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배중 김영길 공무원노조위원장, 공무원을 말한다





"공무원노조는 공무원의 철밥통을 무쇠솥으로 만들기 위한 조직이 아닙니다. 우리 목표는 부정부패척결과 공직사회의 개혁입니다. 국민들이 공무원노조가 있어 이렇게 공무원사회가 깨끗해지는구나 느끼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연말 전국공무원노조의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수배중인 김영길 공무원노조 위원장의 말이다. 미디어다음은 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공무원노조 사무실에서 2시간여 동안 김위원장과 인터뷰했다. 처음 공무원노조측의 인터뷰 제의를 받았을 때 김 위원장이 수배중인 데다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아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공무원노조의 파업 과정에서 사용자측인 정부와 달리 공무원노조의 주장은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고 사회의 다양한 의견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대신 기자는 "독자들의 욕을 먹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인터뷰에 응해달라'고 사전에 '경고'했다.

김 위원장은 "공무원들이 그 동안 국민들 위에 군림해왔다"며 "그 같은 공무원 사회의 풍토를 바꾸기 위해 공무원노조를 결성한 것인데 국민들은 공무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우리를 백안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공무원 사회의 뒷돈 수수 관행 등 치부를 그대로 밝히면서 공무원 사회의 개혁을 위해서도 공무원노조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그는 80년 울산시청 하급 공무원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 경남도청 직장협의회 회장과 공무원노조 경남본부장을 거쳐 지난 해 3월부터 위원장직을 수행해왔다. 그는 조만간 경찰에 자진 출두할 생각으로 주변 정리와 조직 재정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정부 공무원노조 권리 보장 선진국에 비해 턱 없이 미흡"

-지금 현재 공무원노조 지도부가 어떤 상황에 있나.당초 총파업에 들어가기 전 중앙지도부를 중심으로 37명에게 수배가 떨어졌다. 나와 사무총장 말고는 모두 자진 출두해 구치소에 들어가 있다. 부위원장 한 분은 최근에 보석으로 나왔다. 나도 3월경 자진 출두할 생각이다. (가볍게 웃으며) 지역 본부장들이 3개월 정도 살았으니 나는 1년 정도는 살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공무원노조가 파업한 이유가 뭔가.우리 입장을 알리려 했다. 14만 노조 조합원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법안을 관철하려는 정부의 조치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정부의 법안이 어떤 내용이었길래 그렇게 막으려 했나.노동조합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보면 말이 안 되는 안이다. 정부가 국제적 환경과 규범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공무원노조를 허용해준다고 하는데 사실은 공무원들이 노조 활동을 할 수 없도록 통제, 규제하는 법이다.-어떤 점에서 노조활동을 통제, 규제하는 법이라고 하는 거냐.우선 공무원이 노조활동을 할 때 공무원으로서 다른 법령에 규정된 공무원의 의무를 위반하면서 노조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언뜻 들으면 맞는 얘기 같지만 국가공무원 법에 보면 시대 변화에 안 맞는 과도한 규제나 유명무실한 법이 많다. 예를 들어, 비밀 엄수의 의무 같은 것은 사실 내부고발을 가로막고 있는 조항이다. 집단행동도 금지돼 있다. 노조에서 자기들 뜻을 관철하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다 같이 리본을 답시다' 하면 기관측에서는 집단행동이라고 한다. 리본도 같이 하나 달 수 없는 것이 현재 법이다.정부에서는 공무원노조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은 보장해주는데 우리가 단체행동권까지 무리하게 요구하며 파업한다고 선전한다. 보수 언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단결권조차도 보장이 제대로 안 된 법이다. 현행 법으로는 6급 이하만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고 해놓고, 내용적으로는 '업무를 총괄 감독하는 자'는 가입대상에서 제외된다. 시군구 등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는 6급이 업무를 총괄 감독하기 때문에 가입대상이 안 되는 거다. 노동부 스스로 이를 금지하기 위해 이렇게 법안을 마련했다고 하더라. 단결의 범위를 축소하기 위한 법이다. 급수에 따라 노조 가입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도 안 맞다. 지자체 4급 국장도 중앙 부처 가면 실무자가 되는 경우도 꽤 많다. 또 인사, 예산, 감사, 회계 등 일반 회사에서 사용자측의 업무에 해당하는 공무 담당자도 가입을 금지하고 있다. 시쳇말로 이런 식으로 포 떼고 차 떼면 남는 것은 흑사리, 죽데기 뿐이다. 통칭 90만 공무원이라고 하고 이 가운데 고위 공무원과 교원과, 경찰, 소방, 교정 공무원을 뺀 35만명 정도가 조직 대상이라고 보는데 현재 법안대로면 25만명 수준으로 준다. 그만큼 단결권의 대상 범위를 축소해놓은 것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단체 규모가 적으면 좋은 것 아니냐.단체교섭권에도 문제가 많다. 단체교섭권 가운데 인사와 정책 결정에 관한 사항은 단체교섭 사항 아니다. 또 법령과 조례에 위임된 사항은 단체협약의 효력이 없다. 단체협약을 해도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단체장이 얼마든지 무위로 돌릴 수 있다는 얘기다. 공무원들의 복지 향상과 관련된 내용들이 법령과 조례 등에 다 묶여 있는데 사실상 단체교섭권은 하나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단체행동권은 공무원 특수 신분상 원칙적으로 줄 수 없다고 하고. 이를 어길 때는 5년 이하의 징역과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그러면 외국에서는 어떻게 하나.정부는 일본과 독일을 예를 든다. 일본과 독일은 단체행동권은 없다고 한다. 일본은 노동관계법에서 가장 후진 나라다. 독일은 신사협정으로 모든 게 이뤄지기 때문에 단체교섭에서 다 끝나므로 단체행동권이 사실 유명무실하다. 미국은 50개 주 가운데 10개 주가 완벽한 단체행동권을 보장한다. 40개 주는 각기 다른 수준으로 적용한다. 관점에 따라 거의 안 한다고 할 수도 있고 상당 수준 한다고도 할 수 있겠지. 프랑스 등은 판사까지 파업하는 나라다. EU 가입국은 노동삼권이 거의 다 보장돼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완벽하게 노동3권이 보장돼 있다. "국민들 관에 대한 피해의식 누적돼…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커"





-지난 번 파업할 때 공무원노조의 파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공무원노조가 왜 시민들에게 미움을 받나.

공무원노조의 잘못이 아니고 우리나라의 태생적 한계 때문에 그렇다. 우리 국민들은 피지배계층으로 살아온 게 5000년이다. 경북 안동의 한 권세가를 지탱하기 위해 40~50리 주변 주민들이 종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 권세가들보다 관의 아전들 횡포가 더 심했다. 일본 점령군 시대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민들이 두려워한 것은 점령국의 관리가 아닌 관이다. 국민들은 저놈들 앞에서 말 잘못하면 두드려 맞고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지 않았나. 그래서 시골에서는 면서기라도 하면 출세하는 것으로 여겼다. 현대사 50년도 마찬가지다.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관이 군림하는 것이 한, 두 해가 아니다. 이처럼 관에 대한 피해의식이 누적돼 있다 보니 사람들이 관이라고 하면 치가 떨린다. 일반 국민들의 집단 무의식에 박혀 있는 거다. 공무원 사회 전체가 자기 반성을 해야 하는 거다. 물론 그 동안 공직자로서 본분 다한 분도 많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 동안 누적돼 온 공무원에 대한 적대감에 대한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우리는 그런 국민 위에 군림하는 공직 사회를 바꾸겠다고 한 건데 국민들이 그걸 전혀 몰라주더라.

