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북풍'과 '노풍'이라는 중앙정치 차원의 세몰이로 지자체의 재원 사용에 관한 협치구조를 만드는 지방선거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방재정 상태의 문제점을 진단해보는 시리즈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인 다섯번째 순서입니다. 참고로, 앞선 글들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북풍? 노풍? 문제는 지방재정이야, 이 바보들아!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1004652
급전직하하는 지방 재정자립도, 당신의 삶이 흔들린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1006644&RIGHT_DEBATE=R3
서울시 예산 21조, 어떻게 쓰이는지 아는가?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25&articleId=254638&RIGHT_DEBATE=R10
삽질 남발에 공기업 부채도 급증, 2012년이 위험하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25&articleId=255259
전국 지자체의 재정 상태가 빠르게 악화되고 복지와 문화, 교육 분야의 사회적 투자 요구가 커지고 있는데도 여전히 각 지자체들이 각종 개발사업에 무분별하게 나서며 예산을 탕진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지자체의 정책 틀이 과거 3,40년 전의 개발연대에 비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개발연대에는 도로, 항만, 공항, 철도 등 각종 기반시설 등 사회간접자본(SOC)이 턱없이 부족한 시절이었다. 따라서 이 같은 SOC를 확충하는 것이 경제 발전을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였다. SOC 확충 등을 전제로 한 대규모 토건사업들은 전후방 연계효과를 통해 그 자체로 경제 성장에 큰 기여를 해왔음은 물론이다. 대규모 토건사업들은 즉각적인 경기부양 효과를 가져왔고,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이 가시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생활상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또한 SOC 확충은 교통편의 확대 등 삶의 질을 단기간에 끌어올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지금도 개발연대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경험한 세대에게는 ‘개발사업=경제발전=삶의 질 향상’이라는 등식이 뿌리 깊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각종 SOC가 확충돼 공항과 도로, 항만 등 대부분의 시설이 이미 충분히 갖춰졌거나 과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개발사업이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효과는 크게 줄어들고 있다. 또한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중후장대형의 시설투자를 중심으로 하는 자본집약적 산업구조에서 첨단기술과 고부가가치 지식서비스 위주의 산업구조로 빠르게 전환하면서 개발연대식의 토건사업의 경제적 효과는 크게 감소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은 과거 ‘토건국가’라 불리던 일본을 훨씬 능가해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건설업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중앙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지자체 역시 개발연대 시절의 토건사업 위주로 정책에 막대한 재정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토건사업 위주의 개발사업에 지나치게 많은 재정이 투입되면서 지식정보화와 첨단기술 개발, 교육 및 사회복지 등 소프트 부문에 대한 투자 여력을 소진시켜 한국의 성장 잠재력이 크게 약화되고 있다.
이를 간단히 설명하기 위해 토건사업과 지식서비스업, 두 가지 산업에만 자원을 배분할 수 있는 경제에서 경제구조 변화에 따라 자원 배분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생각해보자. 이를 위해 두 산업에 배분할 수 있는 자원은 100이라고 가정하자. 먼저 토건사업에 75, 지식서비스업에 25를 쓸 때 경제 발전에도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국민경제 전체의 효용, 즉 후생수준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경우가 개발연대 시절의 자원배분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토건사업에 25, 지식서비스업에 75를 쓸 때 경제 발전에도 가장 효과적이면서 국민들의 후생 수준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경우가 현대의 첨단지식정보화시대의 자원배분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경제는 후자와 같은 자원 배분을 해야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개발연대 시절의 관성이 강하게 남아 각종 토건사업에 여전히 60, 지식서비스업에 40 정도의 자원이 배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개발연대 시절에 비해서는 25에서 40으로 지식서비스업에 자원이 좀더 배분되고는 있으나 자원의 최적배분 면에서 볼 때 여전히 토건사업에는 과도하게, 지식서비스업에는 과소하게 자원이 배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자원 배분은 국민경제의 잠재력을 극대화하지 못하게 하고 비효율적으로 자원을 탕진하는 한편 결과적으로 국민경제 전체의 후생 수준도 시간이 갈수록 떨어뜨린다.
이처럼 개발연대 시절의 자원배분 방식이 강력히 남아 있는 것은 개발연대 시절의 정부주도 정책 및 제도 등의 틀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시대가 변하고 경제상황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 및 제도의 틀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사람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료적 틀은 여전히 개발연대 시절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개발연대 초기 정부산하 공기업들과 재벌기업들을 중심으로 차관 등 제한된 자본을 배정해 특정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개발사업들을 추진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 관료들과 산하 공기업은 한 덩어리로 움직이게 됐고, 재벌기업 등 업계와도 강력한 유착 아래 정책과 제도가 결정돼 추진됐다.
