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보도국 뉴스2팀에서 현직 기자로 일하는 김수진기자가 저희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의 '언론개혁'란에 최근 YTN사태 100일을 맞은 소감을 보내왔습니다. 최근 YTN 사태를 잘 보여주고 있어서 좀더 폭넓은 독자들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글을 읽으며 가슴 한 켠이 아려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글 마지막에 있는 동영상도 꼭 보시길 바라고요. YTN노조, 더 나아가 이 땅에서 공정한 언론을 구현하려는 모든 분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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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을 맞는 우리들의 자세

  
 안녕하세요, 어린달님  김수진입니다.  석 달 쯤 전, 여름의 일입니다.

 "너무 앞에 나서지 마라."

 "괜찮아요. 저는 앞에 나서는 것도 아니에요. 저희 회사 사람들은 다 똑같은 생각이라 누구만 앞에 나서고 그런 것도 아니에요. 다 같이 해요 그리고.. 그런 거 무서웠으면 기자 하지도 않았어요. 입바른 소리 하라고 된 게 이 직업인데... 그런 거 무서우면 그냥 일반 회사 다녀야지"

 "그런 소리 마라. 옛날에 동아일보 사태 때 해직 기자들이 오랫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니 ? 너는 어려서 모르지만..."

 석 달 후, 저희 아버지의 걱정처럼, 33명이 징계를 당하고, 그중 6명은 해임을
당했습니다.

저는 충분히 '앞에 나서지' 못했는지 징계도 정직도 감봉도 경고도 받지 못한
'살아 남은 자'가 됐습니다. '살아 남은 자'들은 분노에 울부짖었지만, '죽은 자'들은 오히려 "우리 때문에 무릎을 꺾는다면 용서하지 않겠다"며 우리를 다독였습니다. 우리는 당장 간부급 선배들의 각성을 촉구하던 단식을 걷어치우고 다시 '블랙 투쟁'에 나섰습니다. (보셨죠? 앵커와 기자들이 검은 옷으로 조의와 항의의 뜻을 표현했습니다)

 징계 이후 국정감사에서 손에 피를 묻힌 '자칭 사장' 구본홍과 YTN 노종면 노조위원장이 출석해 증언하며 이슈가 됐습니다. 구본홍씨는 편의에 따라 기억이 나기도 하고 기억이 나지 않기도 하다며 스스로가 언론사 사장이 될 자격도 없고 그럴만한 정신 건강도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YTN 발전에 눈꼽만큼도 기여한 적 없는 사람이 YTN을 피땀흘려 만들고 키운 유능한 기자 33명을 징계하고 해고한 데 대해서는 '무자비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해직 사태 이후에도 구씨는 단 며칠만 출근하는 척을 하다가 늘 그렇듯 노조의 저지로 회사에는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어느새 찬바람이 옷깃에 스며드는 계절이 됐고, 우리는 낙하산 사장 출근 저지 투쟁 100일을 맞았습니다. 이제는 농성 천막에 앉아있으면 찬 기운이 바닥에서 술술 올라오는 게 느껴집니다.

100일을 맞는 저희들의 자세는 투쟁 1일째와 다름이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 자리 숫자를 보면서 기가 막히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좀 지칠 때도 있는 게 사실이지만요.

저는 개인적으로 저희가 '투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창하게 '언론자유'를 위해 싸운다며 목에 힘을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기자라는(혹은 촬영기자라는,
기술감독이라는, 회계담당,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진 직업인이고, 생활인이고, 뉴스를 만들고 전달하는 회사에서 일하며 이걸로 녹을 먹으니 그만한 값을 시청자들에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정방송, 바른 보도가 저희가 생산하는 '정품'입니다. 저희는 그저 처음과 똑같이, 공정한 방송을 할 수 있는 독립성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려 합니다. '불량 뉴스, 짝퉁 뉴스'를 만들어내라고 지시하는 낙하산 사장을 몰아내고 '불량률 0'에 도전해야죠. 저희만 이런 노력을 하는 게 아닙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도 직업인으로 생활인으로 자기 자리에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지 않나요? 이 싸움은 언론사 종사자로서 당연히 저희가 해야할 의무일 지 모릅니다. 다른 언론사들도 같은 상황이면 그럴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특정인의 선거 캠프 참모로 일한 정치인은 언론사 사장이 될 수 없다는 상식을 지키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올바른 사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우리의 싸움이 천 일이 되더라도  만 일이 되더라도, 그리고 구본홍씨가 사퇴하더라도 YTN이 존재하는 한 영원할 것이라고, 영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본홍씨가 언제 사퇴할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누가 오더라도 저희는 늘 공정방송을 해야 하고 그 최소한의 여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정치세력이 정권을 잡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되었던 보도의 독립성에 손을 대려는 자들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죄송하지만 어떤 분들이 걱정하시는 것처럼 YTN은 이른바 '좌편향'이라서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수 언론사든, 진보 언론사든, 중도 언론사든, '제대로 된' 언론사라면 대선 캠프 특보 출신 정치인은 사장으로 받지 않는 게 정상입니다. 
  
사실 이런 기본적인 상식만으로도
구씨는 YTN의 사장일 수 없지만, 저희가 그동안 투쟁 과정에서 겪은 구씨는 도덕적으로도 큰 흠결이 있어 언론사 사장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구씨가 회사대신 특급호텔 스위트룸을 집무실로 애용하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으며 펑펑 쓴 돈이 석달간 노조가 밝혀낸 것만  4500만원인데, 회사는 '그게 아니고 3800만원'이라고 공식적으로 해명했습니다. --; 
  
백 번 양보해 3800만원이라도 해도, 외환위기 때 6개월 동안 월급을 못 받아가면서도 회사를 살렸고, 10년 동안 돈이 없어서 오디오맨도 없이 취재기자가 카메라 삼각대를 들고 다니며 취재했던, 송출비 30만원이 지금도 아까워서 촬영 테이프를 들고 달리는 YTN 직원들로써는 피를 토할 일입니다.

YTN이 안정적으로 흑자를 낸 것도 불과 최근 몇 년의 일인데, 사원들의 연봉보다도 많은 돈을, 사장 인정도 받지 못하는 자가, 회사에 뼈빠지게 일해 돈 벌어다 주는 사람들의 목을 잘라가며 호텔에서 물 쓰듯 쓰다니 정말 용서가 안됩니다. 참고로 팀원들이 징계받아 제작이 중단된 돌발영상만 해도 광고수입이 억대에 이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YTN 입구를 지키며 구본홍씨보고 '돌아가라'고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저는 살아남은 죄를 가진 자이기에 징계받은 동료와 선배들에게 늘 미안하고 죄스럽습니다. 그들이 없으면 저도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결코 그들이  홀로 고통받게 하지 않겠습니다. 결코.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오늘 (24일) 금요일 저녁 7시 30분부터 백일을 맞는 25일 0시까지 출근저지 투쟁 100일을 맞아서 저희가 문화제를 엽니다. 그동안 응원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릴 수 있는 자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회사 그래픽팀 사우 서정호씨가 100일을 기록하는 뮤직비디오를 제작했습니다. 배경음악은 김창기의 '여섯개의 넥타이로 살아남은 자의 노래'인데, 이 노래 가사의 일부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하지만 이것 만은 너에게 꼭 약속해 줄께

  너무 예쁜 우리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그런 아빠가 되겠다고

  너의 이마에 다짐할께 
  
  너무 예쁜 우리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그런 아빠가 되겠다고

  너의 입술에 다짐할께


    뮤직비디오 '우리는 왜 눈물을 흘려야 하나'

by 선대인 2008. 10. 24. 09:16

우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폴 크루그먼 교수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는 내가 아는 좁은 세계에서 정말 훌륭한 경제학자이자 양심적인 언론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을 계기로 그가 썼던 ‘The Great Unraveling'라는 책을 꺼내보았습니다. 국내에 ‘대폭로’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책인데요. 제가 갑자기 이 책을 다시 꺼내든 이유는 ‘부시 저격수’라고 불리는 그의 부시 행정부 비판이 최근 국내 상황에도 적실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약 8개월이 지났습니다. 저는 지난해 대선 결과를 보며 느낀 소감을 한 카페에 띄운 적이 있는데, 그 글의 일부는 이렇습니다.


        “자산과 소득 양극화에 부동산값 폭등, 비정규직 비율 55%, 청년 실업 200만, 출산율 바닥, 자살율과 근로시간, 산재사고 OECD 최고라는 대한민국의 엽기적인 현실과 이를 나몰라라 하는 정치권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납니다. 하지만 아무리 배가 고프다고 쓰레기통을 뒤져서는 안 되잖아요? 현 집권세력이 이 문제를 해결 못한 데 대한 민심의 분노는 이해하지만, 땅바기가 집권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닌데 말입니다. 그의 철학과 정책을 보면 오히려 현재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이 더욱 악화될 것 같군요. 좀 심한 비유인지 모르겠으나, 독일이 1차대전의 전쟁부채에 시달리다 결국 히틀러를 택한 장면이 왜 자꾸 오버랩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시점에서 그때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면 제가 썼던 글이 그대로 현실이 되고 있느 듯 해 소름이 끼칩니다. 오히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악화된 형태로 말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 정부의 경제 및 교육정책 등 정책 실패와 아마추어적인 정부 운용 등에 대해 비판합니다. 저도 그런 면에서 가장 강력한 비판자 가운데 한 사람일 것입니다. 사실 아마추어도 이만저만한 아마추어가 아니며, 국민들에게 내뱉은 공언을 쉽게 뒤집는다는 점에서 사기꾼 기질도 강한 정부라고 봅니다. 정말 저질 불량정부이지요.


        하지만 저는 어느 순간 이 사람들의 정치 행태 및 국민이나 여론에 대한 대응, 그리고 방송 장악이나 간첩단 조작, 군대의 금서 목록 발표, 건국 60주년 표현, 부유층 위주의 감세정책 등 자신들의 어젠다를 철저히 추구하고 쟁취하는 과정에 더 우려를 느끼게 됐습니다. 많은 이들이 ‘실용정부’라는 현 정부의 구호에 속아 그냥 친기업적이고 경제성장을 우선시하는 중도 우파 정도의 정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 정도에 그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과격한 ‘우파 혁명세력’입니다. 물론 지금같은 경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엉터리 저질 집단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또 하나 분명한 것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자신들과 자신들의 지지세력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관철시키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집단이라는 겁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촛불시위 이후 자신들 세력을 결집하며 전 국민을 대상으로 선전포고하듯 하는 이들의 태도를 보면서 점점 이들은 합리적 판단력을 가진 정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찾아 본 책이 "The Great Unraveling"입니다. 

 

        폴 크루그먼은 대폭로에서 조지 부시 행정부를 ‘혁명 세력(A Revolutionary Power)’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연재하면서 처음에 경제 문제에 대해 글을 쓰다가 점점 정치 문제에 대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했습니다. 바로 ‘급진적인 정치 운동이 부상하고 점증하는 지배력을 갖게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급진 우익이 백악관과 의회를 사실상 지배하고, 사법부와 미디어의 상당 부분을 통제하게 된 현실에 대해 그는 매우 깊은 우려를 나타냅니다.


        그는 이 같은 생각을 바로 이 책의 도입부에서 구체적으로 정리했습니다. 닉슨 행정부 시절 냉혈적인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는 박사학위 논문 ‘되찾은 세계(A World Restored)’에서 1930년대의 전체주의 정권들에 대한 유화적 대응책의 실패를 비판합니다. 이때 그는 프랑스의 로베스피에르와 나폴레옹 치하의 정치 세력들을 ‘혁명 세력’이라고 규정하고, 1930년대의 전체주의 세력에도 같은 규정을 합니다.


        폴 크루그먼은 헨리 키신저의 이 박사학위 논문을 읽다가 부시 행정부 또한 기존 체제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이라는 점에서 ‘혁명 세력’이라고 규정합니다. 이들 혁명 세력들은 오랫동안 확립된 미국의 정치 및 사회적 제도들이 존재해서는 안 되며, 우리들 모두가 당연시하는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정부의 역할과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확충 등을 단순히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기본적인 (시장경제) 원칙에 위배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무력 사용을 전혀 주저하지 않습니다. 미국에 테러를 가한 적이 없는 이라크에 대해 선제공격을 감행한 것이 대표적이며, 시리아, 이란, 북한 등도 ‘악의 축’으로 묶어 같은 방식으로 다루려 했습니다. 미국 헌법의 근본 원칙 가운데 하나였던 정교 분리를 내팽개치고 ‘성경적 세계관’을 확산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습니다. 정통성은 민주적 절차에서 나온다는 사상을 받아들이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 나라를 이끌도록 신의 부름을 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실들을 종합하면, 이들 혁명세력이 원하는 나라는 이렇습니다. ‘기본적인 사회 안전망이 없으며, 국가의 뜻을 해외에 관철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며, 학교에서 진화를 가르치지 말고 종교를 가르쳐야 하고, 선거는 형식적 치장물에 불고한 나라’ 말입니다.

        

        폴 크루그먼은 감세와 이라크 전쟁을 예로 들어, 이들 혁명세력이 어떻게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는지 설명합니다. 우선, 감세는 90년대부터 공화당의 핵심 의제였습니다. 이들 혁명 세력들은 단순히 감세를 원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미국 조세체계의 분쇄를 목표로 했습니다. 이들은 제한된 승리에 절대 만족할 수 없는 세력입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세수 초과 환급을 명목으로 세금을 깎고, 세수 부족으로 전환됐을 때는 경기 부양책으로 세금을 깎고, 경기 부양 효과가 없음이 드러나자 장기적인 경제 성장을 촉진한다는 명목으로 세금을 깎습니다. 이라크 선제 공격론도 90년대초부터 폴 울포위츠, 딕 체니 등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강화돼 왔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9.11테러라는 현 상황에 대한 대응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사담 후세인과 알 카에다의 연계 혐의로 이라크를 침공했다가 그것이 거짓임이 드러나자 이번에는 핵개발 프로그램(대량 살상 무기라는 표현으로 확장합니다만)을 이유로 갖다 붙입니다. 나중에 이것조차도 설득력이 없음이 드러나자 이번에는 ‘민주주의의 확산’을 명분으로 갖다 붙입니다. 감세나 이라크전뿐만 아니라 에너지 정책과 환경 정책, 보건정책, 교육정책 등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모든 경우에 부시 행정부는 그다지 급진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 정책 논리를 제시함으로써 온건주의자들을 안심하게 합니다. 그리고 매번 온건주의자들은 (2차 대전 직전 나치 히틀러에 대해 영국 수상 리처드 챔벌린이 구사했던) 유화주의 전략을 따릅니다. 폴 크루그먼은 헨리 키신저의 통찰이 옳았다며 그의 말을 인용합니다. “안정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혁명세력을 맞닥뜨렸을 때 당시 발생하는 것을 어지간해서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혁명세력을 저지하는데 효과적이지 못했다.”


        이제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한국 상황으로 돌아와 봅시다. 말로는 중저소득층용이라고 떠벌리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부유층을 위한 감세안, 시장친화적인 부유세의 하나인 종부세의 시행 2년만의 유명무실화, 반공 기독교이념에 사로잡힌 철저한 대북 대결 구도 전개(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주인처럼 떠받드는 미국에조차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에서 왕따당하는 얼간이들이죠),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대통령과 소망교회 출신의 종교적 신념에 사로잡힌 ‘강부자/고소용 내각’, 녹색성장을 외치면서 태양광 발전 보조금을 깎고 원전 대규모 건설 계획을 밝히며 대규모 개발사업을 벌이는 반환경정부, 공교육을 사교육화하고, 사교육시장을 극대화해서 어린 학생들을 더욱 치열한 적자생존의 경쟁에 내모는 교육정책, 미분양 물량 매입과 건설 물량 만들기를 통한 ‘건설업자 복지’에는 열을 올리면서도 기존의 복지 예산은 삭감하는 거꾸로 정책, 종부세, 양도세 경감 등 부동산 부자들을 위한 집값 떠받치기로 일관하는 정책,  민주화 이후 진전돼온 천부인권적, 민주적 권리 및 제도 뒤집기 정책-군의문사위 해체, 국가인권위 압박, 집단 소송제 통한 집회결사의 자유 제한 강화, 인터넷 명예훼손죄 도입 시도, 권위주의정권식 방송 통제 시도, ‘건국 60년’ 표현 통한 헌법에 규정된 임시정부 정통성 부인과 뉴라이트 등 친일우파 집단의 등용, 친일우파적 시각에서 역사 교과서 수정 시도 등등 이루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이게 불과 이들이 집권한지 8개월도 안 돼 벌어진 일입니다. 이를 보면 이들이 한심한 저질 아마추어집단인 한편 자신들의 아젠다는 얼마나 노골적으로, 그러면서도 철저히 추구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이런 형편 없는 저질 정치세력을 정치적으로 심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쨌든 이들이 집권하고 있는 ‘암흑기’입니다. 이러한 시대를 어떻게 해석하고, 견디고, 대처해야 할까요? 폴 크루그먼 교수는 친절하게도 이에 대한 대응법까지 책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리스트로서 ‘부업(part-time) 저널리스트’인 자신이 생각하는 다섯 가지 ‘보도 준칙(rules for reporting)’을 책에서 소개합니다. 그는 “이 같은 규칙은 뉴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어떤 진지한 시민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같은 규칙은 현재 한국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다섯 가지를 간략하게 소개해보겠습니다. 각각의 준칙에 해당하는 국내 사례를 제가 몇 가지 정리해봤습니다. 댓글을 통해 다른 분들이 의견을 달아주시는 것도 좋겠군요.

