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다른 세상을 만드는 최선의 돈, 우리 이웃의 목숨을 살리는 돈
지난해 8월1일 동작대교에서 19세 소녀가 투신했다. “고시원비도 밀리고 너무 힘들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긴 뒤였다. 이혼한 부모와 헤어져 혼자 살던 소녀는 고교 졸업 후 식당일을 했다. 소녀가 투신한 지 한 달여 지난 9월6일엔 여의도 공원에서 50대 남성이 나무에 목을 맸다. 그 자리엔 빈 소주병 하나, 그리고 유서 넉 장이 있었다. 한동안 날품을 팔지 못한 그는 유서에 자신이 죽으면 장애아들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적었다. 그로부터 엿새째 되던 날 창원 마창대교에서 40대 남성이 난간을 붙잡고 버티던 11살짜리 아들을 떠밀었다. 곧 그도 뛰어내렸다. 아내를 위암으로 잃고, 대리운전으로 살아온 날의 끝이었다. 다시 한 달쯤 지난 10월19일 전주의 한 주택에서 30대 주부와 두 아이가 살해됐다. 남편은 집 가까운 곳에 목을 맨 채 발견됐다. 그는 2개월 전 실직했고 월세와 아이들의 학원비가 밀려 있었다.
해가 바뀌고 나흘째 되는 날 서울 하월곡동 지하방. 60대 부부가 기초생활수급비 43만원으로 생활할 수 없다며 연탄을 피워 자살했다. 그로부터 아흐레 뒤 평택 주택가 차안에서 30대 남성이 자살했다. 쌍용차 구조조정 때 희망퇴직했던 이다. 안산·거제를 전전했지만 일거리를 찾지 못했고 아내는 떠났다. 그에겐 어린 두 아이가 남았다. 그리고 지난달 29일 안양의 한 월셋방. 가스가 끊겼고 수건이 얼어붙어 있었다. 음식을 해 먹은 흔적은 없었다. 그곳에 젊은 여성의 주검이 있었다. “저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라는 쪽지를 이웃집에 붙여 놓은 지 며칠 지난 뒤의 일이다. 다시 열흘이 흘러 강릉의 한 원룸. 대학생이 번개탄을 피워 놓고 죽었다. 방에는 즉석복권 여러 장과 학자금 대출 서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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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밥의 한 숟가락, 하루 중 단 몇 분, 번 돈과 노동의 일부라도 세상을 바꾸는 데 쓰지 않으면 죽음의 행진을 막을 수 없다. 내가 돈과 시간을 내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도 못한다. 내가 그렇게 못할 사정이 있다면, 다른 사람도 사정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다. 그래도 하지 않겠다면 죽음의 공포가 연탄가스처럼 스며드는 이 조용한 사회에서 당신은 죽을 각오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당신만이라도 살아남는다면 다행일 것이다.
(경향신문 2월 17일자, ‘[이대근칼럼]우리는 조용히 죽어가고 있다’ 중에서)
외환위기 전 5000명 수준이던 자살자 수가 2009년에는 1만 5413명까지 늘어났습니다. 급증하는 자살자 수는 한국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중병에 걸려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인용한 칼럼에서 거론된 이웃들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세상을 우리는 만들 수 없는 걸까요? 2025년경 조세재정구조개혁과 그와 연관된 사회경제적 개혁이 이뤄진 ‘다른 세상’ 대한민국이었더라면 이 분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이 분들이 그런 세상에 살아있다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다르게 느낄지 한 번 상상해봅시다.
19세 소녀
저는 부모님 없이 혼자 살지만 제 힘으로 어느 정도 자립할 수 있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부모님과 헤어져 살았는데, 저 같은 학생은 생활보조금으로 매월 기본적으로 약 30만원을 받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헤어져 살고 변변한 소득도 없어서 또래 친구들보다 15만원을 더 받아 매월 45만원을 받습니다. 또한 매월 30만 원 가량의 주택보조금을 지급받고 있습니다. 지금 네일아트 학원에 다니는데 정부의 청소년 직업훈련지원 혜택을 받아 월 10만원 정도의 저렴한 비용으로 학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헤어질 때 고심을 많이 했지만 2~3년 열심히 일하고 나면 저도 얼마든지 네일아트 전문가로 독립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어요.
여의도 50대 남성
정부의 기초생활 수급비가 월 60만원 정도 됩니다. 또 제가 데리고 있는 장애아 두 명에 대해 한 명당 아동수당이 매월 20만원씩, 장애수당이 20만원씩 나옵니다. 그리고 제가 매월 날품을 팔아서 100만원 정도는 벌 수 있죠. 빠듯하지만 240만원으로 세 가족이 그럭저럭 생활을 꾸릴 수 있습니다. 더구나 정부가 제공하는 장애인용 공공임대주택에서 월 20만 원 정도로 살 수 있고, 아이들은 장애아를 위한 별도의 특수교육을 무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자살요? 그런 거 생각도 안 합니다. 어려운 여건이지만, 이렇게 저와 아이들의 미래를 꾸려갈 수 있는데 그런 생각을 왜합니까?