이처럼 공직 사회에 대한 철저한 불신이 한 부분 있다면 노조에 대한 적대적 이데올로기 공세도 한 몫 했다. 국민들이 공무원이라는 말만 들어도 화 내는데 공무원이 노조를 한다, 파업까지 한다 하니 우리 주장은 따져보지도 않고 '죽일 놈' 하는 거다. 우리가 홍보를 잘하고 못하고 간에 질타 받을 수밖에 없는 지형이었다.

-말한대로 공무원 하면 철밥통, 칼퇴근, 뒷돈 챙기기 등을 떠올릴 정도로 부정적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팽배하다. 그렇게 정당하다면 그런 부정적 인식을 바꿀 생각은 못했나.

메이저 언론들이 우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우리도 부정적 인식을 우호적으로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 법안은 만들어지고 있었다. 국민 여론을 우호적으로 만들어가며 할 만한 여유가 업었다. 최대한 예봉을 피하면서 법안 통과를 막는 것뿐이었다. 언론에서 잘 조명 안 해서 그렇지 우리가 비합법 조직일 때 부정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 것은 엄청나다. 지난 말 총파업 때 억지부리는 것처럼 비쳐졌는데 절대 안 그렇다. 대한항공 조종사들이 승객 안전을 위해 파업하면 언론에서는 '고액 연봉자들이 이 가뭄에 웬 파업이냐'고 한다. 그런데 가뭄이 파업과 무슨 상관이냐. 현대자동차 등 대형 사업장에 대해서는 항상 그렇게 말해왔다. 지하철노조가 파업하면 늘 '시민들의 발을 볼모로 한다'고 공격한다. 노조가 내부사정을 잘 아는 내부자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파업하는 건데 보수 언론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이렇게 거세다. "지난 1년간 언론에 보도된 지자체 고위 공무원 비리만 80여건"

"토목공사 현장에서 밥, 술 얻어먹고 거마비 받는 현실 엄존"





-공무원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상당 부분 현실을 반영하는 것 아닌가. 국민들의 인식과 현실 사이에 얼마나 거리가 있다고 보나.

부정과 비리가 공무원 사회에 아직도 상당히 잔존한다. 최근 몇 달 사이에만 전북 군산시장, 강원 동해시장, 경기 광주시장 등이 뇌물 비리로 구속되지 않았나. 지난 1년 동안 언론에 보도된 자치단체장과 고위 지자체 관료들의 비리 건수가 80여건에 이르더라. 우리가 스크랩 하면서도 놀랐다. 이런 사건 터지면 '저 도둑놈들'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다시 제도적 보완책 없이 그냥 넘어간다. 결국 현실이 국민들의 인식에 부합한다는 거다. 이런 사안들도 실무자가 개입 안 되면 하기 힘들다. 그래서 이런 업무는 자기 사람 맡기는 것 아니냐.

-하위 공무원들은 어떠냐.
최근 새로 들어오는 공무원들은 개인주의적이다. 일할 만큼 일한 다음 월급 받겠다는 식이다. 공무원들을 '도둑놈'이라고 하면 이질감을 느낀다. 하지만 솔직히 윗 연배에는 부정이나 비리가 상당히 있었다. 과거 동사무소 앞에서 인감 증명 뗄 때 다른 사람들은 줄 서는데 동네 유지라는 사람들은 줄 안 서고 동장을 찾는다. 동장과 차 한 잔 마시다 인감증명 한 통 떼달라 하고는 만원 내놓고 간다. 소위 '급행료'라는 거지. 국민들 상당수가 이런 특권의식, 반칙문화에 젖어있다.

갈수록 그런 부분은 없어지는데 구조적 비리라는 것은 상존할 수밖에 없다. 지방의 도로포장 공사가 예닐곱 군데가 한꺼번에 벌어지면 토목직 공무원이 한 사업장에 한 번 가면 하루가 걸린다. 또 내부에서 행정적으로 처리할 일도 많다. 사실 공사 현장에 상주하며 감독해야 하는데 공사 현장 한 번 둘러보기가 힘들다. 어쩌다 공사 현장 한 번 가면 현장 소장들이 밥과 술을 사먹이고 거마비조로 얼마씩 준다. 받아서 안 되는 것인데도 관행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부분이 지금도 그럴 소지가 충분히 있다.

-일반 국민들은 공무원이라고 하면 철밥통에, 칼퇴근에, 편법으로 시간 외 수당까지 챙기면서 이제 노동3권까지 달라고 타령하느냐고 하는데.

조금 좋은 직장 다니면 노조해서는 안 되는 건가. 우리가 노동자라고 느끼는 순간 노조를 결성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노조라고 하면 무조건 핍박하는 분위기와 공무원은 배부른 놈들이라는 인식 자체가 잘못돼 있기도 하다. "지난 해 폭설 때 주민들이 공무원 노조 사람만 와달라 했다"





-그런 부정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나.
사실 우리 존재 자체를 인정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한 노력을 알면 놀랄 것이다. 먼저 공무원 조직 내의 수직적 문화를 수평적으로 바꿨다. 장기적으로 국민들에 대한 서비스가 높아진다.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이 14만명이다 보니 지도부 생각대로 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자신이 입고 있던 공무원노조 단체 조끼를 가리키며) 하지만 노조원들이 이 조끼를 입으면 태도가 달라진다.

단편적 예로 지난 해 3월 중부지역에 폭설이 내린 적이 있다. 그때 재해 복구 사업 때 현장 주민들이 공무원노조에서 온 사람들 외에는 받지 않겠다고 했다. 나도 많이 동원돼 봤지만 재해가 발생하면 공무원들이 업무를 중단하고 재해 복구하러 간다. 오전 9시에 출발해 현장에 가서 한 두 시간 글적거리다 퇴근 시간 맞춰 오후 4,5시정도 되면 돌아간다. 그냥 갔다 왔다는 게 중요하지 얼마나 피해가 복구됐는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그때 공무원노조 깃발 꽂고 새벽부터 밤 늦게 까지 성심성의껏 도왔다. 그래서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우리가 다르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추석과 설 선물 안 주고 안 받기 운동을 펼쳤는데 성과가 꽤 많았다. 2003년 추석 앞두고 경남본부 차원에서 각 기관별로 비리 소문이 자자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2,3명씩 골라 공무원노조가 열흘동안 밀착감시했다. 한 군의 건설과장 집 앞에서 3,4일간 잠복근무했다가 선물을 전달한 경우를 포착했다. 어느날 밤 외제차가 탁 와서 서더니 한 사내가 주위 살피고 들어가서 10분쯤 있다가 나오더라. 봉투 같은 걸 전달하고 온 거다. 그 장면을 잡아 언론에 알렸다. 그런 식으로 감시를 한다고 알려지면서 명절 떡값 주고받기가 상당히 줄더라. 업자들도 우리 핑계 대면서 돈을 안 줬다고 전화해서 고마워하더라.

2004년 설 때는 현금 봉투도 잡았다. 도의 출연기관의 한 책임자가 50만원짜리 봉투를 받은 것이다. 그런 식으로 여태까지 다 해왔다는 것 아니냐. 그 뒤로 더 은밀해졌는지는 몰라도 4개 기초단체에서 '다시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 공문을 받기도 했다. 이미 당시 공무원노조 경남본부는 사회적 실체로 자리잡았다. 허성관 전 행자부 장관 때 불법단체로 되면서 신나게 터졌는데 역사가 거꾸로 간 거다.