 

준칙 1. (이들이 내세우는) 정책안이 그들이 겉으로 내세운 목표에 부합한다고 가정하지 말라.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으며, 그 목표를 추진하기 위한 어떤 주장도 서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한 기자가 백악관 보좌관이 공개적인 자리와 사적인 자리에서 한 사안에 대해 정반대로 말한 것에 대해 해명하라고 하자, 그 보좌관의 답변은 이랬다. “왜 거짓말하느냐고? 그건 내가 해야 하는 일이야. 언론에 거짓말하는 것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전혀 받지 않아.”


한국 사례: 철저한 부유층을 위한 감세안에 대해 중저소득층의 경제활력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 처음에 영어몰입교육 내세웠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영어몰입교육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했으나, 서울시교육청을 통해 단계적으로 추진중.


준칙 2. 이들의 진정한 목표를 발견하기 위해 공부 좀 하라.

부시행정부는 감세안을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포장했지만, 단기적으로 감세안이 일자리 창출 수단으로 널리 인정하는 어떤 경제학 이론도 없다. 경제 성장은 사실 그들의 목표가 아니다. 급진 보수파들은 자본에 대한 모든 과세를 없애야 한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그것이 이 정부의 감세안이 실제로 이루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정책을 이해하는 방법은 그들이 대중들에게 그들의 계획을 선전하기 전에 이들 정책의 기획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정부에서 전직 목재 산업 로비스트 출신이 산림정책을 총괄할 때, 그 관리가 ‘건강한 산림’이라고 하는 말은 벌목 회사들이 더 많은 나무를 베는 것을 허용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런데 저널리스트들이 이런 문제를 다루는 것은 어렵다. 그들은 (급진 보수파의 진정한 의도를 드러내 강력히 비판함으로써) 편향적인 엉뚱한 음모이론가처럼 비치길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이 충분히 공개돼 있는 상황에서 어떤 음모가 개입돼 있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더 비현실적이다.


한국 사례: 이명박 정부는 여론 조작을 위해 노골적으로 방송장악을 시도하고 있으나, 이를 언론의 편향성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주장. 최근의 역사 교과서 수정 논란이나 임시정부의 법통을 무시한 건국 60주년 표현 사용도 마찬가지. 


준칙 3. 일반적인 정치 규칙이 적용될 것으로 가정하지 마라.

워싱턴정가에서는 스캔들이 일어나면 언론이 떠들어대고 관리들은 사퇴한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 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내무성 차관으로 일했던 석탄산업 로비스트인 스테펀 그릴은 예전 고객을 위해 개입한 사실이 밝혀졌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육군참모총장인 토마스 화이트는 엔론 경영진 시절 가공 이익을 만들어낸 사실이 밝혀졌지만 유임됐고, ‘이해충돌’ 사실이 드러난 국방정책자문위 의장인 리처드 펄도 마찬가지다. 왜 이런 일반적인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가? 기존 시스템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이들 혁명세력들은 규칙에 따라 경기를 펼쳐야 한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사례: 언론장악대책회의를 열었던 최시중이나 이동관 유임, 땅투기와 표절 논란된 청와대 수석들과 장차관 대부분 그 자리에 있음. 자신들이 야당이었던 시절 같은 기준으로 사퇴 총공세를 펼쳤던 기준을 자신들에게는 적용 안 함. 하긴 법을 밥 먹듯이 어긴 범법자 대통령 밑에 있는 충복들이 조그만 스캔들에 움찔이나 하겠습니까?



준칙 4. 혁명세력은 비판에 대해 공격으로 반응한다.

혁명세력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다른 이들이 비판할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의문을 제기하는 누구든 무자비한 역공을 받을 것을 기대해야 한다. 예를 들어, 2003년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선두주자였던 존케리가 “이라크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정권 교체를 해야 한다”고 한 말을 두고 공화당측은 “전시에 군통수권자의 교체를 요구했다”며 그의 애국심을 문제삼았다.


국내 사례: 촛불집회 유모차 부대까지 처벌, 조중동 광고 불매 운동 주도자 처벌, PD수첩 보도 제작자 징계 요구 및 검찰 수사 의뢰. 자신들이 더욱 이념적이면서 최근 경제위기까지 좌파 이념세력의 공세로 치부, 간첩단 사건 조작.


준칙 5. 혁명세력의 목표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마라.

끊임없이 이유를 바꿔가며 철저히 감세정책을 밀고 나갔던 부시 행정부에 대해 생각해보라. 온건주의자들의 유화적 대처가 그들의 목적을 끝까지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라크 전쟁은 ‘부시 독트린’의 출발선일 뿐이었다. 결코 제한된 양보로 그들을 달랠 수 없다.


국내 사례: 방송장악 과정에서 YTN 낙하산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KBS로, 이제 신문방송 겸영 통한 조중동 특혜 주기와 MBC민영화 시도까지 나아가고 있는 행태.


 

물론 미국의 상황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들어맞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니 어찌 보면 미국에 비해 한국의 여건은 훨씬 비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엘리트들은 거의 대다수가 민주당이나 무당파 성향으로 서민 복지 강화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반면, 한국의 엘리트들은 대부분 우익 성향에 한나라당 지지자들입니다. 미국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제대로 된 신문들이고 찌라시 언론들인 폭스뉴스 등은 주류라기 힘든 반면 한국에서는 찌라시 신문들이 가장 영향력 있으며, 이런 찌라시 관점을 방송에까지 도입하려 하고 있습니다. 부시행정부에서 미국에는 민주당이라는 매우 강력한 야당이 있었으나, 지금 한국에는 존재감과 정체성마저 희미한 민주당과 소수 정당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의 상황은 더욱 암울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희망도 있다고 봅니다. 지금의 한국 정부는 훨씬 더 엉터리 정부여서 대중들이 그들의 진정한 목적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 더구나 현재의 경제위기 상황을 제대로 대처할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고요. 또한 조중동 등 주류 신문들의 거짓말이 들통나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한 반면 20, 30대 젊은 세대들을 주축으로 인터넷상의 집단지성을 통해 진실을 깨달아가고 있다는 것일 겁니다.


저는 소위 친노도 아니고, 지금의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 같은 정치세력들에서 희망을 보지도 않습니다. 지금의 시대착오적 이념에 빠져 있는 엉터리 급진 보수세력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서민들을 착취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분노할 뿐입니다. 그리고 기득권 중심의 불공정한 게임의 룰이 적용되는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나와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폴 크루그먼이 책에서 인용한 구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CBS의 60분 진행자인 앤디 루니의 말인데요. “단 하나의 진정으로 좋은 뉴스는 미국역사에서 이 끔찍한 시간이 끝나는 것”이라고요. 저는 이 말에 조금 살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단 하나 진정으로 좋은 뉴스는 한국 역사에서 이 끔찍한 시간이 끝나는 것, 그리고 정말 제대로 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할 역량이 있는 정치세력이 성장해 집권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 토대를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by 선대인 2008. 10. 14. 07:57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최근 집값 거품 붕괴 현상이 완연해지고 미분양 물량 급증으로 인한 건설업체의 자금난이 심각해지면서 거품 붕괴를 막으려는 정부 대책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부동산 대책인 소위 ‘8·21대책’부터, 9·1 감세안, 9·19 주택 500만 호 주택공급대책, 9·22 종합부동산세제(이하 종부세) 개편안 등이 잇따랐습니다.

 

발표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자면 △분양가 상한제 무력화 및 사실상의 후분양제 폐지 △최저가낙찰제 확대 적용 연기 △지방 미분양 아파트 환매조건부 매입 △ 수도권 전매 완화 △ 정부 예산 120조 원을 동원한 주택 공급 △뉴타운 및 신도시 추가 지정 △재개발 재건축 사업 촉진 △1가구 1주택 양도세 부담 및 상속세 부담 완화 △부유층 중심의 소득세 완화 △종부세의 유명무실화 △분당신도시 16배 크기의 그린벨트 해제 등입니다.


이들 대책의 공통점은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건설업계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고가 주택 보유자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것입니다. ‘건설 및 부동산 경기 부양’과 ‘집값 거품 떠받치기’로 일관한 정책들입니다. 더구나 정부가 이들 대책을 내놓는 속도와 규모가 엄청나다는 점이 주목됩니다. 정부는 ‘한국경제의 펀더멘탈은 괜찮다’고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부리지만, 속으로는 부동산 거품 붕괴에 대해 극심하게 걱정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직접적인 건설 및 부동산 정책이 아니어도 같은 정책 의도를 가진 게 많습니다. 정부가 향후 5년 간 56조 원을 투입하는 ‘광역경제권 선도 프로젝트’ 사업이 대표적입니다. 56조원 사업 가운데 53조원 가량이 이미 포화상태인 항만과 공항, 산업단지, 도로 건설 등에 들어가게 됩니다. 정부가 새만금개발사업 추진에 속도를 붙이고, 제2 롯데월드 건설을 신속히 허가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특히 정부가 군 내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제2롯데월드 건설 허가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재 상암 DMC초고층 빌딩이나 용산국제업무지구 조성 등 서울과 수도권에서 민간이 추진하는 등 대규모 개발프로젝트는 많습니다. 하지만 당장 현금을 동원할 수 있는 사업은 많지 않다는 게 관련 업계의 진단입니다. 하지만 제2롯데월드는 다릅니다. 롯데그룹은 현재 상황에서도 비교적 풍부한 현금 동원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롯데그룹 계열사의 한 부사장은 필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건설경기를 살리려면 당장 돈을 풀 수 있어야 하는데 다른 데서는 지금 같은 신용 경색기에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우리는 수조원의 현금을 바로 동원할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숙원사업인 제2롯데월드 건설을 의욕적으로 추진중인 롯데그룹은 정부에도 같은 논리를 내세웠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국내외 거시경제 구조를 볼 때 현 정부의 이 같은 부동산 부양책도 버블 붕괴를 막기 어렵습니다. 정부가 대출 규제 완화를 제외하고 웬만한 부양책은 다 내놓았지만 부동산시장이 꿈쩍도 않는 게 그 증거입니다. 버블 세븐의 집값은 최근 16개월내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고, 금융기관이 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경매물건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버블 세븐 지역에서 그동안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가격대가 깨지고 있다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아직 남아 있는 대출 규제가 풀린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구조적으로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은행이 과거처럼 선뜻 대출을 해줄 리가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높은 집값, 극심한 거래 부진으로 표현되는 ‘부동산 스태그플레이션’ 기간을 지나 버블 붕괴의 초기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저금리와 달러 유동성 급팽창에 기인했던 전세계적 부동산 버블의 동시 붕괴 현상, 수도권 미분양 물량 급증으로 표현되는 공급 과잉, 투자 수익률의 저하와 투기 심리의 위축,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 시중의 신용 수축과 금리의 지속적 상승, 이미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재개발과 뉴타운 등등 집값 거품 붕괴를 부르는 시장 압력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버블 붕괴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아마 버블 붕괴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입니다.


이런 상황 전개를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착잡한 생각이 듭니다. 우선, ‘삽질경제학’의 대가이자, 건설족의 우두머리 출신 대통령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을 ‘경제대통령’으로 포장했고, 경제를 살리겠다고 약속했는데 경제를 어떻게 살려야 할지 마땅한 방법을 모르겠죠.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려면 부동산 거품을 빼고 국가 정책의 틀을 콘크리트가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경제로 바꿔야 하는데 그게 쉽게 될 리 없죠. 확고한 비전과 철학을 가지고 추진해도 어려운 문제인데, 반칙과 편법, 부정이 판치던 개발경제 시대의 현대건설 사장 출신으로는 개념조차 없을 테니까요.


더구나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등 자산경제가 지나치게 부푼 상태에서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은 계속 급전직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장잠재력을 제대로 확충하려면 시간이 걸리니, 전시행정과 단기 눈속임 성과주의의 귀재인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택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그의 언행이나 정부 정책을 보면 성장잠재력을 어떻게 확충하는지에 대해 전혀 모르는 대통령 같습니다. 결국 자신의 전공 분야이고, 당장 효과가 나타나는 개발 사업으로 승부를 보려 하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하면 각 지역에도 선심을 쓰는 격이니 정치적으로도 득이 되는 일입니다.


한국 경제의 위기는 매우 깊은 속병을 가진 구조적 위기이지, 단기적 위기가 아닙니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 내수 침체, 자산 및 소득 양극화, 성장 잠재력 고갈, 막대한 가계 부채 급증 등이 부동산 버블을 고리로 지난 10년간 확대 재생산돼온 상황입니다. 한국 경제의 핵심 위기는 오히려 이처럼 외환위기 이후 누적돼온 구조적 위기입니다. 그런데 정부도 내심 부동산 버블이 붕괴될 위기감을 느끼고 있고, 그것이 가져올 신용 위축 사태가 우려되겠지요. 그래서 각종 개발사업과 전매제한 완화 조치 등을 통해 시장에 돈이 돌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가 해소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경제의 핵심적 문제들인 소비 위축, 내수 침체, 실업률 증가, 양극화 확대, 고물가 고비용 구조 등의 문제는 상당 부분 부동산 거품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우선, 가계부채의 증대와 이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로 가계의 소비 여력이 급격히 위축됐습니다. 또한 소비재와 달리 가장 값비싼 생활 필수재인 주택 값은 상승하면 그만큼 실질 소득이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또 주거비 부담이 상승하면 이를 부담하기 위한 임금 상승이 합리화돼 기업의 비용 증가로 이어집니다. 자산 양극화가 심해지고 이로 인한 사회적 위화감도 증대됩니다. 토지 비용의 상승으로 경제가 고비용 구조로 흐르게 돼 중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거품은 형성되면서 이미 막대한 경제적 폐해를 낳습니다.


한 나라의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부동산 등 자산 경제의 영역과 생산경제의 영역이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경제 자원이 부동산에 편중되도록 집값 거품을 키우고 유지하면서 7~8년을 지속해왔습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집값 거품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씁니다. 여기에다 지금 대규모 개발 계획을 남발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다 언급할 수 없지만,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각종 중앙 및 지방정부 차원의 개발 사업들이 막대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각종 개발사업들을 또 벌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개발사업들이 모두 필요한 것이라면 말도 안 하겠습니다. 당장 ‘광역경제권 선도프로젝트’ 계획만 봐도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이 수두룩합니다. 예를 들면, 대구, 구미, 포항, 광주·전남, 서천 등 5곳에 새로운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존에 형성된 산업단지와 과학기술테크노파크 등의 사업과 뭐가 다른지 의문입니다. 문제는 산업단지 조성을 통한 부지 제공이 아닙니다. 기존 산업단지에 입주한 기업들에게 기술과 지식, 정보를 공유하고 외국 자본을 유치해 ‘연계 혁신(connected innovation)이 일어나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것이 현재 세계 각국이 추진하는 첨단산업클러스터를 통한 경제성장 방식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것은 결국 개발사업입니다. 산업단지가 제대로 된 의미의 클러스터화하지 않으면 그것은 결국 부동산일 수밖에 없습니다. 일부 입주기업들에게 땅장사를 하게 하기 십상입니다. 더구나 얼마 전 KBS스페셜에도 나왔지만, 지방 및 수도권의 제조기업들은 오히려 한국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산업용 부지에 대한 수요는 줄어드는데 새로 산업단지를 조성하면 거기에 얼마나 들어설까요?


동남권역에 조성하겠다는 ‘동북아 제2허브공항’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강원도 양양과 경북 울진, 전남 무안 등 지방 공항들이 페쇄되거나 이용객들이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더구나 경남 김해공항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다 새로 공항을 짓는다면 충분한 수요가 생길까요? 마산∼거제 연륙교를 지어 해양관광을 활성화한다거나, 대경권에 3대 문화·생태 관광기반 조성을 한다는 사업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입니다. 전 정부에서 앞다투어 나섰던 대규모 관광개발 사업들 중에 지금 성공한 것이 있습니까?


한 마디로 그냥 개발사업을 했을 뿐, 이후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아무런 신경을 안 쓰는 것이 지금의 정부관료들입니다. ‘공급을 하면 수요는 생긴다’는 근거 없는 희망에 따라 개발계획을 내놓는 것입니다. 이는 개발시대 때에나 통하던 방식입니다. 개발시대 때에는 기본적인 사회인프라가 부족하니 짓기만 하면 다 수요가 생겨나고 성장 잠재력 확충에도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웬만한 사회기반시설은 대부분 마련돼 있습니다. 이런 콘크리트 사업에 투자해봤자, 성장 잠재력이 얼마나 확충되겠습니까? 사람들이 이용하지도 않는 공항, 도로, 관광지를 만들어놓는다고 그게 경제를 활성화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당장 주변에 사시는 곳부터 한 번 확인해보세요. 제가 서울시에 재직하면서 느꼈지만, 도서관 짓는데 100억원 이상이 들어가는데 정작 매년 도서 구입비 예산은 1억원 남짓합니다. 그러니 도서관에 가도 제대로 볼 수 있는 책이 없지요. 마찬가지로 문예회관이나 공연장이라며 수백억원을 들이는데 정작 짓고 나면 질 낮은 프로그램밖에 안 돌아갑니다.


