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6일 이른바 '녹색 뉴딜' 구상을 발표, 오는 2012년까지 총 50조 원을 투입해 새 일자리 96만 개를 창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전 정부에서 발표한 사업들과 4대강 하천 정비 등 개발시대의 건설토목사업 위주의 사업들을 ‘녹색 뉴딜’이라고 포장한 것은 저질 소시지를 스테이크로 포장한 격이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전체적인 토목사업을 녹색으로 포장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전국일주 자전거도로 건설사업도 사실 따지고 보면 또 하나의 콘크리트 사업일 뿐입니다.

 

도심의 자전거 도로를 확충해 자전거 출퇴근을 늘리고 기존 교통수단 이용률을 낮춤으로써 에너지를 절감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한편 교통혼잡을 줄여야 친환경 사업이 되는 것이다. 자동차교통 혁명을 이뤄냈다고 하는 프랑스의 벨리브가 모두 도심 내에 자전거도로를 만들고 자전거 대여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자전거도로는 어떻습니까? 네덜란드는 도로 예산의 10%를 자전거 시설을 지원하는데 지출하는데, 2007년 자전거 시설에 대한 국비 투자액은 102억원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자동차도로 사업에는 올해의 경우 약 10조원을 배정했습니다. 지방자치단체들 경우에도 최근 몇 년간 자전거도로를 대폭 확충한다고 했지만, 실제 이용할 수 있는 자전거도로는 거의 없습니다. 자전거도로를 보도에 만들어 놓았지만 각종 주행방해 시설물이 즐비하고 폭도 극히 좁은 경우가 대부분이며 조금 달리다 보면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심지어 인도에 페인트로 줄만 그어놓고 자전거도로로 우기는 것도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이러니 자전거의 교통수단 분담률이 네덜란드는 27%, 일본 14%, 독일 10%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1.2%에 불과한 것도 당연하지요.

 

그런데 도심 내에 자전거도로를 만들지 않고 전국 해안을 따라 자전거도로를 내면 어떻게 될까요? 전국일주 자전거도로가 생긴다고 도심 내 통행량이 줄어들까요? 전국일주 자전거 도로를 이용할 사람들은 결국 큰맘먹고 자전거로 장거리 여행에 나서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저도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이고 그런 도로가 생기면 이용을 하고는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수요가 얼마나 될까요? 또 전국일주 자전거도로 수요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도심의 교통량이 절대 줄어드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에너지 절감도 온실가스 배출 감소도 되지 않습니다. 자전거 장거리 여행자들의 새로운 수요를 위해 거액의 예산을 들일 뿐입니다. 비용 대비 편익이 1이 넘을지 정말 의구심이 생깁니다. 그러면 결국 그 자전거도로를 닦기 위한 도로사업은 결국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만드는 토목사업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불요불급한 토목사업에 예산을 들이고 건설업체들 좋은 일만 시킬 뿐입니다.

 

더구나 이 사업은 제가 볼 때 시작일뿐이고, 계속 잇따라 자전거용 도로포장사업을 확대재생산할 것입니다. 전국 일주 자전거도로가 생겼는데, 해안 일주 도로만 닦고 말겠습니까? 곧 건설족들은 각 주요 길목별로 이어지는 자전거도로를 내자고 하겠지요. 그때마다 ‘친환경’이니 ‘그린’이니 하는 포장을 달아가면서요. 그렇게 하다 보면 결국 자전거도로 사업은 계속 확대되고, 계속 해마다 예산도 늘어나겠지요. 실제로 이번 정부 발표자료를 보면 ‘자치단체가 개설한 자전거도로와 연결사업 추진’이라고 해서 그런 가능성을 이미 명시해뒀더군요. 토건족들이 가장 수익을 많이 남기는 사업이 도로 예산인데, 자동차도로가 어느 정도 포화상태에 이르니 이제는 새로운 도로수요를 만들어낼 명분을 만들어내는군요.

 

해안일주도로 건설사업에 들어갈 예산만 2008년 불변가격으로 1조 2456억원이네요. 그런데 자전거 도심 급행도로 시범사업에는 3000억원을 배정했습니다. 사실 10km 3개 구간, 총연장 30km를 닦는데 3000억원을 퍼붓는 것은 건설업체들에게 엄청나게 퍼주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자전거도로 1km당 100억원이라니요. 그래도 이왕 퍼줄 돈이라면 그나마 전국일주 자전거도로 만드는데 쓰는 것보다는 도심 내 자전거도로 확충에 쓰는 것이 100배 낫지요.

 

그런데 이 사업의 숨겨진 정치적 의도는 더욱 불쾌하군요. 정부 자료를 보면 이 사업을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 일환으로 추진중인 자전거 길 만들기 사업과 연계를 추진’한다고 합니다. 4대강 사업을 ‘녹색 뉴딜’로 포장한 것부터가 가당찮은 이야기이지만, 전혀 별개의 사업처럼 보이는 사업조차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숙원사업 추진을 위한 포석으로 삼다니요. 어떤 명목을 만들어서라도 자신들의 하려는 일은 기필코 해내고 마는 이들의 똥고집에는 질릴 뿐입니다. 현 정권이 이처럼 기를 쓰고 건설업체들을 먹여살리려고 애쓰는 한편에서는 단돈 몇 만원의 지원이 아쉬운 빈곤층과 소외계층이 즐비합니다. 그런데도 경제성과 시급성이 거의 없는 대규모 건설토목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탕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예산 탕진은 매년 누적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아무리 예산을 늘려도 지역경제가 살아나는 것도 국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경기를 활성화한다는 핑계로 불요불급한 대규모 토건사업을 또 다시 일으키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경기부양을 하더라도 과거에 꼴아박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전략적으로 준비하는 경기부양을 할 수는 없을까요? 미국 오바마 차기 행정부의 계획처럼 제대로 된 신재생 에너지 투자, 매우 지체돼 있는 노후 교량 및 도로의 유지 보수 투자, 의료시스템의 전산화, 광역인터넷망 확충, 21세기형 도서관, 실험실, 교실 증개축 같은 사업들은 미국 사회의 상황에서 정말 필요한 투자입니다. 이 같은 방안은 현재 미국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미래의 성장잠재력을 키운다는 점에서 현재의 경기를 부양할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투자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경기부양책으로서 당장의 효과는 상당히 제한적이겠지만, 그 큰 틀의 방향에 대해서는 상당히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까지 시대착오적 토건형 개발사업에 투자하려는 것일까요? 그것도 마치 미래지향적인 투자인 것처럼 국민들을 우롱까지 해가면서 말입니다. 그런 이면에 우리 아이들의 도서관, 실험실, 교실은 여전히 열악한 상태이고, 소외된 이웃들은 단돈 몇 만원이 없어서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홑이불로 추운 겨울을 지새고 있다는 점이 마음 아플 뿐입니다.


더 많은 토론과 정보 공유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 주십시오.
by 선대인 2009. 1. 8. 11:25

정부의 올해 예산안을 보면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지난해보다 26% 증액편성된 24.7조원 규모의 SOC사업이 눈에 띈다. 그런데 이처럼 대규모로 추진되는 많은 건설토목사업들이 정말 거액의 예산을 들일만한 가치가 있는 사업들일까?

결론은 잠시 유보해두고 필자가 살고 있는 경기도 고양시의 국제종합전시장(킨텍스, KINTEX) 건립 사업을 한 번 살펴보자. 2005년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에 들어선 킨텍스 건립에는 총사업비 2,315억원이 투입됐다. 고양시에 따르면 킨텍스에서는 올해 1~9월 동안 모두 328건의 전시회와 컨벤션 행사가 열려 평균 가동율 약 53%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는 전시회 시설 설치 및 해체 기간까지 모두 포함한 것으로 실제 가동율은 이보다 훨씬 낮다. 또한 대부분의 전시는 세미나나 심포지엄, 워크샵, 대학이나 기업의 내부행사 등 굳이 컨벤션센터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전시였다. 이렇게 공간을 놀리다 보니 킨텍스는 몇 년째 여름에는 간이물놀이 수영장, 겨울에는 인공눈썰매장을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킨텍스 제1전시장조차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양시는 국비와 도비의 지원을 받아 모두 3591억원(2009년 고양시 전체 예산(1조1483억여원)의 31%에 해당하는 규모다)이 드는 같은 면적의 제2전시장 건립을 추진 중이다. 세계 수준의 국제컨벤션 행사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최소 10만㎡ 이상의 전시 면적을 확보해야 한다는 논리다. 더구나 제2전시장 건립사업은 삼성과 현대 컨소시엄만 참여한 가운데 업체들간 담합이 기정사실화된 턴키(일괄입찰) 방식으로 발주돼 총사업비의 30% 정도를 불필요하게 건설업체에 안겨주었다.

이 같은 건설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들인다 하더라도 투입비용을 상회하는 효과를 산출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제1전시관 가동 현황에서 추정할 수 있듯이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자유선진당 권선택의원이 한국개발연구원(KDI)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킨텍스 제2전시장 건립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비용편익 비율이 0.92로, 예상 경제적 효과가 투입한 비용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을 정도다.

사실 이 같은 대형 컨벤션시설 조성이나 확충 움직임은 고양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인천시는 2017년까지 영종도 인천공항 인근에 전시시설만 20만㎡가 넘는 ‘영종전시복합단지’를 건립할 계획이고, 서울시도 잠실종합운동장~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코엑스 등을 잇는 컨벤션 벨트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수도권의 3개 광역시도가 모두 대규모 컨벤션센터 짓기 경쟁에 돌입한 것이다. 아무리 컨벤션산업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수도권에서만 이 같은 대규모 컨벤션 시설을 모두 채울 수요는 턱없이 모자란다고 할 수 있다.