이것말고도 많다. 지자체에서는 관급공사 수의계약 관련 비리가 제일 많다. 전남 해남군의 우리 지부장은 토목직인데 그런 비리를 막으려고 전자입찰 계약으로 다 바꿨다. 기자도 오늘 처음 듣는 것 많지 않나.

-국민들은 일반 회사에 비해 공무원들이 매우 느슨하게 일한다고 고깝게 본다. 오후 5,6시 되면 바로 칼퇴근하고 정작 할 일들은 안 한다고 불평이 많은데.

공무원들이 사실 욕 들어먹을 일 많이 하는 건 맞다. 하지만 공무원들도 단순 업무보조 역할을 하는 분들 외에는 칼퇴근 안 된다. 민원부서 외에는 거의 못한다. 공무원들도 날밤 새는 경우 많다. 또 겨울에는 산불 감시 때문에 늘 비상 대기한다. 거의 모든 공무원들에 담당 구역이 배정된다. 이 때문에 주말에 친인척 혼사에는 못 가는 게 정형화됐다. 그렇다고 대가를 받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산에 불 나면 불 끄러 가는 건 공무원들 밖에 없다. 민간인들은 절대 안 간다. 비상상황 발생하면 그래도 공무원들이 몸 던진다. 내가 경험한 건데 한번은 폭우가 쏟아져 자기 마당에 하수구가 넘쳐났다. 자기 마당이니 일단 급한 처리는 해놓고 연락해야 하는데 현장에 가서 내가 하수구 들어가 치우니 주인은 호주머니에 손 넣고 턱으로 이거 하라, 저거 하라 하더라.

우리 사회가 경제 살리기 위해 공무원을 줄여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가 OECD 가입국 가운데 공무원 숫자가 제일 적다. 한 행정학 교수가 예전에 '우리 사회 전반이 행정력을 계속 요구하면서 자꾸 자른다. 뭔가 앞뒤가 안 맞다'고 하더라. 언론 보도 때 항상 말미에는 담당 공무원의 묵인 아래, 방치 아래 이렇게 됐다고 한다. 예를 들어, 소방점검 안 했다 하는데 실제로는 소방안전점검을 할 수 있는 인력이 없다. 위생담당 공무원이 위생업소 점검을 안 했다고 하는데 국민 건강을 보장하기 위해 법을 만들었는데 정작 담당하는 인력이 없다. 사회복지업무가 태부족하다지만 정작 사회복지사들이 태부족이다. 사회복지사 한 명당 1만명을 담당해야 하는데 내부 업무 처리하는 것만 해도 빠듯하다. "부정부패 척결과 공무원 사회 개혁이 우리의 목표"





-공무원노조의 향후 목표가 뭔가.
공무원노조는 공무원의 철밥통을 무쇠솥으로 만들기 위한 조직이 아니다. 우리 목표는 부정부패척결과 공직사회의 개혁이다. 국민들이 공무원노조가 있어 이렇게 공무원사회가 깨끗해지는구나 느끼도록 하겠다. 공익을 위해 내부고발을 감행한 '공익제보자 모임' 등과 함께 부패추방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펼치겠다. 공무원 사회 내의 내부고발도 적극적으로 유도할 생각이다. 한국 사회에선 내부고발하면 죽는 것 아니냐. 하지만 그들을 설득해 내부고발을 유도하는 대신 우리가 방패막이가 돼 주겠다.

우리 활동도 중요하지만 권력기관이 바뀌어야 한다. 경남도의 한 기초단체장의 수해복구 공사와 관련한 비리를 공무원이 익명으로 검찰과 경찰, 감사원 등에 고발했는데 아무런 조치가 안 이뤄진다. 오히려 관할 경찰서는 제보 서류에 묻은 지문을 찾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해 신원을 확인한 뒤 오히려 제보자를 무고 혐의로 처리하려고 했다. 이 사람이 결국 아예 부패방지위원회에 신고하고 사건을 전면화하자 그제서야 경찰이 멈칫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된 단체장의 비리에 대해서는 경찰도, 검찰도 꿈쩍 안 한다. 상당히 구체적인 증거까지 제공을 했는데도 그렇다. 우리가 이런 거꾸로 된 세상에 살고 있다.

우선은 우리의 존재가치를 인정 받기 위해 몸부림칠 것이다. 그러기 위해 공직사회 개혁과 부정부패 척결 목표를 위해 끊임 없이 갈 것이다.

-공무원노조가 공무원들의 이익만 챙기는 조직이기주의로 흐르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도 있는데.

우리가 방향 잘못 잡으면 또 다른 권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내부에서도 그런 걱정이 있다. 결국 조직의 정체성 문제인데, 우리가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한다. 의식적으로 자기를 통제하지 않으면 그렇게 흐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스스로 계속 채찍질해야 할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주위에서도 끊임없이 견제와 비판을 해줘야 한다.
-어떻게 공무원노조 활동을 하게 됐나.
80년에 울산시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나름대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어느 날 돌아보니 내가 국민들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었다. 권력의 끝자리에서 국민을 짓밟는 위치에 있었지 국민을 위한 게 아니었다. 이제 정말 국민을 위해서 일하자고 하는 것이다. 윗사람 눈치보면 일하는 공무원이 대다수다. 정책이 잘못됐다 싶어도 기관장 말이 곧 법이기 때문에 내부에서 문제 제기를 못한다. 공무원노조가 국민들 눈 높이에서 견제하고 비판하자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총화되면 국민들이 훨씬 더 편하게 살 수 있지 않겠나.

-가족들의 걱정이 많지 않나.
아내는 벌써 나를 포기했다. 같은 조합원이어서 이해하는 편이지만…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들에게는 내가 뭐 하는지 늘 쉬쉬해왔다. 몇 달 씩 집을 비우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by 선대인 2008. 9. 4. 16:22

관료들, 국민 편한 개혁은 안 하고 머리 엉뚱한 데 써


"우리 관료들은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정책에는 머리를 많이 쓰고, 돈 안 들고 국민들 고생 안 시키는 데는 늦습니다. 머리들을 이상한 데다 씁니다. 돈 안 들고 국민 편한 개혁은 안 합니다. 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들어선 노태우 대통령부터 노무현 대통령까지 17년동안 관료사회의 개혁은 제대로 못했습니다. 관료사회를 개혁하지 못하면 외환위기와 카드채 사태에 이은 제 3의 위기를 언제든 맞게 될 수 있습니다."

김태동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미디어다음과의 인터뷰에서 '관료사회 개혁론'을 시종일관 매우 강하게 제기했다. 김 위원은 김대중 정부 초대 청와대 경제수석과 정책기획수석, 정책기획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재벌 개혁 등을 통해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한국은행 그의 사무실에서 약 2시간반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 위원은 "관료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정책은 관이 결정한다'는 일제시대의 잔재를 그대로 유지하는 게 문제"라며 "직선 대통령들이 그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어떤 대통령이 와도 경제로 성공한 대통령 되기는 어렵다"며 "역대 대통령들이 대체로 처음 2년은 관료 얘기를 많이 안 듣고 잘 하다가 3년째부터 관료들 얘기를 많이 듣기 시작해 임기가 끝날 때에는 매번 경제에서 높은 평가를 못 받았다"고 지적했다.