제가 사는 일산 킨텍스나 종합운동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확인은 안 해봤지만, 두 곳 모두 짓는데 수백억원에서 1000억원대는 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일산 킨텍스는 일년 중 제대로 행사가 열리는 날이 아마 10일 안쪽일 겁니다. 그렇게 커다란 건물을 지어놓고는 안에서 뭐하는지 아십니까? 겨울에 인공 눈썰매장 한 켠에서 운용하고, 여름에 간이 물놀이장을 만들어 운영합니다.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 기존에 있는 킨텍스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지금 제2킨텍스를 짓는다고 난리입니다. 종합운동장도 마찬가지입니다. 2부 리그팀이 경기하는 게 일년에 10여차례에 불과한데, 그 외에는 그 큰 운동장이 텅 비어있습니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도대체 시민들에게 거의 아무런 혜택도 돌아오지 않고, 경제에 도움도 되지 않는 이런 막대한 개발사업을 누구를 위해 하는 겁니까?


그럼 돈들이 남아돌아서, 다른 데는 쓸 데가 없어서 이런데 쓰고 있을까요? 몇 년 간 아이들을 키우던 제 처가 얼마 전부터 사회복지사 일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저소득층 노인들을 위한 복지 프로그램을 맡았는데, 한국의 열악한 복지 현실에 마음이 찢어질 정도랍니다. 장애 때문에 생활도우미가 절실히 필요하지만, 도움을 받지 못해 변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노인, 가만 있던 집값이 재개발 붐에 4000만원에서 8000만원으로 올라 자활대상자 지원에서 제외된 노인, 한 달 생활비 10만원 정도로 버티며 매일 끼니를 라면으로 떼우는 사람 등등. 아내가 담당하는 케이스만 220가구. 그런데 아내와 동료 사회복지사 한 명의 급료를 포함해 배정된 1년 예산은 겨우 1억5000만원이랍니다. 아내는 예산이 1,2억만 더 있어도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겠다며 안타까워합니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거의 아무런 효과도 없는 일들에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전체로 매년 수십조원씩 쓰면서 당장 기초적인 사회복지 체계도 제대로 구축을 못하고 있다니요. 그런데 아직도 정부 관료와 정치권은 이런 개발사업 만드는 데 혈안이 돼 있습니다. 왜냐? 나중에야 어떻게 되더라도 뭘 만들고 짓는다 하면 사람들이 혹하니까요. 정치권은 표 얻을 수 있고, 뒷돈 받을 수 있으니 좋고, 관료들은 눈에 안 보이는 복지 프로그램 돌리느니 생색나는 실적 만들어서 좋고, 건설업체들은 사업으로 돈 벌어서 좋습니다. 관변 학자나 연구소들은 용역 프로젝트 많아져서 좋고, 언론들은 건설업체들 광고 물량 많아져서 좋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개발 옹호세력들을 저는 ‘개발 5적’이라고 부릅니다. 일본의 토건족, 건설족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일본도 버블이 붕괴할 때 토건족의 압력으로 중앙 및 지방 정부가 경기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대규모 개발 사업을 벌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필요도 없는 댐이 지어지고 노루와 토끼만 다니는 도로도 숱하게 생겼습니다. 많은 리조트와 골프장은 버려지고 도산했고요. 이런 개발사업에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 재정 고갈을 부추겼습니다. 이미 한국에서도 그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아직도 ‘개발만이 살길’인 것처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이런 판에 부유층을 위해 막대한 감세안까지 동시에 진행하고 있으니 재정건전성에 대해 한국 정부는 최소한의 고민은 하고 있을까요?


이제 개발경제 시대 때의 경제 운용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가계 자산의 80% 이상이 부동산에 몰려 있는 경제는 지속할 수 없습니다. 비용 대비 효과나 수요를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저지르는 개발사업으로는 선진경제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많은 이들이 첨단기술경제 시대이고, 지식정보화 시대, 창조경제 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면 국가 전체의 자원 배분이 이런 영역으로 배분되도록 해야 합니다. 첨단 기술을 고안하고 지식과 정보를 창출하며 창조성을 발휘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사람에게 투자해야 합니다. 한 국가경제의 자원은 유한하기에 제한된 자원 안에서 최적의 생산성을 낼 수 있는 자원 배분을 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사람에게 투자해 고부가가치 서비스를 창출하고, 첨단기술을 육성합니다. 한국 같은 주입식 교육이 아닌, 창조적 교육 프로그램으로 지식과 정보를 생산 가공하고,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인재를 키워냅니다.


필자가 유학생활을 했던 미국 보스턴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보스턴에 대규모 공장이 있는 것도, 고층 아파트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100년 이상 된 주택에서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웬만한 도로는 누더기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보스턴이 못 사는 동네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보스턴의 평균 가구 소득은 미국 평균의 약 2배 정도입니다. 소득 수준으로는 미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부자 도시입니다. 싱가폴이 2000년대 초반 일시적인 불경기로 휘청거릴 때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았던 도시도 바로 보스턴입니다. 보스턴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은 싱가폴 경제는 이후 생명공학기술과 의료산업 등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해서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고도성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보스턴에 뭐가 있길래 행정구역상으로 60여만명, 광역 보스턴(Greater Boston)으로 따져도 340만 정도에 불과한 도시가 그렇게 두각을 나타낼까요?


보스턴에는 인재가 있습니다. 하버드대학과 MIT, 보스턴대학(BU), 보스턴칼리지(BC),터프츠 대학 등을 필두로 100여개의 각종 대학들에서 매년 엄청난 인재가 쏟아져 나옵니다. 많은 인재들이 뉴욕이나 워싱턴으로 진출하기도 하지만, 보스턴에 남아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합니다. 하버드 의대 협력병원인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을 중심으로 의료산업이 발달해 있고, 관련 분야에 쏟아져 나오는 인재들을 중심으로 생명공학과 제약 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합니다. MIT를 중심으로 한 각종 IT산업과 로봇공학도 예외가 아닙니다. 인재들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기업들이 미국 전역에서 이전해옵니다. 또한 인재들은 자신들의 벤처기업을 만들어 미래의 빌게이츠를 꿈꿉니다. 베인 앤 컴퍼니나 보스턴 컨설팅그룹 등 세계 유수의 컨설팅펌들도 보스턴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역시 보스턴에서 배출된 우수한 인재들이 이들 회사의 토대가 됐습니다.


보스턴 필하모닉과 보스턴 발레단처럼 젊은 예술혼과 창조성이 살아 숨쉬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인구 60만의 도시에 공립도서관만 36개나 됩니다. 인구 1000만의 도시 서울에 ‘독서실 같은 도서관’이 아닌, 진짜 공립도서관이 30개도 채 안 되는 것과 너무나 비교됩니다. 이런 보스턴 경제의 활력이 모두 사람과 교육, 문화에서 나왔습니다. 제대로 된 선진경제가 가는 길이 바로 이런 방향입니다. 한국 경제가 미래를 기약하고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도 가야 하는 방향입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가야 하는 길입니다.


결국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자식 세대가 살 수 있는, 한국 경제가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새로운 게임 규칙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첫 걸음은 무턱대고 내지르는 토건국가적 개발사업 남발을 자제하는 것입니다. 충분히 타당성이 검증되지 않은 각종 건설토목사업에 돈을 쏟아 붓는 과거 일본과 같은 토건국가적 행태를 멈춰야 합니다.


대신 모두가 저렴한 비용으로 누릴 수 있는 질 좋은 교육을 만들어야 합니다. 초중고 과정에서는 살인적인 입시경쟁에서 벗어나 창의성을 강화하는 교육을 만들고, 오히려 ‘경쟁의 무풍지대’인 대학이 경쟁하도록 해야 합니다. 재벌 기업들의 독과점적 이익을 보장해주는 구조 대신 국내시장에서도 국제무대에서와 마찬가지로 치열한 경쟁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대신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몸과 마음을 키울 수 있는 더 많은 도서관을, 더 많은 문화공연장을, 더 많은 체육시설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소득층과 노후세대를 위한 더 많은 복지 혜택을 체계적으로 마련해가야 합니다. 제대로 된 공공건설사업 발주 시스템을 만들면 이를 위한 예산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이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주택 및 부동산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선진국 대비 5%도 안 되는 공공주택 재고를 20~30% 수준까지 높여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까지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동산 보유세 강화 등 자산 거품을 만들지 않는 부동산 세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후분양제 확대와 공공부문의 주택 원가 공개 등 소비자 중심의 주택 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콘크리트가 아닌 사람에게 투자하는 경제에 희망이 있습니다. 땅과 집이 아닌,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을 제대로 키우는 경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자식세대 홀로, 또는 부모세대 홀로 만들 수 없습니다.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가 합심해서 힘과 지혜를 모아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최근 제가 출간한 책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이 글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에도 띄웠습니다. 좀더 깊이 있는 정보와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포럼을 방문해주세요. 이 글은 연구소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10. 12. 08:36
 
 YTN 보도국 뉴스2팀에서 현직 기자로 일하는 김수진기자가 저희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의 '언론개혁'란에 최근 YTN사태에 대한 생생한 소식을보내왔습니다. 최근 YTN 사태를 잘 보여주고 있어서 좀더 폭넓은 독자들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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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달님' 김수진입니다.
 
  저희 'YTN 젊은 사원 모임' 56명이 단식투쟁에 돌입한 지 사흘, YTN 노조가 구본홍 출근 저지에 나선 지는 76일째가 됐습니다.

 저도 어제 아침 9시부터 오늘 아침 9시까지 24시간 단식 농성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첫 날 제 동기와 후배 여기자 두 명이 탈진해서 병원에 갔는데,
저는 단식해도 넘 멀쩡해서 좀 민망합니다 ^^;

 

  (사진 경향신문 펌)

 
  '젊은 사원 모임'이 극단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행동에 나선 것은
그동안 사장 출근 저지에 나선 사원 60여명이 징계와 사법 처리를 당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또 , 행동에 나서주기를 기대했던 몇몇 '중간 지대'의 간부급 선배들에게 실망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말하고 행동했다는 이유로 후배들은 징계와 사법 처리의 칼날 앞에
서 있는데 구씨가 임명한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으면서 '노사 모두 잘못했으니
즉각 대화에 나서라' 라고 말하는 선배들은 비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젊은 사원 모임'이 단식 투쟁에 돌입한 지 24시간 후, 이번에는 95년 이후 입사한 3기 이하 선배 50여명이 저희의 뜻에 함께 해 주셨습니다. 단식 투쟁 사흘째, 오늘은 2기와 2.5기 선배들 80명이 투쟁에 참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조금 전에는 후유증을 우려해 단식을 중단할 것을 조언하던 노조 집행부도
지지를 선언하고 24시간 단식에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단식 투쟁에 참가하는 사람만 2백여 명에 이릅니다.
    
  YTN 정문 앞에 마련한 농성장 앞에서, 선배들이 모이고, 또 모여서 저희들과 함께 해준다는 성명서를 읽어줄 때, 저는 자꾸 눈물이 나는 걸 애써 참았습니다. 비록 뜻은 다른 사람들도 있겠지만,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YTN은 규모는 작지만 그만큼 가족적인 분위기도 강한 회사입니다. 비록 저희 기수들은 경험하지 못했지만 선배들이 외환위기 당시 6개월동안 월급을 받지 못하면서도 회사를 살려냈었기 때문에 동료 의식도 강합니다. 그동안 출근 저지 등 물리적 실력 행사에 대해서는 노조와 생각을 달리 하던 사람들마저도 동료들이 피를 보는 상황만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기에 행동에 나선 것입니다.

 2기부터 10기까지, 기자, 촬영기자, 그래픽, 기술, 앵커까지 기수와 직종을 막론하고 단식하는 사람이 넘치는 정문 앞 농성장은 이제 비좁아 터질 지경입니다. 결의를 보여주려면 무기한 단식을 해야지 24시간 릴레이 단식이 뭐냐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24시간 뉴스는 시청자와의 약속이기에, 최후의 수단인 파업에 들어가기 전에는 그 약속을 지켜야 하겠기에 저희는 단식도 하고 일도 동시에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비록 24시간씩 조를 짜서 돌아가며 하는 단식이기는 하지만 경험이 없는 저에게는 쉽지많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바닥에 앉아 있는 것도 힘들고, 남대문로에서 날리는 매연은 엄청 독하고, 차 소리에 귀는 먹먹하고, 근무시간이 되면 고픈 배를 움켜쥐고 일도 해야 하고... (저희 회사 옆에 하필 통닭집이 두 군데나 있는데 거기서 날아오는 닭튀김 냄새에 너무 괴롭더군요 ^^; )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단식 농성하느라 하룻밤 고아 신세가 됐던 12개월난 제 딸이 저를 반겨줍니다. 한참 밥먹는 연습을 하는 딸이 제게 '엄마 아' 하며 숟가락을 입에 넣어주는데 또 눈물이 났습니다. 구본홍씨는 자기의 개인적 권력욕이 숱한 YTN사원들을 저처럼 나쁜 엄마, 아빠로 만들고 있다는 걸 알까요? 제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라도, 여기서 굴복할 수는 없습니다.

사원 2백 명이 밥을 끊었습니다. 단식으로 보여주는 저희의 외침이 간부 선배들의 양심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죽비소리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사족 : 어제 단식농성하면서 저녁이면 YTN 앞에 모이는 시민 여러분을 처음
봤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대단한 분들이십니다. 저희야 회사 일이니까 이런다지만 아무런 이해관계나 상관도 없는 일에 생업도 바쁘고 힘드실텐데 나와 주시는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



by 선대인 2008. 10. 1. 18:40

9월 19일 국토해양부는 저렴한 주택 공급을 위해 그린벨트를 대규모로 해제하는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이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꼭 필요하다면 다소간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한이 있더라도 땅값과 건축비를 내려 분양하면 훨씬 싼 가격으로 집을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모양새가 됐습니다.

그린벨트를 해제해 싼 가격으로 서민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말은 참으로 후안무치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시장 재임 시절 33개 뉴타운을 무더기로 지정한 탓에 대규모 동시 철거가 이뤄져 서민들이 원래 살던 곳에서 쫓겨나게 한 장본인이 아닙니까? 서민 주거에는 관심 없이 정치적 욕심 때문에 강북 집값 올리기에 여념 없었던 사람이 바로 이 대통령 자신입니다. 그런 사람이 이제 와서는 그린벨트를 풀어 서민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한다면 뻔뻔스럽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내놓은 대부분의 주택 및 부동산 정책은 계속 높은 집값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정책들입니다. 국내외 거시경제 환경이 부동산 버블 붕괴 압력을 높이고 있어서 집값이 떨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정작 이대통령 본인은 전혀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나 심리적 갈등도 못 느끼는 것 같습니다. 뉴타운 지역의 극심한 전세난을 보면서도 한 번 사과나 반성을 한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더해 새로 뉴타운 지정권을 가진 서울시와 협의도 없이 뉴타운을 추가 지정한다니요? 한 마디로 말이야 서민 주거 안정을 내세우지만, 건설업계에 사업물량 퍼주기에 여념이 없는 꼴입니다.

사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의 실제 효과나 정책 조합(Policy mix)의 정합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개념도 없는 사람입니다. 다만 자신이 느끼기에 점수 딸 수 있다고 느끼면 정반대의 정책 효과를 가져와도 내지르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아무 정책이나 듣기에 솔깃하다면 막 질러대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 쪽에서는 뉴타운을 통해 서민들을 쫓아내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린벨트를 해제해 서민주택을 만든다는 얘기를 아무렇지나 않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독교 신자라서 ‘한 손이 한 것을 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을 엉뚱하게 실천하는 것입니까?

하지만 이 글에서는 이 대통령의 스타일에 대해서는 길게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린벨트 해제를 통해 저렴한 주택을 공급한다는 이대통령 발언과 국토부 발표의 허구성을 짚고자 합니다.

시계 태엽을 되돌려 2004년 7월로 가봅시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국민임대주택건설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통해 대규모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국민임대 주택 공급을 추진합니다. 당시 이슈가 됐던 판교신도시의 경우 공영개발을 통해 100% 장기임대주택을 공급해야 한다고 김광수경제연구소는 주장했습니다. 김광수 소장님은 이 같은 방식의 주택사업이 재무적으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며 이론적 모델까지 만들어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고, 판교를 로또 투기판으로 만들어 투기세력에게 먹잇감만 제공했습니다.