킨텍스와 대각선 방향으로 불과 수백m 떨어진 고양시종합운동장도 마찬가지다. 이 운동장에는 약 1,200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됐고, 연간 운영예산은 22억 여원에 이른다. 하지만 이 경기장은 실업 축구팀인 고양국민은행의 홈 경기가 연간 10여 차례 열리지만 관중은 거의 없고, 국제경기 대회 등의 일부 예선전이 연간 두세 차례 열릴 뿐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잔디밭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평소에 시민들이 축구경기장 안에 들어가 축구 등 스포츠 경기를 즐길 수도 없다. 1,200억 원의 예산을 탕진했지만 사실상 고양시민들에게 주는 효용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이 같은 예산 낭비는 대부분 지자체에 공통되는 현상으로 매년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고 돈 쓸 곳이 없는 것도 아니다. 사회복지 비용 등 한국의 사회지출(Social Expenditure) 총액은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이고, 한국의 교육비 지출은 세계경제포럼(WEF) 조사 대상국 127개국 가운데 71위에 머물고 있다. 반면 건설업 비중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토건형 국가다.

한국의 사회복지 및 교육, 문화 인프라는 경제력에 비해 매우 열악하다. 현 정권은 ‘747공약’을 내세우지만, 현실에서는 단돈 몇 만원의 지원이 아쉬운 빈곤층과 소외계층이 즐비하다. 그런데도 정작 서민들을 지원하는 복지 인프라와 지식정보화 시대에 필요한 교육 및 문화 인프라에 대한 투자에는 스크루지영감처럼 인색하다. 그러면서도 ‘서민을 위한 경기부양책’이라며 개발연대식의 토건사업을 남발하고 있다. 정말 필요한 곳에 돈이 가는 경기 부양인지 의심스럽다.



더 많은 토론과 정보 공유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 주십시오. 이 글은 김광수소장님이 쓰신 글이 아니며, 연구소의 공식적인 입장도 아님을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9. 1. 5. 10:58

YTN 보도국 뉴스2팀에서 현직 기자로 일하는 김수진기자가 저희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의 '언론개혁'란에 최근 MBC파업 사태에 대한 소감을 올렸습니다. 최근 MBC  등 언론파업사태를 잘 보여주고 있어서 좀더 폭넓은 독자들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MBC노조와 YTN노조 등 이 땅에서 공정한 언론을 구현하려는 언론노조 관계자분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안녕하세요. 어린달님입니다.

이번 파업에 대한 저의 생각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YTN 기자로서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냥 일반 국민으로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아마 이번 싸움을 '밥그릇 챙기기'라고 보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그 지적 맞습니다. 솔직히 '밥그릇 챙기기' 맞습니다.

공중파가 민영화 되면, MBC 를 비롯한 방송사에서는 일단 엄청난

구조조정이 일어날겁니다. 당연히 많은 인력이 물갈이되겠지요.

그런 면에서 밥그릇 싸움 맞습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MBC나 다른 공중파 입장에서만의 '밥그릇
챙기기'가 아닙니다. 조중동 신문 역시 '밥그릇 챙기기' 차원에서,
생존경쟁 차원에서 이 싸움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하루이틀된 얘기가

아닙니다만은, 신문은 점점 그 입지가 좁아지고 있습니다. 방송은 물론

인터넷 포털과 블로그 등등 신 매체에 밀려서 영향력이 점차 축소되고 있습니다.

최근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조중동 가운데 한 신문사는 언론계에서

공공연히 부도설이 나돌고 있을 정도입니다. 신문사 어차피 점차 구독률

떨어져가는 신문 팔아봐야 남는 것 없다고 합니다. 광고수익이 대부분입니다.

안정된 수익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 방송을 가지고 올 수 있다면, 그것도

기본적으로 광고 단가가 높게 책정되어 있는 지상파를 소유할 수 있다면

신문으로서는 미래를 보장받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조중동 역시
언론법 통과를 목숨 걸고 바라고 있는 겁니다. MBC 파업을 '밥그릇 싸움'
이라며 비난하고 있지만 사실은 자신들도 속내는 똑같습니다. 남을 비난할
자격이 못됩니다.
 
  '밥그릇 지키기'대 '밥그릇 빼앗기' 싸움입니다. 사실입니다.
그래, 서로 똑같이 '자사 이기주의'에서 출발한다는 데에서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칩시다.

 

   문제는 이번에 한나라당에 통과시키려 하는 법안의 내용은
'신문과 방송 겸영' 뿐만 아니라 '대기업의 지분 소유'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차피 신문사들 돈 별로 없습니다. 당근 대기업과의

컨소시엄을 통해 지상파를 소유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현재 주로

정부 소유의 지분이 대부분인 지상파 방송의 주인이 신문+대기업 자본으로

바뀌거나 아니면 이 신문+대기업 자본은 아예 보도를 포함한 종합 편성채널을

지상파에 새로 만들 것입니다. 언론법 개정안이 단순히 신방 겸영만 허용하는

내용으로만은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재벌의 자본이 없으면 현실화가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솔직히 기자들이 취재하면서 가장 힘든 때 중 하나가 기업 비판하는
보도를 할 때일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자본이 정부 권력보다 더 무섭습니다.
기업은 아예 광고 빼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도
방송 나가기도 전에 윗선을 통해서 얘기가 내려옵니다. '이거 나가면 광고
억대가 빠진다는데 기사 빼주거나 수위좀 낮춰주면 안돼겠니' 하고. 
일선 기자는 데스크며 간부하고도 싸우다가 결국은 기업 로고 빼고 이름
빼고 뭐 이런 식으로 김빠지는 기사를 내보내게 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광고만 가지고도 이정도인데, 기업이 오너가 되면 기업 비판하는 기사를
쓴다는게 구조적으로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아직 법안이 통과된 것도 아닌데
벌써 반대하고 나서냐고 하시는 분들은 이런 현실을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길에 나선 아나운서들 말대로 '불량제로' '소비자 고발' 이런 프로그램 당근
못 보게 될 겁니다.


  공중파 방송사 직원들이 돈 많이 받는다고 밥그릇 싸움이라고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돈 많은 대기업이 인수하면 지금보다 방송사
직원들 돈 더 많이 받을 수도 있습니다. 방송 일이라는게 하루 아침에
아무나 갑자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간부급은 잘릴 지 몰라도
일반 사원은 많이 살아남을 겁니다. 저희 YTN처럼, 주인도 없지만
그렇다고 공중파도 아니어서 수신료도 없고 광고 단가도 낮아서
업계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월급 받는 회사는, 심지어 외환위기때
월급 6개월동안 안나왔던 회사는 돈만 생각한다면
대기업이 와서 민영화 해주기를 바래야 정상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저희도 민영화 결사 반대합니다. 기업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방송은
사내방송으로 전락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광고지 보도입니까 ?
비판의 기능을 잃은 언론사는 언론사가 아닙니다. 제대로 된 직업정신을 가진

언론 종사자라면, 반대하는 게 정상입니다.

 

  'OECD 선진국에는 없는 규제가 왜 있냐'는 논리에 대해서도,
언론법 개정을 원하는 쪽은 '우리나라만 재벌 소유와 신방겸영이
불가능하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맞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국가에서 허용하더라도 독과점이 불가능하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는 점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놈의 선진국 그렇게 따라하고
싶으면 제대로 따라해야죠. 껍데기만 제목만 따라하지 말고.
    
  방송을 인수하고 싶어하는 조중동이 보수 성향의 신문이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할 것입니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목소리가 존재하고, 이들이 존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사회가 민주국가입니다. 언론의 자유가 있다면,
의사 표현의 자유가 있고 사상의 자유가 있다면 진정 그런 민주주의 사회라면
좌파도 있고 우파도 있고, 중도도 있는게 정상 아닙니까?
방송이 모두 보수 성향으로 바뀌는 게 정상인가요? 모든 지상파가 한 목소리
내는게 정상입니까? 그건 전체주의 사회입니다. 전체주의는 북한처럼
좌파에도 있지만 (사실 실상을 보면 공산주의 이념과는 완전 거리가 멀지만)
과거 나치처럼 우파 전체주의도 있습니다.


 만약 그동안 방송의 내용이 이른바 '좌빨'이었다고 생각하고 이게 불만이신 분이

있다면,(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내용이 편향됐다고 비판하십시오.
얼마든지 비판하고 그래도 맘에 안들면 TV를 꺼 버리십시오. 시청률 낮춰서

광고 못 받게 하십시오.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궁금하고, 방만한 경영이 마음에 안 든다 생각되면
감사하라고, 철저히 받으라고 주문하십시오.

 

그러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보수 성향을 가진 신문사에 주려는 이번 법안은 일방적으로 한 편을 들어주는
게 됩니다. 이게 바로 '특혜'라는 겁니다. 보수 정권이 보수지에 주는
'특혜'. 적어도 지금의 지상파 방송 소유구조는 좌파던 우파던 자본이던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는 소유구조는 아닙니다. 공기업, 정부지분으로
쪼개고 민간 자본 비중을 낮게 잡아 어느 누구도 독점적으로 소유할 수 없게 되어

있으니까요.
만약에 한겨레나 경향신문이 지상파를 인수하겠다고 덤비는 일이 일어난다면
(물론 매우 가능성이 낮은 경우이지만) 그때도 역시 반대하고 나설 겁니다.


  노무현 정권때는 왜 고분고분하다가 왜 지금은 파업하고 난리냐고요?
이른바 '좌파정권'이라고 불리는 전 정권이 '선진화 방안'인지 들고 나와서
기자실 못질하고 전기 끊을 때도 저희 깜깜한 데서 플래시 켜고 기사 쓰면서

개겼습니다.  전 정권도 KBS에 참여정부 언론특보 출신 서동구씨를 사장으로

앉히려다 실패했습니다. 그래도 전 정권은 아예 법까지 바꿔서 언론사의 소유 구조를

자기네한테 유리하게 바꿔보겠다는 생각까지는 못하는 '순진한' 정권이었던 것 같네요. 언론을 자기들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고 싶어 하는 것은 어떤 정권이건 성격을 막론하고 똑같습니다. 여기에 장단맞추지 말고 현혹되지 말고 비판의 칼날을 세워야 하는 게

언론입니다.