김위원은 이 같은 연장선상에서 우리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 해야 할 일로 부패 척결과 관료사회의 개혁을 꼽았다. 그는 "특히 공공부문의 부패를 현저하게 낮춰야 한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휴대폰과 자동차를 만들면서 부패 문제는 왜 아프리카 나라와 어깨를 견주느냐"고 개탄했다. 그는 또 예산을 수조 원 절감하는 효과를 내는 최저가낙찰제 확대시행 유보나 정치권의 정치자금법 개정 시도를 예로 들며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도 안 지났는데 부패세력이 점점 활개 치는 방향으로 간다"고 성토했다.

그는 또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은 현재 또는 장래의 국민 부담을 늘리는 것인데 관료들이 치밀한 검토 없이 매우 단기적으로 생각한다"며 "그러니 지방공항 등 수요가 많이 없는 사회 인프라를 마구잡이로 건설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관료들이 이런 불필요한 사업들이 없으면 자기 자리를 유지할 수 없으니까 5조~10조원씩 들어가는 사업의 계획을 밤을 새서 만든다"며 "일본의 10여년 장기 침체가 바로 이 같은 관료주의와 부패, 재정적자의 결과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박정희식 패러다임은 더 이상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해악을 준다"며 "그 증거가 외환위기와 신용카드 위기라고 본다"고 말했다. 전문성이 부족한 관료 주도의 경제정책이 경제 발전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 그는 또 고시제도와 순환보직제가 관료들의 전문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하고 "시장에서도 전문가를 구해야 제3의 위기를 겪을 확률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은 우리 경제가 수출 부문에서는 호조를 보이면서도 내수가 침체한 원인으로 카드 채 사태와 부동산 투기를 들고 이에 대해서도 정책 당국자들을 호되게 비판했다. 거품으로 단기 경제성장율은 높였지만 이 때문에 생긴 카드 빚과 부동산 대출로 소비가 현저히 줄어 내수가 침체에 빠지도록 했다는 것. 그는 "재경부나 건교부가 부동산 값이 뛸 때 적절한 정책을 내놔야 하는데 오히려 거꾸로 갔다"며 "공무원들이 맡은 분야에서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투기를 키워서라도 경기를 살리려 하는 수십 년 된 문화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특히 부동산 투기 문제와 관련, "잠재적으로 카드채 사태보다 더 걱정되는 분야"라며 "일본이 부동산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10년 이상 잃어버렸는데 우리는 부동산 문제가 해결 안 되면 선진국 꿈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는 "국내 부동산 값이 지금 침체를 겪고 있지만 이미 국민소득 3만 달러 수준에 와 있다"며 "열 살 난 아이가 스무 살 장정이 져야 할 무거운 짐을 지고 수 년을 살아야 하는 게 우리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카드 거품으로 2년 덕 본 것 2년 이상 걸려 비용 지불"






-현재 한국경제가 어떤 상황인가.

97년 이전에 비하면 우리 경제가 구조적으로는 괜찮고, 97년 외환위기 직후보다도 좋다. 고쳐야 할 부분은 많지만 아주 나쁜 것은 아니다. 작년에 수출이 많이 돼서 경상수지 흑자가 280억 달러 전후가 됐다.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 조선, 철강 등은 예외 없이 다 잘 돼 수출이 30%정도 증가했다. 세계 경제가 좋아지는 것을 중국 다음으로 2,3번째로 잘 활용한 나라다. 그렇게 잘한 것을 신문에서 제대로 보도 안 한다.

그렇게 수출을 잘 하는 데 기여한 기업들은 국민들이 굉장히 칭찬해야 한다. 한국을 외국이 어떻게 평가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환율이다. 지난해 우리는 대외통화 가치 절상을 막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외환보유액이 500억 달러 늘어났다. 그렇게 늘려도 연초 환율이 1180원대에서 1030원대로 연초에 비해 13%가량 절상됐다. 그만큼 우리 경제가 강하다는 거다. 대외적으로는 굉장히 좋은 해였다.

-수출은 잘 되지만 내수경기는 침체라고 아우성이다. 왜 수출 호조가 내수경기로는 연결이 안 되나.

지난해 수출이 달러 기준으로 30% 가까이 증가했고, 전체 경제성장률도 4.6~4.8% 정도로 추정된다. 2,3년 전까지 우리 잠재성장률을 5% 내외로 봤으니 우리 능력 정도를 한 거다. 어느 부문은 세계에서 2,3등 할 정도로 성과를 냈지만 어떤 부문은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교육, 유통, 음식숙박업 등 서비스산업이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서비스산업이 국내총생산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제조업은 30% 정도를 차지한다. 제조업 수출이 잘 돼 10% 이상 상승해도 서비스산업의 마이너스 성장으로 전체 성장률은 4% 후반대가 되는 것이다.

그럼 왜 서비스 산업이 마이너스 성장을 했느냐. 특별한 이유가 하나 있다. 우리 정부 관료들이 제 발이 저린지 이것을 잘 얘기 안 해서 국민들도 잘 모른다. 그게 2001~2002년에 있었던 신용카드 거품이 2003년 초부터 꺼지면서 일어난 내수침체 효과다. 97년 외환위기로 우리 경제가 7년 이상을 잃어버렸는데 신용카드 거품 때문에 우리 경제가 다시 2년 이상을 잃어버렸다. 신용카드로 한 군데서 몇 천만원씩 빌려서 쓸 때는 좋았다. 그런데 카드 돌려막기가 계속되나. 카드채 거품이 2002년말에 시작돼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꺼지기 시작했다. 많은 소비자들이 빚 갚기에 바빠진 것이다. 여행도, 외식도 못하고 학원도 덜 보내게 됐다. 그런 현상이 지난 연말까지 계속되고 있다. 만약 작년에 민간 소비가 90년대처럼 5%만 증가했으면 우리 경제의 지난해 성장률은 8% 가까이 된다.

2002년 상반기까지 당시 정책자들이 신용카드 붐으로 인한 소비 경기 붐에 도취돼 안이했다. 한편으로는 당장의 경제성적표에 너무 욕심을 냈다. 이 때문에 2002년에 경제 성장률이 7%나 돼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았다. 그 해 대만, 싱가폴 등은 마이너스 성장을 할 때다. 우리는 카드 거품으로 인한 내수가 좋아서 그 때는 덕을 본 것이다. 이제 그 비용을 2003년부터 지불하고 있다. 2년 덕 본 것을 2년간 비용 지불해 본전을 맞추면 좋은데 사실은 빚을 갚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린다. 작년, 재작년은 소비가 마이너스 성장했고, 올해는 소비가 플러스로 반전하겠지만 미미할 것이다. 우리 수출 증가율이 동남아국가들보다 더 높은데도 전체 성장율이 더 낮은 것은 카드 거품이 꺼졌기 때문이다.

"카드 사태 관련 모두 책임졌는데 정부만 책임 안 져"


"사회 민주화됐지만 관료사회 개혁은 한 번도 못해"

"고시와 보직순환제로는 관료 전문성 못 키워"





-DJ정부가 경기 침체를 피하기 위한 탈출구를 찾는데 집착했던 것 같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있던 터라 카드채 거품을 의도적으로 띄웠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그 부분에 대해선) 아직도 궁금하다. 현 정부 잘못은 분명히 아니다. 대통령이 바뀌었는데도 잘못된 정책 실패사례에 대해 왜 분석을 안 하나. 소 잃고 왜 외양간도 안 고치나. 비슷한 방식으로 제1, 제 2, 제 3의 위기가 있을 수도 있지 않나. 그런 일이 생기면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하는데도 걸림돌이 된다. 외환위기로 7년, 카드위기로 2년, 최소 9년 동안 짐을 안고 살아야 한다. 제 3의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외환위기나 신용카드 위기에 무슨 잘못이 있었는지 알아야 한다.