정부 스스로 벌린 로또 투기판 때문에 판교발 집값 광풍이 일자, 정부는 전량 국민임대주택을 짓겠다며 해제한 고양 삼송과 남양주 별내 지역의 절반을 분양 물량으로 채우겠다고 했습니다. 이때 당시 건교부가 내세운 명분은 ‘판교급 신도시’를 만들어 주택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집값은 어땠습니까? 집값이 잡히기는커녕 해당 지역까지 투기가 극성을 부려 오히려 집값을 치솟게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직접 추진했던 은평뉴타운 지역을 예로 들어봅시다. 은평뉴타운 사업지구는 대부분 그린벨트 풀어서 조성했습니다. 그런데 평당 토지 보상비가 판교신도시의 평균 3.5배가량 됐습니다. 지금 거론되는 서울과 수도권 경계 지역의 그린벨트라고 보상비가 크게 더 적게 들어갈까요? 더구나 황당하게도 아파트 짓는데, 턴키방식(여기에서 길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상위 재벌건설업체들에게 엄청난 폭리를 취하게 해주는 발주방식입니다)으로 발주를 해서 엄청난 고분양가 만들었습니다. 후임 오세훈 시장이 똥바가지 뒤집어썼지만, 2006년 은평뉴타운 고분양가 사태로 주변 집값 들썩이게 만들었죠. 은평뉴타운 인접 서대문구나 은평구의 아파트 가격이 평당 700만~800만원이던 시세가 1200만~1300만원으로 수직상승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전 치밀한 도시계획 없이 그린벨트 풀어서 급하게 만들었더니 어떻게 됐습니까? 도로나 학교가 제대로 확보 안 돼 언론에서 욕 엄청 먹었죠? 오세훈 시장이 분양가심의위원회 가동해 분양가를 평균 12%정도 낮춘 덕에 분양은 다 됐는데, 지금 입주율 여전히 낮은 수준입니다. 생활 인프라가 없어서 주민들 불만 대단하고요. 물론, 뉴타운 사업으로 추진됐다는 특수성을 어느 정도 감안은 해야겠지만, 그린벨트 풀어서 집값을 낮췄습니까? 그렇다고 도시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주택단지가 들어섰나요? 사람은 그 사람이 해온 과거 행적을 통해 판단하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사기꾼이 어느날 갑자기 ‘난 사람 안 속여’ 하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시겠습니까


by 선대인 2008. 9. 23. 09:34

9.19일 국토해양부는 저렴한 주택 공급을 위해 그린벨트를 대규모로 해제하는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이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꼭 필요하다면 다소간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한이 있더라도 땅값과 건축비를 내려 분양하면 훨씬 싼 가격으로 집을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모양새가 됐습니다.

그린벨트를 해제해 싼 가격으로 서민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말은 참으로 후안무치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시장 재임 시절 33개 뉴타운을 무더기로 지정한 탓에 대규모 동시 철거가 이뤄져 서민들이 원래 살던 곳에서 쫓겨나게 한 장본인이 아닙니까? 서민 주거에는 관심 없이 정치적 욕심 때문에 강북 집값 올리기에 여념 없었던 사람이 바로 이 대통령 자신입니다. 그런 사람이 이제 와서는 그린벨트를 풀어 서민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한다면 뻔뻔스럽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내놓은 대부분의 주택 및 부동산 정책은 계속 높은 집값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정책들입니다. 국내외 거시경제 환경이 부동산 버블 붕괴 압력을 높이고 있어서 집값이 떨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정작 이대통령 본인은 전혀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나 심리적 갈등도 못 느끼는 것 같습니다. 뉴타운 지역의 극심한 전세난을 보면서도 한 번 사과나 반성을 한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더해 새로 뉴타운 지정권을 가진 서울시와 협의도 없이 뉴타운을 추가 지정한다니요? 한 마디로 말이야 서민 주거 안정을 내세우지만, 건설업계에 사업물량 퍼주기에 여념이 없는 꼴입니다.

사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의 실제 효과나 정책 조합(Policy mix)의 정합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개념도 없는 사람입니다. 다만 자신이 느끼기에 점수 딸 수 있다고 느끼면 정반대의 정책 효과를 가져와도 내지르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아무 정책이나 듣기에 솔깃하다면 막 질러대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 쪽에서는 뉴타운을 통해 서민들을 쫓아내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린벨트를 해제해 서민주택을 만든다는 얘기를 아무렇지나 않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독교 신자라서 ‘한 손이 한 것을 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을 엉뚱하게 실천하는 것입니까?

하지만 이 글에서는 이 대통령의 스타일에 대해서는 길게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린벨트 해제를 통해 저렴한 주택을 공급한다는 이대통령 발언과 국토부 발표의 허구성을 짚고자 합니다.

시계 태엽을 되돌려 2004년 7월로 가봅시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국민임대주택건설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통해 대규모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국민임대 주택 공급을 추진합니다. 당시 이슈가 됐던 판교신도시의 경우 공영개발을 통해 100% 장기임대주택을 공급해야 한다고 김광수경제연구소는 주장했습니다. 김광수 소장님은 이 같은 방식의 주택사업이 재무적으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며 이론적 모델까지 만들어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고, 판교를 로또 투기판으로 만들어 투기세력에게 먹잇감만 제공했습니다.

정부 스스로 벌린 로또 투기판 때문에 판교발 집값 광풍이 일자, 정부는 전량 국민임대주택을 짓겠다며 해제한 고양 삼송과 남양주 별내 지역의 절반을 분양 물량으로 채우겠다고 했습니다. 이때 당시 건교부가 내세운 명분은 ‘판교급 신도시’를 만들어 주택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집값은 어땠습니까? 집값이 잡히기는커녕 해당 지역까지 투기가 극성을 부려 오히려 집값을 치솟게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직접 추진했던 은평뉴타운 지역을 예로 들어봅시다. 은평뉴타운 사업지구는 대부분 그린벨트 풀어서 조성했습니다. 그런데 평당 토지 보상비가 판교신도시의 평균 3.5배가량 됐습니다. 지금 거론되는 서울과 수도권 경계 지역의 그린벨트라고 보상비가 크게 더 적게 들어갈까요? 더구나 황당하게도 아파트 짓는데, 턴키방식(이미 시사경제 회원들에게는 설명드린 바 있지만, 상위 재벌건설업체들에게 엄청난 폭리를 취하게 해주는 발주방식입니다)으로 발주를 해서 엄청난 고분양가 만들었습니다. 후임 오세훈 시장이 똥바가지 뒤집어썼지만, 2006년 은평뉴타운 고분양가 사태로 주변 집값 들썩이게 만들었죠. 은평뉴타운 인접 서대문구나 은평구의 아파트 가격이 평당 700만~800만원이던 시세가 1200만~1300만원으로 수식상승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전 치밀한 도시계획 없이 그린벨트 풀어서 급하게 만들었더니 어떻게 됐습니까? 도로나 학교가 제대로 확보 안 돼 언론에서 욕 엄청 먹었죠? 지금 입주 초기여서 그렇지 뉴타운 전체 세대가 다 입주하면 교통대란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오세훈 시장이 분양가심의위원회 가동해 분양가를 평균 12%정도 낮춘 덕에 분양은 다 됐는데, 지금 입주율 30% 정도밖에 안 됩니다. 생활 인프라가 없어서 주민들 불만 대단하고요. 물론, 뉴타운 사업으로 추진됐다는 특수성을 어느 정도 감안은 해야겠지만, 그린벨트 풀어서 집값을 낮췄습니까? 그렇다고 도시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주택단지가 들어섰나요? 사람은 그 사람이 해온 과거 행적을 통해 판단하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사기꾼이 어느날 갑자기 ‘난 사람 안 속여’ 하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시겠습니까?

지금 한국 주택 문제의 핵심은 국토부 표현대로 ‘괜찮으면서도 저렴한 주택(decent and affordable housing-미국에서 공공 주택 문제와 관련해 관용구처럼 나오는 표현입니다)’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형성된 집값이 너무 높아서 웬만한 고소득자도 빚을 내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상태입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큰 틀에서는 공급자인 건설업체의 사기적 폭리 분양가와 수요자의 투기 행태가 빚어낸 거품 집값입니다. 정부는 이를 막기는커녕 허황된 ‘시장원리’ 운운하며 실제 건축비보다 약 2배나 높은 표준건축비를 승인해주는 등 거품 집값을 사실상 용인했습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로서는 결국 일반 국민들이 큰 부담 없이 집을 살 수 있도록 집값을 낮춰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게 가능하냐고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서울시가 진행하고 있는 ‘장기전세’를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장기전세는 주변 전세 시세의 60~80%선에서 공급합니다. 최장 20년까지 거주할 수 있습니다. 재산세와 취등록세 등 세금 부담도 없고 주거 안정성까지 갖추고 있는 매우 좋은 주거상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올 들어 미분양이 속출하는 데도 장기전세는 최고 80대 1의 경쟁률을 보이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매매할 수 있는 분양주택도 아니니 판교분양 때와 같은 투기도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주택을 전체 수도권 주택 재고의 20%까지 채운다고 해보십시오. 기존 매매 수요의 상당수가 장기전세로 이동할 것입니다. 그러면 집값이 얼마나 안정되겠습니까? 이렇게 이미 여러 가지 장점이 입증되고 사람들에게도 매우 인기 있는 장기전세가 이번 500만호 공급계획 중에 겨우 얼마를 차지하는지 아십니까? 전국에 걸쳐 겨우 10만호입니다. 대신 주택정책 목표에 오히려 역행하는 지분형 아파트니 정책 효과가 의심스러운 신혼부부용 아파트니, 노후용 아파트니, 보금자리 아파트니 이름만 사람들이 혹하게 지은 주택 유형들이 많습니다. 나중에 이명박 대통령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우고 싶어서죠.

공공 분양아파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연구소(김광수경제연구소) 김광수소장님께서 ‘현실과 이론의 한국경제’ 3권에서 이미 저렴한 장기임대주택에 대한 이론적 토대는 제공하셨습니다. 사실 소장님 이론을 빌어 제가 쓴 책에서 주장한 내용이 서울시의 ‘장기전세’ 제도로 현실화됐으니, 현실로도 일정하게 입증된 셈입니다. 사실, 관련 제도만 갖춰지면 현재 장기전세보다 훨씬 더 저렴하게 공급할 수도 있습니다. 공공 분양도 똑같이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습니다. 공공이 저렴하게 주택을 짓는 과정은 똑같고 지은 주택을 장기 임대(전세)로 주느냐, 분양하느냐 하는 공급방식만 다를 뿐이니까요.

그래도 의심하는 분들을 위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큰 틀에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주택 공급 과정에서는 엄청난 개발이익이 생겨나는데, 이 개발이익은 땅주인, 거주자, 개발 대행기관(토공, 주공, 각 지방도시개발공사 등), 시행사, 설계사, 시공사, 투기세력 등에 의해 배분되고 있습니다. 주택 공급 과정에서 생겨나는 막대한 개발이익이라는 갈비를 여러 세력들이 돌아가며 뜯어먹어, 결국 수혜자가 돼야 할 서민들은 앙상한 뼈다귀만 핥게 되는 꼴입니다. 그러면 이런 개발이익을 공공이 최대한 흡수해 그것을 저렴한 장기임대나 공공분양 아파트로 공급하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흡수하느냐고요? 현재 분양가 가운데 택지비가 보통 30~50% 가량 차지하고, 직간접공사비가 40~50%정도로 두 가지가 거의 90%를 차지합니다. 우선, 택지비를 봅시다. 지금은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투기세력이 뛰어들어 땅값을 띄워 놓은 다음 감정평가를 통해 토지 보상을 하므로 개발이익이 땅주인과 거주자, 투기꾼들에게 돌아갑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정부가 개발 계획을 사전에 세워두고 사전 매입 후 개발에 들어가는 식으로 하면 보상비를 얼마든지 아낄 수 있습니다. 물론 도심 지역에서는 쉽지 않겠지만, 판교나 용인, 동탄 정도쯤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부지 확보까지만 정부가 하고 이후 주택 공급과정은 이를 통합해서 관리할 CM(Construction Management)회사나 컨소시엄을 경쟁입찰을 통해 선정해 사업을 맡깁니다. 따라서 택지 조성도 토공이나 주공이 하지 않고 CM회사가 가격 경쟁을 통해 선정한 민간 토목업체가 합니다. CM이 경쟁입찰을 붙여 시공사를 선정하면 실제 건축비도 절반 이하로 낮아질 것입니다. 공기도 현재 26~30개월 정도인데 20개월 정도로 단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지금의 분양가보다 절반 아래로 훨씬 빨리 공급할 수 있습니다. 부실시공에 대해서는 정부가 책임을 묻고 통제하면 방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공공주택을 비롯한 공공건설사업은 이른 전문 CM이나 PM(Project Manager)들을 통해 얼마든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홍준표의 토지임대부 주택 같은 사기적인 ‘반값아파트’가 아니라 진짜 ‘반값 아파트’ 얼마든지 실현하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현재 상태에서는 안 됩니다. 지금 국내에서 책임감리와 비슷한 역할 정도만 하게 하는 CM제도를 CM이 건설공사 전반을 관리하되 공사 전반에 대해 책임지게 하는 ‘CM at full risk 제도’를 도입해야 하고요. 또 토지보상, 감정평가, 감리제도, 금융기관 공사보증 제도, 하도급 구조, 건설업역 제도 등 건설산업 제도 전반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집권세력의 강력한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모든 권력기관과 관련 정부부처를 동원해 ‘방송장악’에 기울이는 정도의 노력만 기울인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이런 사기적 분양가의 거품을 뺄 의지도 없지만,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조차 없는 것 같습니다. 대신 자신들 멋대로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도시 기반시설 과부하에 대한 고려는 아랑곳없이 용적률을 올려 겨우 집값의 15% 정도를 낮추겠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이는 사실상 거품 분양가는 그대로 용인하면서 이번 정책을 서민용으로 포장하기 위한 포장술에 불과합니다.

덧붙이자면 제가 제시하는 방법대로라면 지금 같은 방대한 구조의 토공, 주공 필요 없습니다. 토공, 주공은 정부의 기획에 따라 토지 매입하고 CM사 선정해서 정부 계약을 대행하고 계약 이행을 점검하면 됩니다. 또 향후 장기 임대주택이 늘어나면 임대주택 관리 업무 부문을 키우면 됩니다. 이처럼 공기업 개혁이라고 하면 변화하는 환경에 걸맞은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업 주체로서 공기업의 역할과 기능을 점검해 재조정하는 게 우선입니다. 거기에 맞게 조직을 Redesign하고 Restructuring, Reengineering해야 합니다. 그런데 토공과 주공 통폐합 논의에서 보듯 그런 것은 전혀 없고, 그저 무식하게 Downsizing 개념밖에 모르는 게 이 정부입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벌이는 공공사업 물량을 봤을 때 토공, 주공의 반발이 심해지면 통폐합도 나중에 없던 일로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설사 통폐합된다 한들 정부의 엉터리 정책 사업들을 계속 받쳐주는 도구일뿐이라면 그게 어떤 큰 의미가 있을까요?

위에서 봤듯이 공공정책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그 목표를 달성할 최적의 방법을 찾는다면 사실상 방대한 공기업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공공의 목표를 훨씬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부가 공기업 개혁과 관련해 외치는 구호는 온통 통폐합 아니면 민영화밖에 없으니 정말 한심할 따름입니다. 선진국의 정부 개혁이 궁극적으로 경쟁 체제 도입을 통해 국민 전체의 후생 수준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현 정부는 공기업의 영역을 줄이거나, 공공독과점 구조를 민영 독과점 구조로 바꿔 민간재벌기업의 사업 기회를 키워주는 것을 공기업 개혁으로 여기고 있으니 한숨밖에 안 나옵니다. 공공과 민간의 역할에 대한 개념부터가 엉망인데 무슨 일을 제대로 하겠습니까?

제가 지금까지 설명한 것처럼 정말 서민의 주거안정을 걱정하는 도덕적이고 역량 있는 정부라면 그린벨트 해제 안하고도 얼마든지 집값 안정시키고, 서민 주거안정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고, 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되고 개발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든 자기 임기중 생색낼 수 있는 거창한 계획 발표만 하면 된다는 게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그는 서울시장 때부터 그런 스타일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실제로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 고위 간부는 “이 대통령은 정책 방향의 큰 틀은 없이 자기가 생색낼 수 있는 사업을 찾아내 추진하고 포장하는 데는 선수”라고 말하겠습니까?


by 선대인 2008. 9. 22. 09:00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이명박 정권에서 언론인들이 감옥에 많이 가야 언론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지킬 수 있습니다.”

 PD수첩 방송 내용에 대한 검찰 수사와 민영화 위협 등 현 정부의 방송장악 시도에 맞서서 투쟁하고 있는 문화방송(MBC) 노조의 박성제 노조위원장의 말이다. 그를 만난 것은 추석 전인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MBC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결코 투사형 이미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이라고 할까? 그런 그가 자신이 감옥에 가는 것까지 마다 않고 공영방송 사수 투쟁을 벌이는 이유는 뭘까? 그를 통해 한 시간 반 동안 MBC노조의 입장을 들어보았다.