 

  어떤 분들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언론법은 이념대립 문제가 아닙니다.
특정 정권에만 반대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도 아닙니다.
여론을 독과점하는 구조를 만들어줄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민주주의냐, 전체주의냐의 문제입니다.

 

  언론이 굴종해야 할 대상은 자본도 아니고 정권도 아니고 좌도 우도 아니고
국민의 공익입니다. 언론의 본령은 권력과 자본을 감시하고 비판하고
견제하는 데 있습니다. 이번 언론법 개정안은 언론이기를 포기하라는 법입니다.
방송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언론이 약자의 편을 들지 않고 강자의 편만 든다고
쓴소리를 듣는다는 점 알고 있습니다. 많이많이 비판해 주십시오. 그러나 강자의 편을
아주 대놓고 들도록 구조적으로 허용해주는 이런 법안이 통과되어서는 안됩니다.
자기네한테 불리하면 무조건 좌파라고 이름붙이면서 밀어붙이는 논리에 현혹되면
어느 날 여러분은 입만 열면 보수의 논리만 말하고 썼다 하면 기업 논리만 그대로

읊어대는 앵무새 보도를 보게 될겁니다. 여러분의 눈과 귀가 가려질 것입니다.

by 선대인 2008. 12. 29. 09:46
 









이명박 정부가 기어코 4대강 하천정비 예산으로 14조원이라는 거액의 예산을 편성해 통과시키는 것을 보고 예전에 썼던 ‘폴 크루그먼에게서 배우는 MB정부에 속지 않는 법(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1&articleId=2083162)’의 내용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폴 크루그먼은 ‘대폭로’라는 책에서 뉴욕타임스 칼럼리스트로서 ‘부업(part-time) 저널리스트’인 자신이 생각하는 다섯 가지 ‘보도 준칙(rules for reporting)’을 소개했습니다. 이른바 조지 부시 행정부와 같은 ‘우파 혁명세력’의 정책에 속지 않고 대응하는 준칙이었던 셈인데요. 그는 “이 같은 규칙은 뉴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어떤 진지한 시민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했는데, 그 5가지 가운데 이번 사태를 보면서 준칙 1과 준칙 5가 다시 생각나는군요.

 

준칙 1. (이들이 내세우는) 정책안이 그들이 겉으로 내세운 목표에 부합한다고 가정하지 말라.

 

준칙 5. 혁명세력의 목표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마라.

 

특히 준칙 5와 관련한 예로서, 폴 크루그먼은 “끊임없이 이유를 바꿔가며 철저히 감세정책을 밀고 나갔던 부시 행정부에 대해 생각해보라. 온건주의자들의 유화적 대처가 그들의 목적을 끝까지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라크 전쟁은 ‘부시 독트린’의 출발선일 뿐이었다. 결코 제한된 양보로 그들을 달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4대강 하천정비 사업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대운하는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도 이 말은 확실히 대운하 추진 포기 의사를 밝힌 것이라기보다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잠정 보류라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맞았습니다. 그것은 일보 후퇴 작업이었을 뿐 4대강 하천정비 사업을 통해 대운하는 결국 부활했습니다. 일부에서 4대강 하천정비 사업은 대운하와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위의 준칙 1과 준칙 5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십시오. 현 정부는 그렇게 순수한 세력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더구나 이명박의 서울시장 시절 정무부시장을 지냈고, 핵심 측근이기도 했던 정두언 의원이 이명박과 올해 5월에 나눈 아래 대화를 상기해보십시오.

 

한나라당 안에서 한반도 대운하 계획을 수정해 추진하자는 기류가 일고 있다.

정두언 의원은 19일, “지난 13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청와대 오찬 회동에서 ‘한반도 대운하를 한강 개발과 같은 (하천) 재정비 사업으로 우선 추진하고 (강의) 연결 부분은 (나중에) 계속 논의하자’고 건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반도 대운하는 당초부터 명칭이 잘못돼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마치 맨땅을 파서 물을 채워 배를 띄우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며 “그러나 실상은 낙동강, 영산강을 지금의 한강처럼 만들고 나중에 연결부분을 만들겠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중략) 정 의원의 주장은 운하의 운송 기능을 뒤로 미루고 치수와 하천정비 사업을 앞세우자는 것으로 운하에 대한 거부감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최근 확인된 국토해양부 국책사업지원단의 대운하 추진계획과도 맥락이 비슷하다. 정 의원은 “이 대통령이 ‘그런 방안도 있겠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5월19일자 보도)

 

위에 인용한 기사에서 본 것처럼 이 대통령과 여권 핵심부가 이미 5월에 공감대를 형성한 뒤 이후 대운하를 ‘4대강 정비 사업’으로 말바꿔치기 해서 계속 추진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한 번 작정한 것은 국민들의 어떤 가열찬 국민들의 반대에도 온갖 명분과 포장을 동원해서라도 결국 달성하고 마는 집요함에 치가 떨릴 정도입니다.

 

사실은 대운하뿐만 아닙니다. 공기업 민영화든, 영어몰입교육이든, 방송장악 시도이든 모두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사용한 방식은 ‘프레임 바꿔치기’입니다. ‘프레임(frame)'은 <프레임전쟁>을 쓴 조지 레이코프에 따르면 “문화적 관례나 세상에 대한 믿음, 일을 처리하는 익숙한 방식,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 등에 대해 특정하게 구조화된 심적 체계”입니다. 똑같은 현상 또는 사실에 대해 프레임을 어떻게 구성하고 그것을 전달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은 180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직도 이명박을 불세출의 ‘경제대통령’이라는 프레임으로 보는 소위 명빠들이 있는 반면, ‘건설족의 수괴’라고 보는 저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또는 감세 정책을 ‘경제 살리기 정책’으로 보느냐, ‘강부자와 특권층을 위한 특혜’로 보느냐, 어떠한 프레임이 우세한 프레임으로 자리잡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지지여부는 확연히 갈리게 됩니다.

 

그런데 대운하가 경제성이 없으며 반환경 사업으로는 비판에 부닥치자, 지금의 집권 세력은 대운하는 쏙 뺀 뒤 4대강 정비 사업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여기에 이재오 류의 사람들은 “이름을 거창하게 대운하라고 한 것이지 사실은 강따라 뱃길을 복원하는 것”이라며 매우 자연스럽고 친환경적인 사업으로 프레이밍을 시도합니다. 그런 식으로 프레임을 바꿔 현 정부는 그들이 당초 계획했던 사업들을 많은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단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어느새 ‘공기업 민영화’는 ‘공기업 선진화’로 바뀌었고, 영어몰입교육은 공정택의 서울교육청을 통해 ‘영어 선도 사업’으로 부활했습니다. 그들의 집요한 방송장악 의도는 ‘방송의 다양성 확보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로 포장됐습니다. 이들은 이처럼 프레임 바꿔치기의 명수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추진하는 사업의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포장만 바뀌었을뿐 그들이 추진하는 알맹이는 사실상 거의 그대로입니다.

 

극심한 경제 위기 앞에서 수많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고, 저소득층과 빈곤층은 빈약한 복지 인프라와 복지 사각지대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14조원이라는 돈을 건설족들의 배를 불리고 자신들 일가친척과 땅부자들이 전국적으로 갖고 있는 토지 가격을 올리기 위해 4대강을 정비한다는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성장 잠재력 향상에 기여하지도, 서민들의 복지 수준을 올리는 일도 아닌, 그리고 대다수 국민들이 반대하는 시대착오적인 ‘삽질’에 돈을 퍼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곧 죽어도 핑계는 서민들을 위한 경기부양이랍니다. 서민들을 위한 경기 부양이라면서 소수 상류층을 위한 각각 수십조원의 부자 감세와 지방 선거를 앞둔 선심성 사업과 건설업체 배불리기 사업으로 점철된 건설토목 사업 예산 편성에만 목숨을 걸까요? 정말 서민들을 위해서라면 왜 서민들에게 직접 지원할 생각은 안 할까요? 왜 항성 서민들은 항상 상류층에 지원한 돈에서 찔끔찔끔 흘러내리는 국물을 얻어마시며 감지덕지해야 하는 신세가 돼야 하는지 그들은 답을 못 합니다. 부자의 돈을 걷어 빈민을 돕는 로빈 훗 정책(소득재분배 정책이라는 게 원래 이런 취지입니다)이 아니라 서민의 돈을 세금이라는 형태로 갈취해 부자를 돕는 ‘거꾸로 로빈 훗 정책’을 펼치는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입니까?

 

현 집권세력은 프레임 바꿔치기라는 얄팍한 수를 써서 민의에 따른 정책 의사 결정이라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응당 추구해야 할 공익은 포기하고, 자신들과 자신들 지지세력의 사익을 챙기는데 혈안이 된 골수 기득권 세력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폴 크루그먼이 정의한 ‘우파 혁명세력’의 속성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고,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독재정권의 속성 또한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들이 얼마나 한심하고 무능하고 야비하며 저질스러운 세력인지 꿰뚫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말을 바꿔가며, 프레임을 바꿔가며 국민들을 잘 속여 넘기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전체로서의 국민들은 그렇게 순진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12월 15일자 경향신문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난 1년 동안 63.2%의 국민들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평가한 결과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국민들은 지금은 현 정부의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권력 행사 방식 때문에 큰 소리를 못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 안 가서 이들은 민심의 거센 역풍에 호되게 당하게 될 것입니다. 민심이라는 바다 위에 떠있는 배인 정부가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를 때는 난파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배가 난파한 뒤 그 배를 대신할 수 있는 튼튼한 배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건전한 공동체 정신과 공정한 게임 규칙을 토대로 제대로 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도덕적이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정치세력 말입니다. 그 같은 정치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함께 힘을 모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더 많은 토론과 정보 공유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 주십시오. 이 글은 김광수소장님이 쓰신 글이 아니며, 연구소의 공식적인 입장도 아님을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12. 17. 08:55

각종 건설부양책과 불요불급한 예산으로 떡칠된 내년도 예산안이 여당의 강행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이 같은 강행 통과를 마치 국가 경제 살리기를 위한 치적이라도 삼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은 ‘예산 조기 집행’을 강조하고 있다. 이대통령은 12월 15일 수출 4000억달러 달성을 기념해 수출업계 대표들과 가진 청와대 오찬에서 “금융위기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 책정된 예산을 조기에 집행하는 것이 관건으로, 그 집행의 결과가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많은 공직자들에게 부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같은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기획재정부는 내년 전체 예산 가운데 60%를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돈을 빨리 풀어 극심한 내수 침체를 해소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이 발표 내용만 보면 내년 상반기에 시중에 정부 재정이 상당히 풀릴 것으로 예상할 것이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이 같은 정부 발표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쑈쑈쑈’에 불과하다.