물론 갚을 능력을 넘어서 카드로 불필요한 것을 산 것은 당사자에게 우선 잘못이 있다. 두 번째는 신용이 없는 사람에게 카드 발급하고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을 해준 신용카드사들의 잘못도 있다. 세 번째는 감독하는 금융감독원이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 금융감독기구가 제대로 했다면 카드 남발을 억제할 수도 있고 중간에라도 카드사들을 검사해서 리스크와 신용 관리를 하는지 확인했어야 했다.

금융감독기구의 독립성은 낮은 수준이다. 금융감독기구가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독립성이 없어서 정부 눈치를 보느라 못했다면 영향을 미친 재정경제부나 청와대가 잘못한 것이다. 카드사태를 보면 인도네시아보다 경제정책을 못하는 나라로 기네스북에 올라갈 정도다. 결과적으로 많은 국민들이 2년 이상 고생하는 결과가 생겼다. 그런데 국민들이 마음이 너무 좋은 것인가. 그런 정책을 추진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채무자들은 빚을 상환하면서 책임지고, 신용불량자는 여러 가지 혹독한 고생하면서 책임지는 것이다. 카드사들은 합병되거나 인수되면서 일부라도 책임을 졌다. 일부 대주주가 책임을 졌느냐 하는 문제는 남아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 제한을 카드사에 권고한 것이 2002년 하반기였는데 너무 늦었다. 1년 반이나 2년 전에 내려야 했던 결정을 너무 급브레이크를 밟으니 신용카드 거품이 확 빠지면서 우리가 고생하는 것이다.

금감위가 독립성이 없어 적시에 제동을 못 걸었다면 금감위, 금감원에 독립성을 부여해야 한다. 우리 관료들은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정책에는 머리를 많이 쓰고, 돈 안 들고 국민들 고생 안 시키는 것은 늦다. 머리들을 이상한 데다가 쓴다. 돈 안 들고 국민 편한 개혁은 안 한다. 노태우 대통령부터 노무현 대통령까지 17년동안 관료사회의 개혁은 제대로 못했다. 관료사회의 개혁을 못하면 제 3의 위기를 맞게 된다.

-관료사회의 개혁을 언급했지만 우리 경제가 질적 전환을 하기 위해서는 정부 등 공공부문의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박정희식 패러다임은 더 이상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해악을 준다. 그 증거가 외환위기와 신용카드 위기라고 본다. 그래서 97년 외환위기 직후에 재벌, 금융, 노사, 공공 등 4대 개혁을 했다. 재벌개혁을 한다는 건 많이 나왔고 금융개혁도 일반 금융기관을 놓고 보면 어느 정도는 이뤄졌다. 노동부문의 유연성도 많이 높아졌다.

하지만 정부 부문은 아직 별로 개혁되지 않았다. 외환위기의 교훈이 뭔가. 97년 위기상황에 접근할 때 몇 달 전에 미리 대비했다면 외환위기까지는 안 갔을 것이다. 당시 중요한 자리에 전문가가 없었던 탓이다. 61년 이후 박정희식 경제개발 방식은 큰 방향을 청와대에서 정하고 실행하는 것을 관련 부처에 맡기고 시장을 끌어갔다. 그 뒤에 전두환 씨가 독재하면서 같은 패러다임으로 했다. 80년대 말 대기업 쓰러질 때도 다른 대기업이 빚까지 같이 인수하게 해 넘기는 식으로 필요한 개혁을 안 하다가 결국 외환위기를 겪었다.

이제는 박정희식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재벌에 의존한 경제 정책은 DJ정권 때부터 어느 정도 바뀌었다. 하지만 관료 중심의 정책생산은 박정희 정권 때보다 더 의존도가 높아진 측면도 있다. KDI나 대외경제연구원 등 정부 출연 연구소의 독립성이 과거보다 더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관료들의 정책이 결정된 뒤 그걸 합리하화는 연구만 한다면 없는 것만 못하다. 그럼 관료들이 전문성이 있어야 하는데 관료들은 20대 후반에 행정고시를 보고 들어온 사람들이다. 회계사나 사시 출신들은 합격자 수가 늘어 경쟁이 치열해지고 합격한 뒤에도 공부를 많이 한다. 그러나 행시 출신 공무원들은 여전히 많이 안 뽑는데다 순환보직 때문에 전문성이 부족하다. 개방된 시장경제에서는 경제 정책 공무원은 고도의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 시장에서도 전문가를 구해야 제 3의 위기를 겪을 확률을 줄일 수 있다.

현재의 관료 선발, 승진 시스템으로는 안 된다. 순혈주의에 빠져 20년 전에 시험으로 뽑은 사람을 가지고 체계적인 훈련 없이 현재의 복잡한 문제에 처방을 내리라는 것은 그 분들이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너무 무리다. 미국은 고사하고 동남아 국가들이 하는 인력 충원 방식에도 못 미친다. 고시제도는 없앴으면 좋겠다. 어느 나라에도 고시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일본도 부동산 버블로 고생했는데 결국 관료들의 정책 판단 잘못 때문이다. 사람이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자율성 없이 우물 안 개구리 모양으로 생활하면 처지게 돼 있다. 미국에서는 관료 생활을 관두고 민간부문에 진출하면 10배의 연봉을 받는다. 우리는 그런 게 안 되니 국장은 차관, 차관은 장관, 장관은 대통령 눈치를 보니 소신껏 정책을 밀지를 못한다. 관료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정책은 관이 결정한다'는 일제시대의 잔재를 그대로 유지하는 게 문제다. 직선 대통령들이 그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 게 안타깝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어떤 대통령이 와도 경제로 성공한 대통령 되기는 어렵다. 역대 대통령들이 대체로 처음 2년은 다 잘한다. 처음 2년은 관료 얘기를 많이 안 듣다가 3년째부터 관료들 얘기를 많이 듣기 시작해 끝날 때는 매번 경제에서 높은 평가를 별로 못 받았다.

-정부정책이 잘못됐을 때 왜 제대로 된 평가가 없나.

(잘못을 저지른) 같은 사람에게 평가하라고 하니 그런 거다. 벤처정책이 잘못됐을 때도, 신용카드 사태가 잘못됐을 때도 그 때나 지금이나 아무 변화 없는 이유가 뭔가. 정책 실패를 거듭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대통령, 관료 문제 심각성 몰라"

"국내 부동산 가격 국민소득 3만불 수준"

"투기 키워서라도 경기 살리려는 관료 문화 없어져야"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 건가, 아니면 아는데 관료들에 휘둘려 개혁을 못하는 건가.

모르고 있다.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경제정책, 사회정책을 근시안적으로 추진하고 새로운 정책을 시행할 때 과거 잘못을 덮어버리는 방식으로 하는 것은 하루 빨리 고쳐야 한다. 그런 건 돈 드는 것이 아니다. 금방 된다. 고시 없애는데 돈 드나. 능력 있는 사람을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뽑도록 활성화해야 한다. 사람 뽑는 것은 좀 더 수공업적으로 해야지 고시로 머리 좋다는 것만 보고 뽑는 것은 안 된다. 사람 뽑는데 좀더 성의를 더해야 한다.