박위원장은 우선 현 정부는 신문 방송 겸영 허용과 방송법 시행령 문제, MBC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 등을 통해 조중동과 재벌 기업들의 언론 시장 지배력을 높이고, 자신들의 재집권에 유리한 구도를 만들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현 정부의 방송시장 재편 의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현 정부가 공영방송 KBS나 MBC는 죽이고, 대항하는 보수 편파언론을 만들어 방송시장 판도를 바꿔 여론을 자신들 유리하게 끌고 가겠다는 것”이라며 “방송시장에까지 조중동이 진출해서 군소신문과 군소방송, 지역방송, 종교방송을 모두 무너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신문 방송 겸영 문제가 가장 먼저 터질 텐데, 이 문제가 본격화되면 우리는 총파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KBS나 SBS는 죽는 줄 알면서도 현재 경영진 성향으로는 안 나설 것이고, MBC도 사장이 뚝심 있는 사람은 아니다”며 “그래서 우리 노조가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총파업 투쟁이 벌어지면 노조 집행부는 사법처리 대상이 될 것이 뻔하다”며 “그렇게 해서라도 정권 차원에서 얼마나 무서운 음모가 진행되는지 국민들에게 각인시켜야 한다고 믿는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공정방송이 그냥 된 것이 아니다. 공정언론을 훼손하는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막아낸 언론 종사자들의 투쟁이 있었다”며 “공정방송을 하게 해달라는 것이 진보방송, 좌파방송이 아니라 기자와 PD들이 취재한 대로 서민들의 어려움을 전하고 정권의 잘못을 비판하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실 MBC가 민영화되면 직원들 월급이 더 올라갈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강력히 민영화를 반대하는 이유는 오너를 상전으로 모시고는 공정방송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위원장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저희는 결코 거창한 신념 때문에 싸우는 게 아니다. 이 정권이 우리를 가만 안 놔둔다”고 했다. 그는 “소름끼칠 정도로 속이 뻔히 보이는 현 정권의 음모가 두렵기도 하지만, 우리가 안 나설 수 없다”며 “많은 분들이 우리 상황을 이해해주고 도와줄 거면 화끈하게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믿을 것은 결국 여론의 힘뿐이라는 것이었다.

필자도 소위 족벌 신문 기자 출신으로 재직기간 동안 불공정 편파 보도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많았다. 그만큼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MBC노조의 결연한 투지가 고맙게 느껴졌다. 하지만 언론인이 감옥에 많이 가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우리 사회가 점점 불행한 상황으로 치닫는 것 같아 안타깝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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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제 노조위원장

-방송이 방송 스스로에 대해서는 잘 보도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들은 MBC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모른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일어난 일들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달라.

오래전부터 한나라당이 MBC를 민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대선 이후 이 같은 주장이 더 거세졌다. MBC 내부에서도 긴장감이 점점 고조됐다. 이런 가운데 신임사장이 된 엄기영사장은 원칙적으로 민영화를 반대한다고 했다. 구성원들은 엄사장이 앵커로서 폭넓은 영향력과 신뢰도를 쌓았으니 정권의 공격을 잘 막아낼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졌다.

그 동안 PD수첩의 쇠고기 광우병과 관련한 보도가 있었고, 촛불집회 정국이 계속됐다. 코너에 몰려 있던 정부가 7월부터 반격에 나서면서 PD수첩의 방송 내용에 대해 방송통신위와 검찰 등 권력기관을 동원해 압박하기 시작했다. 또 조중동은 국민들이 PD수첩의 왜곡보도에 놀아났다고 선동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가 MBC의 내홍을 불러왔다. MBC 내부에서는 전체적으로 PD수첩의 방송 내용이 크게 문제 있었다고 보지 않았다. 일부 오역이 있었지만, 검찰수사를 받을 사안은 아니었다. 이를 빌미로 정부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고, 제작진을 체포하려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이런 전방위적인 집권세력의 압박에 대응해야 했다. 지금 당장 탄압을 받아 힘들더라도 그 길이 장기적으로 공영방송의 위상을 바로 세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대부분 직원들은 생각했다. 정권이 PD수첩을 공격하는 것은 정치적 이유다. 방송 내용이 왜곡됐다면 언론중재 등 법에 정해진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검찰을 동원해 압박하는 것은 국면 전환용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문제는 내부에서 터졌다. 엄기영 사장이 정권의 압력에 굴복했다. 엄사장은 ‘PD수첩 방송 내용에 대한 정부의 사과방송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고 믿고 있더라. 이유는 정권과 끝까지 싸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조금 실수한 것도 있지 않느냐’고 했다. 사장도 우리 잘못이 별거 아니라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정권과 끝까지 싸우는 데 대한 부담, 광고 압박에 대한 부담 등을 우려했다. 겁을 먹은 것이다. 우리 노조는 이러한 자세가 대단히 잘못 됐다고 봤다.

사과방송 이후에 정권의 민영화 압력이 더욱 거세지고, 신문방송 겸영 등 매우 큰 문제가 있는 미디어 정책을 정권 차원에서 밀어붙이고 있다. 방통위 업무보고에서 이미 큰 줄기가 나왔지만, 한나라당이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간다면 우리도 총파업 투표를 하고 다른 방송 및 조중동을 제외한 신문들과도 연대 총파업을 진행할 것이다. 검찰이 PD수첩의 PD들을 체포하느니 마느니 하고 있어, 지금 2주 넘게 24시간 지키고 있다. 20여명이 교대로 돌아가며 사수대를 운영하고 있다. 노조집행부도 사무실에서 계속 철야를 하고 있다. 우리 노조는 경영진과 싸울 생각은 없었는데, 굴욕적인 사장의 처신을 보며 생각을 바꿨다. 보신주의적이고 정권에 거슬리면 안 된다는 판단을 하는 경영진이 한심하다. 우리 노조는 사과방송 이후 경영진측에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그런데 최근에 또 일을 저질렀다. PD수첩 담당 PD를 인사조치한 것은 넘어갔지만, 이번에 엄 사장이 직접 발탁한 시사교양국장을 6개월만에 교체했다. 정권에 ‘우리가 이렇게까지 하고 있으니 봐주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경영진과 노조가 똑같이 움직일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의 행태는 너무나 굴욕적이고 MBC 구성원들의 자존심을 뭉개고 있다.

 그리고 정세 판단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우리가 엎드린다고 해서 MBC에 대한 정권의 압박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정권이 휘두르니 엄사정이 굴종하고 타협한다고 생각해 더 만만하게 볼 것이다. 그래서 우리 노조는 정권과의 싸움도 싸움이지만, 경영진에 대해서도 강력히 대응하기로 했다. 타협하자는 쪽으로 몰고 간 부사장과 기획조정실장에게 직접 퇴진을 요구했다. 이번 주부터 피케팅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번 주말부터 엄기영 사장 체제 6개월의 문제점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할 생각이다. 조합원들이 과연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기 위한 것이다. 일반 사원들에 비해 노조 집행부가 너무 강경하다고 경영진은 말하는데 정말 그런지 보자는 것이다. 설문결과에 따라 노조집행부에게 싸우라고 하면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강하게 투쟁하고, 안 그렇다면 접겠다.

 -조합원들의 설문 결과가 투쟁을 지지하는 쪽으로 나올 것이라고 믿나?

당연히 자신 있다. 왜냐하면 지난번 PD수첩 사과방송 나갔을 때 서울에 있는 1000명 조합원 중에 300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거의 자발적으로 나왔다. 노조원간의 분열은 전혀 없다. 일부 간부들은 너무 싸우면 안 된다고 경영진에 말했을 수 있지만 전체 노조원 생각은 다르지 않다. 조합원이 아닌 대부분 간부 선배들도 노조가 잘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엄사장이 상황을 오판하지 않도록 노조가 제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엄기영 사장은 최장기 앵커를 하며 국민들에게 상당히 신뢰받는 언론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태도를 보인다고 생각하나?

 본인의 캐릭터 문제도 있을 수 있다. 그동안 언론인으로서 쌓아온 체면과 이미지가 있으므로 중요한 순간에 원칙과 정도에 맞는 판단을 내릴 것으로 기대했는데, 기대가 어긋났다. 심지가 굳은 사람은 아니다. 사장 본인이 뚜렷한 확신을 가지기보다는 주변 사람들 얘기에 자꾸 휘둘리는 것 같다. 지금 경영진이 보수적이다. 임원들의 생각은 회사가 이익을 많이 내야 연임도 하니 노조나 젊은 사원들의 강경한 태도를 철없는 생각으로 치부할 수 있다. 심지어 노조위원장 출신인 최문순 사장 때도 임원들은 그런 경향이었다. 사실 임원들은 그런 측면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서로 보완이 되는 것이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공영방송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방송민주화 투쟁을 통해 쌓아온 공영방송의 전통을 버리고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MBC는 노조가 운영하는 노영방송’이라는 비판 때문에 우리는 항상 조심하고 있다. 올해 방송 드라마 시청률이 안 좋아 경영이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노조는 경영진에게 ‘고통 분담할 생각이 있다. 그러니 돈 문제는 너무 걱정 말고, 외풍을 막아달라’고 주문했다. 현 상황에서 언론에 최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외압을 막는 것이다. 그런데 경영진이 그걸 못하고 있다. DJ나 노무현 정부 때도 외풍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외풍은 사장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많이 좌우된다.

-노조위원장 출신인 최문순 사장 때와 비교한다면 어떤가?

당시에는 정권이 부탁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권력기구나 여당까지 나서서 전방위적으로 압박하지는 않았다. 삼성X파일 때나 황우석 보도와 관련해서도 외풍이 있었다. 황우석 교수 보도 때는 처음에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았기에 훨씬 위기감이 더 컸다. 나중에 우리 보도의 진실이 밝혀져서 그랬지, 안 그랬으면 회사가 굉장히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향후 방송법 시행령 개정 문제가 현 정부의 방송시장 개편에서 핵심적 쟁점이 될 것 같은데,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방송법 시행령 개정의 핵심은 현행 자산총액 3조원 이하 기업에서 10조원 이하 기업까지 종합방송 및 보도방송 소유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CJ의 자본금이 10조 3000억원이다. CJ는 자산을 약간 조정하면 당장 내년부터 10조원 이내로 맞출 수 있다. CJ는 이미 10여개 안팎의 채널을 갖고 있다. CJ는 아직 삼성과 무관하지 않다. CJ뿐만 아니라 현대, 엘지 등 재벌 기업과 연관된 회사들이 지상파 방송에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이 온다. 그렇게 되면 전체 TV 시청가구 1900만가구 가운데 1500만가구가 케이블을 통해 보고, IPTV가 150만 가구 정도 된다.

이렇게 되면 지상파와 케이블의 종합편성채널과 큰 차이가 없게 된다. 케이블을 뭉쳐서 종합편성하고, 정권의 지원을 받아 채널 12번, 13번으로 들어오면 일반 공중파 TV와 다를 게 없다. 우리는 공중파이므로 중간광고도 못하는 등 전체적으로 광고 규제를 많이 받는다. 광고 영업도 할 수 없고, 요금도 코바코(KOBACO. 한국방송광고공사)에서 묶고 있다. 그런데 케이블 PP(프로그램 공급업자)는 그런 규제를 전혀 안 받는다. 게다가 조중동과 재벌 기업들이 컨소시엄으로 들어온다고 생각해보라. 예를 들어, 조선일보가 CJ나 현대와 합쳐 신문과 패키지로 영업한다면, 기존 공중파가 위협받는 상황이 된다.

조중동은 신문으로 돈을 못 버니, 방송으로 돈벌이하려 하는 것이다. 방송시장에까지 조중동이 진출해서 군소신문과 군소방송, 지역방송, 종교방송을 모두 무너뜨릴 것이다. 언론판도 자체가 조중동과 대기업 위주의 종합편성 채널로 흘러갈 가능성이 많다. 그러면 여론도 그렇게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특별히 MBC나 KBS2를 민영화 안 시켜도 된다. 신문과 방송 겸영을 허용하면 이미 그런 효과를 낼 수 있다. 기존 공중파 방송을 약화시키고 우호적인 족벌언론 세력을 키워주면 우파 정권 재집권에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신문 방송 겸영 허용과 방송법 시행령 문제, MBC 방송문화진흥회법 등을 개정하려는 것이 모두 같은 의도 때문이다. 공영방송 KBS나 MBC는 죽이고, 대항하는 보수 편파언론을 만들어 방송시장 판도를 바꿔 여론을 자신들 유리하게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신문 방송 겸영 문제가 가장 먼저 터질 텐데, 이 문제가 본격화되면 우리는 총파업에 들어갈 것이다. 3개 방송사와 조중동 이외 나머지 신문들이 일제히 비판하면 정권의 시도를 막을 수 있다. KBS나 SBS는 죽는 줄 알면서도 현재 경영진 성향으로는 안 나설 것이다. MBC도 사장이 뚝심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 노조가 나설 수밖에 없다. 총파업 투쟁이 벌어지면 노조 집행부는 사법처리 대상이 될 것이 뻔하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에서 언론인들이 감옥에 많이 가야 언론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지킬 수 있다. 우리가 먼저 몸을 던져야 한다면 던지겠다. 그렇게 해서라도 정권 차원에서 얼마나 무서운 음모가 진행되는지 국민들에게 각인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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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 의한 PD수첩 제작진 체포를 막기 위해 농성하고 있는 MBC노조원들.(MBC노조 제공)


-말씀을 들어보면 의지가 아주 결연한데, 원래 투사형 기질이 있다고 생각하나?

나도 원래 결연한 놈이 아닌데, 상황이 나를 그렇게 몰고 가고 있다. 내 임기가 내년 2월말까지인데 남은 5,6개월의 상황이 예상대로 간다면 팔자가 그런데 어떻게 하겠나? 나도 마찬가지지만 MBC에 빨갱이나 과격한 사람은 없다. 다만 소중한 일터와 민주주의 국가 언론의 기본을 지키고 싶을 뿐이다.

-어떻게 노조위원장을 맡게 됐나?

 MBC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선으로 노조위원장을 뽑은 적이 없다. 직능별로 차장급 정도에서 적당한 사람을 골라 선후배들이 폭탄주를 먹이며 회유와 협박으로 (그는 이 대목에서 빙긋이 웃었다) 끌고 내려와 노조위원장을 시키는 게 전통처럼 돼 있다. 노조위원장을 맡고 보니 집에서 타박이 심하다. 7월에 KBS지키기 촛불집회에 참여했다가 언론노련 위원장과 함께 경찰서에 연행됐다 나온 적이 있는데, 그때 집에서 타박을 많이 들었다. 다음번에는 (경찰서에) 들어갔다가 못 나오지 않겠느냐고 걱정하더라.

-MBC민영화에 대한 정부 의지는 어느 정도로 보나?

엄청 강하다. 하지만 정부 뜻대로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DJ정부 때도 정부가 MBC민영화를 시도했다. 당시 방송개혁위원회가 정치인과 시민단체들로 구성해 지역MBC부터 시작해 본사도 판다고 했는데 여러 문제점들 때문에 좌절됐다.

우선 특혜논란이었다. MBC를 재벌에게 주면 특혜다. 중소기업에 준다 해도 마찬가지다. 어떤 기업이든 MBC을 인수하는 순간 재벌이 된다. MBC의 자산가치가 10조~20조원이나 된다. 그리고 MBC는 지금도 매년 수백억원의 순이익을 낸다. 전국 MBC가 갖고 있는 부동산을 생각해보라. 태영이라는 중견건설기업이 SBS를 인수하면서 재벌이 된 것을 생각해보라. 어떤 회사든 MBC를 인수하면 엄청난 힘을 가지게 된다. 뉴라이트쪽의 김우룡 교수 같은 이는 국민주 방송을 운운하는데, 국민주 하는 순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쪽의 정수장학회가 30%의 지분으로 최대 주주가 된다. 그런 상황은 이명박 정권이 별로 안 좋아할 것이다. 이런 난관들이 많이 있다.

MBC의 소유구조가 이렇게 된 데는 나름의 역사적 배경이 있다. 80년 언론 통폐합을 하면서 정수장학회 이외 지분 70%를 KBS에 줬다. 87년에 법을 개정해 방문진이 대주주가 되고, 방송위원회에서 이사들을 임명하게 했다. 그렇게 해서 MBC 경영진을 방통위가 임명하도록 된 것이다. 정권에 따라 성향이 바뀌지만 6대 3 또는 5대 4정도로 친여권 성향 인사들이 방문진 이사가 된다. 지금은 노무현 정권 시절 이사회지만 곧 한나라당 성향 이사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과거 10년 동안은 MBC가 정권에 그다지 휘둘리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때는 동아일보 편집국장 출신인 김중배씨 같은 분이 사장으로 오기도 하고, 노무현 정부도 간섭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긍희 같은 보수적 인사가 사장이 되기도 했다가, 최문순 같은 노조위원장 출신이 사장이 되기도 했다.

-박위원장의 이야기는 ‘MBC가 정파적 입장에서 한나라당을 편파적으로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현 집권세력의 시각과는 많이 다른 것 같은데.

김중배 사장은 방문진 이사들이 작당해서 청와대에서 미는 사람을 제끼고 모셔온 분이다. 김중배 사장이 와서 MBC 독립성을 확립하는 데는 큰 역할을 했다. 워낙 배짱이 좋고 언론계 거물이니 가능했다. 김중배 사장은 전 직원들에게 ‘외압 걱정 말고 소신껏 만들라’고 했다. 그래서 미디어비평 같은 프로그램이 활성화될 수 있었다.

이처럼 공영방송은 그동안 진행해온 방송민주화 투쟁의 결과물이다. 이런 상황에서 MBC를 관제방송으로 만들자거나 민영화하자는 것은 이명박 방송이나 재벌방송을 하라는 것이다. 특히 국민주 방송을 운운하는 것은 미끼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완벽한 국민주방송이라면 반대하지 않는다. 사장을 뽑을 때 완벽히 독립된 사장을 뽑는다면 현 정권에 안 좋겠지. 지금은 방문진 이사들을 통해서라도 일정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전혀 제어할 수 없는 방송이 태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것을 정부가 원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국민주 방송하자고 몰고 가면서 민영화 등 다른 꼼수를 생각하고 있다고 본다.

-MBC를 민영화하려고 한다면 정부가 어떤 식으로 갈 것 같은가?