 

물론 서민들 생계 지원 형태의 예산은 빨리 풀 수 있다면 빨리 풀수록 좋다. 하지만 장애인과 독거노인, 빈곤층 등 대부분의 복지 지원 대상자들에게는 월 단위로 정기적으로 지원금이 지급될 뿐이다. 중앙 정부 차원에서 시군구 기초 자치단체나 동사무소까지 빨리 내려보내는 것일 뿐 실제 정부 지원이 필요한 현장에 돈이 빨리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정부 예산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건설토목사업 예산의 현실을 살펴보면 기가 차기 짝이 없다. 예를 들어, 2008~2009년에 걸쳐 2000억원짜리 공사를 한 대형 건설업체가 수주했다고 치자. 이 공사를 수주한 대형 건설업체는 정부의 경기 활성화를 위한 예산조기 집행 방침에 따라 연차별로 공사할 금액의 절반을 선급금으로 받는다. 이렇게 받은 선급금 가운데 60~70% 가량은 아예 처음부터 선급금으로 지급할 대상이 아니다. 일단 자재비는 거래관행상 미리 안 준다. 정부에서 미리 준다고 자신들도 자재대금을 미리 주는 원도급업체들이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직원급료도 미리 안 준다. 대기업이 정부에서 돈을 미리 받았다고 직원들 월급을 미리 당겨주겠는가?

 

결국 건설 대기업이 정부에서 받은 돈을 조기집행할 수 있는 돈은 기껏 하도급 업체들에게 주는 공사대금 뿐이다. 이는 정부 예산 집행액에서 겨우 30~40% 정도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마저도 실제 집행해야 하는 액수의 보통 3분의 1 밖에 집행을 안 한다.

 

철도공사를 하청하는 한 기업의 사례를 보자. 이 업체는 원도급업체가 정부로부터 공사대금 선급금을 받은 것을 확인했다. 원도급업체는 정부에서 공사대금을 받은 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따라 15일 이내에 자기가 정부에서 받은 같은 비율만큼 하청업체에 줘야 한다. 하지만 원도급업체는 2008년 공사물량이 원래 100억원이라면 50억원어치 공사만 하는 것처럼 축소하고, 선급금 적용 비율도 최대한 줄였다. 이런 방법으로 이 업체는 원래 받아야 할 돈의 30% 수준밖에 못 받았다. 예산 집행액의 30~40% 가운데 다시 원래 받아야 할 돈의 30% 수준밖에 못 받았다. 에산 집행액의 30~40% 가운데 다시 원래 받아야 할 돈의 30% 수준만 하도급업체에 전달됐으니 결국 이 업체에는 정부예산 집행액의 9~12%만 전달됐다. 이런 양상이 이 업체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전국인 양상이다.

 

이런 식이면 정작 돈이 필요한 하도급업체에는 돈이 내려가지 않고, 대기업에만 머물러 있게 된다. 정부가 경기부양을 한다고 하는데 정작 도움을 받아야 할 중소건설업체들과 건설 노동자들에게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신 최근 몇 년간 부동산붐으로 배룰 잔뜩 불렸다가 유동성 위기에 처한 재벌건설업체들의 호주머니로만 들어갈 뿐이다.

 

이렇게 해서야 무슨 경기부양 효과가 있겠는가? 정부가 예산을 조기 집행했으면 제대로 줬는지 관리감독해야 한다. 하지만 각 해당 부처는 대기업에만 돈을 줬으면 예산을 집행했다고 기획재정부(과거에는 기획예산처)에 통보하고, 기획예산처는 이를 ‘실적’으로 잡아 예산 집행 계획을 달성했다고 홍보하고 있다. 정부가 혈세를 들여 정책을 실시했다면 실제로 현장에까지 내려가는지, 그래서 정책적 효과가 있는지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매련 이런 정책을 쓰면서도 정부는 한 번도 제대로 실태를 조사해 평가한 적이 없다. 무조건 대형건설업체에 돈만 갖다 안긴다고 정책 효과가 생기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정부관료들은 앞뒤 재지 않고 경기가 안 좋다는 소리가 나오면 ‘조기 예산 집행’을 입버릇처럼 외고 있다.

 

이런 조기 예산 집행은 결국 유동성 위기에 시달리는 대형 건설업체에게 현금 다발만 안기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각종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극심한 신용경색 때문에 돈 구경하기 어려운데 왜 대형건설업체들은 직접 시공하지도 않은 관급공사를 수주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백억~수천억 원의 현금을 미리 받아챙기는 엉터리 같은 일이 매년 벌어지는 것인가? 과연 공공사업을 진행하기도 전에 정부가 돈을 막 퍼주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치고 어디 있을까? 더구나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엄청난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 예산을 조기 집행하려면 국채를 발행해야 하고, 정부는 거기에 해당하는 이자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상반기에 60%를 조기 집행한다는 것은 40%를 쓴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조기 집행을 하면 일자리가 더 늘어나고, 경제 성장률 향상에 도움이 될 것처럼 주장한다. 상반기에 50% 쓰일 것이 60%가 쓰이면 정부가 주장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런 효과가 생기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예산의 40%를 집행하게 되는 하반기에는 어떻게 되는가? 원래 쓰여야 할 예산보다 덜 집행되니 그만큼 경기는 더 가라앉을 것이 아닌가? 한 마디로 조삼모사일 뿐이다. 정부가 국민들의 지능 수준을 원숭이 정도로 여기고 있다고 광고라도 하는 셈이다. 그런데 경제위기가 심화돼 하반기 경제 상황이 더 어려워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가서 또 온갖 핑계를 대면서 쓸데 없는 건설토목사업으로 가득한 추경예산을 다시 편성해 여당 단독으로 밀어붙일 작정이 아니겠는가?

 

 

지난 몇 년간 건설업체들은 신문 광고와 홍보성 기사 등을 통해 국민들의 부동산 투기 심리를 부추겨가며 터무니없는 고분양가로 엄청난 폭리를 취해왔다. 그같은 부동산 거품에 취해 과욕과 무리한 경영판단으로 사업을 벌이다 보니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서 생겨난 미분양 물량으로 지금은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거품이 일 때 폭리를 취한 것을 모두 자신들이 차지했듯이,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생겨나는 모든 손실은 자신들이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무주택 서민들의 세금까지 포함된 막대한 건설토목 예산을 편성하는 것도 모자라 예산 조기집행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퍼붓고 있다. 서민들을 위한 경기 부양을 위해 예산 조기집행을 한다고 하지만, 결국 감춰진 속내는 유동성 위기에 빠진 재벌건설사들을 구제하기 위한 ‘눈 가리고 아웅 쇼’일 뿐이다. 말 끝마다 서민을 외치지만, 그들에게 서민은 뒷전이다. 건설족의 수괴인 MB를 비롯한 현 정권 눈에 보이는 것은 지금 자금난에 시달리는 건설업체들일 뿐이다.


더 많은 토론과 정보 공유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 주십시오. 이 글은 김광수소장님이 쓰신 글이 아니며, 연구소의 공식적인 입장도 아님을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12. 16. 10:33

최근 부동산 가격 하락폭이 커지면서 각종 분양사고가 잇따르고, 입주대란과 역전세난으로 많은 가계가 피해를 입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피해가 실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주택 선분양제 때문에 증폭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잘 모르고 있다.

 

 

선분양제 하에서 주택 수요자들은 완성된 주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한까지 입주할 수 있는 분양권을 청약해 사게 된다. 그런데 완공 전에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주택업체가 부도를 낼 경우 피해의 상당 부분을 분양자가 떠안아야 한다. 물론 대한주택보증을 통해 분양을 보증하도록 하고 있지만, 입주 지연으로 인한 분양자의 금전적, 정신적 피해 등은 상당 부분 불가피하다.

 

 

실제로 주택업체의 부도나 자금난 등으로 인한 주택 보증사고는 최근 급증하고 있다. 대한주택보증에 따르면 최근 3개월 사이에 보증사고가 난 세대 수만 7,000 가구에 사고금액은 1조5,877억 원에 이른다. 올 들어 11월까지 발생한 보증사고 세대수의 80%와 사고금액의 68%에 이를 정도다.

 

 

또 선분양제 하에서는 주택 소비자들이 갑작스러운 집값 하락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이 후분양제에 비해 높다. 선분양제에서 주택 소비자는 상대적으로 소액인 계약금만 있으면 되므로 예산제약 범위를 벗어나 무리한 주택청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부동산 투기 붐이 극심할 때는 분양만 받으면 몇 억원을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로 너나 할 것 없이 주택 청약에 나섰다.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는 분양자들이 수억 원의 빚을 지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만일 극심한 청약열풍이 불었던 판교신도시 주택을 지금쯤 후분양제로 공급했다면 2~3년 전과 같은 엄청난 고분양가에 청약할 가계가 얼마나 있었을까? 결국 주택업체들은 고분양가로 상당한 폭리를 취한 뒤 분양자들만 자산가치 급락과 엄청난 부채 부담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 곳곳의 신규 아파트 단지에서 대규모 입주 지연과 역전세난이 벌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리하게 아파트를 청약한 계약자는 집값은 떨어지고 은행 빚은 감당하기 어려워 손해를 보더라도 입주 예정 아파트나 기존 주택을 팔아 대출을 상환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거래가 마비되면 기존 주택이든 신규 분양 아파트든 전세로 돌려 최대한 금전적 손실을 줄이려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처지의 계약자들이 한둘이 아니므로 입주 지연과 역전세난이 함께 빚어지는 것이다. 만약 후분양제였다면 이처럼 극심한 입주지연과 역전세난은 발생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공급자에게 유리한 선분양제 하에서 건설업체들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선분양제는 부동산 호황기에 무리한 주택사업이 일어나는 유인으로 작용한다. 주택업체들은 3년 후 입주 시점의 주택경기에 대한 판단은 거의 하지 않고 근시안적 시각에서 사업을 진행한다. ‘떴다방’이든 무어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장의 분양에만 성공하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욕과 무리한 사업판단으로 택지를 매입해 분양을 시도하다가 부동산 경기가 죽자 미분양 물량이 급증하게 된 것이다.

