대해 한 번 살펴보자. 국세청의 2007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06년말 기준으로 연말 정산 대상 근로자 1259만명 가운데 하위 47.6%는 근로소득세 면세 대상이다. 한마디로 현행 제도로도 하위 절반가량은 이미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내고 있다는 얘기다. 다음으로 근로소득세를 내는 52.4%를 5개 분위로 쪼갤 때 최하위 분위는 평균 4.0만원, 차하위 분위는 평균 15.8만원을 냈다. 이들 2개 분위 계층에 대해 세율을 2% 인하한다고 해도 혜택은 넉넉히 잡아도 각각 4000원, 1만6000원도 안 된다. 반면 8분위는 39.6만원, 9분위 133.0만원, 10분위 682.1만원을 냈다. 이들은 전체 감세 혜택의 97.7%를 독차지하고, 하위 7분위 계층에는 불과 2.3%의  감세 혜택이 돌아간다.  

결국 연말 정산 대상 근로자 1259만명 가운데 하위 70%가 아무런 혜택이 없거나 쥐꼬리만한 혜택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들 70%가 거의 아무런 혜택을 받지 않는다면, 정부나 이한구 의원이 말하는 ‘중저소득층’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이 ‘서울 강남의 종부세 대상자는 대부분 중산층이다’라고 말한 식으로 자산 상위 2% 안에 들어야 중저소득층이란 말인가? 실제로 재정부는 과표 8800만원 이하 계층을 중저소득층으로 잡고, 이들에게 감세 혜택의 53%가 돌아간다고 했다. 그런데 과표 8800만원이라면 상위 2%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이들의 실제 연간 급여는 약 1억2000만원선에 해당한다. 이만한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상대적으로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또한 재경부 주장을 뒤집어보면 이번 감세 혜택의 절반가량이 연간 급여 1억2000만원 이상 계층에 돌아간다는 얘기다. 이번 감세안은 최소한의 염치도 없는 부유층 감세안임이 분명하다.

 

이명박 정부가 흉내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부시 행정부가 추진한 감세안의 감세 효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미국 의회예산처(CBO)의 2004년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20%가 감세혜택의 60%를 챙겼다. 또 최상위 1% 가구가 중간 소득계층보다 약 40배에 해당하는 혜택을 입었다.

 

이런 식의 현상이 한국이라고 안 나타날까? 이미 그 효과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전례가 있다. 2004년 소득세율과 법인세율의 인하 효과에 대해 국회 예산정책처가 2005년 추정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말하는 중저소득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1~6분위 계층에서는 3885억원(6분위)에서 7799억원(1분위)의 후생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중고소득층인 7분위(788억원)부터 10분위(1조4454억원)까지는 후생이 증가했다. 미국의 경우에는 하위층의 후생이 줄지는 않았는데, 한국의 경우는 하위층의 후생을 희생해 상류층의 후생을 증진시킨 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모르지 않을 정부가 부유층이 주로 혜택 보는 사상 최대 감세안을 추진한 것을 수긍할 수 있을까? 소득세 외에 상속세나 양도세, 종부세 감면 혜택은 아예 중저소득층은 해당 없는 내용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에서 중저소득층이 20%나 혜택을 받는다는 말인가?

   

2. 경기 부양 및 일자리 창출 효과에 대해

 

100분 토론에서 이한구 의원과 노대래 차관보는 현재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감세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또한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감세가 이뤄지면 노동자의 근로 유인과 기업의 투자 유인이 커진다는 것은 경제학 이론에 비춰보면 틀린 주장은 아니다. 그러면 무조건 감세를 하면 좋을까? 감세를 하지 않는다고 하면 정부는 징수한 세금으로 재정지출을 할 수 있다. 정부 재정 지출을 통해 다른 경기부양책을 쓸 수도 있고, 사회복지정책의 형태로 저소득층에 직간접적인 소득 보조를 해줄 수도 있다. 이번처럼 21조원의 감세를 한다는 것은 21조원의 재정지출을 할 수 있었던 것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물론 징세와 재정지출에 따른 행정 비용 등이 들어가니 같지는 않지만, 큰 틀에서 비슷하다고 보자) 그러면 이와 관련된 비용 대비 편익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정부 입장에서는 21조원이라는 돈을 가지고 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에 가장 효과적인 정책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과연 감세정책은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먼저 미국 감세정책의 효과를 살펴보자. 이에 대해서는 재정부가 2005년 재경부 시절에 스스로 정리한 부시 행정부의 감세정책 효과를 소개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당시 재정부 문건에 따르면, Economy.com 연구소의 연구 결과 감세에 따른 세입손실 $1당 0.74$의 수요증대 효과를 유발하는데 그쳤다. 또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 Economic Policy Institute)가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 감세안이 통과된 이후 2004년8월까지 정부 예측치 430만개의 38%에 불과한 16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그래도 어쨌거나 수요증대 효과도 있고, 일자리도 창출됐으니 나쁘지 않네'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21조원을 들여서 같은 목적으로 재정지출을 했을 때와 비교해 더 효과가 있어야 한다는 게 전제가 돼야 한다. 감세정책의 기회비용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과연 다른 재정지출에 비해 더 효과적인지는 매우 의문이다. 시일이 좀 지나기는 했으나, 실제로 재정부 산하 조세연구원의 2001년 연구 결과는 한국의 경우 재정지출이 감세 정책보다 약 두 배 가량 더 효과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정부의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 부양책도 효과가 그리 크지 않고, 남발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미국의 경우 직접세 비중이 매우 커서 감세에 따른 경기 활성화 효과가 한국보다 더 큰데도 이렇다. 한국처럼 오히려 간접세 비율이 큰 나라에서 미국만큼의 경기 부양 효과라도 나타날까? 어림도 없다.