-아까 신용카드 거품 붕괴가 내수 침체에 미친 영향을 언급했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부동산 거품이 우리 경제에 미칠 악영향이 더 크다고 하는데.

분명히 그것도 중요한 원인이고, 사실은 잠재적으로 카드채 사태보다 더 걱정되는 분야다. 일본이 부동산 문제 제대로 대처 못해 10년 이상 잃어버렸는데 우리는 부동산 문제가 해결 안 되면 선진국 꿈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부동산 값이 서울 강남을 보면 국민소득 3만달러 수준에 와 있다. 그런 나라들의 가장 요지 가격에 와 있다. 예컨대 미국 LA의 헐리우드 톱스타들이 사는 집들이 200만~300만 달러까지 가는지 모르겠는데 강남에는 20억,30억 가는 데가 있지 않나. 평수로 따지면 더 심하지. 거기에는 2000평, 3000평 하는 게 100만~200만 달러 하는데 우리는 100평, 200평 짜리가 20억~30억 하니 말이 되나.

10살 정도 아이가 스무살 장정이 져야 할 무거운 짐을 지고 수 년을 살아야 하는 게 우리 경제의 모습이다. 이렇게 되면 보통 사람이 결혼한 후에 월급 저축해서 집을 마련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길어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생을 집을 마련하기 위해 살거나 집을 못 마련하겠으니 전세나 살겠다고 할 수도 있다.

신용카드뿐만 아니라 부동산 대출 많이 받은 가구는 빚 갚느라고 소비를 많이 줄였다. 도시가구 근로자를 5개 계층으로 나눠 원리금 상환 부담률을 가처분소득으로 나눈 비율을 보면 오히려 고소득 근로자의 원리금 상환비율이 더 높다. 이 사람들이 카드빚 때문에 그렇지는 않을 테고 부동산 대출하고 빚 갚느라고 그랬을 것 아니냐. 지금 근로계층은 저소득이든, 고소득이든 높은 원리금 상환 부담 때문에 돈을 못 쓰고 있는 것이다. 자영업자들도 마찬가지 상황일 것이다.

-결국 부동산 투기 사태와 관련해서도 정부 관료들이 제대로 대책을 내놓지 못한 것 아닌가.

80년대 후반 부동산 값이 폭등할 때 도입된 토지초과이득세 등 부동산 투기 억제 수단이 국민들이 잘 모르는 사이에 많이 없어졌다. 택지소유 상한제 등은 위헌 결정을 안 받았는데도 건설교통부가 갈수록 대상을 점점 축소시켜 몇 년 전부터는 완전히 없어졌다. 요즘 재건축이 문제 되니 거기에 한해 재도입한다고 하는 정도지. 부동산 투기 억제 수단을 하나하나 없애가도 우리 행정은 잘못된 것을 덮어버리기 때문에 누가 없앴는지 알 수도 없다.

2001년부터 주택가격이 막 뛰지 않았나. 왜 뛰었나. 여러 요인이 있다. 2000년부터 IT붐이 빠지면서 부동산으로 돈이 몰리기도 했고 금리가 싸진 것도 이유다. 정부가 90년대 초부터 아까 얘기한 투기억제 수단을 없앴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파트 전매 등 투기를 조장하는 수단을 많이 도입한 것도 이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재경부나 건교부가 부동산 값 뛸 때 적절한 정책을 내놔야 하는데 오히려 거꾸로 갔다. 공무원들이 맡은 분야에서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투기를 키워서라도 경기를 살리려 하는 수십 년 된 관행에서 나온 것이다. 외환위기 겪으면서 없어졌어야 하는데 그게 계속 온존해왔다. 2001년 이후 부동산 값이 많이 폭등했을 때 정책타이밍을 놓쳤다. 2001년에 근본대책이 나왔어야 했는데 야금야금 정책을 내놓다가 2003년 10.29대책으로 결국 투기붐을 막았다. 시기를 놓친 것이나 대처하는 꼴이 카드채 사태와 꼭 닮았다.

-지금 상황에서 부동산 정책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나.

아파트를 합쳐 토지의 부동산 가치가 대략 4000조~4500조원 정도 된다. 이게 15% 이상 떨어진다고 하면 모든 금융기관에서 만기 때마다 최대한 주택담보 대출을 회수하려 할 것이다. 더구나 경매가는 살 사람이 없어 10억 짜리가 1억원도 될 수 있다. LTV(Loan to value. 부동산 가격 대비 대출한도)를 2002년에 거의 규제 안 해 은행이 이 비율을 70%까지 내렸을 것이다. 60%까지만 내렸더라도 15% 정도 떨어지는 사태가 생기면 경매가는 폭락한 상태로 진행될 수 있다. 그래서 경착륙은 안 된다. 아무리 거품이 싫어도 그건 안 된다. 경착륙은 안 되지만 현 수준 유지는 안 된다는데도 동의할 것이다. 그러면 조금씩 하락해야 하는데 지난 해 물가 상승률이 3.6% 이므로 실질 아파트 가격은 5% 정도 내린 것이다. 일부 강남 지역에서 30~40%의 거품이 있다면 작년 수준으로 간다면 최소한 5년 정도는 가야 한다. 그 무거운 짐을 어찌됐던 지고 갈 수밖에 없다. 건설경기는 냉각되겠지만 어느 정도의 냉각은 감수해야 한다.
 
"선진국 진입 위해 부패 척결과 관료 문화 개혁 필수"

"세계 최고 수준 휴대폰 만들면서 부패는 왜 후진국 수준인가"

"관료들 자리 보전용 각종 사업 밤 새서 만들어"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뭔가.

환율 추세나 경제 성장률, 물가 상승률 전망 등을 종합하면 2008년에 2만 달러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선진국이 되는 과정이다. 지금은 2만 달러라고 반드시 선진국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정신적, 문화적 수준이 덩치에 비해 너무 떨어져 있으면 2만 달러가 다시 1만5000달러로, 1만 달러로 갈 수도 있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 우선 정부가 할 일이 부패 척결이다. 특히 공공부문의 부패를 현저하게 낮춰야 한다. 부패문제는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올해 노대통령 신년사까지 빠진 적이 없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투명성 지수는 10점 만점에 4.5점을 맴도니 아프리카 우간다 수준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휴대폰과 자동차를 만들면서 부패 문제는 왜 아프리카 나라와 어깨를 견주나.

정부가 올해 확대시행을 약속했던 최저가낙찰제를 지난해 말 슬그머니 또 다시 유보했다. 최저가낙찰제는 '글로벌 스탠다드'이고 도입할 경우 예산을 수조원이나 절감하는 효과를 낸다. 그런데 정부가 전력을 다해 이를 미루고 있다. 언론까지 이를 돕고 있다. 국회는 1년도 안 된 정치자금법을 과거로 돌리려 한다.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도 안 지났는데 부패세력이 점점 활개 치는 방향으로 간다. 이런 식으로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은 현재 또는 장래의 국민 부담을 늘리는 것이다. 관료들이 정부 지출을 늘릴 때 치밀한 검토 없이 매우 단기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지방공항 등 수요가 많이 없는 사회 인프라를 마구잡이로 건설하는 것이다. 그게 일본형이다. 일본형 불황은 관료주의와 부패, 재정적자의 결과물이다. 관료들이 이런 불필요한 사업들이 없으면 자기 자리를 유지할 수 없으니까 5조~10조원씩 들어가는 사업의 계획을 밤을 새서 만든다.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부패수준을 낮춰야 한다. 이미 우리 국민의 담세율은 선진국 수준에 와 있는데 부패는 아직 아프리카 국가 수준이다.