 

 

국토해양부가 집계한 올해 9월 기준 미분양 15만7241가구 가운데 4만 436가구가 준공 후 미분양 물량으로 나타나고 있다. 후분양제였다면 생겨나지도 않았을 미분양 물량이 11만7000여 가구에 이른다고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 등 후분양제를 시행하는 대다수 국가에서 주택건설 경기가 위축된다고 해서 한국처럼 막대한 미분양 물량이 쌓이는 경우는 없다.

 

 

건설사들의 유동성 위기도 미분양 물량이 급증하면서 돈이 묶인 탓이 크다. 또한 2006년 이후 과도한 PF사업 확대로 건설사뿐만 아니라 제 2금융권을 중심으로 금융권 전반의 부실화 우려를 높이고 있는 것도 바로 급증한 미분양 물량 탓이 크다. 나아가 한국 경제의 화약고라고 할 수 있는 가계의 부동산담보 대출과 PF사업 대출, 건설/부동산업 대출을 증폭시키는데도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기로 하자. 한국 부동산시장의 구조적 문제점이 전적으로 선분양제 때문에 비롯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선분양제가 부동산시장의 위기를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선분양제의 경제적 폐해가 너무나 크다는 것은 이제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업계의 반대와 이를 비호하는 정부와 정치권, 관변학자들의 엉터리 논리에 의해 후분양제 도입은 계속 지연됐다. 분양가 자율화와 함께 오래 전에 바뀌었어야 할 제도가 그대로 온존함으로써 한국경제의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필요한 제도개혁을 제때 하지 않을 때 경제 전체로 얼마나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되는지를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도리어 ‘8.21 부동산 대책’에서 ‘후분양제 보완’이라는 식의 편법으로 민간 주택건설업체가 자율적으로 후분양제와 선분양제 가운데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후분양제를 무력화시켰다. 특히 국토해양부는 11월초 ‘건설사들이 조기 분양에 나서 자금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한다는 명목으로 재건축 후분양제를 폐지했다. 이명박정부는 여전히 건설업계와의 유착에 빠져 임기응변적 처방과 특혜 주기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임기응변적 처방과 건설업계 특혜 주기에 골몰하는 정부가 현 경제 위기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 많은 토론과 정보 공유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 주십시오. 이 글은 김광수소장님이 쓰신 글이 아니며, 연구소의 공식적인 입장도 아님을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12. 15. 11:06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지금은 주식을 살 때”라며 “지금 주식을 사면 1년 안에 부자가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발언이 전해져 논란을 낳고 있다.


다들 알다시피 이 대통령의 주식이나 펀드 권유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9월 1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금융위기설을 부인하면서 “나는 직접투자를 못하지만 간접투자상품(펀드)이라도 하겠다”고 말했다. 10월 30일 언론사 경제부장단 오찬에서는 “분명한 것은 지금은 주식을 사야 할 때”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이 같은 헛소리에 길게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낮술에 취한 취객의 헛소리에 맨 정신으로 대구하는 것도 정말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몇 가지만은 지적하고 싶다.


우선, 경제에 대한 그의 저열한 인식이다. 그의 거듭되는 발언이나 행태를 보고 있으면 그가 생각하는 경제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며 삶의 풍요로움을 느끼는 경제가 아니다. ‘주가 3000간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주가가 올라가면 경제 전반이 좋아진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주가는 일정하게 그 나라 경제상황을 반영하지만 왜곡이 심하다. 다른 모든 분야가 다 죽을 쒀도 일부 블루칩 종목들만 활황이어도 주가는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의 인식에서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철학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주가 오르고, 집값 오르면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인식밖에 눈에 띠지 않는다.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서울시장 시절부터 뉴타운 사업 등으로 강북 집값을 띄워 표를 긁어모았으니 그 근성이 어디 갈까 싶다. 하지만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자기와 주변의 삶이 온통 부동산 투기와 한탕 심리로 점철돼 있고, 온갖 편법과 사기 행위로 범벅이 돼 있으니 그 수준에서 무엇이 보이겠는가?


또 한 가지는 그가 국민들을 주가를 떠받치는 호구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발언을 잘 살펴보면 건설사나 부동산 부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책을 내놓을 때는 국민들의 위기감을 자극하는 발언을 내놓는다. 예를 들어, 정부 합동으로 건설사와 은행권의 유동성 지원대책을 발표하던 10월21일 국무회의에선 “총괄적으로 IMF 외환위기 때보다 심각하다”고 말했다. 또 10월 27일 각종 불요불급한 건설경기부양책으로 점철돼 있는 내년도 예산안을 설명하는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현 상황을 ‘비상시국’으로 규정했다. 또 30일 언론사 경제부장단 초청 오찬 간담회에선 “우리는 끝이 잘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의 입구에 들어와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있은 나흘 뒤에 정부는 대규모 건설경기 부양책과 재건축 규제 완화 등 각종 부동산 규제 완화를 핵심내용으로 하는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무리한 과욕과 잘못된 경영 판단으로 자금난에 처한 건설사나 ‘강부자’들을 돕기 위한 대규모 부양책을 내놓을 때는 그는 스스로 위기설을 강조했다. 건설사나 강부자 지원을 합리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위기감을 조장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런데 일반 국민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는 다르다. 일반 국민을 향해 나오는 그의 메시지는 ‘위기는 없다. 지금은 조금 어렵지만 주식을 사라’는 식이다. 한 마디로 국민을 호구로 알지 않는 한 이렇게 순식간에 표변하며 정반대 방향의 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던지지는 못한다. 나는 이런 발언들이 나름대로 매우 계산된 발언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선의로 생각해도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히 여기는 듯하다. 자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순진한 일부 국민들을 순간적으로 좀 현혹시켜서라도 그들의 쌈짓돈으로 주가를 떠받치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주가를 떠받치면 누가 좋아지는가? 결국 주식시장에 투자를 많이 한 사람이 상대적 혜택을 볼 수밖에 없다. 그런 사고방식에서 과거 일본을 제외하고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거의 매일 연기금을 동원해 대대적 주가부양에 나서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정말 그가 지금은 주식을 사야 할 때라고 믿는다면 대규모 건설 및 부동산 부양책을 하지 말아야 한다. 주가가 실물 경기에 선행하는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1년 이내에 주식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을 정도로 이번 경제 위기가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 믿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불과 1,2년이면 극복할 수 있는 경제 위기를 위해 왜 엄청난 도덕적 해이를 부추겨가며 과욕을 부린 건설사 및 부동산 투자자들을 위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해야 하는가?


지금의 사태를 요약해보자. 2000년대 이후 엄청난 부동산 거품으로 상대적 부유층은 엄청난 자산 가치의 증가를 맛보았다. 이 같은 부동산 거품은 직접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무주택 서민과 저소득층의 부를 상류층으로 전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최근 몇 년 동안 부풀어 오른 주가 거품도 일정하게는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런데 이제 그 거품이 꺼지려 하자 정부는 온갖 건설 및 부동산 부양책으로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고, 연기금으로 주가를 떠받치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 사용되는 예산과 연기금에는 저소득층을 포함한 국민 모두의 돈이 들어가 있다. 이 돈들을 자기 책임하에 투자한 상대적 부자들의 집값과 주가를 떠받치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일부 순진한 국민들의 쌈짓돈까지 털어 주식에 돈을 넣어 주가를 떠받치라고 꼬드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대통령은 한마디로 파렴치할 뿐만 아니라, 사기꾼 기질이 농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이동풍이겠지만, 대통령에게 요구한다. 앞으로 국민들에게 주식 매입을 권장하겠다면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우선, 자신의 말을 믿고 주식 투자를 한 사람들에게 1년 후 시점에서 투자 손실을 볼 경우 선착순으로 자신의 보유 재산을 팔아서 손실 보전을 해주겠다는 각서를 쓰라. 대통령 취임 전 약속했던 재산 헌납 약속을 앞으로도 이행할 뜻이 없는 것 같으니 차라리 이런 데 돈을 써도 좋지 않겠나?


둘째, 당신과 당신 가족, 당신을 따르는 청와대 직원부터 대대적으로 간접상품 가입이라도 하라. 그리고, 그렇게 했다는 것을 국민에게 직접 보여라. ‘지금 주식 투자하면 1년 안에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자신과 자신 가족들부터 대대적으로 펀드 투자를 못할 이유가 없다. 또 그렇게 자신이 강하게 믿는 바를 자기 휘하의 청와대 직원부터 설득하지 못한다면 국민들에게 되풀이해가며 권해서는 안 된다.


셋째, 그리고 만약 지금 주식 투자해서 1년 이내에 주식 부자가 되지 못한다면 유언비어 유포죄로 조사를 받을 것임을 다짐해야 한다. 미네르바 등 네티즌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주가나 부동산 가격을 예측한 것을 두고 근거 없는 유언비어라며 수사까지 고려한다고 했던 정부다. 그러면 대통령부터 잘못된 예측을 했을 때에는 똑같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는 이미 이 대통령은 유언비어 유포죄로 수사 대상에 오를 만한 충분한 전력이 있다. 그는 대선 직전인 지난해 12월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주가가 내년까지 3000은 간다. 제대로 되면 5000도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주가는 1000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굳이 지금까지 예측의 정확성을 따져본다면 이대통령보다 미네르바나 다른 네티즌들이 훨씬 높다. 솔직히 이대통령처럼 예측의 정확성이 떨어지는 사람은 주변에서 보지를 못했다. ‘747공약’부터 시작해 한 마디로 말끝마다 허황된 발언들뿐이기 때문이다. 백주대낮 취객의 헛소리보다 못한 대통령의 말에 이제 신물이 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라는 사실이 소름끼칠 뿐이다. 