더욱이 외환위기 이후 무분별하게 이른바 ‘민간 방식’을 효율성이라는 명분하에 공적 부문에 무리하게 도입하다 보니 정부와 민간의 역할이 명확히 정립되기는커녕 오히려 뒤죽박죽이 돼버렸다. 심지어는 민간이 주요 정책결정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각종 정부 태스크포스 조직을 보면 사실상 민간기업 직원들이 정부 조직에 파견돼 규제 완화의 구체적 내용을 입안하고 결정하고 있다. 또한 민간기업의 기법을 파악한다는 취지로 아예 정부 관료들이 민간기업에 2~3년간 파견돼 해당기업 직원으로 고액의 연봉을 받고 형식적으로 일하는 제도를 버젓이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제도는 관료적 행정을 바꾸는데 기여하기보다는 사실상 정부와 민간이 유착하거나 민간이 대정부 로비 창구를 제도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공공과 민간의 역할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고 민간과의 유착이 당연시돼버리다 보니 정치 민주화가 진전됐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정책결정 과정에서 일반 소비자 내지는 국민들의 의사보다는 이해관계를 가진 업계의 ‘업자’들이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업자’들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는 중앙정부는 물론 각 지자체 관료들의 전문성과 도덕성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인재들을 폭넓게 공직에 채용하는 선진 각국과 달리 시대착오적인 고시제도나 획일적인 공무원 임용시험의 틀 속에서 채용된 공무원들이 해당 분야 민간기업의 전문성을 쫓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주요 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민간기업에 구체적인 방안을 의존하는 경우가 일상화되어 왔다. 특히 지자체의 특성상 각종 도시계획과 관련한 사업들이 많은데, 지자체들은 각종 도시계획상의 세부 개발계획을 짜거나 세부 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이해관계를 가진 업체들에게 용역을 주거나 아예 실시방안까지 짜오도록 해서 정책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서울시가 역점을 두어 추진하는 디자인서울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남산르네상스’ 사업의 경우도 특정 건축사무소가 마련한 마스터플랜을 기본 컨셉으로 해서 추진하고 있다. 수많은 서울시민들이 이용하는 공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시민들의 여론이나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심층적으로 반영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은 거의 없다. 설사 공청회 등을 연다고 해도 이미 마련한 정책안을 추진하기 위한 요식절차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것들을 서울시장은 ‘남산르네상스’니 ‘한강르네상스’니 하는 식으로 포장해서 어느 날 갑자기 대외적으로 발표한다.
일반적으로 제대로 된 정책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정책 기획(plan)-집행(do)-평가(see)의 과정을 거쳐 체계적으로 진행돼야 하며 한 사업이 끝나면 다시 피드백을 거쳐 차후의 정책 품질을 높일 수 있도록 진행돼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정책기획 단계에서 정책 목표를 명확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수립하고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정책 수단들을 강구해야 한다. 또한 정책 집행단계에서는 필요한 정책 수단들과 자원을 투입(input)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과정(process)을 거쳐 정책 목표에 걸맞은 바람직한 결과(outcome)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시민들의 문화 향유 기회 확대’와 같은 결과는 상당히 추상적일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은 결과를 구체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지표인 산출물(output), 예를 들면 시민들의 공연관람 회수의 증가나 공공도서관 대출 횟수 증가 등을 내세우기도 한다. 이 같은 집행 과정이 끝나면 최종 산출물이나 정책 결과를 당초의 정책 목표와 비교해 엄밀하게 사후 평가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미 상당수 국가에서는 이처럼 결과 지향적인(outcome-oriented) 행정체계를 통해 정부시스템 개혁을 이룬 나라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중앙정부뿐만 지자체들 대부분이 정책목표에 상응하는 바람직한 산출물이 나오는 지와는 관계없이 과거 개발연대 방식의 콘크리트 토건 사업 및 시설 확충에만 치중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글에서 거론한 바 있는 ‘한강 예술섬’과 같은 사업은 일견 정책사업을 한다는 모양새를 낼 수 있고 대중이나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쉽기 때문에 해당 관료는 일 잘하는 것으로 평가 받기 쉽다. 그래서 전시행정의 콘크리트 토건사업들이 남발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한강 예술섬’이 건립된 뒤 공연문화를 활성화하고 일반인들의 문화예술적 수준을 끌어올리고 풍부하게 하는 일에는 예산이 충분히 배정되지 않고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책에 대한 사후평가 기능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한강 예술섬’이 운영 면에서 만성적자에 빠지거나 당초의 정책목표 달성과는 거리가 멀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업을 벌인 선임자가 그 자리를 떠나 버리면 그만이며 후임자가 뒤치닥거리를 하는 경우도 많다. 결국 ‘한강 예술섬’과 같은 사업은 당초 설정한 목표의 달성에 관계없이 채 토건사업으로 끝나버리거나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같은 예산을 들여 공연예술가들의 예술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시민들이 좀더 저렴한 가격에 이들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훨씬 직접적으로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설건립 사업으로 끝나버릴 공산이 상당한 것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각 지자체의 예산사업 내역을 보면 사업이름만으로는 일견 소프트웨어사업 예산이 크게 증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속 내용을 뜯어보면 여전히 하드웨어 위주의 사업이 과도하게 편성되고 있다. 