경제(經濟) 에서 경은 '곧이 곧대로'라는 뜻이 있다. 그 반대는 제멋대로 하는 거다. 제멋대로 하는 것은 권세 권(權) 자다. 경제에서 제일 좋은 것은 곧이 곧대로 돌아가게 하는 것, 법과 규칙에 따라 물 흐르듯이 사람들이 편하게 생산하게 하는 것이다. 법(法)도 물 흐르듯 하게 하는 거다. 법치가 되면 경제가 된다. 하지만 우리 부패 수준이 높고 법과 관련해 흥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법치가 문란하다. '차떼기'도 사면되고 하는 것도 법치가 문란한 것이다. 대통령이 사면 한 번도 안 하면 법치가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부패가 적발돼도 법이 느슨하게 적용돼서 재벌 총수와 국회의원이 법을 우습게 아는 것이 경제를 아주 나쁘게 한다. 4700만이 경제행위를 하는데 결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 노력하느냐에 따라 경제성적표가 좌우된다. 열심히 하는 것을 가로막는 게 부패다. 직장에 들어가서 승진할 때도 돈 주고 공무원 상대로 뇌물 잘 주고 술 잘 먹고 하는 사회가 어떻게 선진사회가 되겠나.

두 번째는 낡은 관료시스템의 개혁이다. 아까 말한대로 고시 없애고 공무원에게 충분한 봉급을 주도록 해서 유능한 사람이 시장에서도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럼 정부 안에만 관료주의가 있나. 재벌이 됐든 어디든 대학 졸업한 뒤에 뽑은 사람들만으로 승진하도록 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시스템 아래서는 비정부기구라도 관료주의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그런 데서는 고객이나 시장을 중심으로 생각 않고 인사권자만 보게 된다. 심지어 축구팀에도 관료문화가 있어서 히딩크가 그걸 깨려고 하지 않았나. 우리 사회 전반에 히딩크가 필요하다. 관료주의를 안 깨면 선진국이 안 된다. 일본도 제조업 선진국이 됐지만 관료주의가 만들어낸 부동산 거품 붕괴로 10년을 잃었다.

물론 기본적으로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정부는 결국 국민들이 선택하는 것 아닌가. 국민들이 상시로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노력하고 정부가 잘못할 때 제대로 하라고 지적하는 게 국민이 할 일이다.
by 선대인 2008. 9. 4. 16:21

상품권 뒤에 도사린 세일즈맨의 비애





[표]에스콰이어 캐주얼영업부가 2003년 추석 시즌 때 경기지역 지점별로 할당한 상품권 판매액.

"10여년간 죽도록 일했는데도 상품권 강매로 저축은커녕 수억원씩 빚 지고, 주위 가족 친지들을 신용불량자로 만들게 됐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회사 그만두니 회사가 횡령 혐의로 고발합니다. 정말 '흡혈회사'라고 해야 할지 해도 해도 너무 합니다."

제화업체 '에스콰이어' 전직 직원 최모씨의 하소연이다. 최씨의 사연을 들어보면 일반인들이 무심코 주고받는 구두 상품권에 적지 않은 아픔과 눈물이 젖어 있음을 알게 된다. 최씨 등 전현직 에스콰이어 직원 5명은 최근 미디어다음에 에스콰이어의 상품권 강매 행태에 대해 제보했다.

이들에 따르면 에스콰이어는 하청업체 및 대리점들을 상대로 매년 추석과 설 명절을 앞두고 최소 수백억 원대 이상의 상품권을 팔도록 해왔다는 것. 회사측은 상품권 판매뿐만 아니라 상품권 판매로 생기는 추가 매출증대 효과를 노려 직원들을 통해 상품권 판매에 열을 올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소위 '시즌' 때마다 에스콰이어의 매장 직원들은 수천 만원~수억 원대의 상품권을 배정받아 팔아야 했다. 특히 주임이나 과장, 지점장 등 직급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액수의 상품권 판매를 할당받아 일부 지점장들은 한 해에 10억 여원의 상품권을 떠맡기도 했다. 직원들은 25% 할인된 가격에 상품권을 배정받았지만 이를 파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시중에서 이 회사 상품권이 38~40% 할인된 가격에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었기 때문.이 과정에서 이 회사는 100만원 이상의 상품권은 카드로 결제할 수 없는데도 별도의 카드단말기를 사용, 일반 상품을 산 것처럼 수천만 원까지 카드로 결제하도록 했다. 상품권을 무더기로 팔기 위해 기업이 접대비 등 경비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불법으로 결제한 것. 이 같은 불법 카드 결제로 최소한 수백억 원대의 탈세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직원들은 상품권을 사채시장 등에서 할인해 팔아 급전을 챙기려는 사업가 등에게 상품권을 팔지만 배정된 상품권을 모두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할당 목표를 채우지 못한 직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시중에서 상품권을 40%가량 할인된 가격에 팔아야 했다. 회사에서 배정받은 할인율 25%와의 차액만큼 자신이 떠안아야 해 누적된 빚이 수억원 대에 이른 경우도 있었다. 직원들이 이를 견디다 못해 직장을 그만두자 회사측은 '상품권 판매 대금을 다 갚지 못했다'는 이유로 횡령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이들 직원들은 "본사가 할당 목표를 채우지 못한 직원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등 인격적인 모독을 지속하고 이 상태로 회사를 떠나면 고발당한다는 등 협박하며 상품권을 사실상 강제로 할당해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직원들이 억지로 떠맡은 상품권을 모두 소화하지 못해 자신의 돈으로 메우는 과정에서 수억 원의 빚을 지는 것은 다반사"라며 "직원들이 주변의 가족과 친지, 친구들의 신용카드로 대납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공익제보자 모임' 김승민 간사는 "에스콰이어의 각종 불법 행위가 확인된 만큼 회사가 이들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고 사과해 이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며 "만약 회사가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이들에게 보복한다면 회원들이 회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불매운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배정한 상품권 다 못 팔아 매년 수천만원씩 빚져
회사에 대납하려 전세 보증금, 퇴직금 넣고 가족들 카드까지 빌려