 

좀더 깊이 있는 정보와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세요. 이 글은 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11. 28. 09:31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신재생 에너지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겠다며 "지금이야말로 신재생 에너지에 투자할 때"라고 역설했다고 하네요. "지금이야말로 주식에 투자할 때"라고 헛소리하는 대통령과는 정말 비교가 되네요. 개발연대의 과거 회귀적인 '삽질경제학'에 심취한 한국의 대통령과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에서도 미래의 성장 잠재력을 키우기 위한 투자를 실천하는 미국의 대통령 당선자. 정말 대비가 되네요. 

아래는 뉴욕타임스의 관련 사설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November 27, 2008

Editorial

 

Save the Economy, and the Planet

 

 

Environment ministers preparing for next week’s talks on global warming in Poznan, Poland, have been sounding decidedly downbeat. From Paris to Beijing, the refrain is the same: This is no time to pursue ambitious plans to stop global warming. We can’t deal with a financial crisis and reduce emissions at the same time.

 

There is a very different message coming from this country. President-elect Barack Obama is arguing that there is no better time than the present to invest heavily in clean energy technologies. Such investment, he says, would confront the threat of unchecked warming, reduce the country’s dependence on foreign oil and help revive the American economy.

 

Call it what you will: a climate policy wrapped inside an energy policy wrapped inside an economic policy. By any name, it is a radical shift from the defeatism and denial that marked President Bush’s eight years in office. If Mr. Obama follows through on his commitments, this country will at last provide the global leadership that is essential for addressing the dangers of climate change.

 

In his first six months in office, Mr. Bush reneged on a campaign promise to regulate carbon dioxide and walked away from the Kyoto Protocol, a modest first effort to control global greenhouse gas emissions.

 

Still two months from the White House, Mr. Obama has convincingly reaffirmed his main climate related promises.

 

One is to impose (Congress willing) a mandatory cap on emissions aimed at reducing America’s output of greenhouses gas by 80 percent by midcentury. According to mainstream scientists, that is the minimum necessary to stabilize atmospheric concentrations of carbon dioxide and avoid the worst consequences of global warming. Mr. Obama’s second pledge is to invest $15 billion a year to build a clean economy that cuts fuel costs and creates thousands of green jobs. That includes investments in solar power, wind power, clean coal (plants capable of capturing and storing carbon emissions) and, as part of any bailout, helping Detroit retool assembly lines to build a new generation of more fuel-efficient vehicles.

 

Mr. Obama has surrounded himself with like-minded people who have spent years immersed in the complexities of energy policy.

 

His transition chief, John Podesta, was an early advocate of assisting the automakers and of finding low-carbon alternatives to gasoline. Peter Orszag, his choice to run the 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 (where environmental initiatives went to die during the Bush years) is an expert on cap-and-trade programs to limit industrial emissions of greenhouse gases.

 

Success is not guaranteed. Last year, a far more modest climate-change bill fell well short of a simple majority in the Senate. At least on the surface, it seems counterintuitive to impose new regulations (and, in the short term anyway, higher energy costs) on a struggling economy. Mr. Obama will need all his oratorical power to make the opposite case.

 

The historical landscape from Richard Nixon onward is littered with bold and unfulfilled promises to wean the nation from fossil fuels, especially import!ed oil. What is different now is the need to deal with the clear and present threat of global warming. What is also different is that the country has elected a president who believes that meeting the challenge of climate change is essential to the health of the planet and to America’s economic future.


by 선대인 2008. 11. 28. 09:23

최근 부동산 거품 붕괴가 본격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분양 물량 급증으로 인한 건설업체의 자금난이 심각해지면서 거품 붕괴를 막으려는 정부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온갖 명목을 갖다 붙이지만 한 마디로 ‘건설 및 부동산 경기 부양’과 ‘집값 거품 떠받치기’로 일관한 정책들이다.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정부는 ‘한국경제의 펀더멘탈은 괜찮다’고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부려왔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부동산 거품 붕괴와 한국 경제의 위기가 현실화하면서 이제는 활용 가능한 모든 부동산 및 건설경기 부양책을 총동원하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국내외 거시경제 구조를 볼 때 현 정부의 이 같은 부동산 부양책으로도 버블 붕괴를 막기 어렵다. 정부가 대출 규제 완화를 제외하고 웬만한 부양책은 다 내놓았지만 부동산시장이 꿈쩍도 않는 게 그 증거다. 그동안 집값 폭등을 주도했던 소위 ‘버블 세븐’의 집값은 정부의 부양책에 아랑곳하지 않고 급속도로 빠지고 있다. 금융기관이 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경매물건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아직 남아 있는 대출 규제가 풀린다 해도 마찬가지다. 이미 구조적으로 심각한 외화 및 원화 자금난을 겪고 있는 은행이 과거처럼 선뜻 대출을 해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최근 대출 연체율이 급등하고 자기자본비율 하락을 겪고 있는 은행권으로서는 제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가 먼저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금융권에서 대출 제한에서 그치지 않고 대출 회수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이처럼 정부의 부동산 및 건설 부양책은 버블 붕괴의 시장 압력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 단지 붕괴의 시간을 약간 지연시키고 부동산 거품을 키우는 부작용만 있을 뿐이다. 집값 거품 붕괴를 부르는 시장 압력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에서도 부동산 버블기인 92~95년 동안 무려 70조엔이 넘는 각종 경기 부양대책이 쏟아져 나왔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현재 우리 돈 가치로 1000조원이 넘는 예산을 경기 부양에 투입한 것이다. 일본의 경기 부양대책도 일본 토건족들의 요구에 의해 각종 불요불급한 건설 및 토건 사업들로 채워졌다. 하지만 극심한 버블 붕괴의 압력을 막지는 못했다. 일본이 92~94년 3년 동안 0%대의 실질경제성장률을 보인 것이 그 증거다.

 

더 문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한 정부의 과도한 건설경기 부양책은 장기적으로는 국민경제 전체적인 피해를 키울 공산이 크다. 일본의 경우 버블 붕괴기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책으로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건설업체들이 부지기수로 ‘좀비기업’으로 살아남았다. 그 결과 초기의 줄도산 행렬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중반까지 일본의 건설업체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저술가인 사이토 세이치로씨의 책 ‘일본경제 왜 무너졌나’에 따르면 건설 토목산업 종사 수는 91년 604만명에서 96년에는 676만명으로 오히려 72만명이 늘어났다. 반면 이 기간에 제조업 종사자 수는 1563만명에서 1450만명으로 113만명이나 줄어들었다. 또한 이 기간의 건설 토목관련 업체 수를 보면 60만 2000개에서 64만 7000개로 약 4만5000개나 늘어났다.

 

부동산 거품이 일면 당연히 건설 붐도 일고,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건설 경기도 죽기 마련이다. 부동산 거품 붕괴기에는 그만큼 건설시장의 파이가 줄기 때문에 부동산 붐 때 생겨났던 건설업체 수가 감소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오히려 일본의 건설업체 수는 정부의 막대한 공공사업 확대에 힘입어 버블 붕괴기에 더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부 예산이라는 호흡기로 연명하는 좀비기업들이 대폭 늘어났다. 제대로 부실기업의 퇴출이 이뤄졌더라면 살 수 있었던 기업들조차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좀비기업으로 전락했다. 그 결과 건설사의 부실은 계속 증가했고, 결국 금융권의 부실 증가로 이어져 일본의 장기 경기 침체를 가져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세이치로씨는 “90년대의 재정지출이란 이러한 특정산업(=건설산업)의 보호와 지원에 도움이 되었을 뿐이고, 경기의 자율적인 힘을 회복시킨다는 케인스이론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평했다.

 

현재 정부 정책은 과거 일본이 장기 경기 침체로 치달았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부동산 거품기에 네 배 이상 늘어난 건설업체 수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아래의 <도표1>에서 일반건설업체 수의 연도별 추이를 보면, 1995년 2,958개였던 업체 수는 1998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하여 2002년에는 12,643개에 이르렀다. 2003년 이후 건설업체 수는 1만3000개 전후 수준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건설 경기 부양’을 한다는 것은 부동산 거품기 동안 급격히 늘어난 건설업체들을 예산으로 모두 먹여 살리겠다는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건설사들이 위기론을 떠들어대는 가운데도 건설업계 전체의 부도율은 1.3% 정도인데, 이는 5~7%대의 부도율을 보였던 90년대 중반보다도 훨씬 낮은 비율이다. 부동산 거품기에 잔뜩 늘어난 건설업체들을 국민 경제 전체가 언제까지 먹여살릴 수는 없다. 자신들의 경영 판단 잘못과 과욕으로 빚어진 잘못은 그들 스스로 책임지게 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연착륙론’을 부르짖는다. 필자도 가능하다면 한국 경제가 연착륙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아무리 필자가 원하고 정부 당국자가 원한다고 한들 이미 그동안 막대한 규모의 악성 부동산 거품을 만들었던 탓에 연착륙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더구나 현실에서 벌어지는 현 정부의 대책을 보라. 연착륙이라는 핑계를 내세우며 그동안 부동산 거품기에 온갖 폭리를 취했던 건설업계와 ‘땅 짚고 헤엄치기’식 수익을 올렸던 금융권에 대한 대대적 부양책을 펼칠 뿐이다. 그들 가운데 자신들의 잘못된 경영판단과 무리한 사업 욕심에 대한 시장의 냉정한 회초리를 맞은 곳이 어디 있는가?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면서 미분양 물량 급증 등으로 부도 위기에 처한 건설사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건설업체들에 대해서는 경영상의 자구 노력을 우선하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또한 건설업계 전체로 볼 때는 부동산 버블 시기에 한껏 팽창했던 주택 시장이 위축된다면 그에 맞춰 일정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하지 않고 정부가 예산으로 먹여살리겠다는 것은 개발주의 시대 당시의 관 주도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미분양 물량의 급증은 건설업체의 터무니없는 고분양가 전략이나 주택 수급 사정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공급 물량을 주먹구구식으로 늘려온 정부의 정책 실패 책임이 크다. 그런 점에서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제대로 된 접근은 외면한 채 정책 실패와 건설업체들의 잘못된 분양 전략이 빚어낸 건설업체의 위기를 국민 세금으로 도와주는 것은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