이처럼 정책의 기획-집행-평가 체계를 제대로 확립하지 않고 전시행정 위주로 추진하다 보니 서울시의 ‘디자인 서울’ 사업처럼 취지가 좋고 필요한 사업조차도 도시의 품격을 올리고 시민들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보다는 그저 ‘업자’를 위한 토건사업들로 바뀌어 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 같은 예산 낭비는 개발연대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관료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지자체장의 정치적 전시행정 수요와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자체장은 자신의 임기 내에 주민들 눈에 띠는 가시적 사업을 추진해 재선 등에 활용하려는 정치적 욕구가 작용한다. 지자체 관료들 역시 실적을 눈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시설물 건립사업을 선호한다. 뿐만 아니라 각종 개발사업에 강한 이해관계를 가진 지역 토호들이 지자체장이 되거나 지방의회 등을 장악하면서 이권을 추구하고 음성적으로 뇌물을 수수하는 것도 이들 하드웨어 위주의 사업예산이 낭비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각 지자체가 앞다투어 호화청사를 짓거나 비슷비슷한 온갖 첨단사업 명칭을 내건 산업단지 조성계획을 내걸고 각종 스포츠대회 및 경주대회를 개최한다면서 대형 운동장이나 컨벤션센터 등을 만들지만 정작 시민들의 삶과는 대부분 무관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자체장의 정치적 이해와 관료들의 개발연대 사업방식이 일치해 벌어진 대표적 사업으로 영어마을사업을 들 수 있다. 몇 년 전 당시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정치적 욕구에 따라 시작된 영어마을사업은 초기에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에 각 광역지자체들이 앞다투어 비슷한 사업을 펼쳤다. 영어마을사업은 당초 국내에서 외국과 비슷한 환경에서 초중학생들이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해 조기유학에 따른 외화낭비를 막는다는 것이 사업 목표였다. 이를 위해 대규모 영어마을을 건설하느라고 한 곳당 수백 억원씩 예산을 투입했고 전국적으로는 수천억원의 예산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적지 않은 수업료 부담과 실력 있는 강사 확보 실패로 당초 목표했던 학생들의 영어 수준 향상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적자투성이로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렸다. 차라리 같은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각 지자체의 학교에 원어민 강사를 두 배로 늘리거나 상대적으로 영어를 습득할 기회가 적은 저소득층 학생들을 중심으로 수업료를 경감해주는 쿠폰으로 지급했다면 더 적은 예산으로 더 좋은 성과를 올렸을 지도 모른다. 전국 곳곳에서 ‘영어마을’이라는 시설이 생겨나 해당 지자체장이나 관료들이 당장은 전시행정의 성과를 남긴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궁극적인 정책 대상인 학생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으며 적자운영으로 애물단지가 된 것이다.
이것은 그나마 나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는 지식서비스산업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개발연대 방식으로 추진된 사업들은 오히려 당초 정책 목표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시가 지난해 첫 정책 방향을 발표한 데 이어 올초 마포구 서교동과 동교동 등 홍익대 일대를 포함한 74만㎡을 ‘개발진흥지구(산업뉴타운)’으로 지정한 것이다. 서울시는 이들 지역에 대해 각 지역산업 특성에 맞는 업종을 집중 육성하고 입주업체에는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마포구는 이에 발맞춰 올해 73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마포DCF (Design Core Facilities)를 건립하는 한편 1,00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상업시설, 지원시설 등이 들어서는 기반시설과 주변 지상가로를 정비한다고 발표했다. 예산사업의 대부분이 예술 창작 활동과 같은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개발계획 발표와 시설물 조성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서울시와 마포구의 정책은 오히려 홍대 앞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문화예술 생태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디자인 거리’ 등 홍대 일대를 개발하는 각종 정책을 내놓자 이 일대에서 일하는 디자인 및 예술분야 종사자들이 임대료 급등으로 현장을 떠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홍대 앞 예술거리가 시간이 갈수록 대규모 상권으로 변모하면서 값비싼 임대료를 부담하지 못하고 인근의 망원동과 합정동 일대로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이들 지역이 개발계획에 포함되자 또 다시 더 먼 곳으로 떠나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모여 열었던 조그만 갤러리나 공방들이 음식점이나 주점으로 대체되는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이들 지역의 문화예술 생태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 일대에서 살고 있는 ‘배 고픈 아티스트’들이 안정적으로 예술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창작 활동을 직접 지원하는 일이 가장 시급한데도 서울시와 마포구는 건물을 짓고, 용적률과 건폐율, 높이제한 등 개발규제를 완화해 임대료만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작 홍대 앞 예술가들은 서울시의 정책을 반대하는 반면 건물주들과 부동산 업계만 이를 반기고 있다.