95년부터 지방의 한 에스콰이어 지점에서 근무를 시작한 최모씨는 지난 1월21일 해고당했다. 호주머니 한 쪽에는 유서를 써서 넣고 다닐 정도다. 왜 이렇게 됐을까.그는 97년부터 추석과 연말, 구정 때마다 상품권을 할당받기 시작했다. 특히 2000년부터 주임 진급 대상자가 되자 상품권 할당액이 대폭 커졌다. 회사의 명문화된 규정과는 별도로 상품권 판매액이 진급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됐기 때문. 2000년 이전에는 할당 물량이 명절 때마다 1000~1200장 정도(회사 납입 금액 기준 약 6500만~7500만원 정도)였으나 2000년 이후에는 2500~3000장 정도로 늘어났다. 이런 식으로 1년에 4억여원 어치를 할당받은 적도 있었다.회사는 이렇게 개인별로 할당 목표를 정해준 뒤 이들에게 할당 목표를 채우기 위한 진도율을 제시하게 했다. 할당 목표와 이를 바탕으로 정한 진도율이 처음부터 과다한 목표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직원들이 이를 달성하지 못했다. 이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회사측은 거의 매일 전화해 독촉하고 목표를 채우지 못할 경우 개인들이 떠맡는 조건으로 회사에 납입할 금액을 채우게 했다. 최씨는 "시즌에는 수시로 전화해 진도를 못 맞출 경우 소위 '(액수를) 더 부르라'라고 해서 반강제로 나중에 납입할 금액을 정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같은 진도율을 못 맞추면 본사에서 전화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매일 전화해 '영업사원이 맞느냐, 지원비가 아깝다'는 등의 말로 모욕을 주고 실적이 부진한 직원들을 본사에 소집해 호통을 쳤다"며 "직원들은 압박감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달성 액수를 높여 부르게 된다"고 말했다.회사는 상품권 판매는 강제로 떠맡긴 반면 명절이 지난 뒤 팔지 못하고 남은 상품권을 반환받는 데는 인색했다. 반환되는 상품권을 할당량의 2~5% 선에서 맞추라고 한 것. 이 때문에 최씨는 2000년 이후 매년 할당량의 30~40% 가량을 자신이 떠안아야 했다. 이렇게 남은 상품권은 도저히 팔 수 없어 결국 시중 상품권 유통상에게 40% 할인된 가격에 팔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서 받은 할인율 25%와 유통상에 판 가격의 차인 15%가량이 고스란히 최씨의 부담으로 떨어진 것. 이럴 때마다 번번이 그는 가족이나 친구, 선후배 등의 신용카드를 빌려 회사에 모자라는 금액을 입금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주위에 지게 된 빚이 매년 2500만~3600만 원이나 됐다. 특히 2003년 추석 때는 최씨가 6000만원 가량 판 상품권의 대금을 회수하지 못하자 이마저도 대납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는 다시 누나들의 카드를 빌리고, 원룸 보증금 1800만원을 빼고, 퇴직금 중간정산분 1900만원 등으로 겨우 이 돈을 채워 넣었다. 당시 회사에 입금한 6000만원을 빼고도 그의 빚은 1억원에 이르렀다.그는 지난해 1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사표를 냈다. 하지만 그는 결국 회사를 떠나지 못했다. 회사측이 "내년부터는 상품권을 할당 안 할 테니 회사 다니면서 빚이나 갚으라"고 최씨를 붙잡은 것. 하지만 한 달 120~130만원의 월급으로는 주변에서 빌린 돈을 갚을 수 없었다. 친구와 선후배에게서 빌린 돈부터 갚느라 결국 그와 그의 누나는 지난해 3월 신용불량자가 됐다. 이 여파로 5월부터는 급여의 절반이 카드사로부터 압류되기 시작했다.최씨가 신용불량자 상태인데도 회사는 추석이 다가오자 약속을 어기고 다시 3500장의 상품권을 할당했다. 그는 이번에도 다시 1700여만원을 스스로 부담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아는 선배가 사간 5700만원 어치의 상품권 대금을 받지 못하자 회사측은 그를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최씨는 "본사 영업부에서 내려와 선배가 상품권을 인수한 사실을 확인하고 인수증과 지불 각서까지 받아 올라갔는데 나를 중간에서 돈을 떼먹은 사람 취급했다"고 말했다.이 문제와 관련, 그는 지난 1월17일 본사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그는 회사 임원과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동안의 사정을 설명했으나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는 "지난 해 퇴사하려고 했을 때 영업팀 간부가 내게 종용해 6000만원을 대납했는데도 그 자리에서 영업팀장은 부인하고 다른 임원들은 처음 듣는 소리처럼 반응하더라"며 "그러니 내가 얼마나 억울하겠느냐"고 하소연했다.

"10년동안 뼈 빠지게 일 했더니 회사에서는 범죄자 취급"
매년 7~12억원어치 할당받은 경우도
회사측 "정상적 영업활동했는데 일부 직원들 자기관리 못한 탓"






피해자 가운데 한 사람인 정모씨 형의 신용카드 사용내역. 빨갛게 표시된 2800여만원은 정씨 형이 지난해 3월 정씨의 상품권 판매할당액 중 일부를 에스콰이어에 대납한 금액이다.

그는 결국 횡령 혐의를 뒤집어쓴 상태에서 1월 21일 해직당했다. 그는 "회사에 입사할 때 보증보험에 신원보증을 들게 하는데 회사가 나를 고발하면 9000만원까지 돈을 받을 수 있다"며 "나를 졸라서 돈을 뽑아내느니 손 쉽게 돈을 받는 방법으로 나를 고소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10년동안 뼈 빠지게 회사를 위해 일하면서 빚만 잔뜩 지고 주위 사람들을 신용불량자로 만들었는데 회사는 이용할 대로 이용해먹다가 쓸모 없어지니 범죄자로 만들어 내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는 최씨의 경우에 국한되지 않는다. 93년에 입사한 정모씨와 김모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김씨의 경우도 회사에 입금하지 못한 금액이 9200만원, 가족과 주변 지인들에게 진 빚이 1억원이 넘는다. 퇴직금 중간 정산분 2000여만원도 회사에 입금시켰다. 정모씨도 99년 이후 매년 7억~12억원 가량의 상품권 판매를 할당받았다. 그러는 동안 부모님과 누나 등이 사는 집을 담보삼아 갚아준 돈 등 모두 3억여원의 빚을 졌다. 김씨와 정씨 모두 회사에서 횡령 혐의로 고소를 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정씨는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수억원의 빚만 진 채 이렇게 고소까지 당하니 정말 비참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이들은 "가정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직장을 구하기 쉽지 않아 회사의 부당한 압력을 거절하지 못한다"며 "회사가 한편으로는 '다음에는 상품권 판매 안한다'고 달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욕하고 징계 운운해 상품권을 안 떠맡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회사 직원 1400여명이 모두 이런 식으로 상품권 강매를 당하고 있다"며 "이렇게 피해를 보고 떠난 사람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에스콰이어 최수호 상무는 "이 회사가 비교적 정상적으로 움직여온 회사인데 직원들 말대로라면 회사가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며 "입사 후 자동가입이 보장된 유니언숍 노조가 있는데도 노조가 가만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회사는 최대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영업하려 하지만 일부 영업 사원 가운데 부도난 업체에 상품권을 판 뒤 돈을 갖고 도망가는 등 자기 관리가 되지 않는 분들이 있어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씨 등이 "회사와의 관계가 썩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으며 회사쪽에서 볼 때 사고를 낸 뒤 오히려 회사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씨 등의 주장이 일부 일탈적인 사원들의 사례에 불과하다는 것.

그는 또 상품권 판매를 전화 등으로 독촉한 사실 등에 대해서도 "부서와 개인별로 판매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도록 진도를 관리하는 것은 모든 회사들이 하는 정상적인 영업활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상품권을 일반 물품처럼 불법으로 판매한 사실에 대해서는 "그런 실태를 알고 있었지만 상당수 고객이 요구하고 업계에서도 관행적으로 해온 부분이라 지속했다"며 "차후에는 이 같은 불법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회사 김능연 영업부장은 "판매 목표에 대해 직원들과 협의하지만 직원들 입장에서는 강압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품율을 2%이하로 정한 것은 기존의 반품률을 토대로 정한 것"이라며 "하지만 직원들이 다 못 판 상품권은 최대한 반품하도록 했으며 실제로 4000만원어치를 반품한 경우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씨 등의 경우 압박감 때문에 상품권을 반환하지 못하고 자신이나 주변의 돈으로 대납했다면 사실관계를 조사한 후 돈을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by 선대인 2008. 9. 4. 16:19