 

지금 국내외의 악화된 경제 상황 때문에 고통 받는 것은 건설업계뿐만이 아니다. 자영업자와 제조중소기업, 저소득계층 등 우선순위를 가리기 힘들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업계나 계층도 적지 않다. 그런데 굳이 건설업계를 최우선적으로 정부가 도와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진짜 경제적 약자에게는 쥐꼬리만한 예산을 지원하면서, 도덕적 해이에 빠진 건설업계의 복지에 골몰하는 정부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따라서 당장 눈에 보이는 버블 붕괴의 충격을 줄이겠다는 근시안적 시각을 탈피하는 것이 우선이다. 대신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 전체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한편 한국경제가 새로운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근본적 체질 개선 방안을 찾아야 한다. 현 정부는 단기 충격을 최소화한다는 명목으로 장래 돌아올 한국경제의 충격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순전히 자신들 임기 내에 돌아올 버블 붕괴의 충격을 최소화해보겠다는 정치적 욕심 때문일뿐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한국 경제가 파탄나는 상황은 피해야 하겠지만, 지금 한국 경제가 글로벌 투자은행들마저 줄도산 위기에 처했던 미국만큼 심각한 상황인가? 미국도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고 나서야 구제금융종합대책을 만들었다.

 

어렵더라도 당분간은 냉철한 시장경제의 가격 조절 메커니즘에 따라 부동산 거품이 자연스레 해소되도록 해야 한다. 부동산 거품에 취해 무리하고 부실한 경영을 해온 건설업체는 명확한 원칙과 기준에 따라 자연스레 퇴출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당장은 경제 전체에 돌아오는 충격이 큰 것 같아도 장기적으로 볼 때 국민 경제 전체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이다.

 

구체적으로는, 정부가 미분양 물량 매입 등을 통해 억지로 집값을 떠받치기보다는 자산시장에서 정상적으로 주택이 거래되도록 해 집값이 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집값이 일정한 바닥을 찾고 유효수요가 살아나도록 하는 것이 부동산 경기를 가장 빨리 활성화하는 방법이다. 그렇지 않고 정부가 인위적으로 가격을 떠받치면 거래가 형성되지 않아 부동산시장의 침체가 길어질 뿐이다. 그런 점에서도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정부에 집값 부양대책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해야 한다. 샤시 업자나 인테리어업체들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거품이 해소돼 시장의 가격 신호에 따라 거래가 일어나는 것이 가장 빨리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하는 방법이다. 오히려 지금처럼 집값 거품 해소가 늦어지면 부동산 관련 업체들은 모두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수 있다. 또 가계 입장에서도 자꾸 부동산시장의 언저리를 맴돌게 하지 않고 빨리 손절매를 하고 부채를 청산하게 해 정상적인 경제생활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실물 경제를 하루라도 빨리 살리는데 도움이 된다. 부동산에 돈이 묶여 있을수록 실물 경제는 악화되고 이것이 다시 부동산 시장을 더욱 위축하게 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또 부실 건설업체들이 시장에서 퇴출되게 하는 것이 일본의 사례처럼 중장기적으로 볼 때 건설업계와 한국 경제 전반에 돌아오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이다. ‘건설업계 복지’에 퍼붓는 예산들은 아껴뒀다가 부동산 버블이 붕괴한 뒤 일정한 시점에서 붕괴의 충격으로 고통받는 가계와 기업들에 대해 원칙과 기준을 정해 도와주는데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필자도 정부가 필요한 부양책을 쓰는 것에는 절대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처럼 1% 부동산 부자들과 건설업체들을 위해서 부양책을 쓰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정부의 예산은 지금 경제위기로 힘겨워 하는 중산층과 서민들을 위해 써야 한다. 지금 한 달에 10만원, 20만원이 없어서 냉기가 도는 집안에서 변도 치우지 못하고 사는 빈민들이 수두룩하다. 왜 그런 저소득층에는 땡전 한푼 지원을 늘리지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도로며, 공항이며, 아파트를 짓는데 수십, 수백조원의 예산을 써대려 하는가? 그처럼 막대하게 벌린 대규모 건축 및 토목사업의 유지 보수비 때문에 버블 붕괴기에 일본의 숱한 지방정부들이 파산한 사례를 모르는가? 왜 당장 돈이 필요한 저소득층과 경제위기에 시달리는 자영업자들과 비정규직은 외면하고 실현된 적이 없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 신화'를 들먹이며 부동산 부자와 건설업체 복지에만 정신이 없는가?

 

경고한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쓰는 건설경기부양책은 한국경제를 일본형 장기불황으로 몰아가는 길이다. 또한 겉으로는 공익으로 포장하면서 철저히 자신들과 자신들의 핵심 지지기반의 사익을 추구하다가 정권을 잃은 부시 행정부가 걸어간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 글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의 '부동산문제'토론방에도 띄웠습니다. 좀더 깊이 있는 정보와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포럼을 방문해주세요. 이 글은 연구소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11. 11. 09:51

버락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당선을 지켜보는 동안 여러 감정과 생각들이 교차했습니다. 우선, 기뻤습니다. ‘이민자의 나라’라고는 하지만 흑인과 히스패닉, 아시아인 등 많은 소수 인종에게는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하는 나라인 미국에서 흑인이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결코 깨지지 않을 것 같던 현실의 육중한 철벽이 도도한 민심의 물결에 일거에 무너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드높은 이상이, ‘담대한 희망(Audacious hope)’이, 숭고한 기대가 언젠가는 승리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한 사실이 기뻤습니다. 단순히 기쁨 정도가 아니라 등골을 따라 전율이 찌르르 흐르는 듯한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 이는 인종과 국적의 굴레를 떠나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대국에서 오랜 인류의 편견과 인식의 족쇄를 깨뜨리는 쾌거라는 점에서 기뻤습니다.



한편 부러웠습니다. 미국이라는 그 거대한 나라가, 그 나라의 유권자들이 집단으로서 뿜어내는 역동성이 부러웠습니다. 제가 무슨 친미주의자라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짧은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 제가 느낀 미국은 단점도 많은 나라였지만, 그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 매우 많은 장점을 가진 나라였습니다. 그 장점 가운데 첫 번째는 전문 역량이었습니다. 제가 미국의 보스턴에서, 그것도 2년이라는 짧은 세월을 보낸 것으로 미국에 대해 말하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가 만져본 코끼리 다리만으로도 미국이 결코 그냥 운이 좋아서 세계 최강대국이 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일단 대학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수준이 한국의 대학들과는 정말 차원이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탐욕에 오도된 많은 엘리트들도 있지만, 미국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는 또 다른 많은 엘리트들의 도덕적, 지적 수준은 정말 우리와는 비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이에 더해 각양각색의 인종들이 모여 살면서 마찰과 불협화음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 같은 다양성에서 싹트는 새로운 변화를 향한 역동성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미국은 세계 대공황 이후 최악의 세계 경제 위기의 진원지가 돼 있고, 그 충격을 가장 크게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사회가 가진 역량과 다양성에서 나오는 이 역동성이 결합한다면, 미국은 시간은 걸리더라도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충분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오바마의 미 대통령 당선도 바로 그 같은 에너지가 분출하는 한 출발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 한편 서글프고 안타까웠습니다. 이번에 오바마가 선거 캠페인 내내 내건 구호는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변화(The change we can believe in)’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의 당선 기념 연설에서 지지자들의 입에서 쉴 새 없이 터져 나온 말도 바로 ‘Yes, we can!'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어떤가요? 서민을 위한 과감한 개혁을 시대적 사명으로 출범했던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지친 우리 국민이 선택한 지도자는 시대착오적인 퇴물이자 건설족의 수괴일 뿐입니다. 그 스스로는 오바마와 비전을 공유한다고 낮술에 취한 취객처럼 헛소리를 외쳐대지만 우리는 그에게서 미래에 대한 아무런 비전도, 희망도 보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의 임기가 빨리 끝나주기만을 간절히 학수고대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취임한지 10개월 만에 대한민국은 온갖 풍상을 겪고 서민들은 엄동설한의 냉기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거듭되는 엉터리 정책과 노골적인 기득권 챙기기에 한국 경제는 끝도 없이 위기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오바마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되새길 때 이명박 대통령은 ‘상위 1%의, 상위 1%에 의한, 상위 1%만을 위한 불량국가’를 실현하느라 혈안이 돼 있습니다. 이처럼 극명히 대비되는 현실에 서글픔을 넘어 분노마저 느낍니다.



또 한편 무기력감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무지와 무능, 사악함으로 점철된 정부가 물러간다고 한들 ‘믿을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정치 세력이 우리에게는 있는 것인가요? 높은 도덕적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지금 한국이 당면한 산적한 과제들을 해결할 문제 해결 역량을 제대로 갖춘 정치 세력이 있는가 말입니다. 만약 현 정권이 물러난다고 해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역량 있는 정치세력이 있는 것인가요? 아무런 자기 정체성도, 제대로 된 문제 해결 역량도 갖추지 못한 민주당이 우리의 미래입니까? 아니면 시대 인식과 비전이 개발주의 시절의 국가주의적 관념에 고착돼 있는 박근혜와 그 추종세력들에게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운명을 맡길 수 있습니까? 아니면 똑같이 시대착오적인 이념과 편협한 세력다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민생 문제를 해결할 역량이 부족한 민주노동당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어느 정치 세력 하나 제대로 우리의 미래를 믿고 맡길 수 없다는 사실에 무기력감과 절망감을 느낍니다. 