 

그리고 앞에서 이번 감세안의 혜택은 대부분 부유층에게 집중적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부유층에 감세 혜택이 돌아갈 경우 경기 부양 효과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2007년 소득계층별 평균소비성향을 보면 최하위 소득계층인 1분위는 220.7%, 2분위는 112.7%인 반면, 상류층인 9분위는 69.2%, 10분위는 61.0%이다. 저소득층은 돈이 없어서 못 쓰고 있을 뿐 돈이 생기면 생기는 족족 소비하지만, 고소득층은 1000만원이 생기면 그중에 600, 700만원 정도밖에 소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조중동 같은 기득권 언론에서 말하는 ‘돈 있는 사람이 돈을 써야 경제가 좋아진다’는 말은 경제적 양극화를 합리화하기 위한 궤변에 가깝다. 그렇다면 같은 21조원으로 어느 쪽에 돈을 쓰는 게 경기 부양에 유리할까? 당연히 저소득층에 돈을 쓰는 게 훨씬 효과가 좋다. 저소득층을 위한 감세와 바우처 제도를 실시하는 게 이번 감세안보다 훨씬 경기 부양에도 유리할 것이다. 소비 승수효과를 통해 저소득층에 쓸 경우에는 100%씩 모두 지출해 연쇄적인 소비 효과가 일어나겠지만, 고소득층은 60~70%씩의 승수효과밖에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여론의 비판을 의식한 한나라당의 주장으로 한 해 연기됐지만, 법인세 인하를 통한 기업 투자 의욕 고취도 거의 효과가 없음이 이미 입증됐다. 기획재정부는 법인세율 5%P 인하 시 0.6%P의 경제성장률 상승효과가 있고, 10조원 이상의 투자 증가로 18만명의 취업자가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장밋빛 분칠에 불과하다. 정부가 2003년 기업들에 대해 임시투자 세액공제 조치를 취한 적이 있는데, 이후 기업들의 설비투자 총액은 거의 변화가 없이 70조원대 초반에 머물렀다. 실제로 2004년 법인세를 인하할 경우 기업들의 투자 의향에 대해 대한상공회의소가 회원 기업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도 같은 결론을 내리게 한다. 당시 설문에 대해 내부 유보후 관망(60.0%)과 투자 계획 없음(27.8%) 응답이 88%에 이른 반면 당장 투자 확대하겠다는 응답은 1.0%, 투자 계획을 수립하겠다는 응답은 11.2%에 불과했다. 이처럼 법인세 인하를 통한 투자 활성화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거의 없다.

 

그리고 이미 상위 재벌기업들에 대한 실효 법인세율은 15% 전후에 불과하다. 명목상으로는 25%라고는 하지만 임시투자세액공제 등 각종 면세 조치 때문에 실제로는 15% 전후 수준에 불과하다. 이것은 30~40% 수준인 미국, 일본에 비해 한참 낮은 세율이다. 이미 이렇게 법인세율이 낮은 상황에서도 재벌기업들은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다.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갖고서도 말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국내외 거시경제 환경이 불안한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기업이라면 정권이 아무리 회유와 압박을 가해도 쉽사리 투자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나 법인세를 더 내려줘야 기업들이 투자에 나선단 말인가? 세율 15%가 높다면 미국이나 일본 기업들은 어떻게 투자에 나선단 말인가?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법인세를 더 인하한다면 결국 재벌기업들의 세금 부담만 낮춰, 빈인빈 부익부 구조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이번 정부여당의 감세안은 ‘중저소득층 민생안정’과 경기활성화, 일자리 창출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허울에 불과하다. 당연히 자칭 경제통이라는 이한구 의원의 주장 또한 엉터리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아니면 이념적인 경제관에 빠져 기본적인 현실조차 오도하는 기만에 불과하다. 오히려 본질은 현재 집권세력인 ‘강부자 패거리’들 자신들과 핵심 지지층인 부유층을 위한 감세안일 뿐이다.

이 글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의 경제현안란에도 띄웠습니다. 좀더 깊이 있는 정보와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방문해주세요. 이 글은 소장님이 쓰신 글이 아니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9. 5. 1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