KBS에 대해 국가기간방송법을 만들려 한다. KBS와 EBS는 한데 묶어 국회가 통제하고, KBS2는 민영화하려 한다. 그런데 NHK가 사실 중계방송으로 흐르고 힘이 약한 방송이 된 것은 정권에 묶여서 그렇다. 일본의 나머지 민영방송들은 상업 방송으로 모두 수익만 추구하는 방송들이다. 언론으로서 제대로 기능을 못하는 것이다. MBC를 그런 식으로 관제방송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민영화하라고 협박할 것이다.

-현 국면에서 정권의 방송 장악 기도를 막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죽도록 싸우는 방법 밖에 없다. 6.10 때 100만명 모였을 때 그때만 해도 국민들이 MBC 민영화를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정권의 악랄한 탄압 때문에 사람들이 겁을 먹어 촛불이 사그라들었다. 나도 서너번 촛불집회 나가봤지만, 8월 이후로는 정말 무섭더라. 정권이 다 잡아간다고 하니, 사람들이 겁이 나서 집회에 못 나간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이 변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결국 잠재된 여론을 잘 살려야 한다. 정부의 방송장악 진행과정을 잘 알려야 한다. 그게 안 되면 총파업으로 갈 수밖에 없다. 야당은 이제 방송 장악 기도를 막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 깨달은 것 같다. 방송을 빼앗기면 절대 재집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결국 이런 공포 분위기 속에서는 극한 상황을 맞아야 국민들 마음이 움직일 것이다. 92년 MBC에 공권력이 들어와 기자와 PD들이 끌려간 것과 같은 상황이 다시 올 것이다. 우리도 피하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너무나 확실히 보인다. 피할 수 없으면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즐겁게 할 생각이다.

-KBS와 YTN에는 어쨌든 정권에서 미는 인사가 사장으로 왔고, KBS는 노조원들마저 분열돼 있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외로움을 느끼지는 않나?

KBS가 보조를 맞춰 주면 좋은데, KBS 내부의 문제가 있는데다가 노조가 임기말이다. 사원행동이라는 조직이 있지만, 노조라는 합법적 조직에 기반해서 싸우는 것보다 힘이 달릴 수밖에 없다. 총파업이나 노동쟁의가 쉽지 않다. 현재 노조는 팔짱끼고 있으므로 지금 상태라면 KBS와 함께 싸우는 것은 쉽지 않다. MBC가 총대를 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SBS 노조는 생각이 우리와 똑같지만 오너가 있는 기업이어서 한계가 있다.

국정감사 끝나는 10월말이면 총파업 투표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YTN에 공권력이 투입된다면 연대 투쟁할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총파업을 앞당길 수도 있다. KBS 신임 사장 임명 때도 KBS노조가 파업 들어가면 같이 파업 들어가겠다고 했는데, 몇 가지 변수가 생기면서 발을 담글 수 없었다.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공영방송 사수라는 굳은 결의를 갖고 있어 총파업으로 가는 데는 별 문제 없다.

-결국 국민 여론이 호응해줘야 총파업을 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다. 여론의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보는가?

국민들이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조중동이라는 집단의 실체에 대해 많이 알게 됐을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여론을 왜곡하는지 알게 됐을 것이다. 또 현재 진행되는 정권의 작업이 방송을 조중동에 넘기기라는 것도 아는 사람들이 많다. 현 정부 미디어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하기 위해 결성된 미디어공공성 포럼에 참여한 200여명의 언론학자들은 진보, 보수를 망라한다. 이런 학자들이 모여서 현 정부 언론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훨씬 우호적인 환경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밖에 많은 분들과 함께 힘을 모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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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론적인 질문을 하겠다. 공정방송을 지키겠다고 하는데 왜 공정방송이 중요한가?

공정방송이 꼭 정부를 비판하거나 진보진영을 대변하는 게 아니다. 언론자유라는 언론의 가장 중요한 항목이 공정방송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제작진들이 자유로이 취재하고 각자의 양심에 따라 기사를 쓰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공정방송이다. 지금 한국 언론을 크게 나눠보면 사주 있는 언론과 사주 없는 언론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MBC, KBS와 한겨레와 경향, 서울신문처럼 사주가 없는 언론과 사주 있는 언론들의 논조는 매우 많이 차이 난다. 경향이나 한겨레가 자율적으로 우리 정치, 사회 환경을 직시해서 쓰는 것은 공정언론이다. 제대로 된 공정언론은 어떤 정권이든 비판할 수밖에 없다.

그런 공정방송이 그냥 된 것이 아니다. 공정언론을 훼손하는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막아낸 언론 종사자들의 투쟁이 있었다. MBC 노조도 마찬가지다. MBC가 첫 파업했던 것은 88년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방송을 정권이 못 내보내게 해서였다. 또 우루과이라운드와 연관해 농촌의 현실을 방영하지 못하게 할 때도 파업을 했다.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며 파업하기도 했다. 노조 파업이 대부분 그런 역사를 갖고 있다. 공정방송을 하게 해달라는 것이 진보방송, 좌파방송이 아니라 기자와 PD들이 취재한 대로 서민들의 어려움을 전하고 정권의 잘못을 비판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우리의 그런 노력이 인정받았고, 그래서 지난 10여년 동안 언론자유와 공정방송이 많이 신장돼온 것이다.

사실 MBC가 민영화되면 직원들 월급이 더 올라갈 것이다. 정권도 그런 점을 부각시키며 우리들을 회유하려 할 것이다. 민영화돼도 나이 든 간부들이나 잘릴 걱정할까 젊은 조합원들은 걱정 안 한다. 기자나 PD들은 민영화되더라도 오너가 데리고 가야 할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강력히 민영화를 반대하는 이유는 오너를 상전으로 모시고는 공정방송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정말 노조가 밥그릇을 챙기고자 한다면 차라리 민영화가 낫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KBS노조가 논란에 휩싸이면서 MBC 노조를 사람들이 많이 주목한다. 네티즌들이나 시민단체나 학자들이 ‘이제 MBC 노조밖에 안 남았다’고 할 정도다. 그만큼 책임감이 많이 들고, 부담도 된다. 저희는 결코 거창한 신념 때문에 싸우는 게 아니다. 이 정권이 우리를 가만 안 놔둔다. 착실하게 회사에 다니던 회사원들, 수업 받던 학생들이 못 참아서 촛불을 들고 나왔듯이, 우리도 가만히 일만 하고 싶은데 상황이 우리를 계속 내몬다. 소름끼칠 정도로 속이 뻔히 보이는 현 정권의 음모가 두렵기도 하지만, 우리가 안 나설 수 없다. 너무나 한심하고 황당한 정권의 작태가 우리를 투쟁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하겠다. 많은 분들이 우리 상황을 이해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도와줄 거면 화끈하게 도와줬으면 좋겠다. 나라꼴 돌아가는 것이 너무나 한심하다. 미디어공공성포럼 출범식 갔을 때 만난 한 언론학자가 촛불집회에서 여중생, 여고생들이 ‘언론장악 반대’ 팻말을 만들어 들고 나왔을 때 너무 부끄러웠다고 하더라. 그런 국민들께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싸우겠다.

이 글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의 '언론개혁'란에도 띄웠습니다. 좀더 깊이 있는 정보와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방문해주세요. 이 글은 연구소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으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9. 17. 08:25



정부가 ‘광역경제권 선도 프로젝트’ 사업에 향후 5년간 56조원을 투입한다고 하는군요. 이 가운데 53조여원이 도로, 항만, 공항 건설 및 산업단지 조성 등 개발사업에 들어가는군요. 겨우 2조3000억원이 지식산업 및 첨단기술산업 지원에 투입되는군요.

 

이 계획을 들으면서 여러 가지 착잡한 생각이 듭니다.

 

우선, ‘삽질경제학’의 대가이자, 건설족의 우두머리 출신 대통령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을 ‘경제대통령’으로 포장했고, 경제를 살리겠다고 약속했는데 경제를 어떻게 살려야 할지 마땅한 방법을 모르겠죠.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려면 부동산 거품을 빼고 국가 정책의 틀을 콘크리트가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경제로 바꿔야 하는데 그게 쉽게 될 리 없죠. 확고한 비전과 철학을 가지고 추진해도 어려운 문제인데, 반칙과 편법, 부정이 판치던 개발경제 시대의 현대건설 사장 출신이 개념조차 가지고 있을까요?

 

더구나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등 자산경제가 지나치게 부푼 상태에서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은 계속 급전직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장잠재력을 제대로 확충하려면 시간이 걸리니, 전시행정과 단기 눈속임 성과주의의 귀재인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택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그의 언행이나 정부 정책을 보면 성장잠재력을 어떻게 확충하는지에 대해 전혀 모르는 대통령 같습니다. 결국 자신의 전공 분야이고, 당장 효과가 나타나는 개발 사업으로 승부를 보려 하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하면 각 지역에도 선심을 쓰는 격이니 정치적으로도 득이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최근 잇따른 정부 발표를 보면 정부가 내심으로는 개발사업을 통해 시중유동성을 확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건설업체들에게 사실상 특혜금융을 주는 환매조건부 미분양 매입 등 건설업체들에게 종합선물세트를 안겨준 ‘8.21 대책’을 비롯하여 제2롯데월드 건설 허가, 재개발 재건축 완화, 새만금 개발 본격화, 죽어가던 한반도 대운하 되살리기, 그리고 이번 광역경제권 개발 발표 등이 모두 대규모 개발 사업을 통해 시중 유동성을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같습니다. 정부는 ‘9월 위기설’이 사실상 소멸됐다며 의기양양해 하지만, 원래 9월에 외환을 통한 위기가 바로 현실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한국 경제의 위기는 그보다 훨씬 더 깊은 속병을 가진 구조적 위기이지, 단기적 위기가 아닙니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 내수 침체, 자산 및 소득 양극화, 성장 잠재력 고갈, 막대한 가계 부채 급증 등이 부동산 버블을 고리로 지난 10년간 확대 재생산돼온 상황입니다. 한국 경제의 핵심 위기는 오히려 이처럼 외환위기 이후 누적돼온 구조적 위기입니다. 그런데 정부도 내심 부동산 버블이 붕괴될 위기감을 느끼고 있고, 그것이 가져올 신용 위축 사태가 우려되겠지요. 그래서 각종 개발사업과 전매제한 완화 조치 등을 통해 시장에 돈이 돌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2롯데월드 건설 허가라든지, 새만금 개발사업 추진, 한반도 대운하 되살리기에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서울과 수도권에서 민간이 추진하는 초고층 프로젝트 등 대규모 개발프로젝트들이 많지만 당장 현금을 동원할 수 있는 사업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2롯데월드는 다릅니다. 롯데그룹 계열사 부사장 한 분은 저와의 전화통화에서 “경기를 살리려면 당장 돈을 풀 수 있어야 하는데, 다른 데는 자금 조달하는 데만 상당한 기간이 걸리겠지만, 우리는 수조원의 현금을 바로 동원할 수 있다”고 말하더군요. 롯데그룹 차원에서는 정부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를 내세워 이번 허가를 땄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좀 더 다른 차원에서 정부가 살리고 싶은 모양입니다. 말은 물류니, 관광이니 내세우지만 자신들도 제 정신이라면 이게 안 된다고 생각할 겁니다. 물론 정말 자신들 생각을 믿는다 해도 향후로는 시중 유동성 확대라는 차원에서 진행하려 할 것입니다. 대규모 운하 프로젝트를 통해 외국자본까지 유치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일 테고요. 이번 ‘9월 위기설’은 무사히 지나갔지만, 정부 스스로도 잘못하다가는 외환 유동성 위기가 실제로 발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다고 느꼈을 겁니다. 실제로 건설업계 안에서는 정부가 대운하 되살리기에 집착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라고 추정하는 의견들이 많습니다. 특히 새만금 사업의 경우에도 외국자본의 투자 유치를 통해 외환 유동성을 확충하려는 의도가 상당히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추정에 대해서는 길게 쓰지 않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렇게 하면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가 해소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경제의 핵심적 문제들인 소비 위축, 내수 침체, 실업률 증가, 양극화 확대, 고물가 고비용 구조 등의 문제는 상당 부분 부동산 거품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우선, 가계부채의 증대와 이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로 가계의 소비 여력이 급격히 위축됐습니다. 또한 소비재와 달리 가장 값비싼 생활 필수재인 주택 값은 상승하면 그만큼 실질 소득이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또 주거비 부담이 상승하면 이를 부담하기 위한 임금 상승이 합리화돼 기업의 비용 증가로 이어집니다. 자산 양극화가 심해지고 이로 인한 사회적 위화감도 증대됩니다. 토지 비용의 상승으로 경제가 고비용 구조로 흐르게 돼 중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거품은 형성되면서 이미 막대한 경제적 폐해를 낳습니다.

 

한 나라의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부동산 등 자산 경제의 영역과 생산경제의 영역이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경제 자원이 부동산에 편중되도록 집값 거품을 키우고 유지하면서 7~8년을 지속해왔다. 그런데 현 정부는 집값 거품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씁니다. 여기에다 지금 대규모 개발 계획을 남발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다 언급할 수 없지만,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각종 중앙 및 지방정부 차원의 개발 사업들이 막대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각종 개발사업들을 또 벌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개발사업들이 모두 필요한 것이라면 말도 안 하겠습니다. 당장 이번에 발표한 계획만 봐도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이 수두룩합니다. 예를 들면, 대구, 구미, 포항, 광주·전남, 서천 등 5곳에 새로운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존에 형성된 산업단지와 과학기술테크노파크 등의 사업과 뭐가 다른지 의문입니다. 문제는 산업단지 조성을 통한 부지 제공이 아닙니다. 기존 산업단지에 입주한 기업들이 기술과 지식, 정보를 공유하고 외국 자본을 유치해 ‘연계 혁신(connected innovation)이 일어나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한 클러스터는 부지라는 땅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학교와 연구소 등이 기업들과 강력히 연계된 성장연합을 이뤄갈 수 있는 기술적 토대가 중심이 돼야 합니다. 그것이 현재 세계 각국이 추진하는 첨단산업클러스터를 통한 경제성장 방식입니다. 그런데 그런 비전 없이 새로운 산업단지를 조성한다고 하면 그것은 결국 부동산 개발사업에 불과합니다. 산업단지가 제대로 된 의미의 클러스터화하지 않으면 그것은 결국 부동산일 수밖에 없습니다. 일부 입주기업들에게 땅장사를 하게 하기 십상입니다. 더구나 얼마 전 KBS스페셜에도 나왔지만, 지방 및 수도권의 제조기업들은 오히려 한국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산업용지에 대한 수요는 줄어드는데 새로 산업단지를 조성하면 거기에 얼마나 들어설까요?

 

동남권역에 조성하겠다는 ‘동북아 제2허브공항’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강원도 양양과 경북 울진, 전남 무안 등 지방 공항들이 페쇄되거나 이용객들이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더구나 경남 김해공항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다 새로 공항을 짓는다면 충분한 수요가 생길까요? 마산∼거제 연륙교를 지어 해양관광을 활성화한다거나, 대경권에 3대 문화·생태 관광기반 조성을 한다는 사업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입니다. 전 정부에서 앞다투어 나섰던 대규모 관광개발 사업들 중에 지금 성공한 것이 있습니까?

 

한 마디로 그냥 개발사업을 했을 뿐, 이후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아무런 신경을 안 쓰는 것이 지금의 정부관료들입니다. ‘공급을 하면 수요는 생긴다’는 근거 없는 희망에 따라 개발계획을 내놓는 것입니다. 이는 개발시대 때에나 통하던 방식입니다. 개발시대 때에는 기본적인 사회인프라가 부족하니 짓기만 하면 다 수요가 생겨나고 성장 잠재력 확충에도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웬만한 사회기반시설은 대부분 마련돼 있습니다. 이런 콘크리트 사업에 투자해봤자, 성장 잠재력이 얼마나 확충되겠습니까? 사람들이 이용하지도 않는 공항, 도로, 관광지를 만들어놓는다고 그게 경제를 활성화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당장 주변에 사시는 곳부터 한 번 확인해보세요. 제가 서울시에 재직하면서 느꼈지만, 도서관 짓는데 100억원 이상이 들어가는데 정작 매년 도서 구입비 예산은 1억원 남짓합니다. 그러니 도서관에 가도 제대로 볼 수 있는 책이 없지요. 마찬가지로 문예회관이나 공연장이라며 수백억원을 들이는데 정작 짓고 나면 질 낮은 프로그램밖에 안 돌아갑니다.

 

제가 사는 일산 킨텍스나 종합운동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확인은 안 해봤지만, 두 곳 모두 짓는데 수백억원에서 1000억원대는 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일산 킨텍스는 일년 중 제대로 행사가 열리는 날이 아마 10일 안쪽일 겁니다. 그렇게 커다란 건물을 지어놓고는 안에서 뭐하는지 아십니까? 겨울에 인공 눈썰매장 한 켠에서 운용하고, 여름에 간이 물놀이장을 만들어 운영합니다.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 기존에 있는 킨텍스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지금 제2킨텍스를 짓는다고 난리입니다. 종합운동장도 마찬가지입니다. 2부 리그팀이 경기하는 게 일년에 10여차례에 불과한데, 그 외에는 그 큰 운동장이 텅 비어있습니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도대체 시민들에게 거의 아무런 혜택도 돌아오지 않고, 경제에 도움도 되지 않는 이런 막대한 개발사업을 누구를 위해 하는 겁니까?