   

그 무기력감 때문에 마지막으로 드는 감정은 결연한 책무감 같은 것입니다. 이 나라의 미래,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는 정치세력, 기득권세력들만이 권력과 자원을 독점하는 불공평한 게임의 룰이 아닌, 탄탄한 공동체 기반 위에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우뚝 세울 정치세력이 지금 없다면 결국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합니다. 오늘 오바마의 당선은 오바마 혼자의 힘으로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종교적, 이데올로기적 편협함에 빠져 자기들의 지지기반 챙기기에만 골몰했던 부시 행정부에 염증을 느낀 많은 미국 유권자들이 함께 일궈낸 기적입니다. 그러한 기적을 한국에서 만들어내는데 저도 제가 처한 자리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된 심정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면 그 변화의 방향은 어디일까요? 이번 미국 대선에서 양대 정당의 최종 후보였던 오바마 당선자와 맥케인 상원의원은 각각 자당의 주류 정치 흐름에서는 벗어나 있었던 인물들입니다. 특히 오바마 당선자는 강력한 당내 경쟁자이자 전통적 민주당의 주류 이념을 대변했던 힐러리를 따돌리고 당내 경선에 이긴 뒤 본선까지 이겼습니다. 워싱턴의 양대 정당들이 자신들만의 세계와 이념적 틀에 갇혀 유권자들의 마음을 파고들지 못할 때 무당파(Independent)적 성향이 강한 오바마는 유권자들에게 기존 정치권의 변화와 미국의 변화를 역설하며 오늘의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우리도 자기들만의 울타리에 갇힌 썩은 정치권의 이전투구를 벗어나 국민의 눈 높이에서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치세력을 키워내야 합니다. 또한 오바마는 47세의 젊은 대통령입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지금 많은 선진국에서는 40대, 심지어 30대의 정치지도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급속히 변화하는 시대에 경륜과 관록보다는 스피디한 변화와 창발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장관과 같은 60,70대의 ‘올드보이들’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세상입니다. 급변하는 세상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세대는 젊은 세대입니다. 이 젊은 세대들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 젊은 정치지도자와 정치세력을 키워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젊은 세대의 정치적 무관심을 비판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런 비판에 앞서 왜 그들이 정치적 무기력과 무관심에 빠지게 됐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번 미국 대선은 몇 십년내에 볼 수 없었던 사상 최대의 투표율을 기록했습니다. 무엇이 정치적 무기력증과 무관심에 젖어 있던 미국민들을 투표소로 끌어냈을까요? 그것은 오바마로 상징되는 변화요, 개혁에 대한 열망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젊은이들은 인터넷을 주무대로 그러한 희망을 스스로 만들고 참여했습니다. 우리의 젊은이들도 희망을 찾는다면 결코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존재로만 머물러 있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20,30대 젊은이들은 그동안 부모 세대와 기득권의 게임의 룰에 갇혀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을 뿐 결코 역량이 없는 세대가 아닙니다. 제대로 된 정치세력이 그들의 미래를 열어준다면 얼마든지 세계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시대적 감수성과 세계를 선도할 잠재력을 가진 세대입니다. 지금 이들 세대들이 주축이 돼 인터넷에서 함께 만들어 내는 집단지성의 힘을 보십시오. 얼마나 대단합니까? 이 힘들을 모으고 축적한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한국판 ‘오바마 기적’을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 그 기적을 만드는데 모두 함께 힘을 모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40여년전 ‘나는 꿈이 있다’고 한 말이 지금 현실이 됐듯이, 우리 모두가 함께 꾸는 꿈은 얼마든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참고로, 4일자 뉴욕타임스에 ‘세계는 평평하다’의 저자이자 명칼럼리스트인 토마스 프리드먼이 쓴 칼럼 ‘Finishing Our Work’을 옮겨 봅니다. 프리드먼이 평소에도 좋은 칼럼을 많이 쓰지만 오늘 칼럼은 정말 명칼럼입니다. 밑줄 그은 부분은 제가 공감하거나 인상 깊게 느낀 대목들이고, 군데군데 괄호 안에 제 생각을 조금 넣었습니다. 지금 시간이 너무 늦어 제가 번역까지 해서 올리지 못하는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혹 필요하다면 내일 오후에라도 번역해서 올리겠습니다. 아니면 여력이 되시는 분들이 릴레이 댓글로 문단별로 옮겨보는 것도 재미있는 협업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By THOMAS L. FRIEDMAN


And so it came to pass that on Nov. 4, 2008, shortly after 11 p.m. Eastern time, the American Civil War ended, as a black man — Barack Hussein Obama — won enough electoral votes to becom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A civil war that, in many ways, began at Bull Run, Virginia, on July 21, 1861, ended 147 years later via a ballot box in the very same state. For nothing more symbolically illustrated the final chapter of America’s Civil War than the fact that the Commonwealth of Virginia — the state that once exalted slavery and whose secession from the Union in 1861 gave the Confederacy both strategic weight and its commanding general — voted Democratic, thus assuring that Barack Obama would become the 44th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This moment was necessary, for despite a century of civil rights legislation, judicial interventions and social activism — despite Brown v. Board of Education, Martin Luther King’s I-have-a-dream crusade and the 1964 Civil Rights Act — the Civil War could never truly be said to have ended until America’s white majority actually elected an African-American as president.


That is what happened Tuesday night and that is why we awake this morning to a different country. The struggle for equal rights is far from over, but we start afresh now from a whole new baseline. Let every child and every citizen and every new immigrant know that from this day forward everything really is possible in America.


How did Obama pull it off? To be sure, it probably took a once-in-a-century economic crisis to get enough white people to vote for a black man. And to be sure, Obama’s better organization, calm manner, mellifluous speaking style and unthreatening message of “change” all served him well.


But there also may have been something of a “Buffett effect” that countered the supposed “Bradley effect” — white voters telling pollsters they’d vote for Obama but then voting for the white guy. The Buffett effect was just the opposite. It was white conservatives telling the guys in the men’s grill at the country club that they were voting for John McCain, but then quietly going into the booth and voting for Obama, even though they knew it would mean higher taxes.(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될지라도 오바마를 선택한 백인 보수주의자들과 자신들의 집값을 올려주고 종부세를 줄여줄 대통령을 뽑은 부동산 부자들의 선명한 대비가 떠오르네요)


Why? Some did it because they sensed how inspired and hopeful their kids were about an Obama presidency, and they not only didn’t want to dash those hopes, they secretly wanted to share them.(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자녀들의 희망을 공유하고 싶어한 부모 세대라니, 감동적입니다. 극심한 세대간 갈등과 분열을 경험하고 있는 한국적 상황에 마음이 아픕니다.) Others intuitively embraced Warren Buffett’s view that if you are rich and successful today, it is first and foremost because you were lucky enough to be born in America at this time — and never forget that. So, we need to get back to fixing our country — we need a president who can unify us for nation-building at home.


And somewhere they also knew that after the abysmal performance of the Bush team, there had to be consequences for the Republican Party. Electing McCain now would have, in some way, meant rewarding incompetence. It would have made a mockery of accountability in government and unleashed a wave of cynicism in America that would have been deeply corrosive.


Obama will always be our first black president. But can he be one of our few great presidents? He is going to have his chance because our greatest presidents are those who assumed the office at some of our darkest hours and at the bottom of some of our deepest holes.


“Taking office at a time of crisis doesn’t guarantee greatness, but it can be an occasion for it,” argued the Harvard University political philosopher Michael Sandel. “That was certainly the case with Lincoln, F.D.R. and Truman.” Part of F.D.R.’s greatness, though, “was that he gradually wove a new governing political philosophy — the New Deal — out of the rubble and political disarray of the economic depression he inherited.” Obama will need to do the same, but these things take time.


“F.D.R. did not run on the New Deal in 1932,” said Sandel. “He ran on balancing the budget. Like Obama, he did not take office with a clearly articulated governing philosophy. He arrived with a confident, activist spirit and experimented. Not until 1936 did we have a presidential campaign about the New Deal. What Obama’s equivalent will be, even he doesn’t know. It will emerge as he grapples with the economy, energy and America’s role in the world. These challenges are so great that he will only succeed if he is able to articulate a new politics of the common good.”


Bush & Co. did not believe that government could be an instrument of the common good. They neutered their cabinet secretaries and appointed hacks to big jobs. For them, pursuit of the common good was all about pursuit of individual self-interest. Voters rebelled against that. But there was also a rebellion against a traditional Democratic version of the common good — that it is simply the sum of all interest groups clamoring for their share.(부시와 그 동료들 대신 이명박과 졸개들이라는 말을 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구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In this election, the American public rejected these narrow notions of the common good,” argued Sandel. “Most people now accept that unfettered markets don’t serve the public good. Markets generate abundance, but they can also breed excessive insecurity and risk. Even before the financial meltdown, we’ve seen a massive shift of risk from corporations to the individual. Obama will have to reinvent government as an instrument of the common good — to regulate markets, to protect citizens against the risks of unemployment and ill health, to invest in energy independence.”


But a new politics of the common good can’t be only about government and markets. “It must also be about a new patriotism — about what it means to be a citizen,” said Sandel. “This is the deepest chord Obama’s campaign evoked. The biggest applause line in his stump speech was the one that said every American will have a chance to go to college provided he or she performs a period of national service — in the military, in the Peace Corps or in the community. Obama’s campaign tapped a dormant civic idealism, a hunger among Americans to serve a cause greater than themselves, a yearning to be citizens again.”(오바마의 선거캠페인이 잠자고 있던 미국민들의 공민(公民)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일깨웠다는 지적은 정말 마음에 와닿습니다.)


None of this will be easy. But my gut tells me that of all the changes that will be ushered in by an Obama presidency, breaking with our racial past may turn out to be the least of them. There is just so much work to be done. The Civil War is over. Let reconstruction begin.



이 글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의 '정치/안보문제'란에도 띄웠습니다. 좀더 깊이 있는 정보와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포럼을 방문해주세요. 이 글은 연구소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11. 7. 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