서울시가 ‘문화시정’과 ‘창조경제’를 내세우지만 사실은 문화와 창조성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 ‘창조적 계급의 부상(The Rise of Creative Class)’으로 경제지리학 분야에서 큰 주목을 받은 리처드 플로리다 토론토대 경영대학 교수는 경제발전의 3T라고 불리는 기술(technology)과 함께 재능을 가진 인재(talent)와 관용(tolenrence)을 강조했다. 그는 “지역의 경제적 발전은 다양하고 관대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에 개방적인 지역을 선호하는 창조적인 사람들에 의해 촉진된다”며 “사람들의 지역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같은 창조경제의 진면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도시개발 정책이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도시의 발전을 저해한 사례로 미국 피츠버그시를 예로 들었다. 피츠버그시는 카네기멜론대를 바탕으로 뛰어난 인재들이 배출되고 1980년대 이전에 미국의 철강산업, 알루미늄산업, 전기산업이 매우 활발했던 도시였다. 특히 워싱턴하우스, 유에스스틸, 알코아 등 대기업들의 R&D센터가 자리잡아 한때 세계적인 산업혁신의 중심지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피츠버그는 철강산업 등의 쇠퇴와 함께 빠르게 몰락했다. 플로리다 교수는 피츠버그 시의 쇠퇴 원인 가운데 하나로 ‘과도한 재개발’을 꼽았다. 피츠버그시 당국이 공동체 문화가 살아 있던 지역을 낙후된 지역으로 지정해 대규모 재개발을 실시해 “도로가 많은 교통 순환선으로 둘러싸인 밋밋한 쇼핑몰 스타일의 단지로 대체”했고, 결국 “그 지역의 거대한 창조적 공동체는 뚜렷한 소규모 집단주거지로 쪼개지고 분열되었다”고 설명했다. 피츠버그시는 1990년대 말에 2개의 새로운 스포츠 경기장과 컨벤션센터 건립을 위해 10억 달러를 지출했는데 그는 이를 두고 “그 지역의 진정한 건축물을 교외의 쇼핑몰에서 찾을 수 있는 일반상표로 대체함으로써 파괴하고 태우는 재개발 전략을 계속 장려”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시가 홍대 앞의 문화 생태계에 대해서도 사실상 이와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창조성의 인적, 문화적 토대를 활성화하기보다는 물리적인 인프라 구축에 더욱 열을 올리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문화공동체마저 파괴하며 흩뜨리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뿐만 아니라 이 같은 양태는 전국적으로 거의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앞에서 본 것처럼 지자체의 재정상황이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고, 중앙정부의 감세정책과 무리한 토건부양책이 지자체 재정악화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지자체의 재정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서 정부의 무분별한 감세정책을 바로잡고 대규모 불요불급한 토건사업 남발을 줄이는 등 세입세출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 같은 세입세출 구조조정은 현재의 행정시스템 변화와 함께 병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처럼 ‘업자’들을 끼고 정책을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라 보다 폭넓게 시민들의 여론과 사심 없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는 구조가 형성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예산편성 과정에서부터 시민들의 정책 수요를 반영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며, 시민들이 예산의 상당 부분을 직접 요구하고 편성할 수 있는 ‘참여예산제’를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적절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공무원들을 평가할 수 있도록 주요 정책에 대해서는 ‘정책실명제’를 도입해 정착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경제구조와 시대 상황에 걸맞은 방식으로 공무원 채용 방식과 성과 평가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고시나 공무원 시험 등을 통해 전문성이 없이 일률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채용하기보다는 서구의 공무원 채용 방식처럼 각계 분야에서 전문성과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 폭넓게 채용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또 투입이 아닌 결과 지향적인 방식으로 사후 평가를 철저히 하고 이를 인사고과에 반영할 수 있도록 조직과 인사 체계를 바꿔야 한다.
물론 관료 시스템의 변화 못지 않게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 구조를 바꾸거나 일반 시민들이 단순한 개발 욕구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제기하고 해결을 요구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각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각종 명분을 내세워 콘크리트 정책 사업을 남발할 뿐이며 결국에는 시민들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지 못한 채 소중한 재원들만 낭비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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