 

그럼 돈들이 남아돌아서, 다른 데는 쓸 데가 없어서 이런데 쓰고 있을까요? 몇 년 간 아이들을 키우던 제 처가 얼마 전부터 사회복지사 일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저소득층 노인들을 위한 복지 프로그램을 맡았는데, 한국의 열악한 복지 현실에 마음이 찢어질 정도랍니다. 장애 때문에 생활도우미가 절실히 필요하지만, 도움을 받지 못해 변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노인, 가만 있던 집값이 재개발 붐에 4000만원에서 8000만원으로 올라 자활대상자 지원에서 제외된 노인, 한 달 생활비 10만원 정도로 버티며 매일 끼니를 라면으로 떼우는 사람 등등. 아내가 담당하는 케이스만 220가구. 그런데 아내와 동료 사회복지사 한 명의 급료를 포함해 220가구를 대상으로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배정된 1년 예산은 겨우 1억5000만원이랍니다. 아내는 예산이 1,2억만 더 있어도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겠다며 안타까워합니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거의 아무런 효과도 없는 일들에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전체로 매년 수십조원씩 쓰면서 당장 기초적인 사회복지 체계도 제대로 구축을 못하고 있다니요. 그런데 아직도 정부 관료와 정치권은 이런 개발사업 만드는 데 혈안이 돼 있습니다. 왜냐? 나중에야 어떻게 되더라도 뭘 만들고 짓는다 하면 사람들이 혹하니까요. 정치권은 표 얻을 수 있고, 뒷돈 받을 수 있으니 좋고, 관료들은 눈에 안 보이는 복지 프로그램 돌리느니 생색나는 실적 만들어서 좋고, 건설업체들은 사업으로 돈 벌어서 좋습니다. 관변 학자나 연구소들은 용역 프로젝트 많아져서 좋고, 언론들은 건설업체들 광고 물량 많아져서 좋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개발 옹호세력들을 저는 ‘개발 5적’이라고 부릅니다. 일본의 토건족, 건설족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일본도 버블이 붕괴할 때 토건족의 압력으로 중앙 및 지방 정부가 경기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대규모 개발 사업을 벌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필요도 없는 댐이 지어지고 노루와 토끼만 다니는 도로도 숱하게 생겼습니다. 많은 리조트와 골프장은 버려지고 도산했고요. 이런 개발사업에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 재정 고갈을 부추겼습니다. 이미 한국에서도 그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아직도 ‘개발만이 살길’인 것처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이런 판에 부유층을 위해 막대한 감세안까지 동시에 진행하고 있으니 재정건전성에 대해 한국 정부는 최소한의 고민은 하고 있을까요?

 

이제 개발경제 시대 때의 경제 운용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가계 자산의 80% 이상이 부동산에 몰려 있는 경제는 지속할 수 없습니다. 비용 대비 효과나 수요를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저지르는 개발사업으로는 선진경제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많은 이들이 첨단기술경제 시대이고, 지식정보화 시대, 창조경제 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면 국가 전체의 자원 배분이 이런 영역으로 배분되도록 해야 합니다. 첨단 기술을 고안하고 지식과 정보를 창출하며 창조성을 발휘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사람에게 투자해야 합니다. 한 국가경제의 자원은 유한하기에 제한된 자원 안에서 최적의 생산성을 낼 수 있는 자원 배분을 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사람에게 투자해 고부가가치 서비스를 창출하고, 첨단기술을 육성합니다. 한국 같은 주입식 교육이 아닌, 창조적 교육 프로그램으로 지식과 정보를 생산 가공하고,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인재를 키워냅니다.

 

필자가 유학생활을 했던 미국 보스턴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보스턴에 대규모 공장이 있는 것도, 고층 아파트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100년 이상 된 주택에서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웬만한 도로는 누더기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보스턴이 못 사는 동네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보스턴의 평균 가구 소득은 미국 평균의 약 2배 정도입니다. 소득 수준으로는 미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부자 도시입니다. 싱가폴이 2000년대 초반 일시적인 불경기로 휘청거릴 때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았던 도시도 바로 보스턴입니다. 보스턴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은 싱가폴 경제는 이후 생명공학기술과 의료산업 등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해서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고도성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보스턴에 뭐가 있길래 행정구역상으로 60여만명, 광역 보스턴(Greater Boston)으로 따져도 340만 정도에 불과한 도시가 그렇게 두각을 나타낼까요?

 

보스턴에는 인재가 있습니다. 하버드대학과 MIT, 보스턴대학(BU), 보스턴칼리지(BC),터프츠 대학 등을 필두로 100여개의 각종 대학들에서 매년 엄청난 인재가 쏟아져 나옵니다. 많은 인재들이 뉴욕이나 워싱턴으로 진출하기도 하지만, 보스턴에 남아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합니다. 하버드 의대 협력병원인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을 중심으로 의료산업이 발달해 있고, 관련 분야에 쏟아져 나오는 인재들을 중심으로 생명공학과 제약 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합니다. MIT를 중심으로 한 각종 IT산업과 로봇공학도 예외가 아닙니다. 인재들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기업들이 미국 전역에서 이전해옵니다. 또한 인재들은 자신들의 벤처기업을 만들어 미래의 빌게이츠를 꿈꿉니다. 베인 앤 컴퍼니나 보스턴 컨설팅그룹 등 세계 유수의 컨설팅펌들도 보스턴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역시 보스턴에서 배출된 우수한 인재들이 이들 회사의 토대가 됐습니다.

 

보스턴 필하모닉과 보스턴 발레단처럼 보스턴은 젊은 예술혼과 창조성이 살아 숨쉬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인구 60만의 도시에 공립도서관만 36개나 됩니다. 인구 1000만의 도시 서울에 ‘독서실 같은 도서관’이 아닌, 진짜 공립도서관이 30개도 채 안 되는 것과 너무나 비교됩니다. 이런 보스턴 경제의 활력이 모두 사람과 교육, 문화에서 나왔습니다. 제대로 된 선진경제가 가는 길이 바로 이런 방향입니다. 한국 경제가 미래를 기약하고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도 가야 하는 방향입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가야 하는 길입니다.

 

결국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자식 세대가 살 수 있는, 한국 경제가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새로운 게임 규칙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첫 걸음은 무턱대고 내지르는 토건국가적 개발사업 남발을 자제해야 합니다. 충분히 타당성이 검증되지 않은 각종 건설토목사업에 돈을 쏟아 붓는 과거 일본과 같은 토건국가적 행태는 멈춰야 합니다. 대신 그렇게 아낀 돈을 저렴한 비용으로 누릴 수 있는 질 좋은 교육을 만들어야 합니다. 초중고 과정에서는 살인적인 입시경쟁에서 벗어나 창의성을 강화하는 교육을 만들고, 오히려 ‘경쟁의 무풍지대’인 대학이 경쟁하도록 해야 합니다. 재벌 기업들의 독과점적 이익을 보장해주는 구조 대신 국내시장에서도 국제무대에서와 마찬가지로 치열한 경쟁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몸과 마음을 키울 수 있는 더 많은 도서관을, 더 많은 문화공연장을, 더 많은 체육시설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소득층과 노후세대를 위한 더 많은 복지 혜택을 체계적으로 마련해가야 합니다. 제대로 된 공공건설사업 발주 시스템을 만들면 이를 위한 예산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이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주택 및 부동산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선진국 대비 5%도 안 되는 공공주택 재고를 20~30% 수준까지 높여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까지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동산 보유세 강화 등 자산 거품을 만들지 않는 부동산 세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후분양제 확대와 공공부문의 주택 원가 공개 등 소비자 중심의 주택 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콘크리트가 아닌 사람에게 투자하는 경제에 희망이 있습니다. 땅과 집이 아닌,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을 제대로 키우는 경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자식세대 홀로, 또는 부모세대 홀로 만들 수 없습니다.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가 합심해서 힘과 지혜를 모아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by 선대인 2008. 9. 12. 15:30

그제(9월 9일)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씨와 어머니 우갑선씨를 만났습니다. 약 10년 만의 재회입니다. 점심 약속 장소로 가는데 가슴이 뛰더군요.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처음 만났을 때 초등학교 6학년이던 소녀. ‘희아’라고 불렀던 소녀는 이제 23살의 숙녀 ‘희아씨’가 됐습니다. 하지만 동안(童顔)인 희아씨는 10년 전 모습 거의 그대로였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에도 세월의 흔적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잠깐. 제가 이희아씨와 무슨 관계냐고요? 하하.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시절이던 99년 초 희아씨의 사연을 사회면 톱 기사로 소개했던 인연이 있습니다. 당시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결혼 전의 아내가 희아양 얘기를 처음 전해주었습니다. 귀가 번쩍 띄었습니다. 쉬는 토요일이었지만 희아양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했습니다. 처음에 무척 꺼려하던 희아양 부모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울리는 듯합니다. 몇 차례 통화한 끝에 가까스로 인터뷰 승낙을 받아냈습니다. 한 시간 동안 비 내리는 밤길을 달려 서울 강동구에 있던 희아양 집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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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고 티 없이 맑고 환한 얼굴. 당시 희아양의 첫 느낌이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어머님으로부터 희아양의 사연을 듣는데, 가슴이 자꾸 뭉클해졌습니다. 차에 남아있던 아내가 몇 번씩 핸드폰을 울렸지만, 좀처럼 자리를 일어설 수가 없었습니다. 취재를 마칠 무렵, 희아양이 ‘즉흥환상곡’을 들려주었습니다. 아아! 정말 믿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완벽한 연주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단 네 손가락만으로 이런 연주를 할 수 있다니! 그것은 단순한 연주가 아니었습니다. 희아네 가족의 땀, 눈물, 애환, 열정, 희망, 애정이 녹아 있는 결정체였습니다.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극한의 꿈을 이루려는 가열찬 투쟁 같은 것이었습니다.


일요일인 다음날 출근해 기사를 출고했습니다. 제가 느꼈던 그 감동을 표현할 수 없어 고심했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합니다. 데스크로부터 몇 번의 재촉을 받고 보낸 기사는 사회면 톱 박스로 큼지막하게 편집됐습니다. 한국언론재단에서 운영하는 '카인즈'에서 찾아본 그 기사의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음악은 없다"-네 손가락 소녀피아니스트 이희아양


'네 손가락의 즉흥환상곡.’서울시 교육청과 한국재활재단이 초등학생들의 독후감 모집을 위해 나누어준 책의 이름이다. 태어날 때부터 두 손 다 합쳐 손가락이 4개밖에 없는 열네살 소녀의 스토리. 그러나 피나는 노력 끝에 전국 피아노 연주대회에서 ‘열 손가락’ 유치부 어린이들을 모두 물리치고 1등을 차지했다.


오늘도 세계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9년째 건반에 매달려 사는 서울 주몽초등학교의 이희아양(14·6년)얘기를 담은 책(동화작가 고정욱 기록)표제다. 24일 마감된 독후감 모집(2월6일 당선작 시상)에 응모한 어린이만도 무려 2천여명.


“사람의 작은 의지가 얼마나 위대한 승리를 거둘 수 있는가, 장애인친구도 함께 살아가야 할 내 친구가 아닌가하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독후감을 적어 낸 한 어린이의 소감이다.


희아는 태어날 때부터 ‘네 손가락’이 전부였다. 두 다리도 없다. 선천성 기형으로 막대기처럼 가늘게 붙어 있던 다리도 세살 때 절단했다. 그래서 페달은 특별히 피아노 위쪽에 붙여 허벅지로 조작한다.


67년 대간첩작전에서 척추를 다쳐 하반신 마비가 된 아버지 이운봉씨(54)와 간호사로 이씨를 돌보던 어머니 우갑선씨(44·산부인과 조산원) 사이에서 태어난 희아. 기형의 원인은 엄마가 임신사실을 모르고 감기약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이라고 의사들은 말했다.


여섯살이던 91년 희아에게 연필이라도 쥐는 삶을 열어 주려고 시작한 피아노연습. 받아 가르쳐주는 학원도 없어 석달여를 떠돌아 다니다 ‘숲속피아노학원’ 원장 조미경씨(31·여)를 만났다. 조원장은 우씨가 일하던 산부인과에 입원했다가 희아의 사연을 알게 된 것.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과 오후로 나눠 10시간에 이르는 연습이 시작됐다. 그러나 희아가 짚는 건반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손가락에 더 힘을 줘.” “안돼. 안돼. 그 부분 다시.”

또래 어린이들이 피아노를 배우고 간 뒤에도 희아와 조씨의 1대1교습은 거듭됐다. 몸살로 앓아눕고 네 손끝에 물집이 잡혔다. 네 손가락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화음은 빠른 손놀림으로 쫓아가야 했다. 그렇게 3개월여가 지나자 피아노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학교종이 땡땡땡…’을 끝까지 치던 날 온가족은 울어버렸다.


네 손가락 솜씨는 빠르게 발전했다. 1년여 뒤 참가한 전국학생음악연주평가회에서 희아는 와이만의 ‘은파(Silver Wave)’를 연주, 유치부 최우수상을 따냈다.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쓰는 행진은 계속됐다.


희아는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96년 일본 장애인재활시설인 ‘꿈의 공방’을 방문해 연주하고 97년에는 국내장애인을 위한 독주회를 열어 수익금 1천만원 가량을 장애인단체에 기부했다.


이제 중학생이 되는 희아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꿈. 하지만 지난해의 뇌출혈 후유증으로 요즘 장시간 연습이 힘들다. 그래도 어렵고 어렵다는 베토벤 소나타 24번 ‘열정’을 하루 3,4시간씩 두드리며 꿈을 불태운다.


“아무리 해도 베토벤 작품은 칠 수 없으리라던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왼손만으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가 된 라울 소사라는 사람도 있다지 않아요.”


이 기사의 파장은 상당히 컸습니다. 신체 장애에도 불구하고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불사른 열정이 당시 외환위기에 지쳐있던 많은 이들에게 와닿았던 모양입니다. 제게는 수십 통의 격려전화가 쏟아졌습니다. 희아양은 방송에 잇따라 출연하고, 청와대에 초청받기도 했습니다. 더 나중에는 CNN방송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고요. 희아양의 연주회도 잇따라 열려 많은 이들이 희아양의 '희망 바이러스'에 전염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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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우갑선씨가 쓴 수기 '신이 준 손가락'


그 해 가을 저희 결혼식 때는 희아양에게 축하 연주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제가 사람 도리를 잘 못하다 보니 연락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가끔씩 TV 등에서 희아양 모습을 보게 되면 괜히 흐뭇해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연락을 드린 것입니다. 전 직장에서 함께 근무했던 여직원이 한 라디오 방송에서 희아씨 어머니가 저를 언급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걸었던 10년 전 어머니의 전화번호는 바뀌지 않았더군요.    


10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은 또 한 번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습니다. ‘희아씨’는 이전의 앳되고 순진하기만 한 소녀가 아니었습니다. 매우 뚜렷한 사회적, 정치적 의식을 가진 공인이었습니다. 희아씨는 통일음악회 등에 참여하고, 북녘어린이와 장애인, 탈북자들을 돕는데 매우 열성적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마치 북한 동포들을 돕기 위해 태어난 아이 같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희아씨는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 어린이들이 굶주리고 헐벗고 있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녀는 김대중 정부 이래로 지속돼온 남북 화해 분위기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대치국면으로 전환된 것에 분노했습니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한국의 지원이 끊겨 북한 동포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아느냐?”고 묻더군요. 그렇다고 물론 북한 정부당국에 우호적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북한만 ‘우리나라엔 장애인이 한 명도 없다’며 장애인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았다”며 장애인의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는 북한 당국을 성토하더군요. 그녀는 북한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도 이명박 정부에 매우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도덕성이 없는 사람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된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다”며 “자라날 아이들이 이런 대통령을 보면서 어떤 영향을 받을 지 걱정된다”고 했습니다. 희아씨는 또 “현 정부 들어와서는 부유한 사람들만 더 잘 살고, 서민들은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데, 매우 당당하고 거침이 없었습니다.