창원 40대 남성
몇 년 전 아내가 위암에 걸려 세상을 먼저 떠나는 바람에 실의에 잠겼고, 홀로 남은 아이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암 치료를 하면서도 중병질환 보험료 상한선인 400만원까지만 내면 돼 가계 생활이 크게 어려워지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10여 년 전이었으면 아내 치료비만으로 억대의 돈이 들어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랬다면 지금쯤 경제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겠죠. 하지만 지금은 기초생활수급비에 아이 아동수당 등으로 기본적인 생활은 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까지 하던 대리운전 일을 접고 늘어난 노인요양기관에서 노인요양사로 일하며 비교적 안정적인 수입을 얻고 있습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생각하며 노인 분들이 여생을 편히 보내는 것을 돕는다는 자부심으로 살고 있는 거죠.
전주의 30대 가족
저는 두 달 전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했습니다. 다니던 회사의 경영이 어려워진 탓에 저 말고도 인력의 20% 정도가 함께 퇴직했습니다. 하지만 퇴직 6개월 전부터 회사로부터 제가 하던 일을 살려 전직할 수 있는 직장 정보를 제공해 주었고, 정부의 연계된 전직훈련 프로그램도 무료로 다닐 수 있었습니다. 또한 퇴직하더라도 6개월 동안은 취업 당시의 약 80%, 그 후 추가 12개월 동안은 60%의 생활유지수당을 받기 때문에 크게 불안한 마음은 없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미래를 향해 재충전하는 기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미 전직훈련 과정에서 몇 군데 관련 회사로부터 연락을 받아 아마도 6개월 이내에 재취업할 수 있을 겁니다. 공공임대주택에서 살고 있고, 아이 아동수당도 있으니 당장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아이는 학교에서 친환경식단으로 의무급식을 하고 피아노와 미술, 음악, 로봇교실, 태권도, 수영, 인라인, 축구, 야구 등과 같은 방과후 프로그램도 무상으로 제공하니 따로 돈 들일이 크게 없습니다. 영어와 수학의 경우 학교 교사들이 방과 후에 뒤떨어진 아이들을 위해 양질의 보충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서 학원에 따로 다니는 아이들은 요즘 드뭅니다. 제가 하루 빨리 새로운 직장을 찾는 일만 남아 있는 셈이지요. 힘을 내야겠어요.
60대 부부
사실 빠듯하기는 하지만 기초생활수급수당 80만원으로 어느 정도 생활할 수는 있습니다.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에서 사는데다 정부의 저소득층 주거비 지원이 나오니 주거비 부담은 사실상 거의 없습니다. 줄어든 주거비 부담 덕에 모을 수 있었던 몇 천만원의 저축을 헐어 조금씩 쓰기도 합니다. 겨울 3개월 동안에는 에너지 수당이 30만원씩 별도로 나오니 난방비 부담도 크게 줄어듭니다. 저희 부부는 당뇨병과 고혈압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노인질환에 대한 의료 보장성 강화와 저희 같은 저소득 계층에 대한 의료비 지원 혜택 덕분으로 의료비도 큰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각종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하는 것은 기본이고, 각종 국공립 문화시설도 무료로 이용하며 여가생활을 보냅니다. 가끔 거동이 불편할 때는 가사도우미를 신청해 무료로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2018년 단행된 국민연금 개혁으로 이전에 은퇴한 노후세대만큼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는 게 아쉽기는 합니다. 하지만 우리 자식세대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강릉의 대학생
저는 국립대학인 ‘한국3대학’을 등록금 한 푼 안 내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저소득층 학생생활보조금으로 매월 30만원을 받을 수 있고, 한 학기 30만원 정도면 정부가 건립을 지원한 학교기숙사에서 지낼 수 있습니다. 등록금 부담 때문에 학생들이 막다른 선택을 하거나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사태는 옛날 얘기가 돼버렸습니다. 당연히 등록금 부담 때문에 졸업과 동시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거나 하는 학생들도 거의 사라졌고요. 대신 학생들은 과거에 비해 더 열심히 학업에 전념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저는 대학을 졸업하면 우리 대학 동문들이 지역에 설립한 바이오벤처 회사에 취직할 예정입니다. 저희 대학을 졸업한 동문들이 5년 전 설립한 그 회사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어 직원들 채용이 늘고 있거든요. 정부의 지원으로 산학연 혁신클러스터가 활발히 추진돼 저희 학교를 중심으로 많은 지역 벤처기업들이 생겨나서 활발한 경제생태계가 꾸려져 있습니다. 당연히 ‘이태백’이나 ‘청년실신’ ‘알부자족’ 같은 말은 이제 옛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아득한 상상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이런 상태에 이른 나라들이 이 지구상에 존재합니다.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온 나라가 이런 꿈을 현실로 만들 저력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정부가 ‘특권층 프리라이더’들을 위해 국민 세금을 허튼 곳에 쓰지 않고, 세금을 제대로 걷고 제대로 쓰면 얼마든지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면 사람들의 삶도 달라집니다. 그것은 안타깝게 이 세상을 떠나가는 우리 이웃의 목숨을 살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남는 사회구조를 만들 것인가, 잘못된 구조 속에서 각기 혼자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칠 것인가, 우리에게 남겨진 선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