모전여전일까요? 사실 희아씨의 그런 생각과 태도는 어머니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듯 했습니다. 어머니는 “현 정부가 장애인들에게 가던 보조혜택을 많이 줄이려 한다”며 “정부는 부정수급자가 많아서 이를 없애려 한다고 하는데, 그런 문제라면 제도를 없앨 게 아니라 부정수급자를 제대로 가려내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그는 나라가 어려워지면 흉측한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른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게 된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저보다 더 비판적인 것 같아 “이제 희아씨도 유명인인데 그런 말해도 괜찮느냐?”고 물으니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이 자기 생각을 말하는데, 눈치를 봐야 하느냐?”라고 되물었습니다. 어머니는 “나쁜 짓을 하는 것을 알고도 모른 채 하면 그 나쁜 짓에 동조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지도층 중에는 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하더군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는 “현 정부의 종교 편향적인 태도는 오히려 개신교 스스로에게도 안 좋은 것 같다”며 “하나님의 참뜻을 잘 모르는 분”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는 희아씨가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했는데, 시민을 대표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끼어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날 대화가 딱딱한 내용으로만 이뤄졌던 것은 아니고요. 서로의 근황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눴는데요. 희아씨는 각종 연주회 요청이 국내외에서 끊이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대부분 자선연주회라고 합니다. 당장 이달 말에 미국과 캐나다 연주 여행을 떠날 거라고 했습니다. 북미지역 장애인들을 위한 자선공연이라고 하는군요. 이미 7월에는 중국 쓰촨성 지진 성금 모금을 위해 중국 충칭에서 연주회를 열기도 했고요. 지난 9월1일에도 북측 장애인돕기 자선 음악회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가졌다고 하더군요. 9월 26일에는 마산MBC홀에서 경남통일농업협력회의(경통협)의 ‘북녘어린이 콩우유 지원사업’을 돕기 위한 자선음악회를 열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1000원이면 북한 어린이 한 명에게 일주일 동안 콩우유를 지원해 줄 수 있다”며 “매월 1000원을 내는 회원 10만명을 확보하는 게 목표”라고 말하더군요. 저는 당연히 이 운동에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경통협 사무실 055-585-7421~2번으로 전화해서 자세한 안내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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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집 앨범의 CD표지


자리를 정리할 무렵, 희아씨의 연주곡 CD와 어머니가 쓰신 수기인 '신이 준 손가락' 등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CD와 책 판매 수익금은 북한 장애인을 위한 항생제, 의료기구 지원금으로 기부한다고 하네요.) 희아씨의 친필 사인과 함께 말이죠. 저도 제가 번역한 책을 답례로 드렸습니다. 집에 돌아와 저녁에 CD를 들었습니다. 1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기량이었습니다. 희아씨는 자신의 꿈을 이룬 사람으로 제게는 느껴졌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희아씨 홈페이지(www.heeah.com)에 올려져 있는 ‘즉흥환상곡’을 듣고 있습니다. 얼마나 부단히 노력했으면 네 손가락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선율을 낼 수 있는 걸까요? 희아씨의 연주뿐만 아니라 마음씨도 너무 아름답습니다. 희아씨는 홈페이지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내가 넘어져 울고 있을 때 나를 일으켜 세웠고 세상을 향해 밝은 웃음을 활짝 웃게 해준 피아노! 그 아름다운 사랑의 선율을 다시, 삶의 아픔을 겪고 있는 모든 분들과 친구 여러분들께 돌려드립니다.” 희아씨가 있어서 세상은 조금 더 밝아질 것 같습니다. 

by 선대인 2008. 9. 11. 08:45

경찰이 YTN 정문 앞에 전경버스 4대를 배치하는 가운데 YTN노조가 파업 찬반 투표 결과를 오늘(9월 10일) 오후 발표하기로 함에 따라 YTN사태가 더욱 긴박해지고 있다.

경찰은 또 YTN 사측이 노종면 노조위원장 등 노조원 6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함에 따라 김기용 남대문서장이 직접 나와 현장 조사를 벌였으나, 노조의 강력한 항의로 돌아갔다.

YTN노조는 “현직 경찰서장이 단순 고소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바로 다음날 기다렸다는 듯이 현장에 나타나 위력 시위를 하는 것은 노조에 대한 정권 차원의 협박 시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YTN 내부에서는 사태의 해법에 관한 선후배 기자간 논쟁이 벌어져 눈길을 모으고 있다. 노조에 의해 ‘불량간부’로 찍혔다는 한 국장급 간부가 ‘조건 없이 제자리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데 대해 통일외교전문기자인 왕선택기자가 이를 조목조목 비판한 것. 아래에 두 사람의 글을 순서대로 게재했다. 왕기자의 글은 분량 관계상 내용을 줄여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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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정문 앞에 걸려 있는 YTN 노조 지지 플래카드

<<이제 조건 없이 제자리로 돌아갈 때입니다>>

노조로부터 불량간부로 지목된 ...국의 김0입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후배들인 노조원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이제 구본홍사장 퇴진운동을 조건없이 접고 온전히 제자리로 돌아갑시다. 노사모두가 패자가 되는 파국의 검은 그림자가 점차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길만이 파국을 막는 방안이라고 믿습니다. 노조가 사측이 들어 줄 수 없는 조건을 내걸고 한 치의 양보도 없다면 그 결과는 무엇이겠습니까? 아무도 원치 않는 공권력의 개입을 부를 것이 뻔합니다. 이에 대해 노조는 파업으로 맞설 수 있겠지요. 그 순간 한국의 CNN을 꿈꾸며 우리모두의 피와 땀이 배인 YTN의 경쟁력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매출 감소는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아무도 원치 않는 결과가 올 것이며 그 후유증을 치유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저는 다음 네 가지 이유로 노조가 구사장 퇴진 운동을 조건 없이 접고 제자리로 돌아가자고 호소합니다.

첫째, 노조의 구사장 퇴진운동이 80년대 독재정권에 항거하던 저항권의 발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노조는 인사철회와 구사장의 퇴진만을 요구하며 파업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는 노조의 주장이 상당한 명분과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코스닥상장업체에서 정식 절차를 거쳐 선임된 사장의 퇴진을 도를 넘어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현행 법률과 사규에 비추어 불법입니다. 설사 사장 선임절차를 규정한 법률과 규정이 불비하고 소속원의 의지를 정확히 담아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악법도 법이기 때문에 지켜야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노조는 구사장 퇴진 요구가 절대선인 양 주장하며 공공연하게 공권력투입과 사법처리를 감수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일부 노조원에게서는 투사가 된 듯한 광기를 느낍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의 주장이 설득력과 정당성을 담보하려면 공정방송을 기치로 내건 구본홍사장 퇴진운동이 저항권 행사 차원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노조의 주장과 행동은 과거 군부독재시대때 저항권 차원에서 일어났던 민주화 투쟁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공정방송을 얘기하면서 정치권의 힘을 빌리고 있습니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격려방문이 있었습니다. 이미 상당수 후배노조원들의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노조의 구본홍사장 퇴진운동은 공정방송을 볼모로 한 정치투쟁으로 변모됐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설령 노조의 힘이 강해 이번 싸움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관행을 정당화함으로써 두고두고 YTN의 역사에 오욕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노조원들이 훗날 데스크도 되고 그중에서 경영진도 나올 것입니다. 그때 지금과 똑같이 후배들이 정치적 이슈를 내세워 몰아 부친다면 여러분들은 어떤 명분으로 막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여러분 후배에게 당하는 치욕의 역사가 되풀이 될 것입니다.

 셋째, 형식적인 명분을 내세운 노조의 극한투쟁이 우리 모두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 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노조원들의 최근 행동을 보면서 과거 경인방송 iTV 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몇 년전 iTV 노조는 당시 사주가 증자 등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이유를 내세워 허가당국인 당시 방송위원회에 방송국 재허가를 내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방송위원들은 보란듯이 재허가를 거부함으로써 회사가 문을 닫고야 말았습니다. 종사원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 실업자 신세가 되고 말았지요. 이후 당시 노조집행부가 노조원들의 생계를 어떻게 책임졌겠습니까? YTN도 지금 내년 3월 재허가를 받아야 하고 이달 중으로 관련서류를 제출해야합니다. 또한 소유구조를 공적구조에서 사적구조로 바꾸는 민영화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막을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노사가 분열해서 딴 소리를 낸다면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넷째, ‘코드인사는 괜찮고 캠프인사는 안 된다.’는 노조의 주장은 YTN구성원들을 스스로 모독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기업소유구조로 돼 있는 YTN은 과거에 정권과 가까운 인사가 사장이 안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임 표완수 사장이 노무현 정권과 전혀 무관한 인사였습니까? 아니면 백인호 사장이 김대중 정권과 전혀 무관한 인사였습니까? 이들이 당시 정권과는 전혀 무관한 어디서 독립운동이나 시민운동을 하다 온 분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표완수사장 시절과 그 이전 사장시절에 우리가 정권의 앞잡이 노력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보도국 기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공정방송에 대한 의지와 공정방송위원회라는 제도를 통해 우리는 공정방송의 관행을 정립해 왔습니다. 저는 구본홍사장이 현 대통령의 캠프에 참여한 캠프인사이긴 하지만 과거의 코드인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YTN구성원들의 불같은 의지와 공정방송제도의 정비로 우리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공정보도를 할 수 있습니다.

후배 노조원 여러분! 다시 한 번 호소합니다!!!!! 조건없이 구본홍사장 퇴진운동을 접고 온전히 제자리로 돌아갑시다. 얼마 전까지 선후배가 이마를 맞대고 기사 한줄 한줄을 가지고 씨름하며, 특종을 챙기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치열하지만 온기가 느껴지던 선후배의 위치로 돌아갑시다. 결코 노조가 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후퇴는 대기업 노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퇴로없는 노사간 협상을 하다 난파 직전에 통 큰 양보를 함으로써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사례는 노동운동사에서 얼마든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벌여온 투쟁의 참의미는 조금도 가감없이 YTN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3년 전 보도국장추천제를 개선하자며 공개적인 글을 올린 이후 다시는 논란에 휩싸이지 않아야겠다는 결심을 했기 때문에 이런 글을 올리는 것을 매우 망설였습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의 주장도 경청하는 아량을 가져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김 선배께>>

 김 선배께서 고심 끝에 올리신 글 읽으면서 참담한 마음 가눌 길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역지사지라는 말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절실하게 깨닫게 됐습니다. (중간 생략) 게시글에서 김 선배께서는 노조가 사장 퇴진 운동을 접어야 한다고 하시고 그 이유로 네 가지를 드셨습니다.

첫째 이유는 이번 투쟁의 성격에 대한 말씀이셨습니다. 노조의 투쟁이 80년대 독재 정권에 저항하던 민주화 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투쟁을 중단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저도 동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 노조는 현재 공정방송 사수를 위해 구본홍 사장 선임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데 이 같은 우리 노조의 투쟁은 생존권 차원에서 이해되는 것이 오히려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공정성은 YTN이 창립 15년만에 대한민국 주요 언론으로 급성장하는 기적적 발전의 기반이 됐고 따라서 다른 언론사와 비교할 때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우리만의 장점이 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현 대통령의 특보를 지냈던 분이 YTN의 사장으로 들어온다고 하는데 이것은 대한민국 언론시장에서 우리 회사의 최대 강점인 공정성을 심대하게 훼손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언론의 중요한 책무 가운데 하나가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고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 기관이 정책이나 정치를 잘못한다고 판단되면 불가피하게 비판할 수밖에 없는데 대통령 특보 출신 사장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보도를 보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것은 산을 산이라 하고 물을 물이라 하는 것처럼 너무나도 명백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정성으로 성공한 회사가 공정성 이미지를 훼손당한다면 회사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회사 발전의 근간인 공정성을 잃는다면 한국 사회에서 YTN의 위상이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언론사로서 자긍심은 뿌리째 뽑힐 것이고 회사의 수입도 줄어들게 될 것이며 결국 1,2년 안에 다른 조그만 케이블 TV채널과 다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언론사의 상품은 보도입니다. 보도가 형편없으면 그 상품은 팔릴 수 없습니다. 야구를 못하는 프로야구팀은 관중의 외면을 받습니다. 공정하지 못한 언론은 야구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들로 구성된 프로야구팀과 다를 바 없습니다. 따라서 이번 노조 투쟁의 성격은 언론 기업으로서 생존하고 발전하기 위한 불가피한 대응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불법성에 대해서도 일부 말씀이 있으셨지만 언론사로서 공정방송에 위해가 되는 상황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불의에 해당하는 일입니다. 불의에 저항하지 않으면 언론인의 자격을 잃는 것이며 자격이 없는 언론인이 다니는 언론사를 우리는 사이비 언론사라고 부릅니다. 우리 사회의 공적인 사이비 언론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법성 논란과 불의에 대한 저항이 충돌할 때 언론인이라면 불가피하게 약간의 불법적 요소를 감수해야 한다고 할지라도 불의에 대한 저항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봅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노조 집회에 참석한 사실을 두고 정치 투쟁의 성격이 있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민주당 의원들이 집회에 참석하겠다는 것을 노조 지도부가 거부했고 행사가 끝난 뒤 집행부와 면담하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들었습니다.

둘째, 노조가 승리한다고 해도 오욕의 역사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셨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역시 심각한 인식의 차이가 있음을 느낍니다. 노조가 원하는 승리에 대해 오해하시고 있다는 점을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노조의 승리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공정방송 수호입니다. 공정방송의 틀을 유지하거나 발전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노조의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공정방송을 지켜내고 발전시키는 것이 역사적으로 오욕이 될 것으로 여길 수는 없는 일입니다. 노조의 승리는 공정 방송을 지지하는 모든 사람의 승리가 됩니다. YTN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 우리가 공정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노조의 투쟁 목표는 바로 대통령 특보 출신 사장이 들어오는 것을 부당하다고 판단하고 그에 대해 강력하게 저항함으로써 우리가 공정방송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대내외적으로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YTN 노조는 공정방송을 지지하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이미 승리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는 노조의 주장에 상당한 명분이 있다고 김 선배도 인정하셨습니다. 명분이 명확하게 드러났으면 그에 따라 처신하면 될 일입니다. 명분은 인정할 수 있지만 현실이 다르게 전개되니 현실을 따르자는 말씀은 언론인으로서 하실 말씀이 아닌 듯합니다. 훗날 노조원들 가운데 선배들이 후배들로부터 같은 방식으로 당할 것이라는 걱정을 하셨지만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 상황은 선배들이 후배들로부터 당하는 것이 아니라 후배들이 선배들로부터 배신당하는 상황으로 여기고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누가 봐도 명명백백하게 YTN의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가운데 언론인의 책무를 교육하셨던 선배들이 오히려 진실을 외면하고 불의에 저항하는 후배들을 막기 위해 용역깡패를 동원하는 상상 밖의 조치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선배가 정당하지 못한 일을 하고 후배들이 그에 대해 비난한다면 그것은 후배들을 탓할 일이 아니라 선배가 먼저 반성해야 마땅한 상황이 됩니다. 15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하면서 여러가지 일을 겪었고 판단하기 어려운 많은 일을 겪었지만 이번 일은 대단히 명백합니다. 대통령 특보 출신의 사장이 들어오면 우리의 공정방송틀은 심각하게 훼손되며 이는 반드시 저항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셋째, 경인 방송의 사례와 비교를 하셨는데 이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경인 방송 노조는 명분과 실리 면에서 매우 어리석은 전략을 택했고 투쟁 초기 단계에서부터 논란이 됐었습니다. 공정방송 수호를 위해 투쟁중인 YTN 노조를 예전의 경인방송 노조와 비교하시는 것은 정말로 지나치시다는 말씀 이외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넷째, 과거 노무현 행정부나 김대중 행정부에도 코드 인사가 있었는데 이명박 대통령의 캠프 인사와 다를 바 없다면서 노조가 과잉반응을 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일견 일리가 있고 이 부분에 대해 노조 집행부가 유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코드 인사와 캠프 인사는 내용적으로 볼 때 정도의 차이는 있습니다. 일반 시청자 대중이 참고 넘어갈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 특보 출신 인사는 너무나도 명백한 편향성의 근거가 되며 그런 분이 언론사 사장으로 들어오면 누구라도 그 언론사의 보도 공정성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코드 인사나 캠프 인사가 다를 게 없다고 하시는 것은 마치 누런색 사자나 누런색 노루나 색깔이 같으니 서로 다를 게 없다고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순백색의 아름다운 색깔을 원하지만 우리가 처한 조건으로 보면 누런색 정도의 흠결은 우리가 용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색깔이 같다고 노루나 사자가 같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노루를 울타리 안에 들여놓으면 배추밭을 망치는 정도로 그치지만 사자를 울타리 안에 들여놓으면 집식구들을 모두 잡아먹게 됩니다. 공정방송 제도화로 공정방송을 이룰 수 있다고 하셨는데 이 부분은 저의 소신과 일치하는 부분이므로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공정방송은 말로만 하자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엄격한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부분을 거듭 강조드리고자 합니다. 더구나 사장으로 들어오시는 분이 아직 사나운 맹수인 사자인지 아니면 평화적인 노루인지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우리는 본능적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사자인지 노루인지 증명을 하시는 것은 사장으로 오실 분이 하셔야 합니다.

오히려 지난 몇 주 동안 벌어진 일을 돌이켜 보면 회사 젊은 직원들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선량한 보통 직원들을 투사로 변모시키고 사태를 악화시키는 잘못된 정책을 잇따라 감행함으로써 노조의 투쟁을 가열시키는 상황을 보면서 노루가 아니라 사자일 것이라는 심증에 무게가 쏠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투쟁하는 것이고 그것도 생존권 차원의 투쟁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10년전 노조 창립을 위해 밤을 새워 일했던 성실한 노조원이었고 YTN 공채 1기 사원이라는 명예와 책임감을 자랑스러워하는 젊은이였지만 이제는 45세를 바라보는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고 있고 언론인 경력도 벌써 15년을 채워가는 기자가 됐습니다. 저도 세상 일이 복잡하다는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후배 기자들이 원하는 순결한 세상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부분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일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자명합니다. 매우 부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고 이에 저항하지 않으면 언론인으로서 자격이 없어지게 되고 우리가 저항하지 않으면 YTN은 그저 그렇고 그런 또 하나의 사이비 언론사가 됩니다. 그런 상황을 방치할 수 없어서 투쟁을 하는 것입니다. (하략)

 

by 선대인 2008. 9. 10. 1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